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R, CEO의 흔들리는 멘탈을 잡아라!

HR, CEO의 흔들리는 멘탈을 잡아라!

일자

상시
유형
아티클
태그
이 아티클은 <스타트업에서 일 잘하는 HR 되기> 시리즈의 4화입니다. 


초기 스타트업은 HR 담당자가 없는 경우가 많다. 보통 대표가 직접 HR 업무를 맡거나 기존 인원 중에 누군가가 HR 역할을 임시로 떠맡는다. 그러다가 조직 규모가 커지면 기존 인원이 아예 역할을 바꿔 HR 담당으로 전환하거나, 새롭게 HR 전문가를 채용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스타트업에서 HR 업무를 시작하는 담당자는 CEO 혹은 초기 멤버가 사수인 셈이고, 아무 체계도 없는 상황에서 회사의 니즈를 만족시키는 무언가를 만들어 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HR 담당자가 생겼다는 건 회사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단계라는 뜻이고, 기업이 빠르게 성장하면 항상 조직에 수없이 많은 ‘문제’가 산적해 있기 때문에 HR 난이도는 더더욱 높다. 단순히 직원 수가 늘어나는 것만으로도 팀 체계도 개편해야 하고, 업무 프로세스나 방식도 바꿔야 하고, 기존 인원과 신규 입사 인원과의 Fit도 맞춰야 하는 등 여러 해결 과제가 있을 것이다.

HR 담당자의 가장 가까운 파트너는 CEO다. 이러한 문제들은 HR 담당자 혼자서 해결할 수가 없고 회사 경영에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므로 CEO와 함께 해결해야 한다. 그런데 CEO는 보통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가?

ⓒ 게티이미지


스타트업 CEO가 겪는 상황


스타트업에 종사하는 주변 CEO나 HR 담당자를 만나 보면 비슷한 고충을 털어 놓는다. 내가 경험한 CEO들은 대체로 이런 경향을 보이는 것 같다.

  • 모든 사람의 업무 현황이나 R&R을 파악하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에, 사람들이 제대로 일하고 있는지, 잘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어서 점점 더 답답해하고 조직 경영에 대한 불신과 불안이 커진다.
  • CEO도 구성원으로부터 스트레스를 받는다. 때문에 이러한 고민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으로서 HR 담당자에게 심적으로 의지할 가능성이 높다.
  • CEO가 잘하고 싶은데 시간이 없어서 못하거나, 잘 몰라서 못하던 HR 업무를 전담할 담당자에게 위임하게 되므로 무의식적으로 큰 기대와 압박을 동시에 준다.

성장하는 스타트업은 언제나 리소스가 부족하고 바쁘기 때문에 CEO가 1분 단위로 일정을 관리하며 살아간다. 생존과 성장, 더 큰 성장 사이에서 아침 새벽부터 밤까지 긴장 상태로 하루를 보내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HR 담당자는 비즈니스에 지치고 조직 관리에 치이는 CEO 동료이자, 부하 직원이자, 멘토이자, 코치 역할을 동시에 맡게 되곤 한다.

그래서 CEO와 어떻게 관계를 맺고, 그들을 어떻게 서포트할지가 중요하다. CEO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심리 상태를 가지고 있는지 알아야 HR 담당자의 생존 전략을 짤 수 있을 것이다. 물론 CEO의 성격과 기업관, HR에 대한 개입 정도 등 수많은 변수에 따라 HR 담당자의 대응은 달라진다. 그러니 이제부터 소개할 개인적인 경험들은 일종의 사례로서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를 상상해 보며 참고하시길 바란다.

CEO가 HR에 너무 무신경한 경우 혹은 CEO가 HR에 너무 개입하는 경우를 모두 겪으면서, HR 담당자는 CEO를 대신해서 중심을 잘 잡아줘야 한다는 걸 느꼈다. 


CEO가 HR에 너무 무신경한 경우


HR 담당자가 생겼다는 사실에 기뻐하며 모든 HR 관련된 고민을 담당자에게 일임하고 CEO는 다른 일에 집중하는 경우가 있다. CEO는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챙겨야 하는 상황이니 상대적으로 전담자가 생긴 영역에 소홀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스타트업에 치명적이다. 기업의 리스크를 모두 떠안는 게 CEO이기 때문에 가장 퀄리티 기준이 높은 것도 CEO고, 직원에게 얼마를 지불할 지 결정하는 것도 CEO다. 결국 채용이든 평가든 업무 방식과 퀄리티를 관리하는 것이든 HR의 대부분 영역은 CEO의 의지가 반영되기 마련이고, 반영되어야만 한다.

CEO가 채용에 소홀하면 CEO의 기준에 못 미치고 인재상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 계속 채용될 것이고, CEO가 조직문화에 소홀하면 각자 동상이몽하며 다른 방식으로 일하여 엉망이 될 것이다. 그래서 HR 담당자는 CEO가 HR의 최종 의사결정권을 갖고, 이를 제대로 행사하게끔 보조해야 하며 만약 CEO가 HR에 소홀하다면 경각심을 일깨우고 정확하게 지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CEO는 자연히  비즈니스에 더 집중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를 설득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이럴 때에는 조직 내부에서 본인이 직접 설득하기보다는 조직 외부 자원을 활용하시길 권하고 싶다. HR에 무관심한 CEO에게는 외부의 자극이 필요하다.

TIPㅣ가장 강력한 건 이러한 시행착오를 이미 겪어본 선배 창업가나 다양한 사례를 목격한 외부 컨설턴트와 대화하는 자리를 만들어주는 방법이다. 원래 조직 내부 구성원이 이야기하면 CEO에게 하나의 ‘의견/주장’으로 받아들여지지만, 외부 사람이 이야기하면 이는 하나의 새로운 ‘정보’로 받아들여진다. 그래서 직원의 이야기보다 외부 사람의 이야기가 더 잘 먹히는 경향이 있다.

ⓒ 게티이미지


CEO가 HR에 너무 개입하는 경우


CEO가 HR에 너무 개입하는 경우는 보통 불안하고 초조해서 생겨나는 듯하다. 굳이 사례를 구분 짓자면 다음 세 가지 정도 경우가 있겠다.


1. CEO가 모든 걸 알려고 한다.
구성원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려 하거나, 근태나 근무시간을 분 단위로 체크하려는 등 모든 인사/근태/성과 요소를 확인하려 할 수도 있다. 매달 불타듯이 사라지는 돈(월 지출)을 관리하기 때문에 직원들을 감시하고자 하는 욕망이 생기곤 한다. 너무나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서 HR 담당자가 항상 완급 조절을 도와주는 게 좋다.

물론 엄격하게 근태나 성과를 관리하는 건 충분히 실행할 수 있는 일이다. 문제는 제도를 넘어서 내부 구성원에 대한 불신과 지나친 마이크로 매니징으로 변질되는 것이기에 이를 경고해야 한다.

이럴 때 나는, 어차피 CEO가 모든 걸 관할하고 감시할 수 없으니 중간 관리자에게 권한을 효과적으로 위임하도록 유도하며, 팀장들의 목소리를 빌리는 방법을 썼다. CEO가 특별히 불안해 하는 포인트를 팀장들이 직접 해결하도록 팀장에게 넛지(Nudge)를 주고, 팀장과 CEO가 더 소통하도록 만들었다. 또한 보고 체계를 개선하고 팀장과 CEO의 소통 기회를 늘리는 식으로 제도를 바꿨으며, 팀장에게도 CEO를 설득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팀원을 보호하고 케어하는 팀장들이 입을 모아 이야기하면 CEO도 새겨듣게 된다.

TIPㅣHR은 주관적 영역이기 때문에 논리로 설득하기 어려운 분야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서로 가설과 가설로 싸우거나, 사실과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에 HR 담당자가 CEO를 혼자서 설득하는 일은 굉장히 어렵다. 그래서 똑같은 말도 한 사람보다는 두세 사람이 이야기하는 게 낫고, 내가 이야기하는 것보다 그 주제에 대해 더 영향력 있는 사람의 입을 빌리는 게 낫다.


2. CEO가 하나하나 본인이 결정하려 한다.
CEO 의지가 너무 강해 HR의 세부적인 요소까지 직접 다 결정하려고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HR 담당자가 CEO의 꼭두각시가 되면 아무도 그를 신뢰하지 않게 된다. 구성원이 A라는 사안에 대해 HR 담당자에게 물어봐도 하나하나 “대표님께 확인해 봐야 합니다”라고 대응하면, 사람들은 HR 담당자를 있으나 마나 한 존재로 생각할 것이다. 채용이든 제도 개선이든 복리후생이든, 일정 수준의 권한이 있어야 무언가를 추진할 수 있다.

TIPㅣ그래서 CEO에게 권한을 제대로 위임받기 위해 역설적으로 CEO가 의사결정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내용을 정리해서 전달했다. A~C안의 선택지를 마련해 각각의 장단점과 비용 등을 정리한 뒤, CEO는 브리핑을 듣고 나서 의사결정만 할 수 있게 준비하는 식이다. CEO가 피드백을 주면 이를 실무에 다시 반영하면 그만이고, 결국 일을 처리하고 진행하는 건 담당자인 내가 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몇 번 반복하면 CEO의 의도나 방향성, 스타일에 익숙해지고, 결국 내가 기획하고 결정한 A~C안 내에서 컨펌을 받아낼 수 있게 되어 내가 원하는 결과를 이끌어 내는 것도 쉬워진다.


3. CEO가 좋아보이는 것을 이것저것 가져오려 한다.
이런 경우도 있다. HR 담당자가 많은 부분 권한을 위임받지만, CEO가 외부에서 ‘OOO이 좋더’라는 이야기를 듣고 도입을 요구하는 경우다. 사실 이런 일은 어느 회사에나 빈번하게 있는데 창업 경험이 적은 CEO는 일반적으로 하게 되는 일 중 하나다. CEO는 자기 회사가 잘하고 있는지 항상 불안하므로 외부 트렌드나 좋은 솔루션 정보를 들으면 곧장 도입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필요에 의해’ 도입하는 솔루션이 아니라면 실패할 때가 많다. 남들 다 하는 OKR을 따라 한다든지, 업무용 툴을 갑자기 이유 없이 바꾼다든지 등 그 솔루션이 왜 필요한지 제대로 정의되지 않은 채로 솔루션부터 도입하면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TIPㅣ이때는 CEO가 문제부터 정의할 수 있도록 그의 니즈를 이끌어내 주는 인터뷰/상담이 필요하다. CEO가 대뜸 조직에 어떤 변화를 시도하자고 주문한다면 마음속에 어떤 문제 의식이 있어서 그러한 솔루션까지 나오게 된 건지를 파헤쳐야 한다. 문제만 명확하면 다른 더 좋은 솔루션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챙겨야 할 게 많은 CEO보다 구성원과 조직의 생리에 대해 깊고 넓게 이해하고 있는 HR 담당자가 더 나은 솔루션을 제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

ⓒ 게티이미지


CEO에게 HR 담당자의 역할은?


CEO는 바쁘고 조급하며 불안하다. 창업 스트레스 수준이 전쟁통의 군인 수준이라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다. 기업에 인생을 걸고 매일 밤을 설치며 휴일 할 거 없이 일하는 CEO를 위해 HR 담당자는 단순히 HR 영역만 담당하는 실무자가 아니라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스타트업에서 인재에 관한 일은 너무나 중요해서 CEO와 항상 함께 고민하고 실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HR 담당자의 가장 바람직한 포지셔닝을 정의하자면 CEO의 ‘코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운동 코치는 선수의 고민을 듣고, 지지해 주며, 해결 방법을 찾아 보고 제시해 주기도 하고, 선수가 직접 이를 실천해 볼 수 있게 제반 사항을 세팅하며 도와 준다. 

나는 스타트업에서 HR의 주전 선수가 기본적으로 CEO라고 생각한다. 인재상이나 채용의 기준, 평가/보상, 조직문화 등 HR의 영역은 남이 대신해 줄 수도 없고, 외부의 좋아 보이는 걸 아무거나 붙일 수도 없다. 아무리 좋은 문화를 이식해도 CEO가 말 한 마디만 잘못하면 아무도 그 문화를 신뢰하지 않게 된다. 결국은 CEO가 HR의 출발이다. 그래서 HR 담당자는 CEO가 스스로 더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코치 역할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정리하자면


스타트업은 문제가 산적한 환경이며, 대부분의 문제는 HR 담당자가 혼자 해결할 수 없고 CEO와 함께 해결해야 한다. 그런데 CEO는 다양한 현안과 비즈니스에 치여 바쁘고 초조하고 불안하다. 그 과정에서 HR에 너무 무신경해 방임하거나, 반대로 너무 개입해 불안함에 기반한 잘못된 솔루션을 요구하기도 한다. 그래서 HR 담당자는 CEO의 부하 직원이자, 동시에 멘토이자 전문가이며, 또한 스스로 잘할 수 있게 돕는 코치로서 CEO가 중심을 잘 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맡는다.

이 글을 통해서는 구체적인 노하우나 스킬셋을 전달한다기 보다는 CEO가 어떤 심리 상태에서 어떤 선택을 하게 되는지 묘사하는데 집중했다. 이를 통해 기대한 효과는 두 가지다. 하나는 이미 스타트업에서 HR 담당자로 종사하고 있는 분이 “우리 회사만 그런 게 아니구나”라는 위안을 받으면 좋겠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스타트업과 성격이 다른 형태의 기업에 HR 담당자로 종사하고 있는 분에게 스타트업 상황을 상상해 볼 수 있도록 참고가 되면 좋겠다는 점이다. 이런 의도가 잘 전달되었으면 좋겠다.

HR 담당자가 CEO의 코치 역할이면 좋겠다는 것은 주관적인 생각이다. HR 담당자가 CEO의 의견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도 아니고, 완전히 권한을 넘겨받아 혼자서 결정하는 것도 아닌 형태로 일하는 게 이상적이지 않을까 싶다. 프로페셔널한 코치처럼 어떨 때는 CEO에게 엄숙하게 경고하고, 상담도 해주고 지지와 피드백도 아끼지 않으며, 또 스스로 잘할 수 있게 도와주는 HR 담당자가 되면 좋겠다. 다른 분들도 응원한다.



▶ <스타트업에서 일 잘하는 HR 되기> 시리즈 보러 가기 



글ㅣ유석영 
브런치에서 '알토v'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는 헬스케어 스타트업 알고케어에서 비즈옵스로 근무하고 있다. 이전에는 초기 스타트업 및 창업가를 코칭하는 일을 하며 1,500명 정도의 창업가들을 만났고,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는 알고케어에서 인사/조직관리 업무를 주로 맡고 있다. (브런치 @goodgdg)



발행일 2022.0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