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착해서 워라밸을 이루기까지

정착해서 워라밸을 이루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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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티클은 <나만의 리틀 포레스트> 시리즈의 3화입니다. 


‘집은 어떻게 구하나요?’ ‘텃새는 없었나요?’ ‘비슷한 또래가 있나요?’ ‘일자리가 있을까요?’ ‘뭐하고 놀죠?’ 귀촌을 결심하고 실제로 전입신고를 하기까지 과정을 온라인에서 연재하고 있다. 귀촌한지 1년이 넘었으니 연재된 글이 쌓여가면서 귀촌과 시골 생활을 궁금해 하는 청년들의 질문도 상당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평균 귀촌 연령보다 이른 나이에 귀촌을 했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궁금해 한다. 도대체 왜 시골로 내려갔고 도시랑 뭐가 다르냐고. 그럴 때마다 도시나 시골이나 삶의 커다란 변화는 없다고 답하곤 하지만 의식주를 건설해 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차이가 있는 건 사실이다. 귀촌 청년이 의식주를 쌓아 결국, 워라벨까지 쟁취하는 과정을 소개하려 한다.

ⓒ 원희래 


4.3%의 파이 한 조각


파이 한 조각과 비슷한 이 작은 수치는 우리나라 농업 인구 비율이다. 2019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대한민국 농업 종사자 수는 전체 인구 대비 4.3%에 불과하다. 그중 45%가 만 65세 이상으로 심각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 인구 소멸과 유출을 막고자 행정안전부에서는 전국 곳곳에 청년 살아보기 마을을 유치하고 있다.

ⓒ 원희래


청년들이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한 달 이상 지역에서 살아보며 해당 지역을 탐구하고 본인의 가능성을 재보는 기회를 부여한다. 하지만 덜컥 정착을 결심하기에 앞서 걱정이 따르기 마련이다. 귀촌 생활을 연재하면서 받았던 모든 질문에 내포된 의미를 요약하자면 ‘기존에 일군 삶을 두고, 새롭게 만들어야 하는데, 가능할까요?’가 아닐까 싶다.

 

귀촌 청년이 의식주를 구축하는 방법 

(텃새는 없습니다)

먼저 이곳에서 어떻게 집을 구했는지 간단하게 에피소드를 풀어보려 한다. 시골 특성상 몇 세대에 걸쳐 살아온 토박이들이 많고 친척들이 모여 살다 보니 빈집이 나오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아무도 이사 가지 않는다. 따라서 부동산에 가봤자 전답과 땅 매매 정보만 있을 뿐이다. 이럴 때는 지역민에게 도움을 청해야 한다. 

정착을 결심한 초기에 자전거를 빌려 타고 온 동네를 돌아다녔던 기억이 생생하다. 아무리 찾아봐도 ‘월세’라고 써 붙인 전단을 발견할 수 없었다. 애를 먹고 있는데 서울서 내려온 젊은이가 집을 구한다는 소문을 접한 친절한 지역민이 때마침 나온 빈집을 소개해 줬다. (엄밀히 따지면 지역민의 지인의 지인 소개였지만 아무튼) 덕분에 일사천리로 이사와 전입이 이뤄졌다. 

단절된 도시의 삶과 다르게 모두가 알고 지내는 시골 지역의 장점이다. 더군다나 청년이 드문 지역이라 새로운 얼굴이 보이면 호기심으로 혹은 측은지심으로 먼저 다가오는 이들이 많다. 청년이라 받는 응원과 혜택 덕분에 지역 발전에 이바지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길 정도다. 실제로 지역민과 이주 청년들 사이 커뮤니케이션이 활발하다. 예를 들어, 매년 진행 중인 청년 살아보기 마을에서는 플리마켓을 개최한다. 누구나 셀러로 참여할 수 있다.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게임이나 퀴즈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나도 장터에서 열린 플리마켓에서 요가 선생으로 참여한 적이 있다. 장터에서 돗자리 깔고 어르신들과 짝을 이뤄 진행한 요가 수업은 아마 전 세계에서 내가 최초지 않을까? 낯선 곳에서 새롭게 삶을 꾸려나가야 하니 막막하고 두려운 게 당연하다. 하지만 우려와 다르게 지역에서는 청년들을 품어주고 빠르게 녹아들 수 있다. 어디서든 나 하기 나름이라지만 시골에서는 주체적인 행동이 더 요구된다. 내가 나서서 알아보고 찾아보고 요청하다 보면 늘 기회가 손바닥에 안착한다. 요가 선생으로 소문이 난 덕에 올 4월부터 이웃 면에서 진행하는 행복학교에 요가 수업을 나가게 되었고 청년 살아보기 마을에 새로운 청년들이 들어올 때마다 강연을 진행하고 있다. 굶어 죽을 걱정은 없다.

ⓒ 원희래


의식주가 해결되었을 때 다음으로 무엇이 필요할까? 가령 무인도에 떨어졌다고 가정해보자. 당장 살아남기 위해 비바람과 내리쬐는 태양을 피할 텐트를 세우고, 수렵과 채집 혹은 사냥을 위한 도구와 땔감으로 쓸 마른 나뭇가지까지 구축했다고 치자. 인간은 늘 더 나은 삶, 질적인 향상을 꿈꾼다. 여기에 놀라운 설문조사 하나를 더해보려 한다. 행안부가 살아보기 마을을 경험한 청년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정착을 고민하는 청년들은 의 ‧ 식 ‧ 주가 아닌 문화 인프라를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고 있다고 응답했단다. 

자기계발과 질적인 삶의 연장을 추구하는 청년 세대에게 월세와 일자리만큼 중요한 게 문화 예술 생활이다. 서울 등 대도시와 비교했을 때 시골 지역의 문화 인프라가 현저히 부족하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인프라가 부족하니 문화 ‧ 예술에 할애하는 시간도 줄어든다. 2021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실시한 성인 독서율에 관한 설문 조사에서 읍면 거주지 성인들의 독서율이 도시 거주 성인보다 22.3%나 떨어진다는 결과가 발표되었다. 시간과 공간의 여유가 없어 독서를 못 한다는 응답도 무려 26.5%였다. 비단 유입 청년만의 문제는 아니다. 지역 청년들조차 아쉽다고 입 모아 토로하는 문제 중 하나이다. 아쉽지만 어쩌겠는가. 단기간 행정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면 우리끼리 똘똘 뭉쳐 방법을 강구해야지.

 

워라벨을 이루기까지

따로 혹은 같이, 자기계발이 가능합니다.


이곳에서는 누구나 워라벨을 이룰 수 있다. 판타지 영화에 나오는 카피 문구 같지만 사실이다. 해지면 가게 문 닫고 집에 돌아가는 것이 시골의 이치인지라 나도 마음 놓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 옆에서 보채거나 압박하는 이가 없다. 잠들지 않는 도시에서 눈치 보며 퇴근길에 올라설 때마다 느끼던 혼자만 도태된 듯한 기분을 이곳에서는 느끼지 않아도 된다. 마음의 여유가 생기니 비로소 나를 돌보고 일 이외의 삶을 보살필 수 있게 되었다.

‘아니, 인프라가 없는데 워라벨이 무슨 소용입니까?’

아무리 즐길 수 있는 것들이 많아도 지옥철에 치이고 회사에 치이고 관계에 치인다면 무슨 소용일까?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와 마음의 여유가 필요하다.

‘사락사락’

고요한 공간에 타자 치는 소리와 종이 넘기는 소리가 흐른다. 매주 목요일 밤 8시, <고요한 창작실>에는 자기계발에 목마른 성인 6명이 모여 개별 작업을 진행한다. <고요한 창작실>은 명칭 그대로 고요하게 창작을 이어가는 공간이다. 순전히 개인적인 욕심으로 탄생한 모임이 이렇게까지 호응을 받을 거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정착 후 먹고 사는 일이 바빠 독서, 글쓰기, 공부 모든 걸 놓아버리자 초조해졌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는 생각에 위기감이 찾아왔다.

‘분명 나 같은 사람들이 있을 거야.’

도시에서는 ‘트레바리’나 ‘문토’ 등의 커뮤니티를 통해 퇴근 후 자기계발을 위해 관심 분야별로 모여서 모임을 이어간다. 책을 읽고 토론도 하고, 각자 글을 쓰고 독립 출판을 진행하기도 하고, 모여서 영화를 보거나 강변을 달리기도 한다. 한숨 돌리고 나자 이곳에도 그런 모임이 필요해 보였다. 

그래서 하나 만들었다. (주체적인 행동!) 개인의 창작을 위한 시간과 공간을 제공하되 예치금을 받아 출석할 수밖에 없는 구조의 모임이었다. 모집 시작 6시간 만에 마감되었다. 놀랍지 않은가? 이렇게나 자기계발에 목말라 있다니, 그리고 이렇게나 청년들이 많다니. 우리는 매주 목요일 하루를 마무리 한 후 2시간 동안 각자 창작을 즐긴다. 함께 있지만, 간섭이나 방해 없이 주도적 자기계발을 이어간다. 

시골 지역의 문화 ‧ 예술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지만 생각의 방향을 전화해 보면 그만큼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가 된다. 아주 조금의 적극성만 있으면 말하거나 생각하는 일이 실제로 이뤄질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아무도 해본 적 없으니 직접 일굴 수 있다. 예를 들어 퇴근 후 러닝이 하고 싶었던 한 친구가 그날로 러닝 크루를 결성해 지역 하천과 논두렁을 달리는 모임을 이어가고 있다. 생각하는 바를 실천할 기운만 있다면 아쉬울 게 없다.

ⓒ 원희래


A. 잇는 살롱
정착한 지 2년 차 되는 귀촌 선배들이 많다. 그들 덕분에 귀촌과 적응이 수월했고 커뮤니티에 녹아들 수 있었다. <잇는 살롱>은 정착한 청년들이 만든 청세권 협동조합에서 진행하는 커뮤니티형 원데이 클래스다. 지역민을 대상으로 와인, 핸드드립, 반려견 간식 만들기, 요가, 파쿠르 등 한 번쯤 취미생활로 들어보고 싶었던 다양한 수업들이 포진해 있다.


B. 도서관 – 작가와의 만남
개인의 노력만 있는 게 아니다. 청년 공동체 및 지역 커뮤니티 활성화를 위해 소모임이나 동아리 구성을 장려하고 군 차원에서 활동비를 지원하기도 한다. 탁구, 꽃꽂이, 농구 등 다양한 모임이 진행되고 있다. 도서관에서는 ‘작가와의 만남’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정유정 작가, 채사장, 유현준 건축사, 김겨울 북튜버 등 유명인사들이 지역 도서관을 찾아 강연을 열어 많이 이들이 반겼다.

전입 신고를 하기 전, 종이 위에 ‘나’ 그리고 ‘삶’을 적어 놓고 깊이 고민했었다. 의미 없는 낙서를 이어가다 보니 삶이 있고 내가 있고 일도 있었다. 그런데 왜 다 따로 가지를 뻗어 나가고 있는 건지 문득 의문이 들었다. 내 삶이고, 내 일이고, 일하다가 놀기도 하는 건데 왜 교집합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걸까? 청년 귀촌은 주체적인 삶과 동의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 일궈놓은 곳에서 시작하지 않고 내가 주도적으로 행동하며 개척해 나갈 수 있는 곳, 난생처음 도전해 본 일들이 어찌나 많은지 지난 30년을 새삼스럽게 돌아보게 된다. 단순히 졸업 후 취직해서 월급 받으며 안정적인 삶을 영유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내가 곧 일이고 삶이고 놀이다. 억지로 균형 잡지 않고 적절히 조절할 수 있는 환경을 내가 만들어 갈 수 있다.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주체적인 삶을 살면서 내 안의 균형과 중심을 잡고 있다. 올여름에는 야외 요가 모임을 진행해 볼까 한다. 우리, 거기에서 만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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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ㅣ원희래 
공기업, 외항사, 사기업을 거쳐 지금은 N잡러로 거듭난 귀촌 청년이다. 현재는 의성군 안계면에 거주하며 글을 기고하고 번역 일을 하고 있으며 최근에 요가 스튜디오를 오픈했다.



발행일 2022.0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