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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으로 이직할 때 고려할 것들
그간 일을 하며 스타트업에서 금방 퇴사하게 되는 사람은 어떤 특징이 있는지 관찰해왔습니다. 퇴사를 결정지을 만큼 중요한 포인트들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1. 누가 먼저 알려주는 사람이 없어도 정보를 먼저 파악하거나 일을 스스로 추진시킬 수 있는가?
큰 기업은 입사하자마자 신입사원 연수도 시켜주고 사수가 붙어서 OJT(On the Job Training) 형태로 실무를 알려주는 경우가 많지만, 스타트업은 그렇지 못합니다. 실제로 인사 담당자로서 온보딩 적응 과정을 만들어보았는데 회사나 제품 정보가 워낙 빠르고 자주 바뀌어서 이를 제대로 정리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워낙 방향성이 빠르게 바뀌다 보니 의사결정의 히스토리 자체가 많고, 매번 정보를 새롭게 정리하기도 어려워서 온보딩 자료만 7번째 리뉴얼하고 있고요. 이런 환경에서 자기가 직접 정보를 파악하고 구조를 이해하는 일을 굉장히 막막해하는 사람은 쉽게 지칠 수 있습니다.
▷ 누가 잘 적응하는가?
스스로 먼저 회사 자료들을 찾아보고, 다른 사람에게 궁금한 게 있으면 부담되더라도 먼저 물어보는 사람, 필요하다면 동료가 바빠 보이더라도 10분이든 30분이든 미팅을 요청해서 필요한 정보를 스스로 알아내는 사람들이 최고의 성과를 냅니다.
이는 처음 입사했을 때만 적용되는 게 아니라 회사를 다니는 동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워낙 빠르게 결정되는 중요 사안이 많아서 항상 필요한 정보를 스스로 알아내는 능동적인 사람들이 잘 적응합니다. 특히 상대방이 나보다 나이나 연차가 많든, 직급이 높든 상관없이 빠르게 정보를 파악하고 업무를 요청하는 게 필요합니다. 심지어 대표에게도 부담 느끼지 않고 바로 무언가 물어보거나, 일을 요청할 수 있는 사람들이 좋은 퍼포먼스를 냅니다. 마인드 셋의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내 역할이 아닌 일을 맡게 돼도 괜찮은가?
개발자가 디자인도 하거나, 디자이너가 영업도 하는 식의 상황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전까지 내가 해오던 업무, 내가 할 줄 아는 업무만 맡게 될 거라고 기대했던 사람은 크게 당황할 것입니다. 스타트업은 빠르게 성장하기 때문에 어떤 업무를 맡을 담당자가 필요하더라도 아직 뽑지 못했거나, 당장은 구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누군가는 해야 하는데 내부에 담당자가 없는 일이 많으므로, 기존 인원이 맡게 되는 겁니다.
이럴 때 “이것은 제가 할 일이 아닌데요, OO 담당자를 뽑아 주세요”라고만 말하는 사람은 오래 다니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회사도 담당자를 뽑아야 되는 걸 알고 있지만 못하고 있는 건데 불평만 하고 있으면 문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불평했던 사람도 결국에는 그 일을 맡게 될 거고 그러다 보니 회사에 대한 불만이 쌓이게 됩니다. 회사도 그 사람이 회사 상황에서 작은 역할만 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거고요.
▷ 누가 잘 적응하는가?
학창 시절이든 동아리나 직장에서든 무언가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있을 때 속으로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거나, 문제를 이야기할 뿐 해결해야 하는 건 다른 사람의 몫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스타트업에는 좀 더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에 참여하려는 사람들이 많은 편입니다.
넷플릭스에서는 “Never say, That’s not my job”을 강조하는데 이와 비슷한 개념입니다. “이거는 경영진이 할 일, 이거는 OO 팀이 해결할 일”이라며 문제 제기로만 그치는 사람보다는, 팀에 문제가 있을 때 자기 일이 아님에도 해결책까지 같이 찾아보고, 자신도 시간과 에너지를 투입해서 개선책을 시도해 보는 사람이 팀에서 최고의 동료로 인정받게 됩니다.
스타트업일수록 자율적인 분위기나 쿨하고 힙해보인다는 환상을 가진 사람이 많은데요. 하지만 오히려 더 큰 책임감과 희생 정신, 팀워크가 필요한 게 스타트업인 것 같습니다. 자기 일이 아닌데도 누군가 해야 하는 것을 알기 때문에 동료들 대신해서 먼저 그 역할을 감수하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개인보다 팀을 먼저 생각하지 않으면 쉽게 하기 힘든 일입니다.
스타트업에서 미션과 비전에 공감하고 얼라인(Align)이 잘 되는 사람을 찾는 이유도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그냥 아무 회사든 조건이 좋아서 다니는 사람은 원래 자기 역할도 아닌데 여러 역할을 떠맡아야 하는 상황을 이해하기 힘들지도 모르니까요.
3. 자신의 직업윤리와 일치하는가?
대기업에서 스타트업으로 이직하는 많은 분이 비슷하게 하는 말이 있습니다. 10년 뒤에도 저 상사와 같은 모습이 되고 싶지 않다는 말이죠. 이때 그들이 말하는 상사라 함은 실력 있고 열심히 하는 분들이 아니라 큰 조직에 여럿 있는 무임승차자라든지, 관성에 이끌려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절차와 관습에 익숙해져서 새로운 것을 익히지도, 도전하지도 않는 듯한 모습에 실망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정답은 없겠으나 스타트업에 오는 분들이 직업을 대하는 태도의 공통점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익숙해지는 것을 정체된다고 생각하고, 항상 새로운 것을 익히고 도전하고 성장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단순히 직장을 돈 버는 곳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실력을 발휘하고 성장하는 곳으로 생각합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맡은 업무를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는 책임감 수준도 다릅니다.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스스로 높은 기준을 가지고 결과물에 만족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더 잘하기 위해 스트레스 받고 고생을 사서 하는 사람들이 스타트업에 옵니다. 스타트업은 내가 많은 권한을 갖고, 내가 작업한 결과물이 바로 사업에 반영돼 고객에게 전달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위와 같이 스스로의 기준이 높은 사람들이 잘 적응합니다.
이들은 단순히 직업을 수단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직업관이 개인 차원에서 머물러있는 사람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회사를 다니지만, 보다 상위 수준까지 고민하는 사람은 직업에 스스로 큰 의미를 부여합니다. 단지 돈을 벌기 위함이 아니라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커리어를 발전시키기 위해 일을 하거나, 더 나아가서 나 혼자의 목표가 아니라 동료들과 팀의 목표에 공감해 함께 임팩트를 만들어 내기 위해 일을 하거나, 더 나아가서 사회적으로 보람 있고 가치 있는 일을 하기 위해 직장을 다닙니다. 개인에서 조직, 사회 차원으로 나아갈수록 직업과 직장을 소중하게 여기고 스스로 높은 기준으로 일하며, 스트레스가 높은 상황을 잘 버텨냅니다.
만약 본인이 그렇지 않다면 스타트업 환경에서 오래 버티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회사도 손해고 본인도 손해인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