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한 달 살기’를 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저 역시 그 정도의 기간은 아니더라도 도시에서의 빠듯한 시간들과 묵은 피로를 씻어내고자 2박 3일 정도의 짧은 제주도 여행을 다녀오곤 했었습니다. ‘여기서는 이렇게 아침 일찍 일어나지는데, 돌아가면 나도 아침형 인간이 되겠네!’라며 꿈같은 개과천선을 기대하기도 했지만, 다음 해가 되면 다시 제주로의 전지훈련을 계획하고 있는 나란 사람이란 대체…!
ⓒ 호두랩스
잠시 쉬었다 오세요
지난 2020년 말, 제주도 내 스타트업 창업 지원을 위한 단체 ‘스타트업베이’를 통해 코워킹 스페이스를 제공받게 되면서, 호두랩스가 워케이션 제도를 도입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해외는 아니지만 무려 제주도라니! 코로나 시대의 정점에 있던 시기라 해외여행만큼이나 설렜습니다.
어디를 가볼까? 무엇을 먹을까? 어떻게 힐링할까?
우리 호두래퍼들도 모두 그런 설렘을 가지길 원했습니다. 조금은 여유롭게 일하고, 다녀온 후에는 조금 더 열정을 가지고 일할 수 있길 말이죠.
나만 놀러 가라고?
호두랩스에서는 코로나 이전부터 리모트 워크를 적극 추진하고 운영해 왔습니다. 나름 재택근무에 대한 노하우가 있었다고 자부했기에, 워케이션 기획에 대한 낯섦과 우려는 크게 느끼지 않았습니다.
워케이션을 진행하는 데 있어 가장 고민했던 부분은 ‘업무 효율성’이었습니다. 재택근무 운영 시, 슬랙을 통해 재택근무 시작과 종료를 노티했고, 구글 캘린더에 업무 내용을 작성하도록 안내했습니다. 덕분에 호두래퍼는 정해진 시간 안에 자신이 세운 업무 목표를 추진할 수 있었고, 부서장은 업무 수행 능력까지 평가할 수 있었습니다.
최초 도입 시에는 메일로 참여 신청을 받았습니다. ‘제주도로 가서 이런 업무를 할 것이다’ 개인의 업무 목표를 일정량 세우도록 했죠(우리 호두래퍼는 각자 맡은 바가 확실하고, 각자의 의견을 존중하니까요). 헤드든 리더든 프로든 자신만의 당위성이 있다면 제주로 보내줬습니다. 당연히 너도나도 가고 싶어 했습니다. 일주일 만에 10건 이상의 신청이 접수됐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리더급 이상은 아무도 지원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었습니다.
곧바로 불만이 일더라고요. 부서장에게는 업무상의 신뢰와 집중도에 대한 의구심, 프로에게는 차별로 인한 심리적 박탈감을 느끼게 했다는 겁니다.
결국 신청자는 매월 줄어 들었고, 피플&컬처 팀에서는 자체 검토를 통해 인원을 추려 담당 리더나 헤드에게 조르는 상황까지 발생했죠. 애초에 워케이션은 ‘워라밸’의 의미를 내포하는 것인데, 우리 회사와 같은 성장에 온 역량을 쏟아붓는 스타트업에게 있어 워라밸을 추구하는 것은, 특히나 스타트업의 열정 앞에서는 ‘부자 놀이’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인식을 지우기란 쉽지 않았던 겁니다.
일과 휴식이 완벽히 구분된 삶이란 없습니다.맡은 업무에 익숙해지면 그만큼 휴식을 할 수 있는 여유를 만들 수 있고, 그런 여유 대신에 자신의 성장을 위해 일에 더욱 몰입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과연 그것을 단순히 ‘일’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요? 사람의 행동을 구분한다는 것은 객관적일 수 없습니다. 결국 기분이나 감정을 통해 순간순간으로 나누어집니다. 아무리 Vacation(휴가)이 목적이라 해도, 업무 수행이라는 과업이 뒤따랐기 때문에 재택근무와는 다르게 부정적인 시각이 컸던 것이죠.
ⓒ 호두랩스
다음엔 일을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워케이션 근무자들에게 몇 가지 요청을 하게 됩니다.
출근은 8시 30분(제공하는 숙소가 도보로 5분 거리) 퇴근은 오후 5시 30분(야근 지양) 사무실 출퇴근만 필수로 체크하되 사무실에서 종일 머무르지 말자 매일 1개씩 인스타 피드 업로드 그리고 좋은 장소가 있으면 슬랙으로 추천하기
이처럼 P&C팀이 직접 관리자가 돼 직속 부서장의 부담을 덜어주고, 워케이션 근무자에게는 업무 집중도를 높이도록 했습니다. 넉넉한 일비 지급과 화상 장비 제공 등 예산 안에서의 지원도 아끼지 않았습니다.
호두랩스의 제주오피스는 서귀포 올레시장 주변에 위치해 있습니다. 그래서 아침에는 항상 사람들로 붐비고, 점심시간에 갈 수 있는 제주 맛집이 즐비합니다.
제주에 가서도 또 다른 장소로의 원격근무를 하도록 강요합니다. 도보 10분 내 자구리공원과 바다가 보이는 카페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버스를 타고 몇 정거장만 가도 정방폭포 등 수려한 자연경관을 접할 수 있기 때문에, 금요일 오후에는 반반차를 적극 권장했습니다.
또한 근무기간을 최대 4주로 제한했습니다. 사람은 반복을 질려 하고 새로움에 집중하기에, 완전히 적응하지 못하도록 해, (재택근무처럼) 업무 만족도는 높이면서 제주에 대한 신비주의는 남기도록 했습니다. 워케이션 마지막 날에 소감문을 받으면, 다음에는 더욱 ‘일잘러’가 될 수 있으니 또 보내달라는 의견이 많았답니다.
ⓒ 호두랩스
일하러 가는데 눈치는 왜 봅니까?
답답한 출퇴근길을 경험해야만 일이 잘되고, 자연을 만끽한다고 농땡이 피운다며 당당하게 따질 동료는 아마도 없을 겁니다. 제주에 본사를 둔 카카오뿐만 아니라, 네이버도 원격근무를 포함한 유연근무제를 기획하는 등 대기업 또한 거점 오피스 제도 등 다양한 근무 형태를 구성해 인재 채용과 성장의 다양한 기회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코로나의 영향으로 워케이션에 대한 인식 전환과 그 필요성이 대두되고, 워케이션을 시도 및 정착시키는 스타트업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근무시간이 줄면서 효율적이고 집중할 수 있는 근무 환경이 절실해졌고, 경직된 근로 문화를 변화시키려는 MZ 세대의 당찬 움직임을 무시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저희 또한 우연찮은 기회로 그 대세에 발맞춰 변화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위해 제주로 오늘도 출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