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 입문 전, 꼭 필요한 첫 번째 질문

개발 입문 전, 꼭 필요한 첫 번째 질문

일자

상시
유형
아티클
태그
이 아티클은 <비전공자가 개발자로 일하는 방법> 시리즈 1화입니다. 


비전공자로 IT 업계에 종사한 지 만 8년이 되었다. 약 6년 간 개발자 업무를 해왔고, 현재는 IT 영업 활동을 지원하는 Cloud Solutions Architect로 일을 하고 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8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났지만, 생각해보면 그간 많은 일이 있었다. 비록 확신 없이 시작한 공부였지만 이내 개발의 매력에 빠져 개발자로서 경력을 쌓게 되었다. 개발자 생활을 하다보니, 개발 공부를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물어보는 사람이 많아 온라인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다 온라인에서 개발을 가르쳐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강의 콘텐츠를 제작해 올리기도 했고, 출판사에서 연락이 와 그간 써놓은 글을 토대로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이후 개발 기술을 발판 삼아 싱가폴로 나왔다. 기술을 살려 조금 더 비지니스에 가까운 일을 해보고 싶어 현재는 ‘솔루션 아키텍트’라는 세일즈 조직에 소속된 포지션으로 일하고 있다.

그 사이 한국에서 개발자에 대한 인식은 정말 많이 바뀌었다. 내가 개발을 시작할 당시만 하더라도 개발자가 3D 직업이라고 말리는 사람이 대다수였는데, 지금은 많은 사람이 개발자 커리어에 도전한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처음 개발과 관련된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는 이제 막 개발자가 된 설렘과 흥분, 그리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는 불안감으로 글을 썼던 것 같다. 이제 IT 산업이라는 분야가 어느 정도 눈에 들어온 시점에서, 개발자가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다시 한번 정리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싱가폴에서 강연 중인 필자


왜 개발자가 되려고 하는가?


정말 상당한 수의 사람이 개발자가 되고 싶어 한다. 혹은 개발자가 아니더라도, 개발이라는 분야를 조금이라도 경험해보고 싶어 한다. 본격적으로 개발자 과정을 공부하기 앞서 가장 중요한 건 ‘그래서 왜 개발을 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것이다. 물론 도전을 시작하기 전, 이 질문에 확고한 답을 찾는 건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다. 다만 개발에 입문하기 전, 꼭 한 번은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하는 질문이고, 개발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그 답이 바뀌는 것도 흔한 일이다. 왜냐하면 경험과 상상은 다르기 마련이고, 실제로 그 안에 들어갔을 때 접하게 되는 정보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자, 당신은 왜 개발자가 되려고 하는가?


그 어떤 직업보다 해외 취업이 쉽다


필자가 처음 개발자가 되고자 결심했던 이유는 해외 취업의 가능성이었다. 인터넷으로 전세계가 연결되고, 비행기만 타면 거의 대부분의 나라에 24시간 내 도착할 수 있는 시대다. 이런 시대에 한국에서만 일하고 싶지 않았고, 좀 더 다양한 나라에서 일할 수 있는 직업을 선택하고 싶었다.

사실 같은 이유로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한국에서 해외 영업 직무를 선택해 대기업에 입사했었는데, 주재원으로 나가는 데만 최소 3~5년의 기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주재원의 삶이 대체로 상급자의 의전 활동이라는 것을 깨닫고 큰 충격을 받았다. 무엇보다 한국에서 영업 조직은 너무나 비상식적인 음주 문화와 권위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적응하는 데 어려워 일단 퇴사를 해버렸는데 이때 우연히, 하지만 너무나 매력적으로 다가온 것이 개발자라는 직업이었다. 당시 한국에서는 개발자가 3D 업종 취급을 받았지만, 미국 실리콘벨리에서는 더 없이 매력적인 직업으로 부상하고 있을 때이기도 했다.

그리고 개발자는 다른 조직에 비해 요구되는 영어 수준이 굉장히 낮은 편이다. 마케팅, 세일즈 등의 직무는 다른 팀과 협업할 경우가 잦아 높은 영어 수준 혹은 원어민에 가까운 영문 활용을 요구하지만, 개발자는 어느 정도 의사소통만 되면 채용될 수 있다. 개발 실력만 확실히 검증된다면 외국어는 천천히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 셔터스톡


수평적인 기업/조직 문화


전통적인 업계와는 다른 IT 엔지니어링 조직 문화도 매력적인 요소다. 조직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비교적 개인적이고, 수평적인 문화는 개발 조직의 분명한 특징이다. 따라서 당연히 회식 횟수도 현저히 적었고, 전체 회사나 팀이 ‘으쌰으쌰’ 하는 분위기보다, 가까운 엔지니어들끼리 돈독한 관계를 형성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특히 취업을 해외에서 한다면 기업 문화의 더욱 큰 차이를 경험할 수 있다. 개발자팀은 거의 최초로 원격 근무를 도입할 수 있던 조직이 아니었던가. 그 이유를 이해하려면 개발자가 일하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개발자는 누구보다 투명하게 업무를 하는 사람이다. 매일 업무 내용이 모든 개발자가 볼 수 있는 공간에 공유되고, 내가 만들어 낸 결과물이 시시각각 다른 사람의 평가를 받는다. 어디에서 일하든 그 사람의 업무 결과가 단연 눈에 띄기 때문에, 작업자가 어디에 있든 크게 상관없다.


내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희열


개발자로 일하면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는 내가 상상한 무언가를 내 손으로 직접 만들어 내는 경험이다. 비록 회사 생활을 하면 여러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지만, 실제로 작업물을 제작하는 사람은 적을 것이다. 혹은 무언가 만들어 내는 구성원에 포함된다 하더라도, 전체 프로세스를 경험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런데 개발은 기본적으로 상상 속의 무언가를 현실로 불러내는 작업이다. 내가 어떤 서비스에 어느 부분을 기여했는지 명확하게 보인다. 나아가, 처음 개발을 배우기 시작한 사람도 내 프로젝트라면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서 만들어보는 일이 가능하기도 하다.

물론 개발은 창조의 희열에서 출발하지만, 경력이 점차 쌓일수록 기술의 깊이를 다져가야 하는 분야다. 그러나 앞선 희열처럼 내가 창출한 서비스가 내부적으로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하는 즐거움도 있기 때문에, 결국 끊임없이 작업하며 보람을 얻을 수 있는 직업이다.

ⓒ 셔터스톡


기술자로서의 커리어


개발자가 각광 받는 또 다른 이유는 자기 기술을 가진 사람으로서 전문가 대우를 받는다는 점이다. 5년 혹은 10년이 지나 자신을 돌아 봤을 때 나만의 전문성이 없다고 느끼는 실무자가 많다. 경력과 동시에 연봉은 뛰었는데, 업무 능력이 신입사원과 크게 다르지 않다면 회사 생활에서 불안감이 커질 수밖에 없다.

개발자는 자신의 전문 지식과 기술을 갈고 닦는다. 특히 페이스북이나 구글, 네이버 등과 같이 큰 규모의 사이트 서비스를 만드는 개발자라면, 내가 짠 코드가 수십억 명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 나만의 전문 분야를 찾고, 다른 사람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푸는 개발자가 되는 과정이 중요하다. 이 과정에서 그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엔지니어로 자리 잡으며 기술자로서 직업 안정성을 가지고 높은 연봉을 받는 길이 열린다.


개발이 모두에게 맞는 것은 아니다


앞서 개발자 문화가 비교적 개인적이라고 표현했다. 컴퓨터 앞에 앉아 혼자 씨름을 해야 하는 개발자 업무의 특성상 어떤 날은 그 어떤 사람과도 대화하지 않고 흘러가는 날이 있을 수 있다. 대부분의 시간은 코드를 짜고, 문제가 있을 때는 인터넷 상의 개발 공식 문서와 검색을 통해 문제를 해결한다. 혼자 업무하는 걸 즐기는 사람이라면 문제가 되지 않지만, 만약 누군가와 토론하고 협업하는 과정에서 즐거움을 얻는 사람이라면 개발자 업무가 맞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개발 기술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바뀌고, 새로운 기술이 등장한다. 물론 다양한 기술 밑에 존재하는 핵심 기술이 존재하지만, 결국 개발자로서 커리어를 쌓기 위해 언제나 공부하고 스스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만약 개발자가 되기 위해 초기에 몇 년 공부한 후, 주어진 업무에만 몰두하는 사람이라면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직업인으로서 또 개발자로서 좋은 커리어를 맺기 어려울 것이다.

또한, 최근 개발자의 높은 연봉이 기사화되고 있는데, 사실 모든 개발자가 좋은 연봉을 받으며 일하는 것은 아니다. 개발자가 다른 직군에 비해 연봉이 높다는 기사를 본 개발자 커뮤니티에서는 그 정도 받는 개발자가 얼마나 되냐며 자조 섞인 댓글을 남기는 사람도 있었다. 개발자가 된다고 높은 연봉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은 아니다. 위에서 말했던 것처럼 꾸준히 공부하며 기술을 갈고 닦는 과정을 통해 획득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개발자가 되기 전, 고민해봤으면 하는 점은 무척 다양한 프로그램과 함께 한국에 개발자 공급이 본격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만약 시장 수요를 넘는 개발자가 공급된다면, 실력이 별로 차이 나지 않는 신입 개발자부터 가격 경쟁이 시작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도전해보자는 마음이 든다면 개발자는 충분히 도전해볼 만한 직업이다.



▶ <비전공자가 개발자로 일하는 방법> 시리즈 보러 가기



글ㅣ마르코
필자는 역사학도 출신 개발자로 대학 졸업 후 무역상사에 입사했으나 직장 상사들처럼 살고 싶지 않아서 퇴사 후 개발을 공부했다. 한국에서  개발자로 3개의 스타트업을 다녔고, 이후 프리랜싱, 개인 사업 등 다양한 일을 하다가 상해를 거쳐 싱가폴에서 개발자로 일했다.  현재는 IT영업 업무를 하면서 관련 글을 쓰고 있다. (https://brunch.co.kr/@imagine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