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kers | 일과 육아 둘 다 잡는 아빠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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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티클은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다> 시리즈의 2화입니다.


결혼이 나의 반쪽을 찾는 일이라면, 육아는 나의 반쪽을 나누는 일이다. 세상을 처음 맞이한 아이처럼, 부모 역시 육아를 통해 변화를 맞이한다. 잘나가는 마케터도, 남편도 아닌 ‘아빠’라는 이름으로.


2017년, 잘 다니던 BC카드를 그만 뒀다.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과장으로 승진한지 4개월, 결혼한지 2달만이었다. 누군가는 안정적인 회사를 그것도 좀 쉬엄쉬엄 다녀도 될 상황에 왜 그만두냐고 했다. 하지만 스스로 시장에서 살아남는 경험을 하고 싶었다. 그 뒤로 5년간 프리랜서로 살았다. 책 3권을 낸 강사이자 온/오프라인 콘텐츠 브랜드 ‘월간서른’의 대표로 살았다. 유명 콘텐츠 플랫폼, 포털사와 콘텐츠 제휴를 맺기도 하고 배민, CGV와 제휴 강의를 열기도 했다. 하지만 코로나가 찾아온 이후 주춤하는 시기를 보냈다. 오프라인 강의는 좀처럼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밤새 만든 유튜브 영상의 조회수는 생각만큼 오르지 않았다.


2021년 7월 아이가 태어났다. 


아이를 갖는다는 것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삶의 또 다른 영역을 찾는 일과 비슷했다. 쌍둥이를 낳은 지인의 말을 빌리자면, ‘아이를 갖기 전에는 행복의 최대치가 100이었다면 아이를 낳은 후에는 행복의 최대치가 120까지 올라간다’고 했다. 진짜였다. 인생 최대의 행복치를 찍는 것을 아이 얼굴을 보며 수시로 느낄 수 있었다. 아이를 갖기 전까지는 ‘인간이 아이를 왜 가져야 하는가?’ ‘부부가 생명을 만들어 내는 일은 누구에게 허락 받은 일인가?’같은 아직도 답내리지 못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왔다. 하지만 그런 질문을 떠올리지 않을 만큼 아이와 행복한 시간을 가지고 있다. 매일 커가는 아이의 얼굴을 보며 떠올리게 되는 것이 행복만은 아니었다. 이 아이와 함께 할 내 삶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하게 됐다. 5년을 이어 온 프리랜서 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맞을지, 또는 정말 내 인생을 유지할 다른 일을 찾는 것이 맞을지 깊게 고민했다. 결혼을 하고 나서도 아내의 존재가 내 커리어를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 중요한 선택에 앞서 늘 아내와 함께 논의하고 의견을 구하긴 했지만, 그래도 늘 내가 먼저였다. 아내와 나 둘다 성인이기에 각자의 선택을 존중하는 차원에서였다.

아이가 생기고 나니 그 전에는 흐릿하게 보였던 걱정과 고민이 4K 해상도로 눈 앞에 생생하게 펼쳐졌다. 작고 소중한 아이를 제대로 키우려면 지금보다 몇 배는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건강과 돈으로 이어졌다. 이 아이가 커서 대학도 가고 결혼도 하는 걸 보려면 건강히 살아야 한다. 대학 입학 등록금과 결혼 자금이라도 보태 주려면 돈도 꽤 벌어놔야 할 테고. 무엇보다도 아이가 커 가면서 아빠를 바라볼 때 ‘멋지게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잘 해내는 아빠’라고 생각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어졌다. 아이의 탄생이 아빠의 새로운 시작을 만들어 낸 셈이었다.

새로운 시작을 위해 했던 고민은 여러 가지였다. 얼마 전, 내가 했던 고민과 결이 닿는 영상을 만났다. 소설가 장강명 씨의 유튜브 강연 영상이었다. 그는 강연에서 직업 선택의 세 가지 기준을 제시했다. 첫 번째 기준은 ‘생계 유지가 가능한가’였다. 내가 몸 담고 있는 업계와 회사가 삶을 영위해 줄 수 있는 금전적 보상을 해 주는가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업계 평균 이상으로 내가 그 일을 잘할 수 있는 가’였다. 적어도 업계의 50%보다는 내가 그 일을 잘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 기준은 ‘그 일이 나를 담는 그릇이 돼 줄 것인가’였다. 아무리 돈이 되고 잘하는 일이어도 개인의 가치관과 다른 일을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잘하고 좋아하는 일은 무엇인가

코로나 시기를 겪으며 커리어와 수입 면에서 큰 성장을 하게 된 지인들이 있다. 유튜버, 강사, 작가 등 각기 다른 영역에서 일하는 그 친구들이 성공한 공통적인 이유를 곰곰히 생각했다. 여러 성공 비결 중 그들의 공통적인 특성을 찾았다. 바로 ‘잘하고 좋아하는 일을 10년 이상 해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난 어떤 일을 잘하고 좋아하는가?’ 의외로 쉽게 답이 나왔다. 마케팅이었다. 대학시절부터 관심을 갖고 직장을 다닐 때도 마케팅 일을 했다. 프리랜서로 일할 때도 스스로를 ‘마케터’라 칭했다. 내가 앞으로 할 일은 마케팅임을 강하게 확신했다. 마케팅 대행을 하거나 대행사에 들어가기보다 인하우스 마케터로 일하고 싶었다. 프리랜서를 그만두고 다시 조직에 들어가는 결심을 하기가 쉽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창업을 하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스타트업 대표가 감내해야 할 다양한 종류의 스트레스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좋아하고 잘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일) 중에는 글쓰기도 있었다. 꾸준히 하려면 함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기왕이면 내 삶의 중요한 영역인 육아를 주제로 쓰고 싶었다. 글쓰기에 관심 있는 5명의 아빠가 ‘썬데이 파더스 클럽’이라는 이름으로 모였다. 1년 가까운 시간 동안 육아를 주제로 매주 일요일 저녁마다 편지를 보내고 있다.

‘잘하고 좋아하는 일을 고민하는 것’과 동시에 ‘나에게 어울리는 곳’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나를 제대로 표현하고 담을 수 있는 그릇을 찾는 일이었다. 마케팅 일을 하기 위해 원티드를 통해 입사 지원함과 동시에 페이스북에 구직 사실을 알렸다. 그 결과 60여곳의 회사로부터 연락을 받았고, 그 중 30여개의 스타트업 대표 또는 임원을 만나 일명 ‘커피챗’을 할 수 있었다. 다양한 기준을 떠올리며 입사할 회사를 고민했고 결국 지난 5월부터 마이프랜차이즈에서 마케팅 팀을 맡고 있다.


스타트업에서 마케팅을 하고 육아를 하며 글을 쓰다

입사한 후 밤낮으로 일에 매진했다. 그 결과 회사의 마케팅 관련 주요 지표가 2배 이상 성장했다. 회사의 성과와 더불어 일에 대한 만족도 역시 매우 높다. 스타트업에서 좋은 동료와 일한다는 것이 이렇게 즐거운 일인 줄 그 전에는 미처 몰랐다. 썬데이 파더스 클럽은 EBS, 중앙일보 등 다양한 매체에 소개됐다. 그간 보낸 레터를 토대로 올 봄에는 출간을 앞두고 있다. 그리고 꾸준히 글을 써온 덕에 이렇게 원티드에 글을 쓰는 기회도 얻게 되었다. 혼자서는 16개월이 된 아기를 위해 매주 육아 일기를 쓴다. 기억에 남는 사진은 포토 프린터로 뽑아 일기장에 붙여 둔다.

일하고 글 좀 쓰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이냐 싶겠지만, 실상은 그리 만만치 않다. 재택하는 날도 있지만 사무실로 출퇴근하는 날에는 왕복 3시간을 길 위에서 보낸다. 퇴근 후 가장 먼저 하는 건 아이가 잠들기 전까지 놀아주는 일이다. 그리고 아이가 잠이 들 때까지 곁을 지킨다. 운이 좋은 날은 아이가 30분 만에 잠들기도 한다. 하지만 쉽사리 잠에 들지 못하는 날에는 1시간이 넘게 걸리기도 하고 때로는 아이와 함께 같이 잠에 드는 날도 있다. 잠이야 자면 그만일 텐데 이게 왜 문제가 될까 싶냐면, 회사 업무를 제외한 사이드 업무 그러니까 모든 종류의 글쓰기와 개인 이메일 확인은 아이가 잠든 이후에 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아이를 재우고 나와 밀린 개인 업무와 회사 업무를 마무리하면 새벽 1~2시가 훌쩍 넘곤 한다.

앞으로도 마케팅과 글쓰기를 꾸준히 해낼 것이다. 삶을 관통하는 커리어 주제가 정해진 느낌이다. 이 모든 것이 아이로부터 시작됐다. 다시 회사로 돌아가 마케팅에 집중하고 글쓰기를 통해 내 삶의 흔적을 남기기로 결정한 것도 모두 아이 덕분이라는 거다. 반대로 말하자면 아이를 위해서라면 일도 글쓰기도 (사실 그보다 더한 것도) 포기할 수 있다. 아이의 존재와 육아가 일의 원동력이 된다. 아이와 함께하는 삶이 정체성을 뚜렷하게 만들어 주는 계기가 된다는 것을 잊지 않으려 한다.

오늘도 난 아이와 가족을 위해 그리고 결국 나를 위해 최선을 다해 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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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클 요약>
  • '인간은 왜 아이를 가져야 할까?' '부부가 생명을 만들어 내는 일은 누구에게 허락받은 일일까?' 답은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깨달았다고 한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인생 최대의 행복치를 찍는 것과 같다.
  • 잘 다니던 대기업을 퇴사하고 프리랜서로 활동하던 중 코로나가 찾아왔다. 주변을 돌아보니 오히려 성공한 친구들이 있었다. 그들의 공통점은 '잘하고 좋아하는 일을 10년 이상 해냈다는 것'이다.
  • 마케팅과 글쓰기는 삶을 관통하는 커리어 주제였다. 프리랜서를 관두고 마케팅에 집중하고, 뉴스레터를 운영하며 글쓰기를 지속한 것도 아이 덕분이다. 아이와 함께하는 삶이 나의 정체성을 뚜렷하게 만들어 준 계기가 됐다.



글ㅣ강혁진
프랜차이즈 본사와 예비 창업자를 연결해주는 창업 플랫폼 ‘마이프차’를 알리는 일을 하고 있다. BC카드에서 마케팅, 광고, 전략 업무를 경험했고 콘텐츠 플랫폼 ‘월간서른’을 만들었다. «마케팅 차별화의 법칙», «마케터로 살고 있습니다», «눈떠보니 서른»을 썼다.


발행일 2023.0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