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 안에 중급자, #너도할수있어

3개월 안에 중급자, #너도할수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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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티클은 <이 시대의 개발자로 일하기> 시리즈의 9화입니다.


소프트웨어 개발은 지금 세상에서 가장 빠르게 변하고 있는 분야 중 하나입니다. 그래서 소프트웨어 개발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개발자들은 자의든 타의든 새로운 환경에 뛰어드는 경험을 할 확률이 다른 직군 대비 높습니다. 작게는 사용하던 프레임워크를 바꾸는 것부터 크게는 직군을 변경하거나 새로운 도메인에서 일하게 되는 경우 등이 있겠네요. 

이번 글에서는 <실용주의 사고와 학습>(원제: Pragmatic Thinking & Learning: Refactor Your Wetware)에서 소개된 드라이퍼스 모델(Dreyfus Model)을 바탕으로 새로운 기술에 대한 전문성을 어떻게 빠르게 쌓을 수 있는지 확인해 볼 거예요. 이를 통해 우리가 새로운 환경에 놓였을 때 어떻게 빠르게 적응해 기대에 걸맞은 성과를 만들 수 있는지 알아봅시다.

ⓒ 앤디 헌트 《실용주의 사고와 학습》


전문가가 되기 위한 5 step

드라이퍼스 모델을 통해 알아보기 

1970년대 드라이퍼스 형제는 사람들이 어떻게 기술을 습득하고 통달하게 되는지 연구했습니다. 그 결과물로 나온 ‘드라이퍼스 모델’은 기술을 습득하는 과정을 초보자부터 전문가까지 다섯 단계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드라이퍼스 모델은 같은 사람이더라도 기술마다 이 단계가 다를 수 있음을 가정합니다. 예를 들어, Front-end 개발에서는 전문가여도 데이터 분석은 초보일 수 있는 것이죠.

그럼 드라이퍼스 모델의 다섯 단계를 살펴보겠습니다.


1. 초보자 (Novice)

초보자는 해당 기술 영역에서 사전 경험이 거의 없는 사람으로, 어떻게 하는 것이 잘하는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고, 예상과 다른 상황을 겪었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도 잘 모릅니다. 즉, 해당 기술에 대한 맥락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X가 일어나면 Y를 하라" 같이 맥락과 상관없이 통하는 매뉴얼이 있으면 효과적으로 일할 수 있습니다. 주어진 대로 일을 수행하는 것만 잘해도 훌륭한 초보자입니다.


2. 고급 입문자 (Advanced Beginner)

고급 입문자는 업무에 익숙해지는 시기입니다. 매뉴얼에 익숙해져 필요한 부분만 빨리 훑어볼 수 있습니다. 고정된 규칙에서 조금씩 벗어나기도 하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작업을 해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직 전체적인 맥락은 잘 알지 못하고, 문제 해결에는 어려움을 느낍니다.


3. 중급자 (Competence)

중급자는 일의 전체적인 맥락을 이해하고 행동합니다. 따라서 이전에 겪어보지 못했던 문제도 맥락에 맞춰 해결하고 기존 방식에 현재 맥락에 맞지 않는 부분이 발견되면 이를 스스로 개선하려고 시도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문제를 해결할 때 어디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지를 판단하는 데 어려움을 느낍니다. 아직 자기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교정할 수 있는 능력은 부족합니다.


4. 숙련자 (Proficient)

숙련자가 되면 단순한 정보보다는 큰 개념을 필요로 하게 됩니다. 직접 경험하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들의 경험을 듣고 효과적으로 배울 수 있고, 대가들의 격언을 이해하고 적용할 수 있게 됩니다. 예를 들어, 익스트림 프로그래밍(XP)에서 알려진 “뭐든지 잘못될 수 있는 것은 모두 테스트하라"라는 격언을 들으면 초보자는 정말 모든 것을 테스트하려고 하지만 숙련자는 실제로 무엇이 문제가 될 소지가 있는지 알고 이를 테스트합니다. 그리고 스스로 잘못했던 일을 스스로 교정할 수 있습니다.


5. 전문가 (Expert)

전문가는 수많은 경험을 바탕으로 한 뛰어난 직관으로 바탕으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옳은 판단을 내립니다.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더라도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가려냅니다. 늘 더 나은 방법과 수단을 찾고, 그 분야에서의 지식과 정보의 근원이 됩니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드라이퍼스 모델은 검증할 수는 없는 추상적인 개념입니다. 하지만 마음이라는 것이 증명할 수 없는 추상적인 개념지만 유용한 개념인 것처럼, 드라이퍼스 모델도 우리에게 유용하게 쓰일 수 있습니다. 드라이퍼스 모델에서 중요한 사실은 갑자기 초보자가 전문가가 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각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나가기 위해 충분한 경험과 훈련이 필요합니다.

ⓒ 셔터스톡


메타스킬 : 뛰어넘기가 아니라 빠르게 


분명 다른 환경에서는 전문가였는데 새로운 환경에서는 적응하지 못해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를 본 적 있습니다. 그분들의 공통점을 표현하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 적응하는 기간 없이 바로 자신의 역량을 발휘해서 인정받으려고 합니다.
  • 맥락을 잘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에 자신이 기대했던 것만큼 역량 발휘가 되지 않습니다.
  • 자신의 역량이 의심 받을까 봐 다른 사람들에게 질문하지 않고 외부에서 답을 찾으려고 합니다.
  • 스스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피드백을 두려워하게 되고 방어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 한 번에 좋은 결과물을 내서 이 상황을 역전시키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드라이퍼스 모델에 따르면 한 번 이러한 흐름에 빠지게 되면 탈출하기가 어렵습니다. 초보자에서 전문가에 이르는 각 단계를 뛰어넘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환경에서 우리는 기존의 맥락을 잃고 다시 초보자가 됩니다. 초보자부터 고급 인문자, 중급자 순서대로 각 단계를 거쳐서 전문가를 향해가야 합니다. 과정들을 생략하고 전문가로 뛰어넘으려고 하다가는 스텝이 꼬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다시 전문가가 되기 위해 해야 하는 것은 각 단계를 ‘뛰어넘는' 것이 아니라 ‘빨리’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내가 가지고 있던 기존의 역량뿐만이 아니라 그 역량을 쌓는 역량, 즉 메타 스킬입니다.


새 회사의 적응 기간은 3개월! 

3개월 안에 중급자 되는 방법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하면 환경에 빠르게 적응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흔히 새로운 회사에서의 적응 기간을 3개월 정도 두는데요. 회사는 신규 입사자에게 3개월 후 어떤 모습을 기대할까요? 새로운 환경에서도 다시 전문가가 되어 있으면 너무 좋겠죠. 그러나 사실 ‘중급자’만 되어도, 즉 맥락을 이해하고 그 맥락 안에서 행동할 수만 있어도 충분히 회사의 기대를 충족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설명드린 초보자에서 중급자까지의 과정을 이번에는 맛보기, 따라하기, 익숙해지기, 개선하기로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맛보기

새로운 요리법을 배울 때 가장 먼저 해봐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그 음식을 먹어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까르보나라’가 무슨 맛인지도 모르는데 까르보나라를 잘 만들 수 있을까요? 음식을 먹어보는 사람의 입장에서 그 음식의 맛을 느껴보지 않으면 내가 음식을 만들 때 어떤 맛을 만들어야 할지 알기 어려울 것입니다. 

일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작업할 제품, 타사 제품, Best Practice 등의 결과물을 먼저 충분히 경험해 보는 맛보기 과정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2. 따라하기

이제는 직접 일을 해볼 차례입니다. 아직은 맥락을 모르기 때문에 정해진 대로 한 단계씩 차근히 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마치 처음 해보는 요리를 레시피 보고 따라 할 때처럼 말이죠. 밀가루 계량하기, 불 조절하기 같이 일의 기초가 되는 과정들을 착실하게 익힙니다.

이 과정에서 많은 분들이 다른 분들에게 물어보는 것을 어려워합니다. 자신이 초보자라는 사실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기 때문인데요. 하지만 피드백이 없이 성장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1만 시간의 법칙>에서는 전문성을 위한 필수 요소인 ‘의도적인 연습'의 구성요소로 ‘구체적이고 도전적인 목표', ‘100% 몰입할 수 있는 환경’, 그리고 ‘피드백'을 말할 정도로 피드백은 성장에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하지만 드라이퍼스 모델에서 보았듯이 초보자는 자신의 부족한 점을 스스로 교정하기 힘든 단계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피드백이 필요합니다. 초반에 묻는 질문은 다들 인정하고 친절하게 답변해 주지만, 적합한 타이밍을 놓치고 시간이 흐른 뒤에 물어 본다면 정말 초보자가 되어버립니다.


3. 익숙해지기

매뉴얼을 따라 하다 보면 슬슬 일이 익숙해집니다. 정해진 일의 흐름 속에서 맥락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때 정해진 매뉴얼이 있더라도 내 다음 사람을 위한다는 마음으로 매뉴얼의 빈 내용을 채워 넣거나, 매뉴얼이 없다면 새로 만들어 보면서 맥락을 익히면 효과적입니다. 마치 남에게 가르쳐 주면서 공부가 더 되는 것처럼요. 잘 모를 때 그냥 받아 들이던 내용들의 맥락을 하나하나 궁금해해보고, 그것들을 물어보거나 고민해서 채워 넣을 수 있습니다.


4. 개선하기

모든 조직은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일이 충분히 익숙해지고 맥락이 파악되고 나면 개선할 만한 포인트가 한두 개쯤은 보일 것입니다. 이제 내 기존 전문성을 새로운 맥락에 접목시켜서 개선해 봅시다. 이 경우 기존 구성원들이 알게 모르게 필요로 하고 있었지만 해결하고 있지 못하던 문제를 해결하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맥락을 충분히 파악하지 못했는데도 막무가내로 개선을 추진하려고만 한다면,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마음 때문에 잘못된 방향을 추구하면서 결국 기존 구성원들의 반발을 사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 과정들을 거치고 나면 새로운 환경에 빠르게 적응해서 맥락을 파악하고 실질적인 개선까지 이루어냈을 것입니다. 성공적으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한 것이지요.

ⓒ 셔터스톡 


신규 입사자를 위한 환경 구축 

: TRM 높이기 

힘들게 채용한 인재가 회사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결국 떠나게 된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일까요? 위의 적응 과정을 나에게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적용한다면 다른 사람의 빠른 적응을 도울 수도 있을 것입니다. 

조직에서 신규 입사자를 위한 온보딩 프로세스를 만들 때 위의 과정을 반영해 따라올 수 있게 만든다면 본인의 원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이 될 것입니다. 도서 <하이 아웃풋 매니지먼트>에서는 업무 관련 성숙도(Task-Relevant Maturity, 이하 TRM)에 따라 관리 스타일이 달라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TRM 이 낮을 때는 정확하고 상세한 구조적인 지시를, TRM 이 높을 때는 소통, 감정적 지지, 격려를 해야 한다고요. TRM도 드라이퍼스 모델과 마찬가지로, 한 업무에서 높은 TRM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다른 업무에서 그 TRM이 유지되지 않고 낮아지는 특성을 보입니다. 따라서 업무 변화가 높은 조직이라면 구성원이 새로운 업무를 하게 되었을 때 TRM이 낮은 단계를 빠르게 벗어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큰 도움이 됩니다.


더 생각해 볼 것들


누군가 낮은 성취를 보이거나 문제 상황을 만들 때, 이를 단지 그 ‘사람'의 문제로 치부해버리고 마는 모습을 자주 봅니다. 실제로 원인이 그 사람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대체로 그런 인식은 문제를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사람은 어차피 부족한 사람이었어'라고 치부해 버리면 마음 편하게 끝나기 때문이죠. 

사실 이 글에 대한 시작은 면접도 충실히 하고 레퍼런스 평가도 좋았는데 새로운 조직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떠나시는 분들을 보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는 것은, 다시 말하면 다음에 또 같은 문제를 겪더라도 해결할 방법이 없다는 얘기와 같습니다. 즉, 발전할 수 없는 것이죠.

이럴 때는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내가 저 사람이었다면 ‘회사가 나를 잘 챙겨주지 않았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그러면 역으로 ‘우리가 잘 챙겨주지 못한 것이 있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해 보는 것이죠. 

어떤 사람의 행동이나 결과는 그 사람 자체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환경의 영향이 있기 때문에, 그 환경을 고려할 수 있는 ‘메타 스킬’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조직의 역량’이란 조직원들의 역량 자체의 합이 아니라, 조직원들의 역량을 최적화 시켜주는 메타 스킬도 포함한 것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런 개념으로 우리 조직의 역량은 지금 어떤지, 발전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 <이 시대의 개발자로 일하기> 시리즈 보러 가기 



글ㅣ손진규 
기계항공공학 석사 졸업 후 뒤늦게 개발자로 커리어를 시작해 그래픽스, Android/iOS, Front-end/Back-end 개발을 경험해왔다. 현재 Momenti에서 Back-end Engineer로 일하고 있고, 과거 힐링페이퍼(강남언니) 개발 챕터 리드, Daybit CTO 등을 역임했다.



발행일 2022.0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