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라진 시대다. 능력과 상황에 따라 자유롭게 이직하고, 특정한 소속 없이 재능을 살려 다양한 일을 하는 N잡러의 시대가 도래했다. 부모님 세대는 비정상적인 진로 설정으로 판단하겠지만 우리는 ‘기준’이라던가, ‘정상’이라는 잣대가 희미해진 시대에서 더 즐겁게 살아남고자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다. 시골에서 가능성을 발견하고 새로운 삶의 형태를 만들어 가는 청년들이 이를 증명한다. 자발적으로 귀촌한 청년의 현실적인 이야기를 풀어보려 한다.
나만의 라이프 스타일을 찾아서
시의 행정적 승인 기준은 인구수다. 인구수가 10만이 안 되면 시로 승인받지 못하며 그 이하로 떨어지는 경우 군으로 격하된다. 지난해 수도권 인구수는 2,600만 명을 돌파했다고 한다. 수도권 인구는 점점 늘어나는데 지방 소도시, 군 단위 소재지의 인구수는 날이 갈수록 줄어든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학업과 취업을 주요 이유로 많은 이들이 도시로 몰려들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주된 추세인 것 같지만 이 와중에도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이 대두되고 있다. 변혁의 욕구가 들끓는 MZ세대 사이에서 나만의 삶, 나만의 라이프 스타일을 추구하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시골로 향하는 이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러스틱 라이프(Rustic Life)’는 김난도 교수의 《트렌드 코리아 2022》에 등장한 개념으로 도시인들의 이중생활을 모두 충족하는 판타지 같은 삶을 지칭한다. 흔히 오도이촌이라 하던가. 5일은 도시, 2일은 시골에서 보내는 이상적인 삶을 꿈꾸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시골 생활, 귀촌을 바라보는 시선이 전과 달라졌다. 책에서는 러스틱 라이프를 총 4단계로 설명한다. ‘떠나기 -> 머물기 -> 자리 잡기 -> 둥지 틀기’.
나는 둥지를 틀고 나서야 러스틱 라이프라는 개념을 알게 되었다. 도시를 떠나 잠시 이곳에서 머무르다가 요가 강사 겸 작가로 자리를 잡았고 결국 전입신고를 했다. 누군가는 여유롭기에 가능했던 결정이라고 하겠지만 나는 여유와 가능성을 찾아 귀촌했다. 도시에는 학업과 취업의 기회가 없어 보였다. 그렇다면 나를 포함한 청년들은 왜 시골을 선택한 걸까?
ⓒ 원희래
귀촌 선언
귀촌한 지 만으로 1년이 되었다. 황량한 겨울을 지나 생동하는 봄, 찌는듯한 더위, 풍성한 수확 철을 거쳐 다시 칼바람 부는 겨울을 보내고 있다. 논밭에는 잘려 나간 벼의 밑동만 남았고 종종 하얀 덩어리들이 마시멜로처럼 곱게 쌓여있다.
‘도대체 왜?’
처음 귀촌을 선언했을 때 모두가 물었다. ‘아니, 거기서 적응은 잘할 수 있겠냐, 외로워서 어떻게 살래? 돈벌이는 괜찮은 거고? 집은 구할 수 있겠니?’
물론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았고 지금도 그 사실은 변함이 없다. 처음부터 귀촌하겠다고 작정하고 내려온 건 아니었다. 평생을 도시에서 살면서 새벽 2시에 현관문을 박차고 나서도 화려한 조명이 감싸는 거리에서 안전하고 빠르게 편의점에 도달해 야식을 사 올 수 있는 환경에 길들어 있었고 프랜차이즈 커피에 중독돼 1 자리, 1 콘센트가 확보된 카페로 출근해 작업을 이어가곤 했다. 그러나 마지막 회사와 계약이 끝났을 때 불현듯 모든 것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익숙한 출근길, 비좁은 내 방, 맨날 똑같은 김치찌개, 만성적인 허벅지 통증을 떨쳐내고 싶었다.
그래서 달랑 짐가방 1개만 끌고 무작정 의성군(의성군은 마늘로 유명한 곳이다) 으로 향했다. 처음엔 그냥 살아보기 여행으로 시작했다. 맹세코 태어나서 처음 듣는 지명이었다. 한 달 살기가 한창 유행할 때라 국내 시골 마을에서 한 달 살기 하는 셈 유유자적할 계획이었다. 노트북 한 대만 있으면 어디서든 마감은 할 수 있으니 디지털 노마드를 직접 실천해 볼 기회이기도 했다.
나의 직업은
내 직업을 뭐라고 소개하면 좋을까? 외국에서 흔히 물어보는 ‘What do you do for living? (어떻게 벌어서 먹고사니?)에 대답할 만한 짧고 확실한 답이 내겐 없다. 굳이 직군을 소개하자면 나는 프리랜서다. 글도 쓰고, 번역도 하고, 강의도 한다. 귀촌 이전부터 했던 일들인데 얼마 전부터는 창업가라는 이름이 하나 더 붙었다. 요가 스튜디오를 오픈한 청년 창업가가 되었다. 모두의 우려와 걱정을 돌파하고 밥은 벌어 먹고살 수 있게 되었다.
예상외로 생활 패턴은 비슷했다. 아침에 일어나 가볍게 스트레칭하고, 노트북을 붙들고 앉아서 마감 전에 원고를 납품하고 새로 일을 받고, 때론 책을 읽으며 언젠가 위대한 소설을 쓰겠다는 망상에 젖기도 하며, 저녁은 뭘 먹어야 할지 고민하다가 대충 빵으로 때우기도 했고 때론 숙소를 공유하는 이들과 성대한 만찬을 만들어 먹기도 했다. 시골 생활이 도시와 단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시골 사람들이 다 농사짓는 농부가 아니듯이 라이프 스타일은 상황이나 환경에 상관없이 본인이 노력해 만들기 나름이다. 다만 환경이라는 게 꽤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인정한다.
ⓒ 원희래
사랑에 빠지면 주변 모든 것들이 흐릿해지고 대상에 슬로우모션이 걸린 것처럼 보인다고 이야기하던데 내게도 그런 경험이 찾아왔다. 살랑 바람이 부는 논두렁에 앉아 간질거리는 벼 모종과 하늘을 채운 노을을 보고 있노라니 모든 걱정이 사라지고 나른해졌다. 뱃속부터 막연한 행복감이 차오르는 게 느껴졌다. 결국,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
의(依): 의지할 사람 혹은 존재
아무리 독립적인 인간이라도 의지할 곳이 필요하다. 귀촌은 혼자 여행하는 것과 다르다. 아무래도 의지할 사람이나 존재가 필요하다. 나갔다 돌아오면 맞아 줄 반려동물이나 반려식물 혹은 나만의 취미가 필요하다. 따라서 나는 귀촌을 힐링의 도구이자 수단으로 추천하지 않으며 아무에게나 귀촌을 장려하지는 않는다. 다만 귀촌도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삶은 현실이다 보니 좀처럼 충동적이며 확고한 결정을 내리기 쉽지 않다. 연고도 없는 곳에 혼자 살아야 한다는 막막함과 의지할 곳 없는 현실이 도시의 삶보다 더 팍팍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청년 살아보기 마을’을 통해서 이곳에 정착했다. 행정안전부와 각 시‧ 도‧ 군에서 진행하는 사업 중 하나로 청년 유입을 늘리고자 한 달 혹은 석 달까지 살아보며 지역을 체험하는 청년 마을이 존재한다. 비슷한 나이대지만 저마다 다른 고민을 안고 찾아온 청년들이 모여 공동체 생활을 한다. 성인이 되어 공동체 생활을 할 일이 얼마나 있을까? 마치 학교로 돌아간 기분이라 마음가짐이 보통이 아니었다. 일종의 정착 훈련 같은 느낌으로 지역을 파악하고 나와 잘 맞는지 탐구하며 천천히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큰 작용을 했다. 20년 혹은 30년 넘게 모르던 사실을 발견하기도 하고 혹은 원래 갖고 있던 신념이 더 확고해지기도 했다. 여기서도 나는 글쓰기에 의지했다. 온갖 감정과 마음을 쏟고 나면 공허함이 채워졌고 글이 있으니 먹고 살 수는 있겠다는 안정감이 들었다. 글은 수익 활동으로도 이어졌다.
식(食): 시골에서 먹고 사는 법
‘경제활동은 어떻게 하시나요?’ ‘글쎄요.’
딱히 정답이 없다. 다만 선택지는 많은 편이다. 경제적 여건 때문에 단박에 귀촌도, 장기간 살아보기도 결정을 내리기 어렵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어디서든 먹고 사는 것, 혹은 그 이상을 위해 돈 버는 게 중요한 법이니. 일단 디지털 노마드라면 결정이 훨씬 수월할 수 있다. 대한민국 어디서든 인터넷이 안 터지는 곳은 없으니 노트북 한 대로도 일할 수 있고 돈을 벌 수 있다면 이 생활이 천직이 될 수도 있다.
그게 아니라도 일거리는 충분하다. 봄에서 가을까지 쉴 틈 없는 농사일을 도울 수 있고, 면사무소나 출산 센터, 복지관 등 나라에서 운영하는 기관에서 일할 수도 있으며 청년들을 위한 다양한 정착 컨설팅, 창업 수업 등에 참여해 창업을 노려볼 수도 있다.(약초를 찾아 사진을 찍어 데이터베이스화하는 일도 있는데 회사원 초봉 이상을 받는다!)
워낙 새로운 얼굴, 특히 청년들이 드문 곳이라 어딜 가든 눈에 띄는 법이다. 나 같은 경우도 요가 한다고 소문이 나자 사방팔방에서 수업 요청 전화가 왔었다. 도시에서 하던 일과 사뭇 다를 순 있지만 그래도 먹고 사는 걱정은 없다. 그래도 본인에게 맞는 일, 잘할 수 있는 일을 원한다면 지금 당장 내려오기 전에 본인만의 장점을 만드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요가, 요리, 사진, 체력 등 뭐든 상관없다. 내세울 수 있는 장점을 짐 가방 안에 함께 넣어 오자.
주(住): 워라벨이 가능한 곳
디지털 노마드가 작업할 때 필요한 게 몇 가지 있다. 빵빵한 와이파이, 카페인, 노트북. 정착 후 나의 첫 주요 작업지는 동네 빵집이었다. 오전 일찍부터 창가에 자리 잡고 노트북을 두들기고 있으면 다양한 사람들과 마주하게 된다. 새로운 얼굴이 드문 동네라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말을 거는 사람들도 많다. 도시에서는 귀찮았을 관심이 이곳에서는 감사할 지경이다. 모든 인연이 어떻게 돌아올지 모르니 얼굴을 익혀두고 본인을 어필하는 게 좋다. 오며 가며 인사하다 보면 지역에 차차 녹아들게 된다. 시골은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인상이 짙은데, 있을 건 다 있다. 체육시설도 있고, 도서관도 있고, 수용 인원 100명에 달하는 어린이집도 있다. 게다가 카페 강국답게 앞으로 카페만 10곳이 넘는다.
정착을 고민하던 무렵, 이미 정착해 자리를 잡고 활동 중인 청년들을 보며 마음을 정할 수 있었다. 치열한 고민 끝에 새로운 의식주 형태를 발견해 적응을 거쳐 정착한 청년들은 공동체 모임, 독서 모임, 러닝크루 등 다양한 자기계발 모임을 만들어 워라벨의 균형을 맞춰가고 있었다. 도시인들은 일과 삶의 흐릿한 경계를 불만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나 또한 직장 생활을 하면서 의지와 상관없이 야근해야 하거나 집에서 업무 연락을 받는 경우가 부지기수였고 워라벨을 지키려 노력해도 어쩔 수 없이 깨지는 상황은 큰 스트레스였다. 영화관, 미술관, 행사가 있어도 나와 무관한 것들이었다. 균형이 쉽게 깨져버리는 도시의 삶은 길게 가져갈 수 없다. 문화, 예술 인프라가 부족한 이곳에서는 오히려 워라벨을 지킬 수 있다. 뭐, 배달의 민족이 없다는 게 제일 아쉽긴 하다.
ⓒ 원희래
창업한 이야기
2021년 12월 1일 요가 스튜디오를 오픈했다. 몸과 마음의 힐링을 위해 지역 특산물이 들어간 블렌딩 차를 마시고 요가 수련도 하는 공간이다. 가오픈 첫날부터 시련이 찾아왔다. 사전 신청자들의 노쇼와 취소 세례 그리고 새똥으로 화룡점정을 찍었다.
‘아니 새가 막 짹짹거리더라고’
가오픈 날 동네 새들이 화장실 세면대 위에 똥을 갈겨놨다. 처음엔 진흙인 줄 알았는데 새 지저귀는 소리가 들렸다고 호들갑을 떨며 말씀하시던 주인 할머니 말씀에 장갑을 끼고 오픈 날부터 새똥을 치워야 했다. 첫날부터 액땜한 덕분인지 어찌어찌 공간을 운영하고 있다. 벌써 1년이 지났고 두 번째 봄이 오고 있다. 청춘은 푸를 청, 봄 춘 이라는데 이제야 푸른 봄을 제대로 맞이하는 기분이다.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지속 가능한 행복은 내 삶의 최대 목표였다. 지속 가능한, 새로운 삶의 형태로 시골살이를 추천한다. 무조건 도시가 답인 시대는 지나갔다. 지금 당장은 아닐지라도 인생 선택지에 귀촌을 추가해도 좋지 않을까? 어디서든 본인의 삶은 꾸려나가기 마련이다. 귀촌 청년은 오늘도 스튜디오 문 열러 간다. p.s 지역 정착이나 창업에 관심이 있다면 반드시 확인해야 할 웹사이트를 소개한다. 1. 지자체 웹페이지 (예를 들어 경상도에서 지원하는 사업은 경상북도청, 경북경제진흥원 웹페이지에 올라온다.) 2. 중소벤처기업부 3. 그 외 '#살아보기'로 올라오는 인스타그램 피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