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 관리 문화가 성과 창출을 가로막는 이유

성과 관리 문화가 성과 창출을 가로막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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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티클은 <조직의 쓴맛> 시리즈의 5화입니다.


성과 관리의 아이러니 


성과 관리는 기업의 가장 큰 관심사 중 하나다. 성과와 성장은 기업의 생존과 직결된 결과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성과 관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이를 잘하기 위해 많은 시간과 비용을 쏟아붓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여전히 ‘온전한 성과 관리’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이는 단지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비즈니스를 영위하는 거의 모든 회사, 그리고 구성원이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이다. 한 글로벌 컨설팅 회사(Deloitte)의 성과 관리에 대한 인식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인 글로벌 기업의 임원 중 94%가 “현재 자신이 속한 회사의 성과 관리 체계가 실질적인 성과를 창출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여전히 우리에게 익숙한 성과 관리 룰은 요약하자면 경쟁과 그에 따른 엄격한 평가, 차별적 보상이다. 이런 기조 아래 ‘슈퍼스타’를 찾아 파격적으로 보상하고 인정하는 시스템도 이제는 어느 정도 보편화되었다. ‘경쟁, 그리고 차별적 보상’이 일견 잘못된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런데 때때로 우리가 이런 지배적인 시스템에 지치고, 때로는 결과적으로 원하던 ‘실질적 성과’를 얻지 못하는 이유는 무얼까? 최신 과학은 우리가 오랫동안 정설로 받아들였던 ‘조직성과 창출의 메커니즘’이 사실은 잘못된 가정에 기반한 오해에 비롯한 것이라 알려준다.

ⓒ 셔터스톡


멱의 법칙과 조직 성과


많은 기업의 성과 관리 시스템을 한번 들여다보자. 전통적인 성과 주의 시스템의 상대평가는 철저히 ‘정규분포’의 아이디어를 적용한 것이다. 즉 조직 안에서 개인의 성과가 정규분포에 해당한다는 가정하에 S, A, B, C를 나열하고 그에 해당하는 비율만큼 인위적으로 할당해 평가 등급을 내리는 것이 정해진 규칙이었다. 그런데 조직의 성과가 정규분포로 나타난다는 가정은 사실 조직의 현실보다는 실험실의 가정에 가깝다. 왜냐하면 정규분포는 순수한 (상관관계가 없는) ‘무작위’성의 조건을 가진 세계에서 나타나는 분포이기 때문이다. 조직은 순수하게 무작위적이기 힘들다. 기업, 조직은 어떤 질서가 포함된 체계이기 때문에 상관관계가 있고 완전하게 무작위로 분포한다고 생각할 수 없다.

Ernest O’Boyle Jr., Herman Aguinis는 성과 관리에 있어 정규분포에 대한 맹신이 과연 옳은 것인지 검증하기 위해 총 다섯 분야, 633,236명을 대상으로 연구를 수행한 결과, 모든 부문에서 성과에 대한 분포는 정규분포가 아닌, 멱함수 분포를 따름을 발견했다. 이는 기존 우리가 정답으로 생각했던 성과 평가 시스템의 질서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성과의 분포가 ‘멱의 법칙’을 따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멱 법칙(冪法則, power law)은 한 수(數)가 다른 수의 거듭제곱으로 표현되는 두 수의 함수적인 관계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우리가 사는 복잡성 높은 진짜 세계(Real World)가 가진 핵심 특징과 패턴이라고 한다. 중요한 것은 이 관계 자체를 수학적으로 이해하는 것보다 이런 패턴에서 도출해 볼 수 있는 ‘조직 성과’의 특징을 이해하는 것이다. 우리가 알던 기존 (정규분포 인식에 따른) 성과 관리에 대한 관념, 체계에서 우리는 무엇을 다시 생각해야 할까?


1.   소수의 집단이 조직 대부분의 성과를 창출할 수 있다.
멱 법칙에 따르면 한 기업이 창출하는 성과 대부분은 소수의 집단에 의한 것일 수 있다. 정규분포 벨 곡선에 따라 우리는 정교하게 다단계로 성과를 나누지만, 그런 노력은 무의미할 수 있다. 소수가 대부분의 성과를 창출한다는 것은 곧 정교하고 정밀히 계산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알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2.   대부분의 성과를 창출하는 것은 어떤 개인이 아니라 집단적인 상호작용에 의한 것이다.
그런데 1의 시사점에서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중요한 교훈은 ‘대부분의 성과를 만들어내는 소수’라 하는 것에서 그 소수가 온전히 독립적인 개인에 초점을 맞춰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소수의 개인 혹은 집단이 대다수의 성과를 냈더라도 그 과정을 추적해 보면 그 영역을 벗어난 수많은 상호작용과 네트워크가 작동했음을 알 수 있다.

이를 ‘소수의 집단’ 자체로 좁혀도 온전히 한 명의 슈퍼스타가 모든 성과를 단독으로, 독립적으로 창출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기업 환경보다는 상황 통제가 상대적으로 이뤄질 수 있는 팀 스포츠를 떠올려 보자. 괴물 슈퍼스타가 단독이든, 다수든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그 상호작용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경우 그들은 제대로 된 성과를 내지 못했다.

마이클 조던은 감독 필잭슨을 중심으로 조화로운 팀이 갖춰지기 전까지 오랫동안 우승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서로의 상호작용, 관계보다 개개인의 능력에 초점을 맞춰 구축된 전통적인 성과주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온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여전히 우리의 체계는 다분히 신화적인 ‘슈퍼스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슈퍼스타가 무용지물이라는 것이 아니라 언제까지나 시스템이 ‘스타’ 개인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이상 우리는 그 이상의 복잡 다단하며 훨씬 더 대단한 ‘상호작용’과 그에 비롯한 진짜 성과를 놓칠 수 있다. 우리는 ‘슈퍼스타’를 찾아 헤매고 슈퍼스타를 강조하기보다 모두가 지금 각자의 자리, 위치에서 탁월성을 추구하면서도 공동의 성장을 위해 협력하는 태도, 그 태도로 말미암아 생산적으로 상호작용하는 조직 문화, 시스템을 만드는 데 좀 더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3.   대다수 집단이 소수가 창출하는 성과를 넘어설 수도 있다.
때때로 소수의 집단이 창출하는 큰 성과보다 나머지 집단이 창출하는 성과의 합이 더 클 수 있다. 글로벌 IT 매거진 와이어드Wired의 편집장인 크리스 앤더슨Chris Anderson이 제안한 롱테일 법칙Long Tail theory은 80%의 사소한 다수가 20%의 핵심소수보다 뛰어난 가치를 창출한다는 이론으로 '역(逆) 파레토법칙'이라고도 한다.

디지털 사회에서 주요 매출을 차지하는 전략 상품보다 제대로 팔리지 않을 것 같은 나머지 상품들의 판매량의 합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할 수 있다(적어도 무시 못 할 비중을 차지한다)는 가설은 아마존과 애플, 넷플릭스 등의 판매 실적에서 실제 현실로 검증되고 있다. 롱테일 법칙은 긴 꼬리 역시 성과의 ‘전체’ 관점에서는 매우 중요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를 조직관리 영역에 비추면 ‘거대한 성과’를 창출하는 소수의 집단만큼 나머지 대다수의 집단을 잘 육성하고 관리하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할 수 있다. 그런 맥락에서 전통적인 성과 관리가 추구하는 ‘내부 경쟁’ 전략, 소수의 머리와 대다수의 손, 발을 분리해 육성하고 대우하는 전략은 재고가 필요하다.

스타트업 씬에 있다 보면 문득 다시 보게 되는 ‘호칭 문화’가 있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많은 스타트업은 신입 직원에게도 곧바로 ‘매니저’라는 호칭을 부여한다. 실제 누가 왜 그렇게 호칭을 붙이기 시작했는지,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나름대로는 그 호칭이 갖는 함의를 이렇게 해석한다. ‘어떤 역할/책임을 맡는 구성원이든, 실질적 피플 매니징을 하는 리더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최소한 Self-Leadership을 가지고 자신의 포지션에서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조직 구성원 개인에게 주문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조직의 구조와 환경을 만드는 리더, 조직 전반에 요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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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성과주의 방향이란 


멱의 법칙에서 보듯 우리가 모여 일하는 조직, 진짜 현실 세계는 복잡계다. 높은 복잡성을 갖는 세계의 대표적인 특성은 ‘부분의 합이 전체가 아니다’라는 것이다. 복잡계 시스템은 초기 조건이 동일하더라도 시스템 내 요소들 간의 상호작용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나타나기도 한다. 복잡계 시스템에서는 모든 요소가 동적으로 상호작용을 하기 때문에 어떤 공식화, 단순화된 예측이 불가능하다.

복잡계는 일단 수많은 개별 구성 요소나 행위자가 모이면, 대개 그 개별 구성 요소나 행위자의 특성에서는 전체의 특성이 드러나지 않고 그 특성으로부터 쉽게 예측할 수도 없는 집합적 특징이 드러나는 체계다. 예컨대 우리는 단지 세포 집합이라는 차원을 훨씬 넘어서는 존재이며 마찬가지로 우리의 세포는 그것을 구성하는 모든 분자의 집합이라는 차원을 훨씬 넘어선다.

이를 이해하고서 지금 우리의 성과관리 시스템을 다시 한번 돌아보자. 예컨대 평가에서 우리는 기업을 분해해 가치를 뽑아내고 이를 바탕으로 수많은 평가 항목을 추출하고 분절한다. 그리고 세부 항목별로 점수를 매긴다. 이것을 다시 합산하고 계산한다. 이를테면 내가 한 행동은 책임감과 열정과 성실함과 자기주도성과 효과성, 조직 기여도 등에 분산되어 각각의 점수를 받고 그 점수를 산술적으로 계산한 것이 나의 평가 결과가 된다. 나를 개념적으로 잘게 쪼개고 그것을 단순히 합하고 평균 낸 것이 과격 그 기업, 구성원의 성과나 역량을 대표할 수 있는 것일까? 정규분포 곡선에 비례해 구성원을 가능한 정확히 나누고, 그에 각 구성원을 끼워 맞추는 것이 진정한 성과관리가 될 수 있을까? 우리는 분해하고 분석하고 정의하는 데는 익숙하다. 하지만 이를 다시 조직의 맥락과 심리적 환경, 상호작용 메커니즘을 반영해 유기적으로 구성하고 조직의 실질적인 모습을 실체화하는 것에는 여전히 한없이 미숙하다.

조직은 인간의 측정 불가능하고 불확실한 행동과 심리가 결부된 고차원적인 시스템이다. 새로운 성과주의는 바로 이 지점을 매우 진지하게 성찰하고 이에 대한 현실적인 대안을 조금씩 찾아나갈 때 비로소 실현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멱의 법칙을 통해 우리가 조직 성과를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시사점을 포함해 새로운, 좀 더 실질적인 성과 향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성과주의의 방향을 짚어보자.


1. 채찍보다 독려(내적 동기부여)
과거는 ‘도전적인 목표’가 주어지되 이것이 구성원의 입장에서 ‘도전하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기계적으로 강제된 할당이었다. 따라서 개인차원의 통제력과 무관한 경우가 많았다. 새로운 성과 관리 시스템은 성과 목표가 개인과 팀 차원에서 실제 몰입하고 동기부여 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도전적 목표 수립 기회를 부여하는 형태로 재구성되어야 한다. 그래서 개인과 조직에게 자율성과 유능감을 느낄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인간이 서로 간의, 그리고 내적인 상호작용 속에서 가장 동기를 느끼는 것은 자신이 주체적으로 의사 결정하고 행동할 수 있는 자율성, 그리고 자신이 좀 더 나아질 수 있고, 또 전진할 수 있음을 느끼는 유능감을 충족했을 때다. 더불어 그 과정에서 서로 서로가 의미 있게 연결되었다고 느끼는 관계성을 느꼈을 때다. 그간의 기계적인 할당과 채찍질은 이 세 가지 동기의 핵심 요인을 건강하게 자극하지 못한다.


2. 계획보다 가설
과거는 미래를 예측해서 정밀하게 계획하는 것이 곧 전략이었다. 중간에 상황과 환경이 바뀌어도 계획한 대로 하는 것이 미덕이었다. 정해진 계획을 바꾸려면 수많은 복잡한 절차와 저항에 부딪혔다. 즉, 실질적인 ‘성과’를 내는 것보다는 계획대로 하면서 가능한 ‘성과를 낸 것처럼 보이는 것’에 집중했다. 새로운, 포스트 성과주의 시스템은 계획 그 자체보다 빠르게 적응해서 실질적인 성과를 만들어내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따라서 계획은 정밀하지만 경직된 예언이 아니라, 빠른 적응 및 실험을 위한 ‘가설’이 되어야 한다. 가설은 실험을 위한 유연한 예상이며 우리는 이를 기준점 삼아 빠르게 시도하고 배우고 그 근거에 기반해 가설을 빠르게 검증함으로써 좀 더 나은 가설을 수립할 수 있다.


3. 평가보다 회고, 그리고 평판
과거는 정해진 명령과 목표가 정확하다는 전제 아래 목표 달성도 여부가 매우 지배적인 평가의 기준이었다. 더불어 지시와 명령, 계획을 정확하게 잘 수행했는지 수직적 권위 아래에서 말그대로 ‘평가’를 받는 것이 성과관리의 핵심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목표한 바의 달성 여부 자체를 평가하기 이전에 실제 조직의 성과 성장을 위해 목표한 바가 적절한지를 끊임없이 점검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불확실하고 급변하는 상황에서 기준 역시 그 흐름에 맞춰 유연히 조정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실질적인 성장, 성과를 이루기 위해 어떤 시도를 했고 그 과정에서 노력과 조정이 필요한지 ‘배움’을 얻는 것이 성과관리의 핵심으로 부상했다. 일련의 과정은 어떤 대상의 가치를 판단하는 것 자체에 초점이 맞춰진 뜻을 갖는 평가(Evaluation)보다는 ‘회고(Retrospective)’라는 의미에 더 가깝다. 회고는 ‘경험에서 학습하고 다음의 노력을 위해 변화를 꾀하는 과정이자 의식’을 뜻한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조직에서 각각의 구성원에 대한 ‘평가’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과거에는 이 평가가 어떤 수직적인 권위에 의해 일방적으로 이뤄졌다면 지금은 수직 관계를 떠나 함께 일하는 동료 전반의 ‘평판’이 곧 일종의 ‘평가’가 된다. 

사회 변화, 조직 경영의 패러다임 변화로 조직 권위는 수직적인 것에서 ‘수평적인 것’으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새로운 권위의 주체는 다름 아닌 우리 자신, 그리고 우리 모두다. 이것은 다분히 비공식적인, 그러나 매우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운 문화적 변화다. 최근에는 이런 변화를 반영해 ‘투명’성을 명분 삼아 관련 평가를 조직화하고 공식화하는 회사들이 늘어나고 있다. 다만 평판으로서의 평가를 공식화하는 것에는 여전히 많은 시행착오와 부작용이 따른다는 것을 우리가 인지해야 한다. – 즉, 이를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 규정짓기엔 아직 무리가 되는 부분이 많다. – 평판은 많은 경우 건강한 압력을 조직에 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인싸’와 ‘아싸’를 나누고 조직 내 ‘비합리적인’ 마녀사냥과 같은 낳기도 한다. ‘인싸’들은 위계 없이 평등한 분위기에서 자유롭고 편안히 자신을 표현할 수 있지만 무리에 끼지 못한 이들은 (권위적 질서가 명확했던) 과거보다 오히려 조직에서 불이익을 받거나 ‘정상적인 상황’에서도 원치 않는 ‘가면’을 써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평판으로서의 평가는 분명 좋든 싫든 간 권위의 이동에 따라 우리가 감내해야 할 문화가 될 것이다. 때문에 조직은 오히려 그 부작용이나 오용을 세심하게 모니터링해 비공식적 평판이 공식화되는 과정에 ‘집단사고’와 같은 조직적 인지 오류가 발생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오히려 신중히 검토하고, 조직 내 이해관계자들과 전략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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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명령보다 코칭
과거는 ‘명령’과 ‘명령’에 따른 복종이 성과관리 시스템을 구동하는 동력이었다. 명령을 내리고 계획을 세우는 사람은 조직의 선택받은 중앙 수뇌부고, 명령에 복종하는 사람은 생각하고 계획하는 능력은 필요없이 수뇌부의 의사결정에 신속히 복종하고 따르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넌 생각하지 마, 그냥 시키는 대로 해’라는 말은 조직에서 여전히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말이다. 명령과 복종의 질서 체계에서 리더는 심판관, 명령권자의 역할을 담당했다. 그러나 불확실성의 시대에서 수뇌부와 복종하는 그룹, ‘머리’와 ‘팔, 다리’의 분리는 더 이상 작동하기 힘든 모델이 되었다. 조직은 이제 평등한 동료가 각자의 영역에서 탁월성과 협력을 추구하며 수평적인 의견 교환을 통해 ‘가장 나은 대안’을 찾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

물론 조직에서 임명된 ‘리더십’이 최종적인 의사결정을 하는 것에는 여전히 변함이 없다. 다만, 그 의사결정의 전에 ‘가장 나은 대안’을 이끌어 내는 역할, 또 의사결정 시 구성원의 행동을 이끌어 내는 역할, 그리고 각각의 구성원이 자신의 분야에서 탁월성을 추구할 수 있도록 성장을 돕는 역할로 그 주된 역할과 책임이 변하고 있다. 과거의 성과 평가 역시 ‘평가’ 자체가 아니라 우리 행동에 대한 배움을 이끌어 내는 ‘회고’로 성과관리의 축이 이동하고 있다. 리더, 나아가 조직 구성원이 함양해야 할 필수 역량은 이제 ‘명령’과 ‘복종’ 보다 ‘코칭’, ‘퍼실리테이팅’, ‘커뮤니케이션’이다.


5. 관습보다 근거
그간 성과주의의 핵심 시스템 중 하나로 많은 조직에 적용되어 온 ‘스택 랭킹(Stack Ranking)’, ‘랭크 앤드 양크(Rank and Yank)’ 등으로 불리는 상대평가 시스템은 매년 직원들을 평가해 구성원의 성과를 강제 서열화하고 이에 따른 차별적 인사를 한다는 골조를 가지고 있다. 여기에는 구성원의 성과를 정밀하게 측정하고 비교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프레데릭 테일러식 합리주의에 경제학의 파레토 법칙, 수학의 정규분포 아이디어가 덧입혀져 있다. 겉으로 보기에 상당히 ‘과학적’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일련의 접근 방식은 ‘사실상 특정 시대와 지역에서 활동했던 비즈니스 리더(GE의 잭 웰치, 마이크로소프트의 스티브 발머 등)의 성공담에 의존’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과학적 관리’ 기법이라는 당대의 표현이 무색하게 지금의 성과관리 시스템은 단지 ‘과학적인 것처럼’ 보이는 구전된 관습과 관행에 가깝다.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든 작동하지 않든, 그것이 당대 ‘권위자’의 성공담이자 ‘정답’이기 때문에 우리도 해야 한다는 관습과 관행에 의한 관리는 이제 한계에 봉착했다. 그보다 새로운 철학을 추구하되 가설과 시도, 관찰과 회고, 개선에 따라 우리 조직의 맥락에 맞는 성과관리 시스템을 끊임없이 조율하는 과학적인 접근 태도와 문화가 조직운영에도 매우 필요한 시기다.


6. 경쟁(개인)보다 협력(관계)
과거의 성과 관리 시스템은 조직 간, 그리고 조직 내부의 동료 간의 경쟁을 부추기는 방향으로 설계되어 있었다. 그리고 성과를 발생시키는 ‘개인’에 초점을 맞춘 구조였다. 그러나 새로운 패러다임은 ‘조직은 복잡계’라는 과학적 근거에 기반해 개개인 보다 구성원 간의 상호작용, 즉 관계에 초점을 맞춘다. 관계에 초점을 맞춘다는 것은 더 이상 성과가 한 개인의 전유물이 아니라 구성원의 협력에 의한 것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여성 기업가 마가렛 헤퍼넌(Margaret Heffernan)은 윌리엄 뮤어의 ‘슈퍼닭’ 비유를 통해 현대 기업 경영, 사회의 슈퍼스타, 특정 개인의 성과에 초점을 맞추는 관점은 현실에서 실질적인 성과를 내는 데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생산성이 높은 닭은 그 자신의 생산성을 유지하기 위해 다른 닭의 생산성을 억제한다. 이는 인간 사회도 마찬가지다. 20세기를 지배한 생산성의 핵심 키워드는 ‘경쟁’이었지만, 이는 적어도 강력한 불확실성 시대에서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핵심 아이디어는 아니라고 단언한다. 1990년대 미국 프로농구(NBA) 붐과 이를 강력히 이끌었던 당대 최고의 팀 ‘시카고 불스’를 다룬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더 라스트 댄스The Last Dance』는 슈퍼스타 ‘마이클 조던’을 집중 조명하지만 우리는 전체 내용을 감상하면서 역설적으로 ‘슈퍼스타’만으로 조직의 최고 성과를 이룰 수 없음을 여실히 실감하게 된다. 우리는 여전히 마이클 조던도, 르브론 제임스와 같은 매력적이고 초인적인 슈퍼스타에 열광하지만 분명한 진실은 지금까지 그 어떤 농구 슈퍼스타도 진정한 상호작용, 협력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는 환경에선 제대로 승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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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ㅣ상효이재
필자는 기업과 경영 컨설팅 회사에서 조직인사, 기업 위험/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퍼블릭 어페어즈(Public Affairs) 전략 영역을 두루 경험했습니다. 포스트 테일러리즘 철학 기반의 조직, 문화, 전략, 변화관리에 관심을 두고 조직과 개인의 실질적인 성장과 통합을 돕고 있습니다. 인공지능 스타트업과 핀테크 스타트업의 HR을 리드했고 현재는 공유 주거 스타트업 MGRV의 피플 그룹을 이끌고 있습니다. 저서로 ‘네이키드 애자일(미래의 창, 장재웅 공저)’이 있습니다. (https://brunch.co.kr/@workplays)



발행일 2022.07.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