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리어 갈림길에서 질문을 던지다

커리어 갈림길에서 질문을 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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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티클은 <일의 기쁨과 슬픔, 그리고 성장> 시리즈의 12화입니다.


지금 하는 일에서 만족과 동기부여를 느끼고 있나요? 
지금 일은 나에게 어떤 의미를 가져다 주나요? 
나에게 일이란 금전적 보상만으로도 충분한 가치를 주는지, 아니면 더 큰 충만함을 주는 다른 무언가가 있는지 생각해 본 적 있나요? 

이러한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답을 쌓아 간다면 ‘앞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할까’라는 고민이 뾰족해지고, 다음 스텝을 고민하는 기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조셉 에누마 서비스 기획자 

정해진 직무의 범위라는 게 딱히 없는 스타트업 기획자의 하루. 나는 매일 다양한 종류의 일을 만난다. 일이란 것이 그러하듯 당연히 어떤 일은 좋고 어떤 일은 조금 귀찮다. 현재 직장에 입사 후 가장 기억에 남는 업무 하나를 떠올려봤다. 바로 우리 앱을 사용하는 인도네시아 아이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오디오 파일 분석 일감이다. 녹음된 파일의 품질을 평가하기 위해 할당된 수백 개의 파일을 하나하나 들어봐야 하는, 언뜻 느끼기엔 좀 기계적이고 지루할 수 있는 작업. 그 속에서 예기치 못한 기쁨이 꽃 폈던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글을 시작하려 한다.

우리 앱을 사용하는 인도네시아 아이들 ⓒ 조셉  


지금 내가 하는 일


내가 일하는 에누마(Enuma) 는 4~9세 아이들을 위한 교육 게임을 만든다. 게임을 통해 영어를 배우는 아이들은 스크린에 제시된 단어를 소리 내 말하고, 그 목소리는 데이터가 되어 우리 쪽으로 넘어온다. 음성파일이 백 개면 당연히 백 명의 목소리가 모두 다르다. 단전부터 끌어올려 힘껏 영단어를 샤우팅하는 아이, 소심하게 툭 내뱉고는 앱이 반응하기를 한참 기다리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자기 뜻대로 반응하지 않는 앱에게 항의라도 하는 듯 같은 단어를 몇 번이고 반복하는 아이도 있다. 어떨 땐 옆에서 지켜보던 부모가 답답했는지 대신 나서서 해주기도 한다. 이어폰으로 통해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을 때 느꼈던 행복감이 너무나 생생해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씨익하고 웃음이 절로 난다.

업무를 마치고 나는 이날의 기분을 한참 곱씹었다. ‘뭐가 그렇게 좋았던 걸까?’ 그러고보니 간만에 랜선 너머에 있는 ‘사람의 얼굴’을 상상해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바다 건너 어딘가에 이 앱을 사용하는 사람이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내가 만드는 서비스가 실제 그에게 가서 닿고 있다’는,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사실. 하지만 매일같이 새로운 피쳐를 기획하고, 스프레드시트를 만들고 차트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업무의 기능적인 면에 파묻혀 그 당연한 걸 잊고 지내기가 얼마나 쉬운지 난 이 사실을 떠올릴 때마다 조금 아찔한 기분이 든다. 


다음 스텝을 뾰족하게 만들어주는 질문들 


먹고 사느라 바쁜 와중에도 가끔씩 찾아오는 진실의 순간들은 우리를 생각하게 한다. 나는 일을 할 때, 어떤 순간에 특별한 만족과 동기부여를 느끼고 있을까? 그리고 그것은 나란 사람에 대해 무엇을 말해주고 있을까? 나는 정말 금전적 보상이면 충분한 사람인가? 아니면 나에게 더 큰 충만함을 안겨주는 또 다른 무언가가 있는가? 

이런 질문들이 중요한 이유는 그 답이 쌓여갈수록 ‘앞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할까'의 고민 또한 뾰족해지기 때문이고, 다음 스텝을 고민하는 데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앞서 서술한 에피소드를 통해 드러나듯 나는 사람과 사회에 만들어내는 일의 영향력에서 강력한 동기부여를 얻는다. 그리고 내가 하는 일이 현재 내 삶에서 중요한 개인적 질문이나 궁금증과 밀접하게 닿아 있음을 느낄 때 만족을 느낀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일을 통해서 느낄 수 있는 의미'에 대해 그간 고민해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많은 경우 일에서 의미를 찾는다는 것은 일차적인 욕구, 예를 들면 경제적 필요나 사회적 인정 등이 해결된 후 시작되는 부차적인 단계로 여겨지는 것 같다. 하지만 그동안 나에겐 이 ‘의미의 추구’가 가장 주된 동력이고 기준이었다. 그 과정에서 남들이 보기엔 현실 감각이 살짝 떨어진다고 보일 수 있는 (하지만 나에겐 너무나 말이 되는) 결정들을 내린 적도 종종 있었고, 그로 인한 대가도 치러봤다. 그 의사결정의 동기와 과정을 공유해 보는 것도 나름의 의미가 있으리라. 누군가에겐 영감, 혹은 반면교사가 될 수도 있으리라는 믿음으로 글을 이어가 본다.


의미의 추구


그간 경험에 비춰봤을 때 일에 있어 ‘의미’를 크게 두 갈래로 나눠 볼 수 있을 것 같다. 개인적인 차원에서의 의미의 추구, 그리고 사회적 차원이 있다. 후자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해 보자. 고(故) 신영복 선생은 그의 책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정치적, 역사적 연관이 완전히 두절된 상태에 있어서의 생활이란 그저 시간의 경과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시간이 물질의 운동 양식이라면 나는 시간의 경과와 더불어 바위처럼 풍화 당하는 하나의 물체에 불과하다.”

(이 글에 이용하기엔 좀 심오한 글귀였다는 생각은 들지만) 결국 사람은 ‘나’를 넘어선 사회, 공동체와의 연결점을 계속 고민하며 살아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는 우리가 일을 바라보는 관점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조직에 속해서 혹은 개인으로서 일을 한다는 것은 어떻게든 사회와 관계를 맺는 방식이지만 내가 그 사실에 눈을 감아버리면 단순히 돈을 버는 행위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회사를 ‘혼자서 가능하지 않은 스케일의 임팩트를 사회에 창출해 내기 위해 동료들과 함께 애쓰는 모임’으로 정의 내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 전체로 봤을 땐 미미한 나의 역량을 회사라는 매개체를 통해 유의미한 스케일의 결과물로 증폭시킬 수 있다면 당연히 그 조직이 어떤 일을 어떤 방식으로 해내는지가 중요하다. 그래서 일할 회사를 리서치할 땐 언론 보도자료뿐만 아니라 회사 핵심자원들의 이전 이력까지 꼼꼼히 찾아보는 편이다. 수익창출 못지않게 소셜 임팩트를 추구하는 현재 회사에 합류하게 된 것은 필연적인 결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질문을 따라가기


그렇지만 업무의 사회적 가치에 대해 늘 고민하며 살기는 어렵다. 측정하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매일의 일상과는 동떨어져 있는 것처럼 생각되기 때문이다. ‘의미’의 두 번째 축인 개인적 차원이 좀 더 일상과 밀접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여기서 말하는 개인적 의미의 추구란 지금 내 삶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질문이나 가치, 또는 내면의 동기들이 내가 하는 일과 같은 방향성을 공유하는지(aligned) 생각해 보는 것이다. 물론 회사는 많은 사람들로 이뤄진 큰 조직이고 대부분 이윤창출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에 내가 추구하는 방향성과의 완벽한 핏을 찾기는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시행착오를 거쳐 내린 선택들을 통해 어느 정도 근사치에 도달하는 건 가능할 것이다. 물론 그걸 찾아가는 과정은 때때로 지난하고 번거로울 수 있지만 말이다. 

나는 NGO에서 인턴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이후 대기업, 스타트업, 창업, 정부기관을 거쳐 다시 스타트업으로 돌아온 제법 들쑥날쑥한 커리어를 만들어 왔다. 하지만 다음 스텝을 생각해야 하는 순간마다 그 순간 나에게 가장 중요한 질문을 따라왔다는 점에선 일관적이었다. 

커리어 초반, 내가 가지고 있던 질문은 내가 일에서 느끼는 주체성과 관련된 정도였다. 앞서 내린 ‘회사’의 정의(개인으로선 가능하지 않은 스케일의 임팩트를 동료들과 함께 사회에 창출해 내는 모임)를 다시 한번 가져와 보자. 여기서 ‘스케일'에 방점을 둘 경우 대기업과 같은 거대한 조직이야말로 이상적일 것이다. 나 또한 그런 조직의 일원으로서 천문학적인 스케일의 프로젝트에 속한 한 부분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낀 적이 있었지만 결국 타고난 기질 때문인지 ‘창출해 내는'에 방점을 찍게 된 듯하다. 큰 조직의 특성상, 특히 당시 주니어로선 아무리 작은 일이어도 내가 주도적으로 해냈다는 보람을 느끼기가 어려웠고, 일의 결과물을 체감하기엔 엔드유져까지의 거리가 너무 멀다는 게 회사를 나와 다른 길을 알아보게 된 계기가 됐다. 

내 나름의 질문들을 적극적으로 따라가기 시작한 시점은 퇴사 후 시작한 공부에서 ‘기술 철학'이라는 분야를 접하고 나서부터다. 모두의 손에 들린 스마트폰과 함께 모바일이 일상의 구석구석까지 침투해 들어오기 시작했던 때. ‘테크놀로지와 인간’이라는 주제를 철학, 사회학, 정치학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이론을 공부하고 나니 자연스레 테크놀로지가 실용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분야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고 그래서 UX 디자인 및 리서치를 배울 수 있는 Human-Computer Interaction을 선택해 공부를 이어갔다. 테크놀로지와 인간의 접점에서 실제로 일하며 둘 사이 관계를 현장에서 탐구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깊어지며 이후 스타트업으로 취업도 결정하게 됐다.

스타트업 커리어의 시작이었던 베를린 Rocket Internet 사무실 풍경 ⓒ 조셉 


베를린에서 스타트업 PM으로 일을 시작한 2014년부터 16년 사이는 질문을 더욱 구체화시킬 수 있었던 시기였다. 당시 <피로사회>란 책으로 한국 사회에서도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철학자 한병철과 VR의 아버지 자론 레니어(Jaron Lanier)의 생각에 큰 영향을 받아 ‘더욱 인간적인 웹/모바일은 어떤 모습일까’라는 질문을 진지하게 고민했고, 일에도 접목시켜보고자 했다. 물론 경험도 실력도 없는 내가 현장에서 실제로 할 수 있는 건 거의 없었지만 말이다. 좀 더 주도적으로 내 생각을 실험해 보고 싶단 생각에 PM이면서 UX 설계 업무도 할 수 있는 회사를 찾아 이직도 해봤지만 당연히 이상과 현실은 너무 달랐다. 수익창출을 위해 웹사이트에 못생긴 팝업을 띄우고, 배너를 붙여야 하는 내 나름의 치욕을(?) 겪으며 이래저래 혼란스럽던 때 또 다른 기회가 찾아왔다.

3년 남짓의 베를린 생활을 정리한 후 영국 GDS (Government Digital Service)에서 PM으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영국 공공서비스의 디지털 개혁을 주 업무로 하는 팀으로 내각실 (Cabinet Office) 산하의 정부 조직이면서도 스타트업의 문화와 업무방식을 가졌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한 가지 문제라면 이직할 시 같은 PM 포지션인데도 업계가 바뀌면서 주니어 레벨로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수익창출을 목표로 하는 팀이 아니다보니 좀 더 순수하게 사용자의 경험에 초점을 맞춘 서비스 디자인을 경험할 수 있으리라는 점이 내겐 더 큰 메리트로 다가왔고, 기회를 잡기로 결정했다. 무엇보다 남녀노소와 장애 유무를 모두 포용하는 디자인 원칙을 서비스 기획에 접목해 볼 수 있었던 경험은 몇 년간 가져온 질문 (‘보다 인간적인 웹의 모습')에 대한 답을 제공해 줄 수 있으리라 기대했고, 실제로 어느 정도는 그랬다. 하지만 치열한 경쟁을 통해 성장하는 사기업 환경의 역동성이 그립기도 했던 시간이다.

GDS 시절, 웨일즈 카디프에서 정부 관료들 대상으로 제품 데모 중 ⓒ 조셉 


질문을 돌아보기


기술과 사람의 관계, 그리고 어떻게 그걸 웹/앱 디자인으로 구현할 수 있는지는 여전히 흥미롭지만 시간이 지나며 지금 내게 더 의미 있는 질문이 무엇인지 계속 묻고 방향을 바꾸는 것 또한 중요하다. 

GDS에서의 3년 이후 내 안의 무언가 변했다는 것을 느꼈다. 세상에서 가장 영국적인 조직과 함께하며 내가 결국 이곳에 완전히 속할 수 없는 이방인이란 걸 뼈저리게 실감했던 것이다. 고민하는 주제가 바뀌며 자연스럽게 함께 일하는 동료들로 질문의 초점이 옮겨졌다. 같은 문화권에 속한 사람들과 일해보면 어떨까? 언제나 커뮤니티를 중요하게 생각해 왔으니 마음이 맞는 동료들과의 협업이 동기부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회사 안팎에 꿈을 공유하고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 환경은 내 삶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까? 그런 질문들을 가지고 한국으로 돌아오기로 한 결정은 (역시 이번에도) 나에게는 너무 말이 됐지만 주변엔 의아한 반응 더 많았던 것 같다. 

영국에서 공무원(Civil Servant)으로 누릴 수 있는 많은 혜택과 다가온 승진 타이밍 등을 생각했다면 애초에 움직일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질문과 마주했을 때 민첩하게 반응해온 그동안의 경험을 신뢰하기로 했다.

그렇게 다음 달이면 20년 만에 서울로 돌아온 지 1주년이 된다. ‘회사는 어때?'라는 지인들의 질문에서 ‘지금쯤이면 한국 사회생활의 매운맛을 봤겠지’라는 기대(?) 같은 걸 종종 느낀다. 다행히 들쑥날쑥 한 커리어를 통해 내가 여기저기서 습득한 스킬과 경험들을 꼭 필요로 하는 조직을 만났고, 아쉽게도 재택근무가 계속되어 아직까진 동료들 얼굴 볼 기회가 적었지만 새로운 질문에 대한 답을 계속 찾아가는 중이다.


나가며


여기까지 읽은 여러분은 공감했을 수도 있고 어쩌면 ‘나와는 다른 사람'이라고 일찌감치 결론을 내렸을지도 모르겠다. 내 주변을 둘러봐도 일 자체에 대해선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사람들이 사실 더 많다. 일은 일일뿐이지 뭘 그렇게 깊이 생각하냐는 반문이다. ‘연습할 때 무슨 생각해?’라는 질문에 ‘무슨 생각을 해.. 그냥 하는 거지'라고 시크하게 대답하는 김연아나 마이클 펠프스를 보면 최상위 레벨의 일잘러가 되려면 의미의 고민 같은 건 사치인가, 싶을 때도 있다. 

의미를 추구하겠다며 직군을 바꾸고, 업계를 바꾸는 와중에 나는 여러 차례 다시 시작해야 했고 그 결과로 동년배들과 비교하자면 나이에 맞는 연차와 연봉을 놓치기도 했다. 내겐 너무 말이 되는 결정인데 남들에겐 그렇지 않을 때, 그걸 굳이 설명하고 납득시키려고 애쓰는 날 보며 씁쓸한 감정을 느낀 적도 있었다. 

하지만 아마 독자는 이 글을 통해 이미 느꼈을 것이다. 나는 내 들쑥날쑥한 커리어가 진심으로 자랑스럽다. 좋아하는 정혜윤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나는 ‘내가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일부분'이며 나의 가치는 ‘내가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가치와 같기 때문'이다. 커리어를 만들어온 과정을 이야기 쓰는 것으로 비유한다면 나는 나만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써온 것이고, 어쨌든 작가로서의 자긍심 하나는 확실히 챙겼기 때문이다. 

모두가 일에서 의미를 추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려는 건 아니다. 신영복 선생은 사회적 의미로부터 단절된 인간을 ‘풍화되는 바위’로 비유했지만 그건 우리 모두가 같은 돌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말이 아닌가. 같은 비바람에도 잘 견디는 특수금속 재질로 만들어진 사람은 사회적 의미로부터의 단절 따위 무던히 견뎌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가 같은 재질의 돌이 아니듯, 나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성인이 되었을 때쯤의 나는 임팩트라던지 내면의 질문 같은 것에 심장이 뛰는 사람이 되어 있었던 것이고 그래서 선택의 순간마다 거기에 반응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뿐이다. 말하자면 생긴 대로 살았다.

만약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일을 통해 찾는 의미'가 앞으로도 중요하게 다가오지 않을 예정이라면 그저 ‘일을 보는 관점은 이렇게 다양하구나' 정도만 생각해 줘도 고마울 것 같다. 우리에겐 지금보다 더 다양한 일, 그리고 삶의 형태와 선택지가 필요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나와 같은 것들에 마음이 동하는 사람이고 나름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 살아왔다면, 반갑다. 내면의 나침반을 따라 사는 사람들이 지닌 자존은 궁극적으로 발전적인 것이라는 데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마지막으로 만약 지금 당신이 커리어와 관련해 어떤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면, 진부한 말이지만 마음의 소원을 따라갈 수 있길 진심으로 응원한다. 나에겐 너무나 말이 되지만 남들은 고개를 갸우뚱할 선택을 해나가는 과정은 가끔 외로운 일이다. 하지만 앞서 고민하며 그 길을 걸어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작은 위안이 된다. 부족하지만 이 글이 그 역할을 해줬길 바라며 글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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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ㅣ조셉 (joseph@enuma.com)
글로벌 에듀테크 스타트업 에누마(Enuma)에서 서비스를 기획합니다. 베를린 Rocket Internet을 시작으로 영국 디지털정부국 (Goverment Digital Service) 등에서 PM으로 일해왔습니다. 주로 인스타그램에 생각을 남깁니다. (@the_gachi)



발행일 2022.0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