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란 창신 INC CTO 부사장 ⓒ 이강란
33년 외국계 기업, 이제는 한국 기업에서 HR
Q. 원래는 연극배우를 하고 싶으셨다면서요? 연극배우를 꿈꾸던 학생이 ‘회사’로 방향을 튼 이야기가 궁금해요.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면서 영어연극반 활동을 했어요. 당시에는 공부보다 동아리 활동을 더 열심히 했던 거 같아요. 졸업 후에도 회사원보다는 연극배우가 꿈이어서 국립극장 오디션을 보기도 했어요. 하지만 열정만큼 역량이 뛰어나지 못해 탈락하고 방황하던 중 친구의 제의로 회사 생활을 시작하게 됐죠. 연극배우를 하겠다는 생각에 특별히 취업 준비를 했던 게 없었는데 그래도 영문학을 전공한 덕분인지 다국적 기업에 합격을 했어요. 독일 5대 기업 중 하나였는데 한국에서는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였죠. 그곳에서 몇 년을 바삐 보냈습니다.
Q. 당시 친구의 제안이 부사장님을 조직으로 이끈 거였군요! 그런 거 치곤 30년 넘게 꽤 잘 버티신 거 아닌가요?
그쵸, 정말 잘 버텼죠! 독일 회사에서 독일인 상사를 모시고 몇 년 근무하다가 좀 더 다이나믹하게 일해보겠다는 생각으로 미국 화학회사에 영업/마케팅 지원 업무로 자리를 옮겼어요. 이곳에서 가장 긴 커리어를 앃았고, 다양한 직무를 경험했어요. 새롭고 도전을 좋아하는 성향으로 이직할 기회가 몇 번 있었으나 회사가 잦은 M&A를 하여 회사 로고가 5번이 넘게 바뀌는 경험을 했고, 그 여정에서 새로운 일과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으로 제 성장 욕구를 충족시켰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와 돌이켜보면 이 시절에 아쉬움이 조금 있어요. 너무 한 회사에 오래 다녔던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 말이죠. 당시 사장님께서 저에게 항상 큰 꿈을 꾸고 세상을 경험하라고 강조하셨는데, 저는 엉덩이가 너무 무거웠어요.
Q. 지금이야 이직을 커리어 성장 차원에서 보는 시선이 있지만, 당시만 해도 한 회사에 오래다니는 것을 미덕으로 삼곤 했잖아요. 그에 비해 부사장님은 꽤 다이나믹한 경력을 가지신 거 같고요. 화학, 프랜차이즈, 금융 그리고 지금은 국내 제조 회사에 근무하시고 계시잖아요.
첫 커리어부터 지금까지 계속 외국계 기업에서 근무를 해서인지 국내 기업에 대한 선망이 있었어요. 독특한 경쟁이 있는 국내 기업에서 코피 터지게 경쟁하며 일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죠. AIA를 퇴사하고 커리어의 물음표와 느낌표 사이를 왔다 갔다 할 때(웃음) 다시 또 다국적 기업에서 제의가 왔었는데, 그것보다는 늦게나마 국내 기업을 경험해 보자는 욕심이 생겼어요. 그런 점에서 ‘창신’은 매력적이었고, 특히 부산에 위치한다는 것은 엄청난 매혹이었어요.
창신은 풋웨어 제조 전문기업으로 나이키의 글로벌 빅 4 서플라이어 회사 중 하나다(나이키는 거의 모든 제품을 외부 파트너가 제조한다). 1995년 베트남과 중국, 2010년 인도네시아에 공장을 설립했고 위성공장을 포함해 10개의 공장 및 부산 본사와 계열사를 합쳐 7만 7000명의 직원이 근무 중이다. 이강란 부사장은 Chief Talent Officer로서 HR과 RSM(Right Souring & Manufacturing)을 담당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RSM이란 본사 및 해외공장의 물리적 자원과 인적자원이 나이키의 글로벌 기준에 맞도록 모니터링하고 감사하는 역할이다.
Q. 글로벌 본사를 둔 다국적 기업에서 근무할 때와 한국이 본사인 회사에서 글로벌 지사를 모니터링하는 역할은 좀 차이가 있을 거 같은데 어떠신가요?
이전 직장이었던 AIA는 홍콩에 본사에 있어서 그곳에서 글로벌 전략을 짜고 HR은 일 년에 한두 번씩 모여서 컨퍼런스를 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핵심 전략을 전파하고 매니지먼트하는 역할을 했어요. 창신에서는 한국이 본사로서 그 역할, 즉 글로벌 전략을 짜고 장기 계획을 세우는 역할을 하죠. 지금까지의 Offshore 공장을 지원하는 역할에서 더 확장하여 글로벌 스탠다드를 제도화하고 고도화하여 사업성장에 더 밀착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저의 목표입니다.
Q. 오래된 제조회사에서 다국적 기업 출신 HR을 영입했다는 건, 앞으로 HR에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신호탄으로 보이는데요. 실제로 조직에서는 어떤 변화가 있나요?
창신은 오직 ‘나이키’ 운동화만 만드는 회사예요. 따라서 나이키의 성장과 함께 하는 회사죠. 최근 나이키의 성장세가 더욱 커지면서 저희에게 요청하는 주문량이 더 많아지고, 더 강력한 파트너십을 요청하고 있어요. 저희는 그 기대에 맞춰 제품은 물론, 구성원의 역량 수준도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또 하나는 내부적으로 오너 경영인에서 전문 경영인 체제로 리더십이 변경되면서 제도적인 변화가 시작됐어요. 양적 성장뿐만 아니라 더 탁월한 창신으로 나아간다는 목표를 바탕으로 HR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해졌죠.
Q. 그 과정에서 부사장님이 특별히 강조하시는 부분이 있으신가요?
제가 입사 후 계속 상기하는 것은 창신은 부산 기반의 한국 회사, 또는 부산 기반의 글로벌 회사가 아니라, 그냥 ‘글로벌 기업’이라는 것이에요. 나이키를 얘기할 때 미국 기반의 글로벌 회사라고 얘기하지 않죠. 그래서 이에 걸맞게 프로세스, 시스템, 문화의 전환을 하려고 합니다. 현재 해외 진출해있는 3개국뿐만 아니라 월드 클래스 제조회사로서의 입지를 더욱 견고하게 하고 나이키가 추구하는 디지털&이노베이션을 실행하며 창신의 브랜드를 더욱 강하게 하는 조직을 만들고자 합니다. 그것을 위한 조직 역량 강화 그리고 그것을 실행할 수 있는 강한 HR을 만들고, 또 요즘 화두인 ESG를 차근차근 실행하는 탁월한 RSM 프레임워크를 만들어가고 있어요.
ⓒ 이강란
한 우물만 파지 말고 다양한 경험을 하라
Q. HR은 구성원과 회사 입장에서 어느 쪽에 가까운가 라는 질문을 하곤 하잖아요. 부사장님 생각은 어떠신가요?
어릴 때에는 회사에서 필요로 하고, 글로벌 정책으로 내려오는 것들이 있다면 꼭 전파하고 그대로 시행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제 커리어의 중반쯤이었던 시절 스트라이커라는 회사에 들어가면서 HR의 역할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어요. 회사 입장에서만 일하는 것이 아니라 균형감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요. 개인적으로 중립적이라는 말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HR은 양쪽의 균형을 잡는 역할을 할 필요가 있어요.
스트라이커에 근무할 당시의 사장님은 저를 황소고집으로 기억하더라고요(그녀는 자신을 부드러운 HR이라고 기억한다고 웃었다). 직원들 관련 이슈가 있으면 몇 번이고 와서 본인을 설득 시켰다고 말씀하셨어요. 직원들 목소리를 듣고 사장님을 설득하고 또 사장님이 원하는 것을 직원들에게 전달하기도 하고 욕도 많이 먹었지만, 균형을 잡는 역할에서 보람을 느꼈어요. 돌아보니, 노조가 없는 회사에서는 직원 대표자로서의 HR 역할이 좀 더 필요했을 거라 생각이 들어요.
Q. HR을 더 잘하기 위해 경험하면 좋은 활동이나 학습은 무엇이 있을까요.
HR에 대한 자신만의 정의를 해보길 바랍니다. Perfect보다는 Unique하게 말이죠. 자신만의 정의를 바탕으로 HR을 잘하기 위한 2가지 제안을 드린다면 먼저 Know the business 즉, Business-savvy 하지 않으면 진정한 비즈니스 파트너링을 하기 힘들 거예요. 사업과 조직 이슈를 함께 논의할 수 있는 사업에 대한 지식과 통찰력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기업 내 다양한 직무를 경험하는 것이 HR로 성장하는 데 있어서 중요할 거예요. HR동료들에게 경력 전환을 제안했던 적이 많은데, 많이들 주저했어요. 자신의 HR 경력에서 흠집이 나지 않을까, 또는 다시 HR로 돌아오지 못할 두려움까지 겹쳐서 의사결정을 못 하는 것 같습니다. 인재는 직선으로 크지 않는다는 기사가 생각나요. HR도 그렇게 보면, 직선의 성장보다는 곡선의 성장이 풍요롭고 지속가능성이 있을 것 같습니다.
Q. 그런데 기업의 CHO분들을 보시면 HR만 하면서 한 우물을 파신 분들이 많지, 다른 펑션에서 오신 분들은 많지 않은 거 같아요.
그런 부분이 앞으로는 바뀌어야 하고, 또 바뀌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어요. 실제로 괄목 성장하는 국내기업에서 HR의 경험이 전무한 분들이 HR임원이 되는 것을 봤습니다. Non-HR로서의 다양성을 원한 건 아니었을까요? 제가 코칭 공부를 하는데 “HR을 했던 사람이 코치가 되는 것의 장단점은 뭘까요?”라는 질문을 받았어요. 저는 사람에 대한 인사이트와 친화력 등이 장점이지만 자꾸 HR 시각으로만 사람을 보게 된다는 것이 아쉬운 점 같아요. 코치는 판단하면 안 되는데, 이 사람은 성과 낼 사람이야, 이 사람은 실행할 사람이야라는 판단을 내려버리면 실수를 할 수 있다는 것이죠.
제 프로필의 첫 줄에는 ‘33년간 다국적 기업에서 25년 이상 HR을 경험하고~’라는 문장이 있는데 이게 꼭 강점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오랫동안 HR을 해 왔다는 자부심이 있지만, 비즈니스 이슈는 HR 눈으로만 해결할 수 없어요. 사업을 모르면 CEO의 파트너 역할을 할 수 없잖아요. 그런 면에서는 빨간 렌즈도 껴보고, 초록 안경도 써보면서 사고를 확장하여 편견도 깨고 다양성을 경험해 보길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