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디자인 | 패딩 만든 카피라이터, 농업에 뛰어든 디자이너

iF 디자인 | 패딩 만든 카피라이터, 농업에 뛰어든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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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티클은 <그 디자이너가 바라본 세상> 시리즈의 1화입니다. 


9월 1일 오후 7시, 위워크 디자이너클럽으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iF 한국지사와 원티드랩이 주최하는 ‘게더링 서울 2022’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레드닷, IDEA와 함께 세계 3대 디자인 어워드로 꼽히는 iF가 주관한 이번 행사는 디자인 토크와 네트워킹 세션으로 구성됐다. 혁신하는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 매일 도전하는 디자이너라면 이노션 · N.THING · 비즈니스캔버스(타입드) · BKID의 독창적 사고를 참고해 보라. 

ⓒ iF Korea


* 본 아티클은 iF X Wanted Gathering Seoul 2022 디자인 토크 세션의 내용을 에디터가 재구성한 글입니다. 



Session 1.

최원준 이노션 카피라이터 | 패딩을 만들 생각은 없었습니다


최원준 이노션 카피라이터 ⓒ iF Korea


광고 회사가 패딩을 왜 만들어?


SNS를 한다면 한 번쯤 보았을 일이다. 커뮤니티에서 소위 ‘짤’로 공유되며 큰 관심을 샀던 에어패딩. ‘광고 회사가 저걸 왜 만든 거야?’란 질문도 많이 받았지만, 최원준 카피는 패딩을 만들 생각이 없었다고 말한다. 그럼 광고 회사가 어쩌다 패딩을 만들게 됐을까. iF 디자인 어워드 프로덕트 디자인 부문 골드 수상을 거머쥘 수 있었던 신선한 발상부터 런칭까지의 과정을 면밀히 살펴본다.

SNS에서 화제가 됐던 무신사 에어패딩 후기 ⓒ 무신사


오로지 인간의 욕심을 위한 패딩
라이브 플러킹(live plucking). 더 많은 패딩을 만들기 위해 오리나 거위의 털을 산 채로 뽑는 걸 말한다. 털이 뽑힌 자리에 새 털이 돋아나면 또다시 뽑아 생산량을 채우는 이 폭력적인 행위는, 인간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자행되는 잔인한 생산 방식이다. 거위나 오리의 날갯짓을 통해 자연 탈락되는 털을 모아 만드는 RDS(Responsible Down Standard, 책임 있는 다운 기준) 방식도 있지만, 전 세계 패딩 수요를 맞추기엔 턱없이 부족한 양이다. 오로지 인간의 욕심을 위한 패딩, 팀 PmG(최원준 카피가 속한 팀)는 한 번쯤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라 생각했다. 


관심은 한순간일 뿐, 궁극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
신선하고 독창적인 발상의 기획자가 모여있다는 이노션답게 처음 떠올린 생각은 광고인스러운 접근이었다. 돼지고기 생산량을 증가시키기 위해 유전자를 조작하여 만든 슈퍼 돼지 이야기 영화 <옥자>에서 영감을 받아, 털 뽑힌 거위를 주인공으로 한 스토리 필름 형식의 광고 아이디어를 생각했다. 이 외에도 깃털 뽑힌 거위를 위한 옷을 만들어 아이러니함을 부각하자는 아이디어도 나왔지만, 궁극적인 해결책이라기보단 문제 제기에서 끝나는 캠페인 아이디어라는 아쉬움을 남겼다. 


문제 제거 : 거위털 사용이 필요 없는 패딩
팀 PmG는 고민 끝에 ‘거위털을 쓸 이유를 없애버리자’라는 도전적인 생각을 했다. 그러나 미국 다국적 기업 3M에서 만든 거위털 대체 신소재 신슐레이트(3M Thinsulate)와 같이 단순한 대체재로 그치고 싶지 않았다. 공개되지 않은 혁신적인 제품을 원했다. 그러다 서울대학교 이주영 교수 연구실에서 진행한 ‘공기주머니 패딩’ 기사를 발견했다. 

“택배 속에는 상품 보호를 위해 들어간 공기 포장재가 있어요. 이걸 패딩 안에 넣어 거위털 패딩과 보온성을 비교한 거예요. 구스 다운이 따뜻한 이유는 털과 털 사이에 공기층이 미세하게 형성돼 쌓이며 단열 효과를 만들기 때문인데, 이 원리를 옷에 적용한다면 기존 제품보다 뛰어난 보온성을 가진 패딩이 탄생할 수 있다는 기사였죠. 그래서 이 연구팀에 자문을 요청했고, 패딩이 나오게 되면 보온성 테스트를 부탁드리기로 했습니다.” 

아이디어도 찾았고 제품을 검증해 줄 연구팀도 섭외했다. 이제 남은 건 패딩을 디자인할 사람이었다. 


전에 없던 패딩을 디자인할 사람
안타깝게도 패션 디자이너는 광고 회사에 없다. 시도해 본 적 없는 패딩을 만들 파트너를 찾아야만 했고, 신생 패션 브랜드 ‘파라코즘 스튜디오’가 눈에 띄었다. 미래 지향적이며 실험적인 디자인을 추구하는 그들은 이번 프로젝트에 딱 맞는 파트너였다. 

ⓒ 팀 PmG


디테일한 디자인 기획
에어패딩의 개념은 튜브에 있다. 패딩 모양의 튜브인 것이다. 공기를 오래 가둘 수 있는 폴리우레탄 소재를 사용해 제작했고, 신체 부위를 나눠 만든 후 결합하는 방식으로 완성했다. 튜브에 활용되는 소재인 만큼 재봉이 아닌 금형 방식이 필요했기에 튜브 공장을 찾아다니며 컨택했다. 완성된 에어패딩이 인체 굴곡에 맞게 부풀도록 곡선 패턴을 고주파 접착 기술로 구현했다. 패딩이 필요 없는 계절이 오면, 패딩 속 공기를 빼 보관할 수 있도록 에어노즐도 부위별로 설치했다. 이후 연구팀에 보온성 검증을 진행했다. 


패딩으로서의 기능 확인하기
서울대 연구실 안 밀실에는 연구목적의 특별한 마네킹이 있다. 억대 몸값을 자랑하는 귀한 이 마네킹은, 전국에 딱 2개만 있다고 한다. 연구팀은 검증을 위해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쳤다. 

“마네킹 위에 에어패딩을 입힌 뒤 밀실의 온도를 영하로 떨어뜨렸습니다. 반면, 마네킹에는 전력을 공급해 사람의 정상 체온인 36.5도를 유지하게 만들었죠. 마네킹은 바깥 온도로부터 지속적으로 열을 빼앗기기에 전력을 끊임없이 사용하게 됩니다. 사용한 전력량을 파악해 필요한 에너지양과 손실된 에너지양을 측정했습니다.”

서울대 연구팀이 검증하는 모습 ⓒ 팀 PmG


실험 결과는 놀라웠다. 일반적인 구스 다운의 보온성과 에어패딩의 차이는 단 ‘0.06클로(clo)’라는 것. 0.06클로의 보온성은 쉽게 말해 여름용 민소매 한 장 입었을 때 느껴지는 따뜻함과 같다. 거진 차이가 없다는 말이다. 에어패딩은 성공적이었고, 실험을 토대로 작성된 논문은 한국의류산업학회지에 출간도 되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사실은 ‘시판 제품으로서 의미가 생겼다는 것’이다.


에어패딩은 완판됐다
이제 남은 건 런칭. 어려운 관문을 거쳐왔기에 파급력을 키우고 싶었다. 에어패딩이 독창적인 패션 제품인 만큼 국내 700만 회원을 가진 1위 패션 플랫폼 무신사에 입점을 원했다. 설득 끝에 ‘아우터 페스티벌’ 입점에 성공했고, 만든 수량은 완판됐다.

ⓒ 무신사


프로젝트의 성공, 그다음 행보는?
파라코즘 스튜디오 대표는 팀 PmG에게 패션의 다음 단계가 NFT라고 말했다. 에어패딩 역시 다가올 웹 3.0 시대의 변화에 맞춰 변화를 시도한다. 크립토 아티스트들과 협업해 메타버스와 현실 세계, 이렇게 두 가지 버전의 옷을 구매할 수 있는 도전적인 기획이다. 런칭 목표는 올해. 관심 있다면 이따금 파라코즘 에어패딩을 검색해 봐도 좋겠다. 

팀 PmG의 iF 디자인 어워드 수상 소감 영상 ⓒ 팀 PmG

Session 2.

정희연 N.THING CDO · Co-founder 이사 | 농업을 브랜딩 하다


정희연 N.THING CDO · Co-founder 이사 ⓒ iF Korea


그 디자이너가 농업 브랜딩을 하기로 결심한 이유 


인류의 생존에 있어 농업이 가장 본질적이고 중요한 문제임에는 틀림없다. 엔씽은 그 본질에 기술을 더해 컨테이너에서 작물 재배가 가능하도록 만든 혁신적인 기업이다. 그러나 애그리테크 기업에 브랜딩이란 단어는 왠지 모를 어색함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 정희연 엔씽 이사는 이번 세션을 통해 한 명의 디자이너로서 왜 농업 브랜딩을 시작하게 됐는지 솔직하게 털어놨다. 

ⓒ N.THING


제품 디자이너에게 닥친 갑작스러운 변화, 달갑지만은 않았다
당시 엔씽은 초기 스타트업이었다. 자금이 부족했기 때문에 ‘최소 규모의 농장 디자인’을 목표했고, 집에서도 쉽게 키울 수 있는 수경재배 키트를 만들었다.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도전과 실험을 반복하며 IoT 기술을 농업에 접목시킨 플랜티(planty) 제품을 개발해 나갔다. 그 결과 엔씽은 컨테이너를 모듈로 활용한 수직농장과 대규모 스마트 팜을 구축하는 비즈니스로 성장하게 됐다. 

“사업의 규모가 커진다는 것은 회사의 관점에서 본다면 ‘확장’이겠지만, 디자이너로서 창업을 시작한 저에게는 ‘변화’의 개념이기도 했습니다. 농장 구축은 기존에 구상하던 이미지와는 완전히 다른 디자인적 접근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디자이너로서 ‘변화’의 시각에서 적용된 해법을 풀어내야 했어요.”

정희연 디자이너는 농작물을 재배하는 공간을 일종의 제품이라고 생각하며 일했지만, 사실 그 공간은 고도화된 생산 시스템에 가까웠다. 그렇기에 디자인보다 수확성과 생명성 같은 부분을 더 중요시해야만 했다. 성장하는 사업과 달리 그의 고민은 날로 깊어져 갔다. 

“저에게 직면한 이 변화를 스스로 받아들여야 앞으로 나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제품만 디자인하려는 좁은 시야에서 벗어나 ‘업’ 자체를 브랜딩 해보자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죠.”

그러나 농업 브랜딩이란 말이 아직은 익숙하지 않듯, 주위 시선 또한 곱지만은 않았다. 그는 ‘디자이너가 농업에서 뭘 할 수 있겠냐’는 수많은 편견과 싸워야만 했다. 정희연 디자이너는 자신의 선택이 맞았음을 증명하기 위해 iF 디자인 어워드 출품을 목표로 도전을 시작했다.

ⓒ N.THING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길의 첫걸음을 뗀다는 것
국내의 경우 아직 농장에 대한 디자인적 시도가 없었다. 그렇기에 이번 도전이 회사의 방향성은 물론이고, 농장 공간을 외부에 알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정희연 디자이너는 디자인을 ‘목적에 맞춰 조형적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이번 프로젝트 역시 문제 해결을 위해서 농장 외관에 집중했던 좁은 시야에서 벗어나야 했다. 기능에 맞춘 모듈 디자인, 생산성을 위해 최소화된 동선 등 기존 프로덕트의 장점을 최대한 강조하는 데 몰두했다. 결과적으로 iF 디자인 어워드 건축 부문 디자인상(2020)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게 된다. 


엔씽 로고 리뉴얼 프로젝트의 시작
자신감이 붙은 정희연 디자이너는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매년 1월, 네바다 라스베가스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규모의 ICT 융합 전시회 ‘CES’로 눈을 돌렸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iF 디자인 어워드 건축 부문 디자인상 및 CES 최고 혁신상을 수상한) 2020년은 자신감이 붙은 해였어요. 동시에 이전에 미처 발견하지 못한 부분들을 보기 시작한 해이기도 했죠.”

엔씽은 다양한 브랜드가 생기고 있었는데, 필요한 로고 디자인이 생기면 그 디자인을 개별적으로 완성하는 방식으로 디자인했다. 전체적인 제품의 일관성까지 신경 쓰진 못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구성원마다 제품을 부르는 방식도 달랐다. 예를 들어, ‘플랜티 큐브’라는 제품을 A는 큐브, B는 엔씽 큐브라고 부르는 식이었다. 

브랜드의 수가 증가하며 더 많은 로고가 생겼고, 내부 구성원 간 커뮤니케이션에도 문제가 생겼다. 어느새 많은 브랜드를 보유한 것이 자산이 아닌 사업을 방해하는 걸림돌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 N.THING


CI를 바꾸기로 했다
가장 큰 문제는 CI에 있다고 생각했다. 활용도가 낮고, 엔씽의 업을 표현하기에 가벼운 이미지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걸 바꿔야 다른 문제도 바뀔 수 있다고 믿었다. 그렇게 브랜딩을 시작하게 됐다.

“브랜딩을 시작할 때만 해도 걱정이 많았습니다. 저는 제품 디자인만 해봤지, 브랜딩은 한 번도 해본 적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변화를 시작으로 엔씽의 많은 것이 바뀔 거란 확신이 있었습니다.”

기존에 혼재되어 있던 이름 대부분을 엔씽으로 통합했고, 엔씽이 가지고 있던 많은 의미 중 무한한 가능성에 초점을 맞춰 리브랜딩을 진행했다. 단, 리브랜딩 기간을 최소화하고 확장성을 최대한 담으면서. 엔씽 리브랜딩은 많은 변화를 가져오기 시작했다.

ⓒ N.THING


로고만 바꿨을 뿐인데
기존 로고와 혼재되지 않게 하려면 리뉴얼된 로고가 구성원에게 익숙해져야 했다. 웰컴 키트를 만들고, 사이트를 개편하며 새로운 로고가 구성원의 일상에 자주 노출될 수 있게 작업했다. 자연스럽게 농장에도 로고를 적용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농장 제품 네이밍 프로세스까지 구축하게 됐다. 

“네이밍 프로세스도 중요하지만, 농장에 방문해 보니 제품 안에 다양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었습니다. 엔씽이 운영하는 인천 농장의 경우 28개의 재배동이 운영되고 있는데, 워낙 넓다 보니 제가 어느 동에 서있는지 알 수가 없었죠. 위치를 알려주기 위해 사이니지(간판) 부착이 필요해 보였습니다. 심지어 농장에서 근무하는 분과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분이 재배동을 부르는 명칭도 달랐어요. 결국 브랜딩을 통해 사이니지 시스템도 만들게 됐습니다.”

ⓒ N.THING


정희연 디자이너에게 엔씽 로고 리뉴얼 프로젝트는 굉장한 의미가 있었다. 단지 로고 하나가 바뀌었을 뿐인데, 계속해서 새로운 프로젝트가 생겼기 때문이다. 브랜딩이 주는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기회도 얻게 됐다. 


지구와 화성 사이의 어떤 별 ‘식물성’
B2B 스타트업 엔씽은 소비자와 접점을 만들기 힘들다. 애그리테크라는 산업은 낯설고, 농장은 외곽에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와 소통하는 브랜드가 되기 위해 오프라인 프로젝트를 준비했다. 엔씽의 농장을 서울에서도 볼 수 있도록, 그래서 엔씽의 기술을 친숙하게 느낄 수 있도록 만들고 싶었다. 그렇게 서울 중심에 카페형 쇼룸 ‘식물성 도산’이 탄생했다. 

카페형 쇼룸 ‘식물성 도산’ ⓒ N.THING


“식물성의 뜻은 지구와 화성 사이 신선함의 별이란 뜻입니다. 엔씽의 브랜딩은 억제의 관점에서 디자인을 진행했다면, 식물성은 확장하는 방향으로 진행했습니다. 예를 들어 ‘식물성에는 어떤 요소가 있을까?’ ‘활력 넘치는 채소가 있을 거야.’ ‘그럼 어디에 채소가 있을까?’ ‘본질적이고, 핵심적이고, 채소가 자라기 위한 환경에 있겠지. 분명 빛나는 공간일 거야.’라며 스토리를 키워 나갔습니다.”

식물성 도산에 방문한 모두는 신선한 채소를 경험하고 구매해 집으로 가져갈 수 있다. 정희연 디자이너는 이 아이디어로 iF 디자인 어워드 브랜드 쇼룸 부문 본상(2022)을 거머쥐게 됐다. 

ⓒ N.THING


“농업 브랜딩에 한 번씩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제가 브랜딩을 하는 이유기도 하죠.(웃음) 앞으로도 시야를 확대하며, 생각의 경계를 허무는 경험과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을 제공하는 요소로 브랜딩을 해나갈 거예요. 엔씽이란 브랜드는 저는 물론, 엔씽에도 귀중한 자산이 될 거라 믿습니다.”


* iF Korea 공식 블로그를 통해 더 자세한 후기를 확인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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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김한나ㅣ원티드 콘텐츠 에디터



발행일 2022.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