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 자동차ㅣ멋은 물론, 안전까지 고려하는 자동차 디자이너

GM 자동차ㅣ멋은 물론, 안전까지 고려하는 자동차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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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티클은 <일의 기쁨과 슬픔, 그리고 성장> 시리즈 11화입니다.


“멋을 넘어 안전과 매출까지 고려할 수 있어야”

자동차 디자이너는 많은 이의 선망을 받는 직업이지만, 채용시장은 폭넓지 않은 편이다. 자동차 디자인학과를 졸업해도 실제 업계의 관문을 뚫는 것이 쉽지 않다. 하지만 기회를 찾고 문을 두드려, 지금은 업계에서 손에 꼽히는 미국 자동차 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20여년차 자동차 디자이너가 있다. GM 디트로이트 본사에서 일하고 있는 신동훈 자동차 디자이너가 그 주인공이다.

대학에 자동차 디자인학과가 없던 시절부터 자동차 디자이너를 꿈꾸며 업계 진입을 시도해 왔다는 그는 자동차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어떤 준비 과정을 거쳤을까? 또 실제 자동차 디자이너의 업무 과정은 어떨까? 20년 차 자동차 디자이너가 생각하는 자동차 디자이너의 핵심 역량은 무엇일까? 신동훈 디자이너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 신동훈 


동훈님의 경력과 현재의 일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자동차 디자이너 경력 20년 차로, 현재 미국 디트로이트 GM 본사에서 자동차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습니다. 관리자 직위는 아니며, 선임 디자이너(Lead Creative Designer)로서 저보다 경력이 적은 디자이너들을 이끌며 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GM에 입사한 지는 15년이 됐고, 세단‧트럭‧SUV 등 다수의 프로젝트에 참여했습니다.

GM 근무 전엔 미국에 있는 볼보(Volvo) 캘리포니아 어드밴스드(Advanced) 스튜디오, 미시간 홀랜드에 있는 존슨콘트롤즈(Johnson Controls) 자동차 인테리어 디자인부서, 2006년 새로 오픈한 현대자동차 디트로이트 스튜디오에서 1호 디자이너로 근무했습니다.


동훈님이 자동차 디자이너의 길을 가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어릴 적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어요. 그리고 자동차에 관심이 많았죠. 그러다 1980년대 초 KBS 다큐멘터리 5부작 <디자인 혁명>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디트로이트 GM 디자인 센터를 보여줬는데, 그걸 보면서 ‘내가 가야 할 곳이 저기구나’라는 마음을 품게 됐어요. 영광스럽게도 지금 그곳에서 근무하고 있어요. (웃음)


1980년대 초에는 국내 대학에 자동차 디자인학과가 없었잖아요. 어떻게 꿈을 키울 수 있었나요?

맞아요. 당시 한국 대학에는 공업디자인과는 있었지만, 자동차를 전공으로 가르치는 교수님이 없었어요. 그래서 자동차 디자인을 배우기도, 조언을 얻기도 쉽지 않았어요. 그래서 막연하게나  자동차 디자인을 하려면 공대나 미대를 가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고 먼저 고려대학교 기계공학과에 들어갔어요. 졸업 후에 미국 캘리포니아주 아트센터 자동차 디자인학과에 입학했고요. 졸업한 뒤에는 현대자동차, 볼보, 존슨컨트롤즈 등을 거쳐 GM에 경력직으로 입사했습니다. 제가 자동차 디자이너의 꿈을 키우도록 했던 GM에 입사를 한 거죠.

ⓒ 신동훈  


GM에 가셨을 때 ‘드디어 나의 꿈의 회사에 왔다’는 감격이 있으셨나요?

그렇죠. 야구선수로 따지면 메이저리그로 진출한 느낌이랄까. GM은 자동차 디자인으로는 최고 명문 회사니까요. 제가 학교 다닐 때를 생각해 보면 매 학기 30~40명이 졸업을 하는데 자동차 회사 가는 친구들은 6명 정도밖에 안 됐어요. 그런데 거기서도 GM 같은 곳에 가는 사람들은 진짜 적어서 그 관문을 뚫었다는 감격이 있는 거죠.

사실 처음엔 ‘여기서 버틸 수 있을까’라는 우려도 있었어요. 모두들 엄청 대단하고 실력자들이니까요. 그런데 가수가 자신만의 음색을 보여주듯, 디자이너도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 그 힘을 발휘한다면 독보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버텼어요. 사실 한국사람들이 그림 실력이 좋아요. 전 세계 자동차 회사에 한국 사람이 없는 곳이 없을 거예요. GM에서도 디자이너 200여명 중 30명 이상이 한국인이거든요. 꽤 높은 수치죠.


사실 자동차 디자인이라는 일 자체가 매력적인 거 같아요, 그래서 일하는 과정이 사뭇 궁금해요.

전체적인 과정을 소개해 볼게요. 먼저 프로그램 개발기간이 정해지면, 초기 아이디어 콘셉트 스케치와 수십 번의 리뷰‧수정 작업을 거쳐 디자인 방향을 정합니다. 이후 3D 형태로 구현하기 위해 실물 자동차 크기의 진흙 모형을 만드는 작업과 디지털 메스 작업을 동시에 진행합니다.

이때 엔지니어와의 구체적인 협업이 시작되는데요. 자동차 디자이너는 디자인이 의도한 정확한 형태로 나오도록 모델러(각종 모형을 실제로 만드는 사람)를 안내합니다. 컬러&트림‧UX팀과도 협업합니다. 또 최종 생산제품에 요구되는 안전규격, 현지 기술력을 비롯해 생산 가능한 조건, 기획팀에서 계획한 비용 등을 여러 파트 개발팀 엔지니어들과 함께 상의하며 디자인 수정 작업도 합니다. 보통 한 차종 당 개발기간이 3년 정도 걸렸었는데, 요즘은 기술 발달과 시대적 요구에 맞춰 개발기간이 점점 단축되고 있어 더 높은 일의 집중도가 요구되고 있어요.


자동차 디자인 실행과정에서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부분은 무엇이 있나요?

저는 엔지니어와의 협업을 강조하고 싶어요. 자동차 디자이너는 물론 창의적인 일을 하는 사람이지만, 거기에 더해 엔지니어가 알고 있는 지식을 좀 더 창의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역할도 해야 합니다. 제가 ‘제품 디자이너란 세상에서 가장 감수성 있는 일을 하는 사람이, 가장 이성적으로 일하는 사람들과 함께 작업하는 직업’이라고 이야기하곤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인데요. 그러려면 엔지니어 영역에 대해서도 높은 이해도가 필요해요. 그리고  3D제품을 만드는 디자이너로서 요즘은 오토캐드(AutoCAD) 관련 소프트웨어를 다루는 기술도 필수입니다.

프로젝트를 함께한 동료들과 ⓒ 신동훈  


협업을 강조하셨는데, 일을 할 때 어떤 방식으로 소통하시는 지 궁금합니다.

자동차 디자인은 혼자 할 수 없는 일이에요. 따라서 전체적인 조화를 위해 서로 마음을 맞추며 수정해 가야 합니다. GM에서는 한 차종 당 인테리어 디자이너만  3~4명인데 항상 자기만의 독창성을 추구할 수는 없어요. 다른 부서와는 디자인을 구현하는 과정에서 때론 다투기도 하지만, 결국은 최선의 결론을 찾고 정해진 시간  안에 끝내야 하죠. 무조건 싸우기만 할 수 없어요.  수용할 수 있는 부분은 빠르게 수용하면서 일을 진행하는 편이 좋죠. 때론 제 수준에서 합의가 안 되는 것들도 있어요. 그땐, 윗 상사에게 이야기를 하고 상사끼리 협의하도록 넘겨요. 협업을 부드럽게 잘 해나가면 관계도 점점 좋아지고, 일이 더 수월해질 수 있어요. 


자동차 디자인이 다른 디자인 분야와 다른 특징이 있을 것 같아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멋만 추구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죠. 자동차는 사람의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에 안전을 희생하는 디자인은 존재할 수 없어요. 또한 산업 디자이너는 회사 이익을 증진 시키는 역할도 해야 해요. 멋만 추구하면서 차 한 대당 남기는 매출 총이익을 무시하면 안 돼요. 이런 면에서는 자동차 디자이너들이 이상과 현실 사이의 내적 갈등을 하기도 해요.
뿐만 아니라 자동차 디자이너는 디자인을 할 때 ‘공장 작업자 입장’도 고려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디자이너가 조임새의 노출된 부분이 잘 안 보이게 아랫부분으로 숨기게 하자는 제안을 했는데, 공장에서 일하는 작업자들이 ‘하루 수십 번씩 몸을 힘들게 구부려야 하는 작업’이라며 거부하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는 거죠.


자동차 디자이너들은 보통 어떻게 업계에 진입하고 성장해 나가나요?

정규코스로 예술대학 제품디자인학과나 자동차 디자인학과를 졸업 후 자동차 회사에 입사하는 절차를 밟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저처럼 자동차가 좋아서 기계와 관련된 공학 쪽 공부를 하다가 자동차 디자인을 공부하고 오는 경우도 많습니다.
또 요즘은 자동차 업계도 새로운 자동차 혁명의 시기로 들어가는 단계가 되면서 디자인 융합이 이뤄지고 있어서 이때까지의 정규코스와는 다른 영역에서 일하다 오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어요. 예를 들어 삼성이나 애플같은 곳에서 UX 관련 일을 하다가 오는 디자이너도 있고, 나이키 같은 패션업계에 있다가 컬러&트림 부서로 오는 디자이너도 있습니다. 인테리어팀에서는 제품 디자인 유경험자를 선호하는 편이에요. 엔지니어와 협업이 일상적인 만큼 3D Math를 다루는 오토캐드(AutoCAD) 프로그램 기술도 요즘은 기본으로 갖춰야 하고요.

제품 출시 기념 단체 사진 ⓒ 신동훈  


업계에 진입하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단계별로 갖춰야 할 역량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진입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동차에 대한 열정이겠죠. 열정이 있어야 이 곳 환경에 동화될 수 있어요.  제가 대학에서 공부할 땐 자동차 엔진소리를 틀어 놓고 스케치하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취미로 자동차 튜닝을 하거나, 차를 직접 고칠 줄 아는 디자이너도 많았어요. 

경력 성장 단계에서는 제품 생산에 대한 지식이 풍부해야 해요. 그래야 엔지니어와의 소통이 잘 이루어질 수 있을 테니까요. 단순히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엔지니어에게 준다고 해결책이 나오지 않아요. 공학을 비롯해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아야 해요. 자동차는 우리 삶의 많은 부분과 연결되어 있으니 디자이너 역시 다방면에 지식과 관심이 있어야 유리합니다. 

경력 완성 단계에서는 디자이너로서의 역량을 넘어선 회사의 이익을 높이는 데에도 일조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더 많이 팔리고, 더 많은 판매 이익을 가져올 수 있는 디자인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는 것이죠. 또한 세상의 디자인 트렌드를 이끌 수 있는 역량을 갖출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죠. 


그럼 동훈님처럼 미국에서 자동차 디자인 직무로 일하고자 한다면 어떤 준비를 하면 좋을까요?

디자인 실력은 당연히 기본적으로 갖춰야 합니다만, 한국에서 디자인학과를 졸업했거나 한국 자동차 회사에서 일했던 경력을 가지고 있다면, 글로벌 환경에서 어느 정도 통하는 수준일 것이라고 예측됩니다. 

실력이 출중한 인재들이 세계 무대에서 얼마나 활약할 수 있으냐는 결국  영어 실력이 좌우하는 거 같아요. 자동차 회사의 경우 보통 입사 3년 차 정도 되면 제작 파트 담당자가 돼 여러 부서와 협업을 직접 하게 되는데, 이때 영어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못한다면 문제가 되겠지요. 디자인 부서를 대표하는 담당자로 회의에서 명확하게 필요한 바를 혼자 설명하고 납득 시킬 수 있는 수준의 영어 실력이 있어야 합니다. 요즘같이 재택근무로 일하는 경우엔 미팅이 더 많이 이뤄지고 있고, 앞으로도 이런 식의 근무 방식이 더 늘어날 텐데 영어 실력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로 이직이나 취업을 하게 되면 그냥 스케치하고 그림 그리면서 아이디어 제안을 하는 수준으로 밖에는 일할 수 없는 한계가 생깁니다.


그런데 지금은 해외 기업 자동차 디자인 채용 인원 자체가 많지 않은 것 같아요.

그렇죠. 많지는 않은데, 그래도 기회를 잡기 나름인 것 같아요. 실력이 굉장히 좋아도 직장을 구할 시기에 자리가 없으면 힘들 때가 있고, 실력이 조금 부족해도 갑자기 회사가 구인을 해서 직장에 들어오는 사례도 있는 것 같아요. 그것도 운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업계 연결망을 계속 체크해 보는 것도 구직에는 중요한 일인 것 같습니다.


20년을 한 가지 업에서 일하셨어요. 그것만으로도 대단하신데요, 앞으로 커리어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자동차 디자인은 제품 디자인의 종합판이라고 할 수 있어요. 자동차 디자인에는 자동차 디자인 전공자뿐 아니라 제품‧그래픽‧컬러&트림‧UX 디자이너 등 여러 디자인 관련 전공자들이 참여합니다. 그래서 자동차 디자이너가 하던 일을 관두고 일반적인 제품, 가령 프로덕트 디자인이나 가구 디자인 같이 다른 분야 디자이너의 길로 가더라도 전혀 생소함을 느끼지 않을 것 같아요. 따라서 새롭게 다양한 분야에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 신동훈  


‘새로운 시대에 필요한 디자인은 무엇일까’를 상상해 보면 흥미진진합니다. ‘새로운 문화혁명이 일어나고 새로운 삶의 방식이 펼쳐지는 세상에서의 역할은 무엇일까’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또 오랫동안 외국 대기업 직장 생활을 하며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해외 진출을 원하는 젊은 사람들에게 직장생활 관련 조언을 해 주는 멘토 역할을 하는 것도 또 하나의 즐거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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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정은혜ㅣ원티드 콘텐츠 에디터 (eunhye@wantedlab.com) 

최나영ㅣ객원 에디터

박종현ㅣ원티드 영상 제작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