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영 크래프톤 HR본부장 ⓒ 김주영
첫 시작 | 불행한 직장인에서 행복한 ‘직업인’이 되다
Q. 누구나 처음인 시절이 있잖아요. 본부장님의 첫 회사, 첫 직무는 어떤 것이었나요?
대학 졸업 후 첫 회사가 유한킴벌리예요. 원래 오픈되어 있던 포지션은 급여 업무였는데, CHO께서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냐고 물으셨어요. 저는 사람들을 성장시키는 교육 업무가 하고 싶다고 말했어요. 당시만 해도 유한킴벌리에는 교육팀이 없었는데, 교육팀을 만들어서 저를 신입교육담당자로 일할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Q. 교육업무가 어떤 점에서 매력적이었나요?
당시 어린 마음에 교육이라고 하면 잘 세팅된 강의장에서 사람들의 성장을 북돋아 주는 멋진 강의를 하는 모습을 상상했던 거 같아요. 그런데 현실은 달랐죠. 분기별로 30여 명의 신입사원 온보딩 프로그램을 약 한 달간 진행하거나, 매월 연수원에서 2박 3일의 ‘7 HABITS’ 워크숍을 진행할 교재를 만들고, 강사 숙소 예약부터 식사 메뉴 짜기가 저의 주된 역할이었어요. 여름에는 수박 몇 통씩을 나르고, 매점에서 까만 봉지에 아이스크림을 사서 들고 오는 제 모습이 너무 싫은 거예요. 제가 꿈꾸던 외국계 회사의 교육담당자 모습은 이런 게 아닌데, ‘왜 나는 맨날 간식만 챙기고 장비만 나르고 있을까’라는 한탄이었죠. 그러면서도 입과한 신입사원들 앞에서는 애사심 가득한 모습을 보여줘야만 했어요. 당시에는 제가 굉장히 불행한 직장인으로, 불행한 삶을 산다고 생각했어요.
Q. 많은 교육담당자들이 비슷한 경험을 이야기하시더라고요. 본부장님은 그런 생각을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제가 존경하고 아직도 찾아뵙는 HR 팀장님이 저에게 그런 말을 하셨어요. “같은 복사를 해도 비서가 하면 비서 일이고, CEO가 하면 CEO일이다. 그러니 나의 업무 가치는 내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라고 말이죠. 또 당시 유한킴벌리에서 진행했던 7HABITS 교육에서 ‘나의 감정을 다른 사람이 지배하도록 두지 말라. 내 감정은 내가 스스로 하는 것이다’라는 말이 나와요. 이런 이야기들이 저를 달라지게 했어요. 오히려 수박 몇 통씩 들고 다닌 것, 복도에 앉아서 펑펑 울었던 일 등이 미래 나의 성장 스토리의 재료가 될 것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였어요.
Q. 업무를 대하는 태도가 나를 바꾼다는 것이 중요하긴 하지만, 말처럼 쉽지는 않잖아요.
마음을 고쳐먹고 ‘이왕 하는 거 좀 잘하자’라는 생각을 계속했어요. 과일을 준비해도 ‘사람들이 좀 더 맛있어할 과일은 뭘까’, 아이스크림을 사 올 때도 ‘이왕이면 다들 좋아할 만한 걸로 사자’라는 생각을 한 거죠. 이런 생각을 구체화해서 교육 만족도 조사에서 4.5점 이상을 받는 것을 목표로 세우기도 했어요. 그렇게 하니까 업무에 훨씬 더 주인의식을 가지고 임하게 되더라고요.
Q. 그렇게 일하면, 나도 나지만 주변 사람들이 먼저 알아보잖아요?
맞아요. 한 번은 글로벌 HR미팅을 준비한 적이 있는데, 그때 굉장히 정성스럽게 그리고 즐겁게 진행했어요. 글로벌 CHO를 비롯한 HR 주요 인사들이 한 자리에 모인 미팅이었는데 참석했던 이들이 ‘너한테서 빛이 나더라’ ‘어떻게 저렇게 즐겁게 일할까 싶었다’는 피드백을 주셨어요. 당시 저는 회의 참석자도 아닌 스태프였는데 제 모습이 깊은 인상을 줬다고 하더라고요. 작은 일 하나도 열심히, 즐겁게 하는 사람이라면 더 큰일을 맡겨도 될 거 같다는 신뢰를 받은 거 같아요.
돌이켜보면 직장 생활에서는 허튼 활동이 하나도 없는 것 같아요. 작은 일이라도 열심히 하다 보면 내 자산이 되는 것이고, 그렇게 자산이 쌓아지는 것을 보면 거기에 보람을 느껴 더 열심히 하게 되죠. 이러한 것들이 나의 실력이 되고, 평판이 되어 돌아오죠.
Q. 교육업무를 10년 정도 하다가 HRM으로 전환하신 건가요?
그때 마침 조직에 크고 작은 변화가 있었고 저 역시도 HRM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기에 먼저 손을 들고 HRM으로 옮기고 싶다고 피력했어요. HRM을 할 때도 이전에 했던 교육 업무가 도움이 됐어요. 제가 신입사원 교육을 다 진행했으니 저를 거치지 않은 직원들이 없었던 거죠. 보통 직원들이 인사팀에 약간 경계심을 갖기 마련인데 저는 ‘아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있어서인지 편하게 생각하더라고요. 직원들과 허물없이 지내서인지 서베이 등에서 말하지 못했던 부분을 저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해 주기도 하고 제가 전달하는 HR정책에 더 신뢰를 보여주기도 했어요.
2019년 라스베가스에서 열린 SHRM 컨퍼런스에 참석한 김주영 님 ⓒ 김주영
두 번째 HR | 18년 근무한 회사를 그만두고 찾은 스타트업
Q. 유한킴벌리에서 18년 정도를 근무하셨잖아요. 오래 근무한 회사를 그만 두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계기가 있었나요?
유한킴벌리는 매출이 안정적이고, 자발적 퇴사자가 거의 없어요. 구성원으로서 안정적인 보호를 받는 기분을 느끼게 했죠. 헌데 20여 년 가까이 근무하면서 갈증이 생기더라고요, 특히 글로벌 본사의 가이드에 따라서 움직여야 하는 한다는 답답함도 있었어요. 그래서 이제 막 성장하는 회사, 빠르게 움직이는 회사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Q. 그러면서 게임 업계에 눈을 돌린 건가요?
사실 특별히 게임 업계로 가야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단순히 IT 대기업 정도를 생각했죠. 하지만 이들 입장에서는 제 경력이 그리 매력적이지 않을 것 같았어요. 이미 그곳엔 대기업 출신 HR들이 제도를 셋업한 상태였으니까요. 그때 스타트업이 눈에 들어왔어요. 게임 업계 특히 펍지와 같이 급성장하는 회사에서는 제가 할 일이 많을 것 같았죠. 저희 남편과 딸도 즐겨 하는 게임이었으니까요.
Q. 그럼 입사를 결정할 때 따님이 굉장히 좋아했겠네요.
저는 회사를 결정할 때 가족도 중요한 거 같아요. 유한킴벌리에 근무할 때 유한킴벌리가 만드는 물건이 다 일상생활에 쓰는 물건이라 우리한테 친숙하잖아요. 엄마 회사에서 만드는 물건이라는 자부심을 느끼더라고요. 근데 이제 본인이 친구랑 재미있게 하는 게임인 ‘배틀그라운드’를 만드는 회사로 옮긴다고 하니까 더 좋아했어요(웃음).
Q. 현재 크래프톤 HR본부는 50여 명이 소속되어 있는데, 이들을 이끌어 갈 때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제가 원래 있던 펍지는 HR이 10명이었는데 구)크래프톤과 합병하면서 50명이 됐어요. 펍지보다 구)크래프톤이 더 큰 회사였으니 HR도 더 많았죠. 또 펍지는 3~4년 밖에 안 된 회사로 제가 뽑은 사람들이 많았지만 구)크래프톤은 2007년도에 설립한 회사답게 오래 다닌 분들이 많아요. 그래서 다른 경험, 다른 성향을 가진 두 팀을 한 팀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어요. 개인적으로는 1on1을 많이 했어요. 한 분 한 분과 솔직한 이야기를 나누고, 제 고민도 털어놨어요. 시간은 많이 걸렸지만 꽤 효과가 있었던 거 같아요.
Q. 그렇게 1년 정도 HR본부를 꾸려 오고 계시는데요. 현재는 어떤 업무에 가장 큰 노력을 기울이고 계시나요?
아무래도 최근 IT업계에서 보상 이슈가 크다 보니, 이 부분을 신경 쓰고 있어요. 크래프톤의 보상 제도 방향은 공고합니다. 업계 최고 수준을 유지하자는 것이죠. 그러한 기조안에서 새로운 제도를 만들어가고 있어요. HR제도는 이사회 승인은 물론, 구성원들의 이해가 필요한 작업이니까 작은 거 하나도 쉽지 않아요. 특히 구성원들 대부분이 MZ세대다 보니 니즈와 원츠가 분명해요. 그리고 자신들의 의견이 인사제도나 복리후생 제도 마련에 반영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죠. 따라서 HR에서는 제도 하나를 만들더라도 직원들의 목소리를 듣고 소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