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셔터스톡
유럽은 살기에도 일하기에도 장점이 많은 지역이다.
기본적으로 복지가 잘 되어 있고 노동 환경이 좋기 때문에 직장인으로서 질 높은 생활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최적의 지역이다. 특히 자녀가 있는 경우는 교육 여건도 상대적으로 좋은 편이기 때문에, 가족 단위로 이주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도 인기 있는 곳이다. 또한 유럽의 한 국가에서 직장을 다닌 경험이 있다면, 상대적으로 다른 유럽 국가로의 이직의 기회도 쉽게 생기기 때문에 다양한 국가에서의 생활을 계획하고, 다방면으로 삶을 즐기고자 하는 ‘노마드’ 취업자들에게도 매력이 큰 곳이다. 지난 몇 년간 이러한 유럽의 장점이 점차 알려지면서 많은 한국인이 유럽 취업에 도전했다. 그래서 블로그, 유튜브 등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그들의 취업 도전기나 생활모습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었다. 이제는 유럽의 알려진 대기업 또는 유망한 스타트업들에서 한국인을 찾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러나 아직도 유럽은 미지의 국가다. 정보가 점차 많아지고 있지만, 유럽 지역에 취업하기 위해 현지어를 구사해야 한다는 생각도 큰 장애 중 하나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글로벌 리서치 그룹 스태티스타(Statista)에 따르면 비영어권 유럽국가라도 스웨덴, 네덜란드는 약 70%의 인구가 영어를 구사할 수 있다. 그 밖에 노르웨이, 덴마크, 핀란드 등 북유럽 3국을 비롯하여 룩셈부르크, 슬로베니아, 독일, 벨기에, 오스트리아, 폴란드, 스위스는 모두 60%를 상회하는 인구가 영어를 구사하고, 그 밖에 18개국은 50% 이상의 인구가 영어를 구사한다. 생각보다 생활하는 데 영어 사용이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환경이라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취업 시장에서는 어떨까?
대부분 유럽의 글로벌 대기업은 세계시장을 무대로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영어를 주요 언어로 사용하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현지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중소기업의 경우는 현지어가 주요한 비즈니스 언어이겠지만, 유럽의 경제를 이끌어가는 스타트업은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기 때문에 공식 언어가 영어다. 따라서 유럽 스타트업의 허브인 베를린, 암스테르담, 뮌헨 등에서는 개발자 이외에도 영어로 일자리를 찾는 것이 어렵지 않다.
요즘 유럽에서 가장 글로벌한 도시이자 스타트업 도시로 핫한 베를린의 경우를 살펴보자. 베를린은 유럽 연합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이고, 현재 인구의 55%가 45세 이하이며, 평균 연령 42.7세인 젊은 도시다. 또한 베를린에는 현재 190개국 출신의 사람들이 살고 있고, 도시 전체 인구의 21%가 외국 출신이다. 베를린의 산업을 이끌어 가는 것은 스타트업이다. 베를린은 독일에서뿐만 아니라, 유럽에서 가장 활발한 스타트업 생태계고 베를린을 거점으로 세계무대에 진출한 스타트업도 많다.
ⓒ 딜리버리히어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배달의 민족’을 인수한 ‘딜리버리 히어로’, 세계적으로 밀키트 열풍을 불고 왔던 ‘헬로 프레시’, 유럽에서 아마존의 대항마로 늘 언급되는 패션 이커머스 기업 ‘잘란도’가 베를린에서 시작했다. 이제는 베를린에서 스타트업을 한다는 것이 곧 세계무대를 상대로 한다는 의미가 되었다. 다시 말해서 글로벌 회사가 될 베를린의 스타트업에 필요한 것은 글로벌한 배경을 가진 직원들이라는 뜻이다.
베를린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유럽의 스타트업들은 비단 한 국가만을 생각하고, 비즈니스를 계획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유럽 내에서 국경 없이 자유롭게 사업을 할 수 있는 EU만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 거점 도시를 기준으로 유럽의 기업 또는 더 나아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려는 스타트업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유럽의 스타트업 씬에서는 영어가 공식 언어이며, 전 세계의 다양한 인재들이 모이는 곳이기 때문에 ‘네이티브’ 영어를 구사하는 것보다는 ‘인터내셔널’ 영어를 구사하는 것을 중요시하고, 언어의 지적수준 보다는 소통능력에 더 큰 비중을 둔다. 실제로 베를린의 글로벌 스타트업에 근무하는 사람들을 인터뷰하면서 ‘영국인의 화려하고 유려한 영어 솜씨보다도 다국적 직원들이 사용하는 간결하고도 명료한 언어가 소통에는 더 도움이 되는 경우’가 있었다는 사례를 들었다. 또는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비영어권 사람들이 쓰는 ‘인터네셔널 영어를 배우라고 충고하는 상사가 있었다'는 사례도 들었다. 오히려 영어권 국가에서 영어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가 유럽에서는 오히려 덜하다는 장점이 있다. 면접을 볼 때, 오히려 면접관이 ‘자신도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니 천천히 말해달라’고 부탁을 받은 경우도 있었고, 비교적 쉬운 영어로 질문을 더 상세하고 자세하게 설명해주었다는 사례들을 접하면서, 유럽은 영어권 국가보다 훨씬 더 한국인에게 유리한, 즉 비영어권 국가의 사람으로서 똑같은 선상에서 공평하게 출발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 밖에 유럽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노동자 중심의 근무환경이다.
글로벌 스타트업의 도시인 베를린을 기준으로 살펴보자. 채용 과정에서부터 한국과는 문화적인 차이가 있다. 회사는 지원자의 국적, 성별, 종교, 세계관, 장애, 연령, 성적 취향 등으로 채용을 거부할 수 없다. 위의 항목 중 국적, 성별, 연령 등을 제외하고는 보통 이력서에도 적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성별과 연령을 적게 하는 것도 요즘은 조금 위험한 것으로 간주하는데, 합리적인 이유 없이 특정 성별을 뽑는다는 공고를 내 거나 연령 제한을 두는 것을 차별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베를린의 세무스타트업 택스픽스(Taxfix)에는 ‘택시기사 출신의 40대 주니어 개발자’가 있다. 이 개발자는 독학으로 개발을 공부해서, 모든 채용과정을 동등하게 거쳐 선발되었다. 과거에 이 사람이 어떤 직업을 가졌는지, 나이가 많은지 적은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다만, 현재 채용된 직무를 충분히 해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가 가장 중요한 채용의 근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