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으로서 가장 많은 무기력함을 느끼는 순간이 아마도 이러한 주제에 관련해 대화를 나누는 순간이기도 할 겁니다. 거대한 시스템 앞에서 한 개인이 주장하는 목소리가 얼마나 나약한지, 우리는 잘 알고 있죠. 제대로 준비를 하지 않고 대화를 시작하면 오히려 '어차피 안되는 게임'에서 패배만 하고 돌아와 무기력감만 높아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조금만 들여다보면 우리가 지레짐작으로 만들어 놓은 그 환경에도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키오스크와 같이 정해진 상품과 가격만 보여주는 화면이 아니라, 우리가 이야기를 걸고 있는 대상은 바로 기계가 아닌 '사람'이라는 것을요. 한 번에 말이 잘 통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러한 대화가 껄끄럽다는 이유로 난공불락의 대상처럼 '불가능'이라는 프로그램을 미리 주입해 놓은 것은 아닐지 생각해 보면 좋습니다.
싱가포르에서 10년을 살면서,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에서 일을 하고 있는 다양한 직장인을 만나면서 깨닫게 된 것이 있습니다. 설득은 어쩌면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들에서 나오는 '열려라 참깨'와 같은 주문과 상당히 비슷하다고요.
거대한 동굴 앞에 막아서 있는 무거운 돌문을 움직이는 것은 쇠 지렛대가 아니라, 툭 던지듯이 말하는 주문에 있으니까요. 이 주문을 말하는 일이 어렵지 않은데, 대부분의 사람은 믿지 않습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죠.
‘에이 코치님. 설마, 말한다고 그게 열릴까요?
어차피 안 될 건데, 뭐 하러 힘을 빼나요?’
제가 10년간 관찰을 해보니, 사실은
말의 힘을 올리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대화가 안 통하고 답답한 상사가 아니라, 우리에게 학습된 무기력감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죠. 자신의 '말의 주권'을 무의식적으로 타인에게 언제나 양도하는 것입니다. '잘 알아서 해주세요'와 같은 기대치가 바로 그것입니다.
승진이나 협상과 같이 자신의 영역을 지켜야 하는 순간, 그 결정권을 그저 환경에게 넘겨버리는 것이죠. '
열려라 참깨'라고 말하는데 들어가는 열량은 고작 한 5kcal 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그 말을 하는 것에 대한 심리적 부담감은 5000kcal로 느껴지니까요. 5000kcal를 쓰기 위한 심리적 근육이 없으니, '열려라 참깨'도 외칠 힘이 없죠.
예를 하나 가지고 올까요? 15년 정도의 한 경력자가 새로운 회사와 연봉 협상을 할 때, 본인의 희망 연봉보다 5000만 원 정도 낮은 금액으로 오퍼를 받았다고 해볼게요. 인사 담당자는 단호하게 이야기합니다.
‘이것이 우리 회사가 당신에게 줄 수 있는 최선의 금액입니다.’그 회사에 오랫동안 입사를 하고 싶었고, 심지어 지금 무직의 상태라면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하실까요? 제가 만난 많은 사람은 속으로만 고민을 하고 결국에 마지못해 사인을 합니다. 왜 '더 올려달라고' 묻지 않느냐는 질문에 오히려 이렇게 대답을 하죠.
‘조직은 힘이 있고, 나는 힘이 없으니까요.’이제는 실제 사례를 가지고 와보겠습니다. 위의 예랑 아주 흡사하지만, 반대의 결과를 만들어 낸 경우입니다. 올해 제가 만난 고객은 이러한 심리적 장애물을 걷어내고, 열려라 참깨를 외치기로 합니다. 역시나, 참깨의 주문에 바로 문이 열리지는 않았어요. 인사 담당자는 '인상은 절대 불가능하다'라는 메시지를 줬지만, 심리적 근육을 이용해 물어봤습니다. 근거와 이유를 찾고, 미래를 그리는 조건들을 걸었지요. 조직이 연봉을 맞춰줬을 때, 어떤 이득을 가지고 올 수 있는지를 그리는 작업을 했습니다.
오해 1에서 나온 것처럼, 한 번에 안 된다고 해서 물러서지 않고 '여러 차례 깨우칠 수 있도록' 말을 걸었습니다.
무모한 도전? 결과는 성공!
한 달 동안 이메일과 전화를 수차례 쓰고 받기는 했지만, 회사는 그 금액을 기꺼이 맞춰주었습니다. 절대 안 된다고 하던 인사담당자는 웃으면서 '아주 예외적인 케이스'라고 말을 하며 축하를 건넸습니다. 저는 이왕이면, 여러분이 이런 ‘예외적인 케이스’의 주인공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연봉에 대해 서로를 설득할 수 있는 시간은 겨우 몇 주간의 시간인데, 그 시간을 최대한 레버리지(leverage)하는 것이 왜 시간 낭비일까요? 커리어의 전환에서 가장 황금기의 시간인걸요.
생각해 보세요, 일 년의 1억 이상의 수익은 결코 작은 돈이 아니죠. 회사를 5년 정도 근무한다고 했을 때, 기본 연봉과 비례할 보너스와 스톡옵션 등을 모두 더하면, 이 값어치는 바로 계산이 되지 않을 만큼 커질 수 있습니다.
저의 고객은 입사 후, 흥미로운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 회사에 입사한 비슷한 조건의 경력자들은 거의 대부분 '연봉을 깎아서' 입사를 했다는 것입니다. 인사 담당자들은 연봉을 낮게 불러도 회사의 브랜드를 보고 입사할 사람이 있다는 것을 명민하게 간파했고, 시장논리에 의해서 절대 첫 오퍼를 높게 부르지 않았습니다. 이 지점에서 운명이 갈리게 되죠. 설득을 준비하고 질문하며 '여러 차례 깨우쳐 보려고' 하는 사람과 '그런 것은 안 통하니 그냥 빨리 사인하자'라는 사람으로요.
자, 여러분은 이제 어떤 선택을 하실 것인가요? 설득의 순간 앞에 5kcal의 회피형 설득을 하실 것인가요, 5000kcal의 도전형 설득을 하실 것인가요?
인생의 권력, 말의 힘
말에는 우리 인생의 권력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미리 포기하거나, 너무 쉽게 발언권을 양도하면 안 됩니다. 그 누구도 여러분의 권리와 능력을 대신 말해줄 수 없으니까요. 설득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연습’하는 것이고, 특정한 사람만 필요한 게 아니라 일을 하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또한, 설득을 방해하는 것이 어려운 환경이 아니라 어려운 환경이라고 미리 짐작하고 포기하는 ‘우리의 무기력감’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 <직장인의 말하기 : 말의 공식> 시리즈 보러 가기 글ㅣ쟈스민 한말의 공식 (2022, 토네이도), 워크 디자인 (2020, 21세기북스) 저자이며 비즈니스 심리학자. 7년은 한국에서, 11년은 싱가포르에서 경력을 쌓았다. 애플에서 비즈니스 코치로, ESSEC 경영 대학원에서 협상과 설득을 가르치고 코칭하며 다양한 직장인들을 만났다. 2021년 비즈니스 코칭 스쿨을 설립했고 글로벌 코치로 일을 하고 있다. @bcoaching_schoo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