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티클은 <문제를 해결하는 프로덕트 디자인> 시리즈의 4화입니다.
기획의도프로덕트 디자이너는 어떻게 일할까? 다른 직군 실무자와 팀원, 그리고 작은 규모의 조직 때문에 혼자 남아 일하며 얻은 인사이트를 들어본다.
이런 분이 읽으면 좋아요- 프로덕트 디자이너가 되고 싶은 분
- 다른 프로덕트 디자이너는 어떻게 일하는지 궁금한 디자이너
이런 인사이트를 얻어 보세요- 디자이너로서 다른 직군과 커뮤니케이션하는 방법
- 프로덕트 디자이너가 갖춰야 할 태도와 역량
- 여러 협업을 통해 얻은 업무 노하우
세상에는 많은 디자이너로 구성된 큰 규모의 조직이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작은 조직도 있다. 그렇다면, 후자에 속한 프로덕트 디자이너는 어떻게 효율적으로 일해야 할까? 독서 플랫폼 ‘밀리의 서재’ 디자이너로서 디자인 영역의 선을 넘나들며 커리어를 성장시킨 세 가지 경험을 전한다.

이영주 | 밀리의 서재 프로덕트 디자이너
이런 것까지 해야 할까, 물음표가 든다면
밀리의 서재 오픈 초기 단계 때부터 프로덕트 디자이너로 팀에 합류했다. 서비스 오픈 초기인 만큼, 적은 인원이 다양한 업무를 하며 여러 기능을 개발하던 시기였다. 직원 모두 서로의 직군에 대한 이해도가 낮아 디자이너가 설계자보다 포토샵을 대신 해주는 툴러로서 존재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주어진 업무를 퀘스트 깨듯 진행하다 보니, 필자가 참여해야 하는 회의마저 다른 부서를 통해 회의 내용을 전달 받는 일도 종종 발생했다. 필자는 일에 대한 책임과 욕심이 강한 편이라 오랜 기간 툴러로 일하는 환경에 처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았다. 좋은 회사지만, 퇴사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전략적인 디자인 접근이 부재한 결과, 구성원 모두 브랜드를 바라보고 나아가는 방향이 달랐다. 그러다 회사가 어느 정도 성장 궤도에 올랐을 때 차마 업데이트하지 못한 레거시(Legacy)와 제대로 정립되지 못한 채 따로 흩어져 있는 브랜드 요소가 도드라지게 보였다. 체계적인 업무 프로세스 없이 각자 맡은 바만 묵묵히 하던 시기라 방향을 한 곳으로 모으기 더욱 어려웠다.

2019년 초, 디자이너가 총 3명이 되었을 때 비로소 작은 여유가 생겼다. 눈덩이처럼 커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존에 있던 구성원과 새로 합류한 팀원이 모여 독서 플랫폼팀을 신설했고, 이 안에서 브랜드 방향성을 담은 키워드를 합의했다. 가져가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을 선택하며 치열하게 브랜드 가치를 정리했다. 현재 해당 키워드를 중심으로 밀리의 프로덕트가 지향해야 할 목표 지점과 가치를 설정하고 있다.
BX 디자이너 영역이라고 생각하고 미뤄왔던 일을 내 것으로 가져온 건, 마치 프로덕트 디자이너로서 삐그덕거리는 탁자 다리를 하나씩 고쳐내는 경험이었다. 잘 고쳐지든 고쳐지지 않든 브랜드 방향성을 정비하자 내외부에서 밀리와 연관지어 생각하는 일관적인 키워드가 생겼다. 외부에서 밀리와 관련한 서비스를 제작할 때도 우리가 전략적으로 잡은 키워드 따뜻함, 밝음, 친근함 등을 기준으로 기획을 펼쳐나갔다.
‘이런 것까지 해야 할까?’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졌을 때 ‘필요하면 이런 것까지 해야지’ 답하며 뛰어 들었던 것. 디자이너로서 선을 넘은 첫 번째 경험이었다. 회사 성장이 디자인 자산의 완성도나 박자와 결이 맞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은 지점이기도 하다. 또 부득이하게 팀 내 프로덕트 디자이너만 존재한다면, BX 디자이너 영역도 그가 해야 할 일이라는 사실을 이해했다. 나아가 프로덕트 디자이너는 프로덕트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심리적 가치를 정리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야 한다는 점을 조금씩 납득했다.
단순히 ‘예쁘게’가 아닌 ‘사용성’ 고려
프로덕트 방향을 일관성 있게 유지하며 UI 디자인을 지속하는 것도 중요하다. 새로운 도전과 시도를 거듭한 끝에 디자이너로서 갖는 프로덕트 방향성에 대한 결정권이 커졌다. 그러나 반대로, UX에 대한 관여도는 점차 낮아졌다. 이는 ‘예쁘게 (디자인)하기’라는 선을 넘고 싶게 한 동기가 되었다. 조금 더 자세하게 말하면, 단순히 예쁜 디자인이 아니라, 사용성까지 면밀히 고려한 디자인 설계를 꿈꾸게 된 것이다.

회사는 가파르게 성장했지만 여전히 밀리 서비스에는 추가해야 할 기능이 많았다. 기능 디벨롭을 위해 기획자가 늘면서 자연스레 디자이너는 기획자가 만드는 결과물에 살을 붙이는 역할을 했다. 디자이너는 시각적인 콘셉트를 잡는 데 권한을 가졌으나, 기획 단계에는 참여할 수 없었다. 그런데 디자인은 ‘설계’의 영역이다. 기획자 영역 중 UI 설계와 겹치는 부분이기도 하다. 디자이너는 시각 분야의 경험은 풍부하지만, 기획자에 비해 비즈니스가 왜 특정 기능을 필요로 하는지 또 그 기능을 통해 얻고 싶은 고객 반응은 무엇인지 분석하는 능력은 부족하다. 고객 니즈를 파악하는 능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단순히 예쁘게 디자인한다는 것은 필자가 맞닥뜨린 두번째 어려움이었다.
모든 프로덕트 메이커, 기획, 디자인, 개발 분야 구성원이 자신의 경험과 관점을 토대로 UX를 설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각자의 전문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평하기보다 디자이너 관점의 UX를 적극적으로 제안하기 시작했다. 디자이너 관점에서 화면과 플로우를 점검하고 더 좋은 의견이 있다면 프로토타이핑(prototyping)으로 설득하려고 노력했다.
그 사례 중 하나가 뷰어 개편이다. 뷰어를 리뉴얼할 시기, 밀리 브랜드 가치 중 하나인 ‘캐주얼’과 ‘가벼움’을 바탕으로 유저가 즐겁게 사용하고 콘텐츠를 아름답게 담을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10대부터 50대까지 아우르는 다양한 연령대 사용자를 고려해야 했기 때문에 그동안 구현하기 어려웠던 부분을 디자인을 통해 해결하려고 했다. 각 부서의 여러 요구를 한 번에 녹여내 디자인하고, 프로토타이핑으로 만들었다. 이를 통해 결정권자, 개발자들이 원하는 UX에 대해 확실하게 이해했고 최종 동의한 결과 뷰어를 개발할 수 있었다.
개편 직후, 뷰어 평점이 최고점을 기록했다. 성능이 개선되는 동시에 디자인 CS가 감소했고, 리뉴얼 관련한 긍정적인 리뷰가 앱 페이지 뿐만 아니라, 블로그까지 이어졌다. 협업 부서와 더 나은 프로덕트를 만들기 위해 명렬하게 뜻을 모았던 시간이 빛을 보았다.
팀원들의 다양한 연령대와 경험을 바탕으로 나오는 관점을 신중히 경청하고, 사용자 관점을 토대로 프로덕트를 제작하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 특히 정확한 데이터 드리븐(data driven) 디자인을 하기 어려운 환경에서는 구성원의 목소리와 반응을 테스트하는 방법이 상당한 도움이 된다.
주체적으로 일하라
필자의 경우 회사 업무와 별개로 시간을 확보해 디자인 시스템을 제작했다. UI 컴포넌트 수준의 디자인 시스템을 1~2년 써본 경험을 기반으로 시스템을 업데이트 할 때마다 속도감 있게 개선할 수 있었다. 연신 시행착오를 거치며 불필요한 것과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판단하고, 각 디자인 요소를 어떻게 배치해야 하는지 속속들이 알게 되었다. 아래 이미지는 디자인 시스템 4.0 아이데이션 당시 무드보드 중 일부다.

버전 3.0(이미지 안 왼쪽 표)에서 4.0(이미지 안 오른쪽 표)로 디자인 시스템을 업데이트하면서 짧고 어중간했던 분류 체계가 복잡하고 세분화된 모습으로 바뀌었다. 디자이너들과 3.0을 사용하면서 느꼈던 부족함 혹은 ‘이건 필요없네?’라고 생각했던 부분을 바탕으로 만든 정리 체계다. 이 과정에서 동료 김민희 디자이너가 주도적인 역할을 맡아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동료 간 서로 배우며 성장하는 관계를 ‘피어 러닝’이라고 한다. 이 관계 경험을 통해 이전보다 자신감 있게 우리만의 시스템 형태를 찾아가고 있다. 디자인 시스템을 만들기 전까지는 ‘대체 어떻게 만드는 거지?’ ‘큰 회사만 하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했는데 우리에게 맞는 분류법과 컴포넌트(component)를 발견할 수 있었다. 현재 기본적인 골조를 기준으로 밀리가 가진 독특한 지점을 커버하는 형태를 만들고 있다. 어떻게 하는지 몰라서 시작조차 하지 않았다면 이만큼 성장할 수 없었을 것이다.
목소리를 높여 최선을 만들다
두 번의 선을 넘는 과정에서 회사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 경직된 분위기에 가깝던 회사가 2021년부터 직군과 상관 없이 문제해결 과정의 프로젝트를 킥오프하는 동시에 리딩을 맡고 있다. PM이 아닌 구성원도 PL로서 업무를 이끌며 지표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하는 중이다.
프로젝트를 리딩하며 골자를 짠 업무 방식은 다섯 단계다. 가장 먼저 문제점 정의다. CS, 사용 지표 데이터를 통해 어떤 기능이 사용자에게 제대로 인지되고 있지 않은지, 추가로 어떤 사용 기능이 필요한지 문제점을 정의한다. 다음으로 해당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시안을 도출한 후, 계속 해결 방안을 구체화하며 일정을 조율하고 배포한다.

이 과정에서 오너십을 끌어 올리는 방법이 있다. 해결 방안을 구체화할 때 모든 팀원이 사소한 의견이나 생각을 표현하도록 설득하는 것이다. 전체 구성원이 프로젝트에 능동적으로 참여한 경험을 얻고, 이를 발판으로 긍정적인 분위기를 유지한다면 결과적으로 완성도 높은 프로덕트를 만드는 데 도움을 준다.
프로덕트 디자이너가 갖춰야 할 태도 3가지
지금까지 선을 넘나들며 프로덕트 디자이너로서 혹은 서비스를 만드는 곳에서 디자이너가 갖춰야 할 세 가지 태도를 알아봤다. 정리하자면 아래와 같다.
첫 번째는 적극적으로, 정확히 이야기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솔직한 의견을 많이 표현해야 한다. 의견을 내는 과정에서 디자이너의 존재감이 달라진다.
둘째, 불도저처럼 영역을 확장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각 부서의 직무 영역을 침범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프로덕트 경험 개선을 위해 적극적으로 피드백하면 좋다. 디자인도 피드백을 받아야 하듯 모든 메이커의 영역에는 피드백을 통한 개선점이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계속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하는 태도다.
개발자, 기획자, 콘텐츠 운영자, CS 운영자에게 권한을 달라고 이야기할 때 직군에 대한 존중을 충분히 표하고, 오해가 없도록 명확한 단어를 고르는 노력이 중요하다. 또, 의견을 낼 때 반드시 근거를 제시하고, 시각화해서 보여줘야 한다. 다양한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할 수 있는 디자이너가 된다면 사수 없이도 스스로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정확하게, 많이 이야기하는 게 중요하다. 소통하겠다고 결심했던 순간마다 큰 변화가 일어났다. 내부 구성원과 대화하며 밀리의 서재 디자인 시스템을 만들었고, 디자이너 영역을 확장해 다른 직군과 교집합을 만들어 문제의 답을 찾으려고 시도했다. 언제나 좋은 프로덕트는 다양한 사람의 적극적인 융합에서 탄생한다고 믿고 있다.
여러분도 선을 넘고 또 넘는 프로덕트 디자이너로 성장했으면 좋겠다. 더불어 어떤 요구사항이 밀려 와도 유연하게 대처하기 바란다.
디자이너는 무엇이든 디자인할 수 있으니까.* 이 글은 원티드 강연을 바탕으로 정리했습니다. 이영주님의 강연은
<원티드 플러스>를 통해 다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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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진ㅣ객원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