KBS 라디오 작가가 구글 HR이 됐다고?

KBS 라디오 작가가 구글 HR이 됐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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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티클은 <일의 기쁨과 슬픔, 그리고 성장> 시리즈 5화입니다. 


구글은 20년이 넘은 IT회사지만, 여전히 혁신하는 문화, 꾸준한 성장, 배우고 싶은 인재육성 전략 등에서 부러움을 사는 회사이다. 구글에서 HR은 깊고 방대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단순히 의사결정권이나 힘의 크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구성원에 대한 원칙을 지키고 이를 구현하는 과정에서 HR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이러한 구글에서 13년 동안 마케팅을 거쳐 HR을 펼치고 있는 민혜경 파트너. 이젠 뼈 속까지 구글 HR러의 모습이지만, 그의 첫 시작은 IT회사도 아니었고, 그의 커리어의 시작 또한 HR이 아니었다. 아마 20년 전 그는 지금 자신의 모습을 상상도 못했을 것 같다.

민혜경 | 구글 Market HR Country Lead 


방송작가로 첫 커리어를 시작하셨어요. 인사담당자 중에는 다양한 직무를 경험한 이들이 많은데, 방송작가는 그 중에서도 특이한 케이스인 거 같아요.

아무래도 일반 회사원의 첫 커리어와는 조금 거리가 있죠. 어렸을 때 언론과 방송이 가진 영향력에 매료돼 신문방송학을 전공했어요. 방송 일을 하기 위해 여러 곳에 문을 두드리던 중, 4학년 2학기 때 KBS 라디오에서 프리랜서 방송 작가로 일할 기회를 얻었죠. 그게 첫 시작이었어요. 라디오는 경력이 긴 메인작가와 신예 보조작가들이 매칭하여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당시 상황에서 파격적인 시도가 있었어요. 바로 졸업을 앞둔 대학생을 신예 메인 작가로 발탁하여 출발하는 것이었죠. 이런 기회로 저는 동갑내기 동료와 함께 프라임 시간대 프로그램을 맡게 됐어요. 바로 낮 시간대 가요프로그램 ‘가요산책’이었죠. 파일럿으로 시작했던 우리 프로그램은 놀라운 성장을 하면서 1년 정도 후에는 전국 청취율 1위를 하고, 그 후로도 오랫동안 가장 사랑받는 라디오 음악프로그램으로 자리를 지켰어요.


첫 직장으로 KBS 라디오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솔직히 말하면 그때는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어요. 당시는 지금처럼 매체가 다양하지 않아서 선택지가 많지 않았는데, 언론고시에서 번번이 떨어지고 있었죠. 그랬기에 작가 오디션에서 방송사가 저를 선택해준 것은 정말 큰 선물 같은 일이었어요. 방송작가로 약 6년을 일했는데, 정말 재밌게, 열정적으로 일했던 거 같아요.


방송 작가는 보통 어떻게 일하나요?

라디오 구성작가는 방송 콘텐츠를 디자인하는 사람이에요. 프로듀서와 협업하며 방송 전체 틀을 짜고, 디테일을 구성하죠. 이렇게 구성이 끝나면 매일 라디오 방송 원고를 작성해요. 매일 아침 작가실로 출근해서 글쓰기를 위한 자료를 살피고, 그날의 새로운 이야기거리를 만들어 내죠.


방송작가로 일할 때 어떠셨나요? 본인과 잘 맞다고 느끼셨나요?

DJ의 성격과 색깔에 어울리도록 스크립트를 썼는데, 원고를 받아본 DJ가 “내 마음속에 들어갔다 나온 것 같다”고 재밌어하며 원고를 읽을 때나 청취자들이 방송 덕분에 위로를 받고 하루의 고단함이 씻겨졌다는 반응을 보낼 때면 희열을 느꼈습니다. ‘내 생각 중심의 삶’에서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 마음과 생각을 읽어내고 공감하는 것을 훈련하는 시기였죠. 또한 ‘진심은 통한다’는 것을 배운 시기이기도 합니다. 피곤하다는 핑계로 영혼없이 글을 쓰면 겉으로는 티가 안 날 수 있지만, 청취자들은 느끼더라고요. 반대로 글에 내 삶에서 우러나온 진심이 담겼을 때 청취자들은 영락없이 공감하며 반응을 보이곤 했습니다.

라디오 작가로 일하던 시절의 모습


대학 시절부터 꿈꾸던 방송 일이었는데, 중간에 다른 길을 택하셨는데 계기가 있었나요.

방송을 하는 6년간 청취자들의 사연을 받는 방식이 빠르게 변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손편지나 엽서에서 팩스로, 팩스에서 다시 PC통신, 웹 게시판까지. 통신의 주 매체가 바뀌는 것을 실감했죠. ‘방송’이라는 전통 대중매체 대신에, 디지털 매체를 더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방송 프로그램에서 인터넷 매체를 통한 실시간 상호작용을 융합하는 실험도 해봤습니다. 예를 들면 방송 중 진행하는 실시간 인터넷 퀴즈 같은 것이죠. 요즘이야 너무 흔한 것이지만 그때만 해도 새로운 실험이었어요. 디지털 매체로의 이동에 대한 생각이 커지고 있을 때, 실행의 기회는 우연히 왔어요. 남편이 유학을 원했고, 그것을 기회로 같이 미국으로 건너가 텔레커뮤니케이션학을 공부하게 됐어요.


일을 하다가 경험하게 된 디지털 매체에 대한 관심이 새로운 공부까지 이어지게 된 거네요.

맞아요. 이렇게 전공을 변경하게 된 계기로 자연스럽게 IT업계로 방향을 전환하게 됐어요. 석사 공부를 하는 동안 학교에서 교수님들이 진행하는 프로젝트를 통해 사용자 경험 연구자, 디자이너 등으로 경력을 쌓고 귀국하면서 구글코리아에 입사하게 됐죠. 현재는 인사담당자로 일하고 있지만 인사팀으로 옮기기 전에는 마케팅팀 안에서 디지털 브랜딩과 프로덕션을 맡아 하는 구글 브랜드 스튜디오에서 아시아팀장으로 일했습니다.


첫 커리어를 생각하면 구글에서 인사를 할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것 같은데 방송작가의 경험이 현재 업무에서 발휘되는 힘이 있다면 무엇이 있나요?

공감 훈련과 글쓰기 훈련을 통해 쌓았던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정말 큰 도움이 됐습니다. 제가 했던 디지털 브랜딩이나 현재 일인 인사 모두, 세상과 타인에 대한 이해와 애정 어린 시선을 바탕으로 한 소통이 일의 본질을 이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방송 일을 할 때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모호한 아이디어를 프로그램이라는 실체로 만들어 내야 하는 것이 당시에는 괴롭기도 했지만, 지금 업무인 인사기획 등 기획력의 근육을 키워 준 좋은 훈련이었던 것 같습니다.


젊은 직장인들에게 구글은 ‘꿈의 회사’이기도 한데요, 구글에서의 일은 본인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고 있나요?

구글이라는 조직은 ‘성장’을 중심으로 움직입니다. 회사의 구성원 개개인이 끊임없이 성장할 때 더 혁신적인 제품이 나오고, 우리 사용자와 고객들에게 더 좋은 서비스를 선물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감사하게도 구글에서 일하는 13년 동안 개인적으로도 참 많이 성장한 것 같습니다. 업무 스킬의 성장을 넘어서 나를 둘러싼 직장 공동체와 사회 공동체에 대한 시선이 넓어진 것이 가장 큰 수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좁은 의미의 성취에 매몰되지 않고, 일을 통해 만들어 내는 가치가 무엇인지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함을 배웠고, 그 가치를 중심으로 어떻게 하면 함께 일하는 사람에게 일의 의미를 바라보게 하고 신나게 일하도록 기여할 수 있을지 항상 돌아보게 됐습니다. 일터는 경쟁의 장이 아니라, 모두가 가진 가능성을 최고로 펼쳐서 함께 최고의 결과를 내는 곳이라는 것을 매일 새롭게 목격하며 배우고 있습니다.

민혜경 님은 구글 브랜드 스튜디오 아시아팀장을 거쳐 구글코리아 HR로 일하고 있다. 


구글에서 일하면서 좀 더 관심을 갖게 된 분야가 있으신가요?

인사담당자로서 우선순위를 두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다양성을 존중하는 포용적인 일터 만들기입니다. 구글에서 일하는 사람은 누구도 소외되거나 주눅 들지 않고 본인이 가진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했으면 하는 것이 저의 바람이죠. 개인이 가진 고유한 경험과 능력을 이해하고 그것을 가치 있는 것으로 인정해주고 북돋아 줄 때 꽃망울이 툭 터지듯이 잠재력을 발휘하는 것을 보게 되는데 그럴 때가 가장 기뻐요. 조직도 마찬가지입니다. 조직안에 서로에 대한 존중과 신뢰가 가득하고, 그 덕분에 리스크를 감수할 수 있는 심리적인 안전감이 이루어질 때 팀은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고 역동적으로 서로 도와 놀라운 결과를 낼 수 있습니다. 바로 다양성과 포용성의 힘이죠.


다양성을 존중하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 시도하고 있는 활동이 있으신가요?

올해는 리더들과 직원들이 함께 팀을 조직해서 ‘함께 다양성 공부하기’ 운동을 하고 있어요. 여전히 팀에서 소수인 여성 엔지니어로서 일하는 경험이 어떤지, 장애를 가진 동료가 경험하는 회사 생활은 어떠하며 동료들이 놓치기 쉬운 부분은 무엇인지, 역사적으로 어떤 배경이 있길래 인종차별 이슈는 그렇게 풀기 어려우며, 그것이 한국에서 일하는 우리에게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지, 우리가 잘 몰라서 서로 돕지 못하거나 실수하는 부분은 어떤 것인지 등을 함께 배워가자는 것입니다. 이 역시 모든 구성원이 가능성을 최대한 펼칠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의 일부이죠.


일을 즐기면서 하시는 편이신 거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시 일을 하면서 위기나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하신 적이 있으신가요?

일을 참 좋아해서 그만두겠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었던 거 같아요. 다만 인생의 우선순위와 밸런스가 무엇인지 생각한 시기는 있었어요. 큰 아들이 사춘기의 질풍노도를 아주 혹독하게 겪을 때였어요. 출근 시간은 다 되어가는데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이불 속에서 버티는 날들이 있었어요. 내 기대와 다르게 행동하는 아들에게 화도 나고 실망감도 컸는데 그때 누군가 조언을 해주었어요. ‘아이야말로 지금 인생에서 가장 외로운 시기를 지나고 있는 것’이라고. ‘띵’하더라고요. 그때부터 아이와의 끈끈한 유대관계에 집중했어요. 아무리 바빠도 함께 아침과 저녁 식사할 시간을 가졌고, 함께 보내는 순간의 퀄리티에 집중했어요. 우선순위를 재정립하게 해준 아들에게 지금은 오히려 고마운 마음이에요.

그의 인생의 우선순위 재정립을 도와준 아들과 함께 


현재 업무 중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부분은 무엇이며, 스스로 일을 더 잘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시나요?

끊임없이 배우고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이 가장 만족스럽습니다. 그리고 일을 더 잘하기 위해서 꾸준히 피드백을 들으려고 노력합니다. 강점에 대한 피드백도, 약점에 대한 피드백도 모두 소중합니다. 일의 의미, 프로세스나 우선순위에 대한 팀원들의 피드백도 꾸준히 듣고 있습니다. 피드백을 통해 내가 인지하지 못한 사각지대를 계속해서 줄이고 강점은 극대화하려고 노력합니다.


스스로 ‘나는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다’ 라고 정의하고 싶나요?

저는 조직 내 선순환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서로 지지하고, 공유하며 도우면서 선순환의 맛을 경험하고 즐기는 조직의 모습으로 성장하고 계속 유지되도록 기여하고 싶습니다.


방송 작가였을 때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 공감하는 글을 많이 쓰셨는데, 지나온 세월 속에서 많은 경험을 해오신 만큼 이제 더 많은 이들이 공감할 글을 쓰실 수 있을 거 같은데, 혹시 다시 글을 쓰는 일을 할 계획이 있진 않으신가요?  

글쓰기와 저는 애증의 관계입니다. 너무 고통스럽지만 또 나도 모르게 글을 쓰고 싶어지는… 가끔씩 잡지 등에 인사관련 글을 기고하고 있는데, ‘내가 왜 쓰겠다고 했을까’와 ‘그래도 쓰길 잘했다’의 반복입니다.  언젠간 '그래도 좀 더 써보자'가 될 가능성도 없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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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정은혜ㅣ원티드 콘텐츠 에디터 (eunhye@wantedlab.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