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티클은 <세상의 모든 개발자> 시리즈의 2화입니다. 빠른 실패는 성공의 지름길
순간의 선택이 가져올 나비효과를 걱정하다 기회를 놓쳐본 적 있는가? 만일이라는 늪에 갇혀 아쉬워할 바에야 일단 해보고 깔끔하게 포기하는 게 나을 지도 모른다. 빠른 실패가 성공을 위한 선택의 지름길이 될 수 있기에. 
ⓒ 게티이미지 PRO
Q. 민족사관고등학교, 버클리 대학교 그리고 넷플릭스까지. 엄청난 경쟁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오셨을 거 같아요. 고등학교 시절 영민 님께서 세우신 커리어 계획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사실 별 계획은 없었어요.(웃음) 전공 역시 처음부터 컴퓨터 공학과를 염두에 둔 게 아니었어요. 원래는 역사에 관심이 많아서 역사학을 전공하려 했죠. 그런데 막상 역사 관련 과목을 수강해 보니 ‘이건 나랑 안 맞네’라는 판단이 서더라고요. 저는 역사 지식을 배우는 게 재미있었는데 역사 전공을 하려면 글을 많이 써야 하는 게 힘들었어요. 한참 고민하다가 완전 이과도 아니고, 그렇다고 문과도 아닌 산업공학과*를 전공으로 선택하게 됐어요. 그런데 산업공학과 선배들을 보니 졸업 후 주로 대기업 물류 쪽이나 컨설팅 쪽으로 가는 거예요. 근데 이것도 저랑은 안 맞는 길 같더라고요. 그래서 컴퓨터 공학과를 복수 전공하게 됐죠.
*과학적 원리와 경영전략을 접목해 산업시스템 전반을 다루는 학문
Q. 졸업 후 선택지가 많았을 거 같아요. 그중 스타트업에서 커리어를 시작하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3학년이 돼서야 컴퓨터 공학과 복수 전공을 시작했기에 과를 살려 취업할 수 있는 선택지가 많지 않았어요. 인턴 경험도 없어 많이 떨어지기도 했고요. 물론 학석사를 5년 만에 취득할 수 있는 연계과정에 합격해 대학원 진학도 가능했었지만 확신이 안 섰어요. 그래서 일단 인턴이라도 해보자고 생각했죠.
한 번은 막학기 수업의 특강으로 들어오신 강사님께 ‘혹시 인턴 안 뽑으시나요?’라고 여쭤본 적 있어요. 관심 있던 데이터 시각화 분야기도 하고 저분의 기업에서 일하면 많은 걸 배울 수 있을 거 같아 여쭤본 건데 회사에 한 번 알아보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렇게 기회가 생겨 스타트업에서 인턴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인턴 생활을 하면서도 커리어 방향성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는데요. 회사 분들 모두 ‘석박사 해봤자 쓸데없어. 그냥 하지 마’라고 반응하시더라고요. 저도 공부보다 지금 하는 일을 계속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석사 과정은 포기했어요.
Q. 그래도 1년만 더 하면 석사 졸업장이 나오는 건데 아쉬운 마음도 있으셨을 거 같아요.
딱히 아깝다는 생각을 못 해봤는데 부모님께서는 아쉬워하시더라고요.(웃음) 물론 버클리 대학교가 좋은 학교니까 대학원 졸업까지 했다면 좋았겠죠. 그러나 먼 미래까지 고민하면서 결정하기보다 지금 이 순간 일하는 게 재미있으니 계속해야겠다고 결정했고 지금도 후회는 없어요.

ⓒ 김영민
Q. 첫 회사 입사 후 3년 만에 개발 팀장이 되셨어요. 빠르게 승진할 수 있었던 비법이 있다면요?
회사에 들어와 유능한 분과 일할 기회가 있었어요. 그분이 A에 대해서 너무 탁월하다 보니 제가 A 부분을 키운다 해도 절대 그분을 뛰어넘을 수 없겠다고 생각했죠. 대신 그분은 팀을 관리하고 리딩하는 것에는 신경을 덜 쓰시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팀 프로세스 개선에 신경을 더 쓰고 다른 팀과 협업도 더 많이 하면서 저만의 강점을 만들어 나갔어요. 이 과정에서 제가 생각보다 팀장의 결과 맞는 부분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됐고요.
그리고 스타트업의 경우 근속연수가 짧잖아요. 오래 근무하다 보니 회사 기술과 제품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져 상대적으로 큰 임팩트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됐어요. 그래서 연차에 비해 더 많은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거 같아요.
Q. 10년 차 개발자로서 주니어, 시니어, 매니저까지 모두 경험하셨어요. 각각 어떤 차이가 있던가요?
주니어는 팀에 덧셈이 되는 존재이고, 시니어는 팀에 곱하기가 될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해요. 상위 레벨이라면 조직 전체에 곱하기를, 그다음은 개발자 산업 전반에 곱하기를 주겠죠. 각 레벨이 올라갈수록 조금 더 먼발치에서 전략적인 사고를 해야 해요. 주니어가 당장 이번 주, 다음 주만 생각한다면 부장급은 다음 분기를, 임원급은 몇 년 단위를 앞서서 생각해야 하는 것이죠.
물론 직급과 상관없이 개발자라면 개발을 잘 해야 해요. 그러나 시니어나 매니저가 되면 개발은 물론이고 팀에 어떤 게 필요한지 파악하고 그걸 주도적으로 해결하면서 팀을 발전시킬 책임이 생겨요. 필요하다면 팀원이나 다른 팀 혹은 상위 레벨을 설득해야 하고요. 특히 매니저가 되면 팀원 채용과 연봉에도 어느 정도 관여를 하게 되는데요. 매니저에게는 이게 단순히 ‘일’일 수가 있지만 이 과정에서 팀원의 기대치와 어긋나게 되면 문제가 생길 수도 있고, 그렇다고 모두 맞춰주기에는 회사의 예산이 한정되어 있으니 회사와 팀원 사이에서 세밀하게 조율해야 하죠.

ⓒ 넷플릭스 그가 넷플릭스로 이직한 이유
업계 최고의 인재만을 채용한다는 글로벌 기업 넷플릭스. 김영민 엔지니어는 어떻게, 그리고 왜 이직했을까. 넷플릭스에 대한 여러 궁금증을 함께 풀어봤다.
Q. 이직을 준비할 때 어떤 기준을 가지고 회사를 선택하시나요? 남들에게 말했을 때 부끄럽지 않을 회사를 선택하려 합니다.
여기서 부끄럽다는 건 외적으로 보이는 기업의 사회적인 위치가 아니라 사회에 악영향을 끼치는 기업이에요. 선한 영향력까지는 어렵다 해도 최소한 해를 끼치는 기업은 피하려고 해요. 또한, 그 회사에서 어떤 걸 배우고 얻어 갈 수 있을지 생각해요.
예를 들어 넷플릭스에 합격했을 때 자율주행차를 연구하는 회사, 메타(구 페이스북)에도 동시에 합격했기에 어떤 기업을 갈지 고민을 정말 많이 했어요. 그런데 넷플릭스의 경우 『규칙 없음』이라는 책에도 나와있듯 다른 기업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조직문화로 유명하잖아요. 넷플릭스의 직급 관계없이 솔직하게 피드백 하는 문화를 경험하고, 배워보고 싶었어요. 그리고 넷플릭스는 유능한 사람들만 계속해서 일할 수 있는 조직이라고 하니, 여기서 몇 년 다니다가 자발적으로 나갈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업계에서 유능한 사람일 테니까 다니면서 저의 능력을 테스트해 보고 싶었죠.(웃음) Q. 넷플릭스는 업계 최고의 사람에게 최고의 대우를 하며 채용한다고 하죠. 넷플릭스에 합류할 수 있었던 비법이 궁금합니다. 다른 기업은 보통 기술 면접과 컬처핏 면접을 2시간 정도씩 비슷한 비율로 봤었어요. 그런데 넷플릭스는 기술 면접이 2시간이라면 컬처핏 면접은 4시간 정도 보더라고요. 그래서 넷플릭스에서 나온 유명한 책들을 4~5번 읽으며 조직문화에 동화되려고 노력을 했어요. 넷플릭스에서 하는 팟캐스트를 들으며 넷플릭스의 마인드 세팅을 하려 했고요. 그게 실제로 큰 도움이 됐던 거 같네요. 면접을 보며 느낀 건 넷플릭스는 피드백 문화에 쉽게 적응할 수 있는, 열린 사고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거예요. 그리고 일상보다 회사를 우선으로 생각할 수 있는지도 확인하려 했어요. 사실 일상도 중요하지만 면접이기에 무조건 그렇다고 대답했던 기억이 나네요.(일동 웃음) Q. 팟캐스트와 책에서 말하는 넷플릭스 조직문화가 실제로도 잘 정착되어 있던가요?직급과 연차에 상관없이 피드백 하는 게 정말 자연스럽더라고요.
공감을 하면서 잘 들어주기도 하고요. 한 번은 매니저와 시니어 엔지니어가 함께 한 미팅에서 한 분이 매니저만 리더라고 부른 적이 있어요. 그런데 저는 매니저든 엔지니어든 직책에 상관없이 시니어라면 자기 업무에서 리더가 돼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매니저한테만 리더라고 부르면 시니어 엔지니어는 리더가 아니라는 생각을 심어줄 것 같았죠. 그래서 그분께 매니저를 리더라 부르지 말고 매니저라고 부르면 좋겠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그분이 ‘알겠다. 앞으로는 신경 쓰도록 하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사실 말하면서도 약간 꼬투리 잡는다고 생각하실 수 있겠다고 느꼈는데, 바로 수긍해 주시더라고요. 되게 신선했죠.그런데 이렇게 피드백을 한다고 해도 상대가 받아들이는 건 별개의 문제예요. 피드백을 받을 경우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되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따르고 변화해야 하는 건 아닌 거죠. 그건 순전히 그 사람의 몫이니까요. 본인의 생각과 느낌을 전달하는 자유가 있듯, 듣는 사람 역시 변화에 자유가 있어요.
그래서 피드백 줄 때도 부담이 없고요. 그 외에는 넷플릭스가 콘텐츠를 생산하는 회사다 보니 더 중요하기도 하겠지만, 다양성을 인정하고 노력하는 점이 인상 깊었어요. 성소수자나 여성과 관련한 토론도 많이 하고 이슈가 있을 땐 리더들이 적극적으로 공감해 주고요. 
'난 가고 싶은 곳에 가기 위해 뛰었는데 그게 삶의 기회가 될 줄은 몰랐어요' ⓒ 영화 <포레스트 검프>
현재에 집중하면 운은 저절로 따라온다
아무리 좋은 기회도 잡지 않으면 쓸모가 없듯 기회를 볼 줄 아는 눈과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실력은 필수다. ‘운이 정말 좋았다’고 말하는 김영민 엔지니어는 거창한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그저 매일을 충실히, 실력을 쌓았을 뿐.
Q. 바쁘신 와중에도 사회인 멘토단 ‘점프’를 통해 4년간 교육 봉사활동을 이어오고 있어요.
항상 운이 좋았다는 생각을 해요. 고등학교도, 대학교도, 회사도 모두 운이 좋았기에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거든요. 사회가 토대를 잘 마련해 줬으니 제가 그런 운도 얻을 수 있었다고 생각해서 저도 사회에 기여하고 싶었던 부분이 있었어요. 그런데 아무래도 한국 대학생분들을 멘토링하는 거라 미국에 있는 저랑은 상황이 많이 달라서 도움이 되는 건지에 대해 의문이 가끔 들기도 해요. 그래도 요즘은 내가 누군가를 바꾸려 한다는 게 좀 교만이 아닌가 싶기도 해서 편하게 생각하려고 합니다. 그냥 진로에는 이런 길도 있다는 걸 알려준다는 마음가짐으로 진로 갈등을 하는 대학생분들, 혹은 컴퓨터 공학과로 전과하시려는 분들께 제가 가능한 선에서 도움을 드리고 있어요.
Q. 최고의 집단에 속하다 보면 평가와 경쟁의 부담감이 클 거 같아요. 이런 압박감 속에서도 묵묵히 할 일을 해내는 영민 님만의 방법이 있다면요?
약간 강박일 수 있는데 체크리스트를 매일 작성해요. 스트레칭하기 같은 작은 습관들까지 모두 기록해 두고 체크합니다. 일을 시작하면서부터 이런 습관을 들였으니 거의 10년 정도 작성해 온 건데요. 실제로 마인드 컨트롤할 때에 도움이 많이 됐어요.
그리고 회사 동료들과 친밀한 사이가 되려 노력합니다. 물론, 많은 분이 회사 사람과 친밀해지고 싶지 않아 하실 수 있겠지만 동료와 신뢰를 두텁게 쌓는 게 좋아요.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서로 관점이 다르니까 갈등이 생길 수 있는데 그걸 해결할 때 도움도 되거든요. 관계성이 전혀 없는 사람보다는 어느 정도 말도 트고 관계를 쌓아둔 사람이라면 의견 차이로 갈등 상황이 발생했을 때 ‘이 사람이 나를 싫어해서 저러는 게 아니라 서로 올바른 방향으로 일하려 하다 갈등이 생긴, 그냥 생각의 차이구나’라는 걸 좀 더 느낄 수 있겠죠.
미팅에서만 만나면 서로 직책 같은 겉모습 말고는 알지 못하니까 편견이 쌓이잖아요. 삶의 과정을 모르니 ‘저 사람은 저럴 거야!’라고 쉽게 생각하게 되는데, 30분 혹은 한 시간 정도만이라도 개인적인 교감을 나누면 그 사람을 이해하는 폭도 넓어지게 되고 결국 커뮤니케이션할 때 도움도 되는 거 같아요.

ⓒ 김영민 Q. 영민 님의 삶에서 일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사실 아직도 방향을 정확히 못 잡은 것 같아요.(웃음) 물론 처음에는 일로 성공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한 팀을 매니징해 보니 여러 팀 매니징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그러다 보니 더 높은 직급이 되고 싶더라고요. 사람이란 게 참 간사하게도 나보다 더 잘 사는 사람들만 보이잖아요. ‘저 사람은 돈을 저렇게 많이 버는구나’ ‘이 사람은 나보다 어리지만 나랑 똑같은 일을 하네’라는 마음이 들기도 하니까요. 예전엔 이런 부러운 마음을 버리는 게 쉽지 않았어요. 그런데 최근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며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다행스럽게도 팬데믹 영향을 받지 않는 화이트칼라의 직군이었지만 팬데믹 영향으로 어려워진 분들을 주변에서 많이 보게 되면서 커리어 야망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됐어요. 어쩌면 일보다 내가 지금 행복하게 잘 사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든 거죠. 다사다난한 세상에서 아프지 않고 잘 살아남아 있는 것만으로도 대단하고 감사한 일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이제는 일 때문에 더 이상 저를 희생하며 압박하고 싶지 않아요. 제 삶을 사는 데 더 충실하고 싶네요. 내가 선택하지 않은 길을 간 사람들을 부러워한다고 달라질 게 없으니까요. 그분들도 고생한 만큼 보상을 받는 걸 테고요. Q. 만일 대학생으로 돌아가 다시 직업을 선택할 수 있다면, 그래도 개발자를 선택하실 건가요? 다시 돌아가도 개발자를 하지 않을까 싶어요. 고등학교 때 기숙생활을 하며 같이 살았던 룸메이트들이 어렸을 때부터 컴퓨터 공부를 하던 친구들이었어요. 그 친구들과 놀면 매번 공돌이 같은 얘기를 해서 ‘아, 나는 쟤네처럼 컴퓨터는 안 해야지’했는데 지금 제가 개발자를 하고 있네요.(일동 웃음) 생각지 못하게, 정말 운이 좋게 개발자라는 직업을 선택했던 거죠. 지금 모습이 이상적인 모습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현재 모습에 만족은 하고 있습니다. 개발자는 새로운 공부를 계속해야 하기에 힘들 수 있지만, 어쨌든 저는 이게 재밌고 나쁘지 않아요. 때로는 따라갈 수 있을지 걱정될 때도 많은데 소시민적으로 생각하면 개발자는 좋은 직업이라 생각해요. 만일 의사가 됐다고 해도 요새 AI가 진료를 하려고 하잖아요. 결은 좀 다르지만 그런 걱정을 하고 있지 않았을까요? ▶ <세상의 모든 개발자> 시리즈 보러 가기CREDIT
김한나ㅣ원티드 콘텐츠 에디터발행일 2022.0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