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래프톤ㅣ대기업 출신 HR의 스타트업 적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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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티클은 <인사 잘하는 그녀들의 커리어> 시리즈의 1화입니다.


김주영 크래프톤 HR본부장

2019 – 현재 (주)크래프톤 HR 본부장
2016 – 2018년 킴벌리클라크 글로벌 이노베이션 센터 HR 매니저
2015년  킴벌리 클라크 아시아 퍼시픽  AP Talent Management 매니저     
2014년 인사기획 팀장, 유한킴벌리
2013년 7-8월  킴벌리클라크 글로벌 HR팀에 파견 근무 (6주)  
2012 – 2013년 유한킴벌리 Talent Management 리드 및 마케팅 HR 비즈니스 파트너 
2010 – 2011년 유한킴벌리 채용 리드
2001 – 2010년 유한킴벌리 인력개발 리드

“빠르게 움직이고, 새로운 것을 만드는 일을 하고 싶어서 스타트업으로 왔는데, 진짜 그 바람대로 지내고 있어요. 
속도와 긴장감이 높아서 이제 딱 3년이 됐는데 느낌상 한 5~6년은 된 거 같아요.”

김주영 크래프톤 HR본부장은 유한킴벌리에서 HR로 커리어를 시작하며 체계적인 HR 시스템을 익혔고, 지난 2019년부터는 게임 스타트업인 펍지에서 HR을 총괄하며 새로운 제도를 마련하는 역할을 했다. 

2020년 구)펍지와 구)크래프톤이 합병됐고, 이제는 크래프톤의 HR본부장으로 같지만 달랐던 두 조직의 색을 맞추는 작업에 힘쓰고 있다. 스타트업 조직은 물론, 게임의 ‘ㄱ’도 몰랐다는 그가 스타트업 HR로 ‘꽤’ 잘 지내고 있는 이야기를 들어보자.

김주영 크래프톤 HR본부장 ⓒ 김주영  


첫 시작 | 불행한 직장인에서 행복한 ‘직업인’이 되다 



Q. 누구나 처음인 시절이 있잖아요. 본부장님의 첫 회사, 첫 직무는 어떤 것이었나요? 

대학 졸업 후 첫 회사가 유한킴벌리예요. 원래 오픈되어 있던 포지션은 급여 업무였는데,  CHO께서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냐고 물으셨어요. 저는 사람들을 성장시키는 교육 업무가 하고 싶다고 말했어요. 당시만 해도 유한킴벌리에는 교육팀이 없었는데, 교육팀을 만들어서 저를 신입교육담당자로 일할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Q. 교육업무가 어떤 점에서 매력적이었나요?

당시 어린 마음에 교육이라고 하면 잘 세팅된 강의장에서 사람들의 성장을 북돋아 주는 멋진 강의를 하는 모습을 상상했던 거 같아요. 그런데 현실은 달랐죠. 분기별로 30여 명의 신입사원 온보딩 프로그램을 약 한 달간 진행하거나, 매월 연수원에서 2박 3일의 ‘7 HABITS’ 워크숍을 진행할 교재를 만들고, 강사 숙소 예약부터 식사 메뉴 짜기가 저의 주된 역할이었어요. 여름에는 수박 몇 통씩을 나르고, 매점에서 까만 봉지에 아이스크림을 사서 들고 오는 제 모습이 너무 싫은 거예요. 제가 꿈꾸던 외국계 회사의 교육담당자 모습은 이런 게 아닌데, ‘왜 나는 맨날 간식만 챙기고 장비만 나르고 있을까’라는 한탄이었죠. 그러면서도 입과한 신입사원들 앞에서는 애사심 가득한 모습을 보여줘야만 했어요. 당시에는 제가 굉장히 불행한 직장인으로, 불행한 삶을 산다고 생각했어요. 


Q. 많은 교육담당자들이 비슷한 경험을 이야기하시더라고요. 본부장님은 그런 생각을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제가 존경하고 아직도 찾아뵙는 HR 팀장님이 저에게 그런 말을 하셨어요. “같은 복사를 해도 비서가 하면 비서 일이고, CEO가 하면 CEO일이다. 그러니 나의 업무 가치는 내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라고 말이죠. 또 당시 유한킴벌리에서 진행했던 7HABITS 교육에서 ‘나의 감정을 다른 사람이 지배하도록 두지 말라. 내 감정은 내가 스스로 하는 것이다’라는 말이 나와요. 이런 이야기들이 저를 달라지게 했어요. 오히려 수박 몇 통씩 들고 다닌 것, 복도에 앉아서 펑펑 울었던 일 등이 미래 나의 성장 스토리의 재료가 될 것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였어요. 


Q. 업무를 대하는 태도가 나를 바꾼다는 것이 중요하긴 하지만, 말처럼 쉽지는 않잖아요. 

마음을 고쳐먹고 ‘이왕 하는 거 좀 잘하자’라는 생각을 계속했어요. 과일을 준비해도 ‘사람들이 좀 더 맛있어할 과일은 뭘까’, 아이스크림을 사 올 때도 ‘이왕이면 다들 좋아할 만한 걸로 사자’라는 생각을 한 거죠. 이런 생각을 구체화해서 교육 만족도 조사에서 4.5점 이상을 받는 것을 목표로 세우기도 했어요. 그렇게 하니까 업무에 훨씬 더 주인의식을 가지고 임하게 되더라고요. 


Q. 그렇게 일하면, 나도 나지만 주변 사람들이 먼저 알아보잖아요?

맞아요. 한 번은 글로벌 HR미팅을 준비한 적이 있는데, 그때 굉장히 정성스럽게 그리고 즐겁게 진행했어요. 글로벌 CHO를 비롯한 HR 주요 인사들이 한 자리에 모인 미팅이었는데 참석했던 이들이 ‘너한테서 빛이 나더라’ ‘어떻게 저렇게 즐겁게 일할까 싶었다’는 피드백을 주셨어요. 당시 저는 회의 참석자도 아닌 스태프였는데 제 모습이 깊은 인상을 줬다고 하더라고요. 작은 일 하나도 열심히, 즐겁게 하는 사람이라면 더 큰일을 맡겨도 될 거 같다는 신뢰를 받은 거 같아요.

돌이켜보면 직장 생활에서는 허튼 활동이 하나도 없는 것 같아요. 작은 일이라도 열심히 하다 보면 내 자산이 되는 것이고, 그렇게 자산이 쌓아지는 것을 보면 거기에 보람을 느껴 더 열심히 하게 되죠. 이러한 것들이 나의 실력이 되고, 평판이 되어 돌아오죠. 


Q. 교육업무를 10년 정도 하다가 HRM으로 전환하신 건가요?

그때 마침 조직에 크고 작은 변화가 있었고 저 역시도 HRM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기에 먼저 손을 들고 HRM으로 옮기고 싶다고 피력했어요. HRM을 할 때도 이전에 했던 교육 업무가 도움이 됐어요. 제가 신입사원 교육을 다 진행했으니 저를 거치지 않은 직원들이 없었던 거죠. 보통 직원들이 인사팀에 약간 경계심을 갖기 마련인데 저는 ‘아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있어서인지 편하게 생각하더라고요. 직원들과 허물없이 지내서인지 서베이 등에서 말하지 못했던 부분을 저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해 주기도 하고 제가 전달하는 HR정책에 더 신뢰를 보여주기도 했어요. 

2019년 라스베가스에서 열린 SHRM 컨퍼런스에 참석한 김주영 님 ⓒ 김주영 


두 번째 HR | 18년 근무한 회사를 그만두고 찾은 스타트업 



Q. 유한킴벌리에서 18년 정도를 근무하셨잖아요. 오래 근무한 회사를 그만 두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계기가 있었나요? 

유한킴벌리는 매출이 안정적이고, 자발적 퇴사자가 거의 없어요. 구성원으로서 안정적인 보호를 받는 기분을 느끼게 했죠. 헌데 20여 년 가까이 근무하면서 갈증이 생기더라고요, 특히 글로벌 본사의 가이드에 따라서 움직여야 하는 한다는 답답함도 있었어요. 그래서 이제 막 성장하는 회사, 빠르게 움직이는 회사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Q. 그러면서 게임 업계에 눈을 돌린 건가요? 

사실 특별히 게임 업계로 가야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단순히  IT 대기업 정도를 생각했죠. 하지만 이들 입장에서는 제 경력이 그리 매력적이지 않을 것 같았어요. 이미 그곳엔 대기업 출신 HR들이 제도를 셋업한 상태였으니까요. 그때 스타트업이 눈에 들어왔어요. 게임 업계 특히 펍지와 같이 급성장하는 회사에서는 제가 할 일이 많을 것 같았죠. 저희 남편과 딸도 즐겨 하는 게임이었으니까요.


Q. 그럼 입사를 결정할 때 따님이 굉장히 좋아했겠네요. 

저는 회사를 결정할 때 가족도 중요한 거 같아요. 유한킴벌리에 근무할 때 유한킴벌리가 만드는 물건이 다 일상생활에 쓰는 물건이라 우리한테 친숙하잖아요. 엄마 회사에서 만드는 물건이라는 자부심을 느끼더라고요. 근데 이제 본인이 친구랑 재미있게 하는 게임인 ‘배틀그라운드’를 만드는 회사로 옮긴다고 하니까 더 좋아했어요(웃음).


Q. 현재 크래프톤 HR본부는 50여 명이 소속되어 있는데, 이들을 이끌어 갈 때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제가 원래 있던 펍지는 HR이 10명이었는데 구)크래프톤과 합병하면서 50명이 됐어요. 펍지보다 구)크래프톤이 더 큰 회사였으니 HR도 더 많았죠. 또 펍지는 3~4년 밖에 안 된 회사로 제가 뽑은 사람들이 많았지만 구)크래프톤은 2007년도에 설립한 회사답게 오래 다닌 분들이 많아요. 그래서 다른 경험, 다른 성향을 가진 두 팀을 한 팀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어요. 개인적으로는 1on1을 많이 했어요. 한 분 한 분과 솔직한 이야기를 나누고, 제 고민도 털어놨어요. 시간은 많이 걸렸지만 꽤 효과가 있었던 거 같아요. 


Q. 그렇게 1년 정도 HR본부를 꾸려 오고 계시는데요. 현재는 어떤 업무에 가장 큰 노력을 기울이고 계시나요?

아무래도 최근 IT업계에서 보상 이슈가 크다 보니, 이 부분을 신경 쓰고 있어요. 크래프톤의 보상 제도 방향은 공고합니다. 업계 최고 수준을 유지하자는 것이죠. 그러한 기조안에서 새로운 제도를 만들어가고 있어요. HR제도는 이사회 승인은 물론, 구성원들의 이해가 필요한 작업이니까 작은 거 하나도 쉽지 않아요. 특히 구성원들 대부분이 MZ세대다 보니 니즈와 원츠가 분명해요. 그리고 자신들의 의견이 인사제도나 복리후생 제도 마련에 반영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죠. 따라서 HR에서는 제도 하나를 만들더라도 직원들의 목소리를 듣고 소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할로윈데이 때 구성원들과 함께 찍은 사진 ⓒ 김주영 


일하면서 행복하기 | Me Time을 갖자  



Q. 최근 대기업에서 스타트업으로 옮기는 HR들이 많잖아요. 좀 더 안착하기 위해서는 어떤 기준으로 회사를 선택해야 하는지, 또 입사 후에는 어떤 자세가 필요한지 조언 부탁드려요. 

저희 회사에도 대기업에 계셨던 분들이 오시곤 해요. 그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너무 체계가 안 잡혀 있다’ ‘너무 시스템이 없다’였어요. 사실 크래프톤에 지원하는 분들은 상대적으로 도전적이고 변화에 유연한 성향인데도 ‘이 정도일지는 몰랐다’고 말씀하시죠. 

저는 스타트업으로 이동하고 싶어 하는 대기업 출신들에게 시스템에 대한 기대 수준을 낮추라고 말하곤 해요. 회사를 볼 때는 성장 가능성과 비전, 프로덕트 등이 나와 얼마나 잘 맞는지에 초점을 두셔야겠죠. 예를 들어 게임을 좋아한다면 펍지의 시스템이 만족스럽지 않아도 버티곤 해요. 헌데 게임을 좋아하지 않고 관심도 없는 사람이라면 만족감이 더 떨어질 수 있어요. 그래서 이왕이면 본인이 좋아하는 분야의 스타트업을 선택하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또 스타트업은 기본적으로 살림이 넉넉하지 않아요. 모든 업무가 그렇겠지만 특히 HR은 살림이 궁하면 일하기가 힘들어요. 제가 그나마 버틸 수 있던 이유가 펍지는 살림이 궁하지 않거든요(웃음). 내부 역량이 부족하면 비용을 들여서 외부 역량을 끌어다가 해결하곤 했어요. 이러한 여유가 있는 회사인지도 확인하면 좋을 거예요. 


Q. HR리더로 성장하고 있는 여성 후배들에게 조언해 주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좀 더 자신을 적극적으로 알리시길 바랍니다. ‘열심히 하면 알아주겠지’라고 생각하는데, 의외로 잘 모르더라고요. 어떤 자리를 원하면 원한다고 말하고, 평소 관심 분야가 무엇이고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지에 대해 평소에 많이 알리세요. 각 잡고 앉아서 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가볍게 대화할 때 본인의 근황을 알려주세요. 그리고 우리는 오래 일해야 하니까(웃음) 스트레스 관리도 잘 하고, 나를 돌보는 시간을 틈틈이 가졌으면 합니다. 


Q. 일을 더 잘하기 위해 스스로 노력하시는 점 세 가지만 소개 부탁드려요. 

먼저, 관점을 바꿔서 생각을 해봅니다. 나의 상사나 구성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것이죠. 또 상대방이 나에게 솔직하게 의견을 말할 수 있도록 신뢰를 형성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저 역시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상대방의 생각을 열린 마음으로 듣죠. 또한 업무 관련하여 아티클이나 자료를 많이 읽어요. 아웃풋이 나오기 위해서는 일단 인풋이 있어야 하는 것이니까요. 


Q. 커리어의 최종적인 계획은 무엇입니까. 

HR본부 구성원들에게 ‘나를 성장시켜준 리더였다’고 기억되고 싶어요. 개인적으로는 오랫동안 쓰임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기 때문에 나이가 들수록 더 가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항상 고민하고 있어요. 막연하지만 사람들에게 어드바이스를 주거나 마음의 위로를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Q.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는 분들께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나이가 들면서 남의 평가나 시선이 예전보다는 덜 두려워지는 거 같아요. 예전보다는 내가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잘한 거고, 수고했다고 말할 수 있어요. 이런 자세로 직장 생활을 한다면 스트레스가 훨씬 줄고 자기만의 자존감도 챙길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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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정은혜ㅣ원티드 콘텐츠 에디터 (eunhye@wantedlab.com) 



발행일 2022.0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