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셔터스톡
하나,
도덕적이고 명예로운 행위에 돈이 개입하면 그 가치를 형편없이 떨어뜨린다.
도덕적이고 명예로운 행위에 대해 지표와 인센티브를 도입하면 어떻게 될까? 취리히 대학 경제학 교수인 브루노 프레이는 자원봉사자들에게 ‘돈을 지불하거나 세금 감면의 혜택을 준다면 봉사 활동을 더 많이 할까’에 대한 연구를 시행했다. 1997년 스위스 고용통계 자료에는 각종 봉사단체별 봉사 시간과 금전적 보상 액수가 나와 있었고 연구자들은 이를 활용했다. 이들은 금전적으로 보상 액수가 적은 그룹(35달러 미만)을 A그룹, 금전적으로 보상 액수가 많은 그룹(35달러 이상)을 B그룹, 금전적 보상을 전혀 받지 않는 통제 그룹을 비교했다. 그결과 보상이 상대적으로 적은 그룹(A)보다 보상이 많은 그룹(B)의 봉사 시간이 더 길었다. 그러나 동시에 A그룹은 금전적으로 보상이 없는 봉사 활동 그룹보다 시간이 적었다. 결과적으로 정치 분야의 봉사 시간이 금전적 보수를 받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매월 4시간 줄어들었다. 반대로 다른 모든 조건이 동일하다고 가정했을 때 금전적 보상 금액이 상대적으로 높아야 봉사 시간도 증가했다.
즉, 봉사자들에게 돈을 조건으로 거는 순간 내재적 동기는 외재적 동기로 전환되고, 봉사자들의 관심은 봉사보다 인센티브에 쏠린다. 연구자들은 봉사자들에게 50달러 이상을 지불해야만 돈을 받지 않고 순수한 목적에서 봉사를 했을 때와 똑같은 시간을 봉사 활동에 할애한다고 분석했다. 내재적 동기부여와 같은 결과를 외재적 동기로 내려면 필요이상의 많은 돈을 지불해야 한다. 결국 역설적이게도 ‘아주 비싼’, ‘무료’ 봉사가 되는 것이다.
둘, 살라미 전술:
지표와 인센티브는 실질적 성과를 지우고 인센티브만을 위한 새로운 게임을 만든다.
살라미는 소금과 양념을 넣어 건조시킨 이탈리아식 소시지다. 여기 살라미를 만들어 포장하고 판매하는 업체가 있다. 생산량을 증가시키고 싶었던 경영자는 매일 공장에서 출하되는 살라미 개수를 기준으로 성과지표를 만들었다. 직원들은 상황에 민첩하게 적응했다. 그리고 곧바로 성과가 나타났다. 그런데 이상했다. 살라미의 실질적인 생산량이 늘어난 것이 아니었다. 직원들은 살라미를 점점 얇게 자르기 시작했다. 결국 살라미의 품질이 떨어지는 결과가 나타났다. 성과지표를 보상과 직접 연계하는 순간, 인간은 이렇게 반응한다. 그에 따라 성과지표는 올라가지만 처음에 세웠던 궁극적인 목표 혹은 본질은 오히려 멀어지게 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미국의 20여개 주는 학생들이 치르는 시험 결과를 기준으로 학교에 상이나 벌을 주는 체계를 마련, 시행하고 있다. 교육학 전문가인 로버트 린은 이런 방식이 실질적으로 적용된 1980년대부터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재미있는 패턴을 발견했다. 그는 성과지표가 도입되면 결과는 늘 향상된다는 사실을 보았다. 그러나 그 패턴은 오히려 실질적인 실력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가 발견한 것은 오직 실질적인 학생의 실력과 관계 없이 ‘성과지표’자체의 점수가 향상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시험의 유형이 바뀌면 성과지표의 성적 역시 형편없이 하락했다. 학생들의 수학능력이 갑자기 나빠진 것일까? 물론 그렇지 않다. 이 패턴은 시험이 평가하는 것은 시험이라는 지표 자체에 대한 룰과 지식이며 상황이 이럴 때 교사들은 인센티브에 얽힌 ‘특정한 시험’에 집중하는 교육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시사한다.
공식적이면서도 복잡한 평가 지표와 보상의 룰을 만드는 것은 성과의 기술적인 왜곡도 부추기는 현상이 있다. 예컨대 기술적으로 4분기에 내 실적을 잡는 것보다 내년 1분기에 실적을 잡는 것이 계산상 내 인센티브를 얻는 것에 유리하다면 구성원들은 4분기에 수행 가능한 실적을 미루거나 숨기고 그 다음해 1분기에 몰아서 기록하는 경향이 있다. ‘언제나 최선을 다한다’는 본래의 목적과는 전혀 다른 ‘게임의 룰’에 몰입하는 인간을 만들어 내고 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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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
주관적이고 정성적인 평가가 인센티브에 직접적으로 얽히면 예스맨을 양산한다.
이쯤 되면 누군가는 ‘그래, 역시 정량적인 지표보다 정성적인 평가지’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역시 착각이다. 보상과 연계되는 정성적 판단은 또다른 문제를 낳는다. ‘주관적인 판단의 권한을 쥐고 있는 그룹을 어떻게 신뢰할 것인가? 결국 그들의 판단으로 우리를 쥐락펴락하는 것 아닌가?’ 일반적으로 많은 회사는 피라미드 식의 평가를 받는다. 팀원은 팀장에게, 팀장은 다시 상위 리더에게 평가를 받는 식이다. 이런 메커니즘은 ‘예스맨’을 자극한다. 즉 리더의 성향, 혹은 집단이 요구하는 성향에 눈치를 보며 맞추며 그 평균적인 성향이나 논리를 벗어나지 않으려고 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이다.
늑대가 양떼를 습격할 때 양들에게 필요한 것은 늑대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해 최대한 멀리 달아나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양들은 늑대의 위치를 협력해 파악하려 하기 보다 다른 양이 어디로 도망가는지에 대해 더 관심이 많다. 최선의 방향이 아닌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더 관심을 갖는 것이다. 정성적인 평가가 인센티브에 강하게 얽혀 있는 경우 이와 유사한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만약 내 의견을 상사나 동료가 평가한다고 하면 나는 내 의견을 말하기 전에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나 추측하려 할 것이다. 그리고 최선의 의견이 아닌 가장 평균적인 의견을 제시하게 될 것이다. 늑대를 피해 어디로 도망가야 할지 알기 위해서는 다른 양들이 어느 방향으로 도망칠까 추측하려 할 것이 아니라 각자 늑대의 단서를 찾을 수 있도록 격려하고 지지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넷,
승자와 패자에 대한 보상 차이가 클 때 구성원은 협력하지 않고, 서로를 처벌하려 한다.
상대적이고 개인 성과에 초점을 맞춘 시스템을 갖춘 기업이 많다. 과거 크게 유행했던 조직 컨설팅 회사의 ‘성과주의’ 시스템 구축 프로젝트의 핵심은 개인 차원의 성과 목표를 관리하며 구성원의 기본급 비중을 낮추고 변동 성과급 비중을 높이는 것이었다. 그리고 개인 별, 조직 별 조건부 인센티브를 촘촘하게 설정하고 상대 평가를 통해 동료들 간의 보상 차등을 높이는 것을 핵심으로 삼았다. 조직 내 경쟁이 낳는 문제는 일에서 서로 협력하는 부분을 무시할 뿐만 아니라 나아가 협업을 처벌하는 행위를 넛징한다는 것에 있다. 인사경제학을 창시한 에드워드 레이지어는 이러한 전통적인 성과주의 시스템은 집단 차원에서 높은 성과를 보이는 조직이라 할지라도 승자와 패자를 정밀하게 나누고 보상의 차등을 높이는데, 이럴수록 구성원들은 조직 차원보다 개인 차원의 일에 더 집중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지적했다.
다섯,
집단 인센티브는 무임승차자는 줄이지만 최고 성과자의 동기를 떨어뜨린다.
상대비교에 따른 인센티브의 부작용에 대한 통찰을 수용한 기업들은 조직 구성원의 협력을 촉진하기 위해 개인 인센티브를 폐지하고, 집단 인센티브를 도입하기도 한다. 집단의 성과에 인센티브를 부여함으로써 조직 내 협력을 높이겠다는 의도다. 그것은 대체로 개인 인센티브보다는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도 있다.
첫 번째 약점은 무임승차 현상이다. 집단 인센티브를 적용하면 단기적으로는 그 집단의 노력에 상대적으로 적은 노력을 하고 편승하려는 조직에 어떤 차별을 둘 수 없다. 하지만 이 무임승차는 반복되면서 상당히 빨리 해소된다. 집단 성과지표를 도입했을 때 일을 하지 않는 직원은 상사가 지적하기 전에 동료에게 더욱 잘 적발된다. 앤드루 바이스 전 컬럼비아 대학교 경제학 교수와 같은 경제학자들은 집단 인센티브를 적용했을 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동료들이 자연스럽게 압력을 행사해 무임승차자가 그 상태를 유지하지 못하도록 함을 발견했다. 그러나 연구자들에 따르면 오히려 근본적으로 해소되지 않는 문제가 있다.
집단 인센티브는 실질적 성과를 내는 최우수 사원들의 실질적인 생산성과 업무 동기를 약화시키는 경향이 있었다. 어찌 됐든 ‘지표’가 보상과 직접 연계되어 있다는 조건 아래에서 동료들은 특수하게 일을 잘하는 직원이 상사의 기대치를 높일 수 있으므로 자신의 속도에 생산성을 맞추도록 압력을 행사하고, 그 고성과 직원 역시 자신이 최선을 다해 이득을 볼 것은 없으므로 ‘겸사겸사’ 자신의 생산성을 낮추는 경향을 보였다. 즉, 이런 환경에서 집단 성과지표는 직원들의 행동을 표준화 하는 경향이 있었다. 성과가 저조한 직원은 동료와 상관의 압력 안에서 스스로의 생산성을 평균 수준만큼 향상시키거나 배제되는 반면, 고성과자들은 너무 ‘튀지 않게’ 자신의 생산성을 하향 조절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