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현 LG유플러스 HR 상무 ⓒ 박종현
커리어의 시작 | 찐 HR이 아니었다?
Q. 경영학을 전공하셨는데, 처음부터 HR을 하겠다는 계획이 있으셨나요?
처음부터 HR에 뜻이 있었던 건 아니에요. 경영학 특성상 어떤 산업, 어떤 직무든 제약 없이 도전할 수 있었는데 개인적으로는 금융과 하이테크에 관심이 많았어요. 헌데, 90년 대만 해도 국내 기업들은 많이 보수적인 편이어서 향후 커리어를 위해서는 외국계 기업이 더 나을 거라고 생각했죠. 당시에는 어린 마음에 외국계 기업으로 가면 글로벌 직원들과 네트워킹하고 친구처럼 지내고, 해외 출장도 자주 다닐 거라는 생각에 막연히 동경했던 것 같아요. 이런 생각으로 제일 먼저 인터뷰를 봤던 곳이 썬마이크로시스템즈였고 에듀케이션 서비스를 첫 커리어로 시작하게 됐어요.
Q. 에듀케이션 서비스에서 컨설팅으로 직무를 바꾸셨어요. 계기가 있었나요?
썬마이크로시스템에서 13년 차가 되던 해 회사가 합병이 됐어요. 당시 저는 썬마이크로시스템즈에 평생 다닐 것처럼 주인의식을 가지고 있었는데 회사가 팔렸다는 사실이 굉장히 충격적이었어요. 그래서 합병한 회사는 다니고 싶지 않았고, 아예 커리어를 그만둬야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그때 컨설팅 회사인 엑센츄어 컨설턴트로 지원해 보라는 제안이 왔고 큰 기대 없이 지원했는데 합격을 했어요.
Q. 컨설팅은 새로운 도전 아니었나요?
그전까지는 이직에 대해서도 전혀 생각이 없었고 첫 직장을 평생 다닐 것처럼 다녔었습니다. 그래서 동종업계의 다른 회사로 옮기는 것은 설레지 않을 뿐더러 지금보다 더 잘할 자신도 없더라고요. 그런데 컨설턴트라는 직무는 저에게 새로웠고, 면접 과정을 거치며 흥미가 생기고 가슴이 뛰더라고요. 제가 다시 또 잘해보고 싶은 ‘일’을 발견한 느낌이었어요.
Q. 엑센츄어에서는 주로 하이테크 산업을 담당하신 건가요?
삼성전자, 현대차 등의 프로젝트를 담당했어요. 도전적인 업무들이 많았고 일을 하면서 배우는 것들도 많았어요. 그만큼 밤샘 작업도 많았고 불규칙적으로 움직여지는 것들이 많았어요. 당시 제가 싱글이었다면 일에만 몰두할 수 있었겠지만 다섯 살 아이를 키우는 상황에서는 점점 버거워지더라고요. 정말 ‘월화수목금금금’이었거든요. 한 번은 아이 유치원에서 전화가 왔어요. 아이 눈에 갑자기 틱이 오고 말을 더듬는다고, 집에 혹시 무슨 일이 있냐고 말이죠. 그래서 이직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 박종현
비즈니스 안목을 갖춘 HR | 그동안의 경험이 발휘되다
Q. SAP에서 본격적인 HR을 하게 되신 거죠?
2012년에 SAP로 처음 왔을 때는 서비스사업본부에서 SAP WPB라는 솔루션의 기술 영업과 컨설팅을 담당했어요. 그러다 2015년에 HR이 공석이 되었는데 내부에서 추천을 받아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엑센츄어에서 HR 컨설팅 프로젝트를 해봤던 터라 아예 생소한 분야는 아니었지만 인하우스 HR 경험이 없었던 저에게는 상당히 도전적인 선택이었죠. 멋 모르고 시작했던 거 같아요.
Q. 회사로서도 인하우스 HR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에게 HR을 맡긴다는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거 같아요.
그래서 내부 인터뷰 과정에서 반대도 많이 부딪혔었어요. 하지만 당시 사장님은 비즈니스를 이해하는 사람이 HR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확고했고, 제가 적임자라고 판단하셨던 것 같아요. 오랫동안 공석이었던 자리라서 인수인계를 제대로 받을 수 없었고 HR 업무가 처음이었던 터라 1~2년은 엄청 고생했어요. 그런데 여러 상황에서 챌린지를 계속 받다 보니까 진짜 잘해보고 싶은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다행히 저는 경험이 없는 상태였지만 SAP HR 자체는 굉장히 체계적이고 프랙티스가 정교하게 문서화되어 있어서 참고하여 적용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았어요. 아마도 SAP가 아닌 다른 회사였다면 혼자서 그 기간 안에 따라잡지 못했을 거 같아요.
Q. 사장님이 기대했던 비즈니스 출신 HR로의 장점이 있었나요?
제가 맡았던 HRBP는 채용이나 평가보상 등 전문 영역만 담당하는 것이 아닌 사업 대표와 사업 전략에 따른 피플 전략을 수립하는 역할이에요. 저는 이미 컨설팅 회사에서 비즈니스를 익혀왔기 때문에 그 방식이 익숙했어요. 현장의 구성원들과 소통하고 비즈니스에 기여하는 HR이라는 관점에서 계속 노력했고요. 이때의 일하는 방식이 그대로 이어져 현재 LG유플러스에서도 비즈니스를 지원하기 위한 HR 역할에 대해 계속 고민하고 있어요.
Q. LG에서 외국계 기업 출신, 특히 전통 HR이 아닌 상무님을 영입한 것도 파격적이지만, 상무님 역시도 익숙한 곳이 아닌 새로운 환경으로 가기까지는 고민이 많으셨을 거 같아요.
처음에는 가볍게 식사하면서 이야기를 하는 거였어요. 그때엔 이직할 생각이 크게 없었죠. 하지만 LG유플러스 CHO님이 생각하는 HR에 대한 변화 방향성이 제 생각과 일치하다는 걸 알았죠. 또한 아웃사이드-인의 관점으로 제도를 개선하겠다는 확고한 의지가 있어서 저 역시 마음이 움직였던 것 같아요. 제가 하는 이야기들을 진지하게 들어주고, 같이 공감해 주셨거든요. 만나기 전에는 ‘내가 간다고 해도 실패할 수밖에 없는 구조일 거야’ 라고 생각했다면 몇 번의 만남을 통해 ‘변화에 대한 진지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다, 성공을 하든 실패를 하든 그 과정을 함께 해 보는 것은 의미가 있겠구나'라는 생각으로 바뀌었어요. 현재 6개월 정도 시간이 지났는데 그 느낌이 꽤 맞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더 생겼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