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 포폴, 이건 확인하셨나요?

디자이너 포폴, 이건 확인하셨나요?

일자

상시
유형
아티클
태그
이 아티클은 <디자인? 디고디원찬에게 물어봐!> 시리즈의 2화입니다. 


“디고디원찬 님! 포트폴리오, 이력서, 면접 도대체 어떻게 준비해야 되죠?”

해마다 많은 졸업생과 구독자, 그리고 현업에 계신 많은 디자이너와 교류하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도 비슷하게 받는 질문이 있습니다. 바로 포트폴리오, 이력서, 면접 질문이에요. 메타버스니 블록체인이니 AI에 점령된 일러스트니 빠르게 세상이 바뀌고 있어도 이 궁금증들은 ‘디자이너'라는 직업이 사라지지 않는 이상 계속될 겁니다. 그래서 오늘은 디자이너분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이 세 가지에 대한 궁금증 중 ‘포트폴리오'에 대한 부분을 속 시원하게 해결해 드리는 시간을 가져보려 합니다.



포트폴리오는 모든 디자이너에게 취업을 위한 필수 관문이자 누군가에게는 스트레스와 두려움의 대상일 수도 있어요. 그러나 역으로 생각하면, 의외로 실타래 풀듯 쉽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바로 ‘Be an employer’. 포트폴리오를 내는 입장이 아니라 ‘받아 보는’ 입장에서 생각하라는 겁니다.

이게 무슨 말장난인가 싶지만, 대부분의 지원자들은 ‘어떻게 하면 내 포트폴리오가 예쁘게 보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내가 잘하는 것들을 전부 보여줄 수 있을까’처럼 모든 것을 employee인 본인 입장에서 생각합니다. 그 누구도  보는 사람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죠. 

너무 당연한 말 아니냐고요? 흠, 그런데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왜냐하면 이 mindset(마음가짐) 하나만 바꾸면 여러분은 그 어떤 경쟁자도 생각하지 못한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고, 더 나아가 나를 취업시켜줄 그 대상의 마음에 드는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게 됩니다.

자, 그럼 지금부터 묻고 따지지도 않고 ‘그냥 이렇게 하세요!’라는 말 대신, ‘그들'의 입장에서 바라보며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 디고디원찬 


포트폴리오, 제발 좀 도와주세요!


회사는 디자이너 취업 공고를 어떤 방식으로 낼까요? 저의 회사인 ‘미니멀리스트’를 예로 들어 볼게요.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 미니멀리스트가 운영하는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를 통해 공고를 게재했을 경우 50명 내외 지원자를, 인크루트나 사람인 같은 채용 사이트에 올렸을 경우에는 300명이 넘는 지원자의 서류를 받기도 합니다. 이런 작은 디자인 스튜디오의 공고인데도 말이에요!

혹시 ‘와, 좋겠네요!’라고 생각하셨나요? 네, 물론 좋습니다. 그런데 아니기도 해요. 왜냐하면 많은 지원자는 많은 서류 검토를 해야 한다는 의미니까요. 한 지원자당 포트폴리오, 이력서, 자소서 이렇게 3가지의 파일을 기본적으로 보내게 되는데요. 이게 50명이면 150개의 파일이고, 300명이면 450개의 파일이라는 소리거든요.

여러분은 뼈를 깎는 노력과 긴 시간, 그리고 열정을 투자해 만든 내 자식 같은 포트폴리오겠지만 안타깝게도 채용 담당자에게는 그냥 450개의 파일 중 하나일 뿐일 수도 있어요. 자, 그러면 아래 예시를 확인해 봅시다.

<인사담당자의 시각으로 생각해 보세요!>
Q. 인사담당자가 확인해야 할 파일은 총 450개. 지원자 A의 포트폴리오 파일을 열었더니, 100페이지임을 확인했다. 이때 담당자는 어떤 생각을 할까?

  1. ‘어머! A 디자이너가 다작을 했구나’라며 눈물을 훔친다. 
  2. ‘오, 정성 가득한 포트폴리오구나’라며 감명받는다. 
  3. 한 숨과 함께 턱을 괴고 페이지를 빠르게 넘긴다. 

답은 C입니다. 담당자는 한숨과 함께 턱을 괴고 페이지를 넘기기 시작할 겁니다. 어쩌면 30페이지 정도까지 넘기고는 파일을 닫을 수도 있습니다. 왜냐고요?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아니, 449개의 PDF 파일이 남아있기 때문이죠. 자,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제 아래 질문에 대한 답변을 시작합니다. 

ⓒ 네이버영화 


<디자이너가 가장 많이 하는 질문!>
Q. 포트폴리오에 들어갈 적당한 프로젝트 개수는 얼마인가요? 그리고 몇 페이지가 적당한가요?


1. 포폴 페이지는 50페이지 이내로!
표지, 목차, 내 소개, 인덱스 페이지 등을 제외하고 40페이지 안쪽이면 크게 부담 없이 볼 수 있는 정도의 분량입니다. 솔직히 그 이상은 쉽지 않습니다. 포트폴리오는 인사담당자가 시간을 내서 읽는 소설책이나 자기 계발서가 아님을 명시하세요.


2. 포트폴리오에 넣을 프로젝트는 7~10개가 좋다.
디자인 분야에 따라 다르지만, 포트폴리오 한 프로젝트당 보통 2페이지에서 4페이지 정도 구성될 겁니다. 그럼 프로젝트 10개를 기준으로 20~40페이지가 될 것이고, 아까 이야기한 표지, 목차, 내 소개, 인덱스 10 페이지까지 하면 딱 50 페이지가 되겠죠?


3. 최고 정예의 프로젝트들만 추리자
구색을 갖춘다고 대학교 1학년 과제부터 하나하나 끄집어 내는 거, 정말 좋지 않습니다. 포폴은 절대 양으로 승부하는 것이 아닙니다. 최대한 짧은 시간에 여러분의 매력과 실력을 발산해서 상대방이 ‘나라고 하는 디자이너'에게 최대한 호감을 가질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반드시 최정예 프로젝트들만 추려서 구성하세요.

[여기서 잠깐!] 최정예 안에서도 첫 번째와 마지막에 가장 잘한 프로젝트를 넣으세요. 덜 중요한 건 뒤에 넣으시고요. 인간은 가장 처음과 마지막을 인상 깊게 기억하니까요.  


4. 순서 배치는 전략적으로
순서 배치를 ‘최정예순'으로 하는 것도 좋은 전략이지만, 그보다 앞서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바로 ‘내가 어떤 분야에 지원하느냐?’입니다. 

시각디자인을 예로 들어볼게요. (학교와 학과마다 중점이 되는 커리큘럼이 상이 하지만) 시각디자인 커리큘럼 내에는 보통 브랜딩, 패키징, 타이포그래피, 편집, UI/UX 등 다양한 세부 분야가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내 포폴에는 다양한 종류의 프로젝트들이 있을 겁니다.

만일 내가 브랜딩을 전문으로 하는 스튜디오에 지원을 한다고 가정할게요. 그럼 여러분 포폴의 가장 먼저 와야 할 프로젝트는 무엇일까요? 맞아요, 브랜딩 프로젝트여야 합니다. 브랜딩 스튜디오에 지원을 하는데 첫 프로젝트부터 일러스트가 나오고, 공간디자인 프로젝트가 나온다면? 받아보는 입장에서는 당황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합니다.

‘이 지원자가 우리 스튜디오가 뭐 하는 곳인지는 알고 지원한 건가?’

당연한 이치입니다. 내가 일식 조리사 자격증이 있고 제빵 기능사인 것은 분명 플러스이긴 하지만, 내가 지원한 곳은 한식당입니다. 처음 선보이는 요리는 한식이어야 합니다. 스시랑 바게트가 아니고요!  


5. 포폴의 주인공은 ‘작품' 그 하나다.
많은 디자이너가 콘셉트와 차별화에 대한 부담을 가지고 무리수를 둡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말 그대로 ‘무리수'입니다. 필요가 없는 수거든요. 힘을 주지 않아도 될 곳에 쓸데없이 힘을 주어 밸런스를 깨뜨리고, 무엇보다 포트폴리오의 목적인 ‘작품을 효과적으로 보여준다'는 절대룰을 깨뜨립니다. 이번에도 이해하기 쉽게 예시를 들어 볼게요.

여러분, 혹시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가보신 적 있나요? 가보셨다면, 그곳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흥미? 재미? 감동? 동기부여? 힐링? 물론, 여러 가지 목적이 있겠지만 미술관의 절대 목적은 ‘관람'입니다. 이 장소가 존재하는 이유는 ‘미술품을 가장 효과적으로 보여주어 잘 감상하기 위함'입니다. 그럼 미술관 내부는 어떻게 되어있을까요? 그 작품을 보여주는 주변은요? 액자는요? 조명은요? 설명은요? 작품을 둘러싼 모든 것은 그 작품의 관람을 ‘최적화'하기 위한 ‘최소한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미술관 인테리어도, 조명도, 그 작품의 설명도, 액자도 그곳의 주인공이 아닙니다. 주인공은 ‘그 작품’ 하나입니다.

여러분의 포트폴리오도 마찬가지입니다. fancy한 header, footer, 배경 컬러, 페이지 넘버 이들은 전부 사족입니다. 이들은 그냥 효과적으로 작품이 잘 보일 수 있게 도와주는 역할만 하면 됩니다. 괜히 (거의 모든) 포트폴리오의 배경 컬러가 흰 색인 것이 아닙니다. 흰색의 배경 컬러보다 작품을 더 잘 감상하게 해주는 컬러는 없으니까요. Header/footer/페이지 넘버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존재할 수는 있으나 절대로 작품 감상에 방해가 되는 요소로서 목소리를 크게 내면 안됩니다. 그건 사족입니다, 사족!


6. 나는 달라요? Well, prove it!
대한민국에는 수십 개가 넘는 디자인과가 존재하고 매년 3만 8천 명의 졸업생이 세상에 나옵니다. 입이 딱 벌어지지요? 심지어 무섭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더 무시무시한 사실을 알려드릴까요? 

“정말 다양한 디자인과가 존재하지만 커리큘럼과 그 결과물, 포폴까지 다 거기서 거기라는 것.”

‘융합'이라는 거창한 말을 제가 굳이 꺼내지 않아도, 요새 여러 디자인과에서  boundary(경계)를 넘는 커리큘럼 편성을 많이 합니다. 예를 들어, ‘브랜딩'이라는 분야는 보통 시각디자인 커리큘럼의 일부라고 생각하지만, 디지털미디어디자인과, 패션디자인과, 산업디자인과에서도 두루두루 조금씩은 다 커버합니다. 그러다 보니 과는 서로 달라도 포폴의 구성이 비슷 비슷해집니다. 이를테면, Behance 딱지 붙은 우수작에서 보는 유사한 구성의 쇼잉 스타일과(제발 아이폰 아바타 페르소나는 이제 그만!) 주제들이 있겠네요. 

그러다 보니 포폴을 보는 입장에서는 이게 누구의 포폴이었는지 기억에 잘 남지 않습니다. 잘하기는 했는데, 포폴 두세 개 더 보면 비슷한 구성과 퀄리티의 유사한 프로젝트가 또 나오거든요. 심지어 주제까지 같은 경우도 많지요.

억울할 수 있습니다. 나는 분명 잘했는데 기억에 남지 않을 수 있다니 말이에요. 그러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바로 ‘차별화'입니다. 차별화를 어떻게 해야 하냐고요? 보통 지원자라면, 앞서 말씀드린 ‘무리수'를 통해 포폴을 최대한 fancy하게 만들려고 하겠죠. 컬러도 팍팍 넣고, 타이포그래피도 과감하게 쓰면서요. 

제가 말하고자 하는 차별화는 이런 표면적인 것이 아닙니다. 바로 ‘프로젝트의 차별화'입니다. 그 뻔하고 뻔한 구성의, 하지만 절대 다 걷어낼 수는 없는 프로젝트 속에서 ‘나만의 무언가'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프로젝트가 필요합니다. 그걸로 여러분만의 킥을 만드는 겁니다.

‘The most personal is the most creative’(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봉준호 감독의 아카데미 시상 소감으로 더 유명한 거장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말입니다. 여러분만의 무언가를 확실히 보여주세요.


7. 개인 프로젝트의 중요성
개인 프로젝트가 좋은 이유는 정말 많습니다.

  • 차별화: 어디서 비슷비슷하게 받은 브리프를 통해 나온 프로젝트가 아니죠. self-initiated(내 의지로 시작한) 프로젝트기 때문에 똑같은 게 있을 수가 없습니다.
  • 나, 이런 사람이야!: 무슨 주제를 선택하든 내 의지로 출발한 것이니 만큼 내가 평소에 관심이 가거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주제겠죠? 그럼 자연스레 내가 어떠한 사람인지 알 수 있게 해줍니다. 면접으로 가기도 전에 나를 어필할 수 있는 거예요.
  • 와, 이 열정!: 다들 공사다망하시지 않습니까? 친구도 만나야 하고 술도 먹어야 하고 최근에 개봉한 영화도 봐야 하고. 이렇게 바쁜데 내 개인 시간을 쪼개서 디자인을 한다? 이 사람은 디자인에 무척이나 진심인 편이라는 거죠. 

단순히 ‘디자인’을 잘하는 사람은 많아요. 그냥 누군가 밥을 많이 먹을 수 있는 대식가로 태어난 것처럼 디자인 능력 역시 타고나는 사람도 많습니다. 하지만 개인 프로젝트는 내가 진짜 디자인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겁니다. 같이 일하는 입장에서, 또 조직과 팀을 운영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디자인을 ‘단순히 밥벌이로 생각하는 사람’과 ‘디자인이 정말 좋아서 내 개인 시간에도 디자인을 하는 사람’은 완전히 다르니까요. 여러분이 인사담당자라면, 둘 중 누구를 뽑으시겠어요? 팀원이라면, 누구와 일하고 싶나요?

ⓒ 디고디원찬 


학벌도, 인맥도, 운도 다 좋습니다만, 디자이너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포트폴리오입니다. 정말 여러분이 Behance를 통해 멋진 프로젝트를 꾸준히 업데이트한다면, 여러분이 꿈에서 그리던 그런 곳에서 먼저 연락이 올지도 몰라요. 저도 그랬고, 제 제자도 그랬거든요. 그러니 여러분의 가장 강력한 무기를 항상 갈고 닦으셔야 합니다. 포트폴리오는 최소한 6개월~1년마다 꾸준히 업데이트하세요. 기회는 언제 어디서 찾아올지 모르니까요.



<디자인? 디고디원찬에게 물어봐!> 시리즈 보러 가기



글ㅣ디고디원찬
디자이너의 고민을 들어주는 디자이너, 디자인과 겸임교수이자 미니멀리스트 스튜디오 대표, 이원찬입니다.(https://youtube.com/c/wonchan)



발행일 2022.1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