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잘하는 김종욱’은 코끼리 같은 존재입니다. 실리콘밸리 어딘가 있을 것 같은 김종욱을 찾기도 어렵지만, 설령 찾는다고 해도 우리 회사에 들어올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 HR 주니어에게 ‘김종욱’ 채용을 맡긴다고요? 당장 코끼리를 찾아 데려오지 못하면, 소득이 전혀 발생하지 않는 절체절명 압박감 가운데 일하는, 야생의 베테랑 (헤드)헌터 조차 유능한 개발자 1명 찾지 못하는 인재전쟁 시대에 말입니다. 대학생 시절 조별 과제 팀원을 모을 때도, 헤드헌터로 인재를 찾을 때도, 스타트업에서 팀 빌딩을 할 때도 항상 ‘일 잘하는 김종욱’을 찾아야 했습니다. 다시 묻겠습니다. 이렇게 중요한 채용을 주니어에게 맡기시겠다고요?
20년이 넘는 직장 생활에서 알게 된 사실이 있습니다. 일 잘하는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다면 상사의 자존감을 높여줘야 한다는 걸요. 자존감은 쉽게 말해 자아를 존중하는 감정입니다. 그렇습니다. 감정 입니다. 이성이 아닙니다. 상사의 방향과 지시가 모호해도, 그 행간을 채우는 사람이라면 일을 되도록 만듭니다. 또한, 상사의 지시가 올바른 방향이었다는 걸 확인시켜주며 상사의 자존감을 높여주기에 그 사람은 ‘트러블 슈터’로 인정받습니다. 그런 암묵적인 분위기 하에서 자존감이 비대한 상사의 3대 망언이 여전히 잔존할지 모릅니다.
1. 문제가 있으니까 당신이 있는 거야. (당신에게 월급 주는 거야) 2. 쉬우면 내가 했지, 왜 당신을 시켰겠어? (당신이 전문가라며?) 3. 까라면 까! (지시했으면 무조건 결과물을 가져와)
그러다 보니, HR도 모순된 채용 눈높이가 존재합니다. 헤드헌터를 할 때, 어느 기업이나 인재를 갈망하는 건 공감했지만, 거울 한 번 안본 사람처럼 결혼 조건을 나열하는 채용 조건을 접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동안 HR 부서는 상사의 자존감을 높여주기 위한 채용 업무를 했던 걸까요? 아니면, 실존적인 회사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스카우팅에 밤잠을 설쳤던 걸까요? HR의 고객은 외부 인재일까요? 내부 구성원일까요? 의사결정을 하는 경영진과 임원진일까요? HR 부서는 우리 조직의 현실적 전투력과 미래 가치를 오차 없이 분석하고 있을까요?
성장의 반대말은 동일한 행동을 반복하는 것
HR팀은 회사나 조직에 앞서 사람을 봅니다. 하지만, 사람의 본질은 수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환경이 급변했을뿐 100년 전 HR의 고민과 지금의 고민이 크게 변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동일한 방법론을 펼치는 것은 일을 정말 잘하는 데 관심이 없다는 의심을 살 겁니다. 비즈니스와 비즈니스를 둘러싼 환경은 미친듯이 변화하는데, 10년 전의 HR 전략을 고수한다면, HR팀을 전문가로서 인정할까요? 대화할 파트너로서의 수준과 내공을 존중하게 될까요? 아마 합리적 의심이 들 겁니다. 즉, HR 팀은 경영진과 임원진의 전략적 파트너로서의 전문적 역량이 떨어진다는 의심이죠.
미국의 리더십 컨설팅 기업 Trinity Blue의 CEO Trey Taylor는 대표가 직접 챙겨야 할 것 3가지를 CTN이라고 했죠. 즉 1) 조직 문화 구축(culture) 2) 인재 확보 및 유지(talent) 3) 재정 관리(number) 가 그것인데요, 특히나 최고 인재 확보 및 유지는 전 세계 네임드 CEO의 고민 첫 번째입니다.
CEO는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환경과 기술의 발전, 외부에서 만나는 타사 인재들의 수준에 자극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HR 부서 책임자가 테크 부서의 JD를 수정 없이 채용 공고를 내면서 기적처럼 풀스택 개발자가 찾아오는 망상에 머물러 있다면, 파트너로서 대화를 하고 싶을까요? 사업 헤드조차 확신을 갖지 못하는 숫자 판타지와, 어느 회사와 비교해도 부끄럽지 않은 조직문화가 스며들어 있다는 근자감의 근거는 무얼까요? 사장님이 인재를 찾아오라고 호통하니, 주니어 HR 담당자 통해 서치펌 헤드헌터들을 잔뜩 불러서 계약금 안 줘도 되니까 맘껏 부려먹어도 된다는 마인드로 채근하면, 정말 인재를 불러 모을 수 있을까요?
제갈량이 되고 싶다면, 직접 전쟁터에 뛰어들어야
한국기업 역사 이면엔 HR 임원들이 “사장이 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말 못 할) 울분의 두께가 있습니다. 하지만, 축구를 잘 하는 선수를 아는 사람과 축구의 승리 방정식을 통찰하는 전략을 아는 사람 중 누가 감독이 되어야 최종 우승을 할까요? 인사의 롤 모델인 제갈량과 정도전은 모든 걸 꿰뚫고 있었기에 기가 막힌 작전도, 조직의 근간이 되는 시스템도 설계할 수 있었던 거죠. 단순히 사람들과 으쌰 으쌰 하는 수준이었다면 오퍼레이터 정도의 권한만 부여받았을 겁니다.
HR팀이 결정적일 때 소외되는 건 경영진이 HR팀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통보를 수명하고 실행하는 행정가 수준을 뛰어넘지 못하기 때문일 겁니다. 중요한 이슈가 생길 때 내부 사정과 맥락을 모르는 외부 컨설턴트를 사용하는 이유가 뭘까요? 제갈량이 아닌데, 유비에게 전권을 달라고 조른다면, 밉보이기 일쑤겠죠. 저는 지난 20여 년간 HR 임원이 사장이 되는 걸 직접 목격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냉정한 결론이 억측 가득한 팀킬은 아니겠죠. 총괄 리더는 HR 리더를 신뢰할 수 없는 겁니다. 이대로라면 휴먼 터치가 필수인 HR팀의 루틴 마저, AI 에게 자리를 내주기 쉽상입니다. 제하분주(濟河焚舟)의 각오로 전쟁터에 뛰어들어야 합니다. 채용은 가장 정직한 노력의 과정입니다. 긴 호흡을 갖고 직접 발품을 팔아야 합니다.
지난 11월, 서울에선 대규모 글로벌 HR 포럼이 펼쳐졌습니다. 대통령을 비롯해 모든 대권 주자가 관심을 나타내는 건, 그만큼 국가나 회사나 학교나 인재 발굴과 육성에 조직의 미래가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런 중책은 누가 해야 할까요? 인재 스카웃에 전 세계 모든 선진 회사가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조직의 사활이 걸린 인재 스카웃은 미래 조직에 대해 고민의 총량이 가장 많은 사람이 하는 게 설득력이 있습니다. 결론은 이미 정해졌습니다. 바로 CEO 아니면 CEO 이상의 고뇌에 불면하는 인사 책임자일 겁니다.
미국 실리콘밸리도 한국도, 개발자 못지않게 유능하고 적극적인 리크루터를 확보하려고 난리입니다. 요즘은 스타트업 창업 필수 멤버가 3H에서 4H라는 얘기까지 합니다.(Hustler, Hacker, Hipster, Headhunter) 과장이나 엄살이 아닌 게 개발이나, 마케팅, 디자인은 FAST FAIL 전략이 유효하지만, 채용은 한 번의 오판이 치명적이라는 걸 톡톡히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직접 겪어 보면 후유증이 엄청 납니다. 정작 제 창업은 코파운더를 잘못 결정해 꽃피우지도 못하고, 접었습니다. 직접 겪어보고 경험을 통해 확인해 보겠다는 마인드는 채용의 세계관과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TV 쇼 <진품 명품>은 95년부터 지금까지 하는 장수프로입니다. 미술품이 진품 명품인지 우리 보고 감별하라고 하면, 자신 있게 할 수 있나요? 당연히 못하죠. 그런데 미술품을 감별하는 것과 사람을 감별하는 것. 어느 게 더 어려울까요? 우리가 평론과 훈수를 아무렇지 않게 하는 영역 3가지가, 축구, 정치, 인사입니다. 그래서 필부필부(匹夫匹婦) 아무나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정말 잘하는 선수가 드뭅니다. 입축구, 입정치, 입인사가 지형지도를 어지럽힐 뿐이죠.
특히 채용의 용병으로서, 수많은 장소의 면접관으로 참여해 보면 아찔합니다. 척 보면 안다는 지인지감(知人之鑑)의 부채도사, 문 여는 모습만 보면 후보자의 내면이 느껴진다는 무릎팍 도사가 정말 많습니다. 수많은 후보자를 심야부터 새벽까지 만나 대화하고, 인터뷰하고, 평판 조회로 (후보자 동의하에) 앞에서 탈탈 털어본, 저의 결론은 심플합니다. 바로 일 잘하는 사람이 일 잘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허세와 너스레가 민망하게도 사람에 대한 안목은 제일 성취하기 어려운 영역입니다. 너무 어렵습니다. 평생 불가능할지도 모릅니다. 전후 세대 창업자들이 인재에 대한 '생이지지(生而知之)'스런 면모를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관상을 보는 비과학적인 측면까지 고려했다는 일화는 사람에 대한 주관적 확신이 더 위험하다는 걸 알았기 때문일 겁니다.
그러나 고민의 답은 정해져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생각하는 그 답이 확실하다고 스스로 확신하기 위해 끊임없이 이유를 찾습니다. 책에서 인용하고, 비슷한 생각을 갖는 사람의 말을 차용하고, 끼리끼리 모이고. 그런데 그것이 그에겐, 그들에겐 정답입니다. 틀려도 어쩔 수 없습니다. 책임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의 안목이 결국 우리의 성장의 한계점이기에, 어쩌다 인재를 데려오는 타이밍은 얻어걸려도 반복되는 요행은 있을 수 없습니다.
채용 담당자는 전략가인가요?
Small wins lead a big win
전략은 전쟁을 이기는 방법에서 유래했기에, Strategy 어원도 그리스어 'strato's'(군대) 와 'a'gein' (lead)'이며 본질은 싸움을 잘한다는 것입니다. 현대는 글로벌 기업간 비즈니스 전쟁 만큼 격렬한 게 없으니 전략이란 말이 잘 어울리긴 합니다. 하지만, 사업 전략과 다르게 채용 전략은 구체적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작년에 개발자 채용은 망쳤으니, 올해는 (반드시) 잘 할 거라는 각오와 다짐은 마인드 셋이지, 전략이 아닙니다. 실패의 원인을 분석하고 GPS(Goal/ People/ 일하는 System 또는 일하는 Style)를 변화하는 것이 전략이죠.
한술 더 떠 인사는 기업의 기능 가운데 유일하게 철학이라는 심오한 표현을 함께 사용합니다. 전략만으론 모자랍니다. 그래서, 채용을 잘하고 채용에 정말 섬세한 공을 들이는 스타트업은 모두 존경스럽습니다. 얼마 전 온라인 채용 설명회를 하는 스타트업의 CEO가 CTO를 소개하는 장면에서 소름이 돋은 적이 있습니다. 유행어처럼, “아니, 박사님이 왜 거기서 나와요?” 하는 멘트가 절로 나오더군요. 얼마나 많은 사람의 노력이 모아졌을까 상상하며, 그 놀라운 (채용)승전보 화면에 엄지를 치켜 세웠습니다. 물론, 제가 몸담은 스타트업도 한 명, 한 명을 스카웃할 때마다 회사의 미션과 정성을 담아 전력투구합니다. 채용 업무는 반복되는 작은 전투지만, 라이언 일병만 보낼 수 없는 처절한 전투입니다. 작은 전투의 패배가 반복되는 조직은 결코,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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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현실적인 방법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으려면, 현실적으로 냉장고를 코끼리보다 크게 만들거나 아기 코끼리를 넣으면 됩니다. 늘 그렇듯이 실행보다 이론은 쉬워 보입니다. 스타트업은 무모해 보이지만, 빅테크 기업의 인재를 스카웃할 때 앞선 방법을 똑같이 사용합니다. 미친 속도감으로 스케일 업하거나(스케일 업 가설을 증명하거나), 원석의 주니어를 데려오거나 하죠. 모든 구성원이 현업과 실무를 쳐내기에도 바쁜데 스카우터가 됩니다.
채용 포지션을 사내 오픈 게시판에 올려 인해전술로 헤드헌팅을 하는 서치펌이 있었습니다. 각자의 고객사가 있고, 보안이 무척 중요한 업무고, 서로의 매출을 공개하지 않는 전통에 반해, 보통 서치펌의 채용 성공 확률이 1/20 전후로 지극히 어려운 일인 걸 감안할 때 도전해 볼 수 있었던 의미 있는 방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가장 치열한 인재 스카웃 전쟁에서 채용을 HR 주니어에게 일임하는 건, 전쟁의 결과를 부정적으로 전망하게 합니다.
채용 담당자는 조직에서 가장 깊은 책임감을 갖고, 가장 신뢰할 수 있으며, 가장 현실적 전략을 펼치는 전문가이어야 합니다. HR 채용 담당자 때문에 합류했고, HR 채용 책임자 덕분에 계속 근무하는 이유가 되어야 하는 시대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하루에 2만 보를 걸어야 하는 야생 코끼리를 데리고 와서 냉장고에 넣는 현실적인 방법을 고민하는 모든 채용 담당자에게 함께 일하는 기쁨과 슬픔의 박수를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