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고디원찬
호주 생활 10년을 버리고
한국에서 디자인 스튜디오를 오픈한 이유
저는 고등학교 1학년을 마치자마자 호주로 가서 10년이 넘도록 지냈습니다. 학업 목적도 있었지만, 그 시간이 길어지면서 자연스레 거기서 살 생각도 하게 됐죠. 호주하면 떠오르는 자연과 여유로움이 과장되지 않은 실제 모습이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셨습니다. 당시 일적으로 매우 바쁘고 중요한 시기에 있었기에 가족은 먼 타국에 있는 제게 그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어요. 좋은 성과를 거두고 가족에게 축하 소식을 전하려 전화했을 때 들었던 외할머니의 부고 소식은 저에게 큰 충격이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어요. ‘내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 사람일까.’ 이런 질문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죠. 결국 그 사건으로 인해 10년이 넘는 긴 외국 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들어오게 됐습니다.
디자인을 계속하고 싶다는 마음은 확고했지만, 어디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어요. 여러 가지 고민을 하던 제게 지인들은 ‘회사를 가서 경험을 쌓아라’, ‘한국은 결국 인맥이다’라는 현실적인 조언을 수도 없이 했죠. 그런데 어떠한 자신감에서인지 저는 호주에서의 경험으로도 충분히 나만의 디자인을 세상에 펼칠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했어요. 하나하나 맨땅에 헤딩하듯 사업자등록을 하고, 사무실을 얻고, 웹사이트를 만들고 발로 뛰어다니며 홍보를 이어나갔습니다. 그렇게 ‘미니멀리스트’ 스튜디오의 디자이너이자 대표로서 살아가게 됐어요.
주변에서 우려했었던 ‘한국에서의 경험'이 없었기에 몇 배나 더 고생하고 뛰어다녔지만, 야생에서(?) 하나하나 부딪히며 알게 된 실무 경험과 지식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산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지금 그 시점으로 돌아간다면 다시 할 자신이 있을까 고민하긴 하겠지만요!
ⓒ 디고디원찬
출발점 자체가 ‘고민을 들어준다'는 취지로 시작했기에 다른 디자인 유튜브 채널과는 많이 달랐어요. 어도비 프로그램을 다루거나 하는 부분은 디자이너가 할 수 있는 사회적인 고민과는 거리가 있었기에, 저는 이력서를 어떻게 쓰고 포트폴리오를 어떻게 해야 매력적으로 어필할 수 있으며, 프리랜서들이 계약서를 어떻게 쓰고 견적은 어떻게 내야 ‘호구'가 되지 않을 수 있는지 ‘디자이너의 고민'에 기반한 콘텐츠를 만들게 됐습니다.
‘고민’이라는 것 자체가 마냥 기쁠 수만은 없기에 제 영상은 때때로 무겁고 심각한 주제를 다룰 때도 많습니다. 그래도 22년의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는 지금, 어느덧 6만 명이라는 구독자분들이 저와 함께하게 되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