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티클은 <일의 기쁨과 슬픔, 그리고 성장> 시리즈의 10화입니다.배달의 민족, 토스, 당근마켓…
이들은 얼마 전 한국인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앱 조사에서 카카오톡, 유튜브, 네이버 등과 함께 10위 안에 뽑혔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회사들이 어느덧 시장을 선도하고, 소비자들의 생활방식까지 바꾸고 있다.
우리가 기억할 사실은
지금은 거대한 기업으로 성장한 이들도 처음에는 하나의 아이디어로 출발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성장 가능성에 투자한 벤처캐피탈의 지원이 있었다는 것. 최근 스타트업 시장이 활발해짐에 따라 이들의 재정적인 버팀목은 물론, 경영 파트너인 벤처캐피탈 시장이 커지고 있다. 그와 동시에 ‘투자 심사역’이라는 직업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는 것.
애플, 삼성전자 개발자 출신에서 카카오벤처스 수석심사역으로 변신한 이인배 수석을 만나 투자심사역 일에 대해 들어봤다.
ⓒ 박종현
자기소개 간단히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저는 카카오벤처스에서 해외 스타트업 초기 투자를 맡고 있는 이인배입니다. 미국 카네기 멜론대학교에서 전기컴퓨터공학을 공부하고 애플 본사와 삼성전자에서 스마트폰 소프트웨어 개발 업무를 했습니다. 그 후 2015년부터 카카오벤처스에서 일하고 있는데 중간에 카카오 본사 발령으로 올라가서 여러 다른 업무도 수행했었습니다.
개발자로 일하시다가 본인의 커리어를 바꾼 계기가 있으신가요?
처음 커리어를 시작할 때는 크게 고민이 없었어요. 게임, 컴퓨터를 좋아해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했고 그걸 활용할 수 있는 회사에 또 운 좋게 들어간 거죠. 당시에는 ‘이 길이 나의 길인가’라는 생각 자체를 안 했던 것 같아요. 남들이 알아주는 회사, 부모님이 좋아하시는 회사에 다녔고, 일 자체도 꽤 재미있었으니까요. 그러다 30대 초반쯤 ‘나’라는 사람, ‘이인배’라는 하나의 브랜드를 앞으로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를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자신을 돌아보게 됐고, 바닥까지 들여다보면서 내가 지금 잘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했어요.

친구들과 찍은 졸업 사진 ⓒ 이인배
엔지니어로 한창 잘 나가다가 다 내려놓고 아예 새롭게 시작한다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맞아요. 새로운 문이 열리면 나머지 문을 닫아야 하니까, 내가 가진 것들을 많이 내려놔야 했어요. 그러다 보니 선택 하나하나가 조심스러워지더라고요. 한동안은 이런저런 절박함이 들기도 했는데 그때 공인회계사 공부를 했어요. 회계나 재무는 어떤 회사 생활을 하든지 알아두면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기초라도 닦아두면 나중에 어디서든 쓰이겠지라고 말이죠. 그때만 해도 벤처캐피탈을 할 생각이 크게 없었는데, 결과적으로는 그 공부도 지금 일에는 꽤 도움이 되고 있어요.
VC는 비즈니스 경험이나 컨설팅 경험이 필요할 것 같은데, 개발자 출신으로 어떻게 채용 과정을 통과하셨나요?
오히려 개발자 출신이어서 이득을 본 것 같아요. 당시 벤처캐피탈 지원자들은 컨설팅, 경영, 금융 쪽 경력자가 많았고 상대적으로 기술 쪽은 부족한 상황이었죠. 특히나 저처럼 미국 문화에 익숙하고, 실리콘밸리에서 일하고, 영어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사람은 많지 않았어요. 그러다 보니 면접관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던 것 같아요. 저는 면접에서 투자 업무를 잘 알지 못하지만, 기회가 주어진다면 기꺼이 배울 의지와 진심이 있다는 것을 표현했어요. 개인적으로 피플 오리엔티드(People Oriented)된 사고방식을 가지고 일하는 편인데, 덕분에 면접을 보신 분들이 저를 좋게 평가했던 거 같아요. 케이큐브벤처스(카카오벤처스의 전신)와 꽤 핏이 맞았죠.
그럼 수석님이 같이 일할 동료를 채용할 때 어떠한 부분을 중요하게 보시나요?
저 역시 우리 회사에 맞는 사람인가를 중요하게 봐요. 아무리 훌륭한 분이라도 컬처핏이 안 맞으면 그분은 물론 회사도 힘들어지니까요. 또 빨리 배우고 자기 것으로 만드는 역량이 있는지도 확인해요. 그리고 기존 멤버들이 커버하지 못하는 영역을 채울 수 있는지가 중요하죠. 한마디로 우리와 컬처핏이 맞고 자신만의 스페셜티를 가진 사람을 채용하려고 합니다.

삼성전자 근무 시절 ⓒ 이인배
경력 없는 신입을 채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죠?
그런 경우는 거의 없긴 한데, 또 최근에는 조금 늘어난 거 같기도 해요. 처음부터 끝까지 제품을 만들어보지 못한 상황에서 단순히 공부를 잘하고 관심과 열정이 있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조언하고 도움을 주기는 힘들잖아요. 반대로, 컨설턴트라던가 MBA 출신을 기피하는 투자사도 있는데,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말로만 이건 이렇게, 저건 저렇게 해야 한다고 하는 헛똑똑이가 될 수 있으니까요. 책으로만 배운 사람의 조언보다는 직접 해보고 산전수전 겪어본 사람의 말을 더 신뢰하잖아요. 물론 젊은층이 쓰는 서비스에 대해서는 20대 중후반의 관점이 필요하기도 해요, 이럴 때는 인턴으로 입사한 신입사원들이 많은 기여를 하기도 합니다.
벤처캐피탈은 다양한 산업의 경력자가 모여 있을 것 같은데, 이들은 어떻게 일하고 소통하나요?
회사마다 다를 텐데, 카카오벤처스의 경우에는 모회사인 카카오와 창업주가 같은 출신 기업이다 보니 문화가 비슷한 부분이 많아 수평적인 소통을 지향해요. 기본적으로 영어 이름을 사용하고 직급이나 나이에 상관없이 소통하여 의사결정을 합니다. 같은 사안에도 지식과 경험에 따라서 각기 다른 시선으로 분석하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의견을 조율하고 최종 결정을 내리는 방식이 중요한데, 수평적인 소통을 해서 좀 더 다양한 생각들이 반영될 수 있는 거 같아요.
하나의 투자를 결정하기 위해서 제안서를 검토하고 창업가팀을 만나서 발표를 듣고, 내부 논의를 통해 투자 여부를 결정해요. 투자가 결정되면 현재 운영 중인 어느 펀드에서, 어느 정도 투자를 할 것인지 정하고 투자 후에는 정기적으로 체크를 하면서 성과를 기다리죠. 이러한 과정들에서 멤버들이 같이 논의하고 투표를 하는 것이죠.
보통은 투자사가 ‘갑’이고 창업가는 ‘을’이라고 생각하는데, 직접 투자하는 입장에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상황마다 다른 것 같아요. 예전에는 무조건 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갑이고, 돈을 빌리는 사람이 을이라는 심리적인 전제조건이 있었지만, 지금은 벤처투자사들도 많아졌고, 스타트업 생태계가 발달하면서 많은 정보가 오픈되어 있다보니 창업자들이 더 좋은 조건에서 투자사를 고르는 경우도 많아요. 그러다 보니 투자사들의 창업가들 사이에서의 평판, 성향, 성과 등이 중요해졌죠.
그럼 예전보다 VC들끼리도 경쟁이 많아졌을 거 같아요. 유능한 VC는 어떤 기준으로 평가되나요?
단순히 얼마나 투자에 성공했느냐로 유능함을 평가할 수도 있겠지만, 그 기준 또한 다양해진 것 같아요. 창업가들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커뮤니케이션 스킬도 좋아야 하고, 업에 대한 지식도 풍부해야 하죠. 개인적으로는 업에 대한 진정성도 중요하다고 봐요. 스타트업이나 창업가들을 좋아하고 그들이 꼭 잘 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 하는 거죠. 또한 지치지 않고 계속 투자할 수 있는 정신력도 중요한 거 같습니다. (웃음)

케이큐브벤처스 동료들과 함께 ⓒ 이인배
수석님은 이러한 역량을 갖추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시나요?
크게는 세 가지인데 첫째 투자 경험을 쌓는 것, 둘째 새로운 것을 계속 받아들이고 채우는 지식 노동, 셋째 나만의 스페셜티를 가져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투자는 결국 많이 해보면서 성공을 경험하고 때로는 실패를 해보며 역량이 키워지는 것 같아요. 이 분야에는 특별한 규칙이나 교과서가 없으니까 스스로 방법을 정립할 수 밖에 없죠. 같은 전략이라도 작년에는 통했지만 올해는 실패할 수 있어요. 영원히 잘 되는 것도, 영원히 안 되는 것도 없으니까요. 그래서 새로운 새로운 산업과 사업에 대해 최대한 빨리, 자주 습관처럼 학습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다양한 네트워크를 쌓고 이들을 연결해주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러한 것도 VC로서 가지는 스페셜티라고 할 수 있어요.
카카오벤처스는 스타트업 라이프 사이클에서 초반에 함께 하는 투자사인데, 그렇기 때문에 다른 투자사와는 다른 점이 있을 거 같아요.
아무래도 투자를 결정할 때 ‘사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요. 저희가 처음 창업팀을 만났을 때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몇 개 없거든요. 심지어 사업의 콘셉트만 있는 경우도 있어요. 그렇다 보니 정성적인 판단을 하게 될 때가 많죠. 저는 직장생활을 큰 조직에서 많이 해서인지 창업가와 스타트업 구성원들이 적은 리소스와 불리한 환경에서도 꿈과 의지와 실행속도를 앞세워서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고, 에너지를 뿜는 모습에서 매력을 느껴요, 그런 매력을 한 번 느끼기 시작하면 벗어나기 힘들고요(웃음).
VC 이후의 진로는 보통 어떻게 되나요?
저도 궁금한 부분입니다(웃음). 업계의 다른 투자사로 이직을 하기도 하고, 대기업 계열 투자사로 가는 경우도 있죠. 또한 VC로서 쌓은 인맥과 경험을 활용해 사업을 하기도 하고, 투자한 회사에서 러브콜을 받아 임원으로 가기도 해요. 대부분 VC라는 직업을 그만두고 싶어 하지는 않아요. 재밌기도 하고, 잘하면 돈을 많이 벌 수도 있고, 대외활동을 할 때도 VC라는 포지션이 유리한 점이 많다 보니 직업 자체를 계속 유지하고 싶어 하죠.
수석님은 이 중에서 막연하게나마 그리고 있는 모습이 있나요?
아예 생각이 없는 건 아니지만, 아직은 구체적인 방향을 정하지는 않았어요. 투자를 하다 보면 특정 분야에 애착이 생겨 좀 더 뛰어들고 싶어지기도 하고, 투자보다는 뒷단의 오퍼레이션을 즐기는 것 같아 방향 전환을 할까라는 생각도 종종 들지만 현재 상황에서도 꽤 즐겁게 일하고 있어서 과연 제가 어떠한 상황에 마음이 움직이게 될지 사실 저도 궁금해요.

ⓒ 박종현이 글을 읽을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지요.자신의 성장을 위해 노력하는 분들이 이 글을 읽을 것이라고 전제한다면, 다른 사람의 시선에 나를 맞추기보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 내가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을 찾고 그 일을 시작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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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혜ㅣ원티드 콘텐츠 에디터 (eunhye@wantedlab.com) 박종현ㅣ원티드 영상 제작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