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kers | 기숙사, 친구네 집, 하숙집 그리고 나의 첫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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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티클은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다> 시리즈의 3화입니다.


스무 살, 전주에서 처음 상경했다. 대학을 입학하며 처음으로 독립해야 하는 상황을 맞닥뜨렸다. 다행히 집 구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학교에서 본가 주소지 기준 거리가 먼 순서대로 기숙사에 살 수 있는 권한을 줬기 때문이다.




대학 기숙사 4인실


당시 기숙사에는 2인실, 4인실 두 옵션뿐이었다. 당연히 4인실은 비교적 저렴했고, 2인실은 조금 부담 되는 가격이었다. 나는 비용을 조금이라도 아끼고 싶어 4인실을 택했다. 생활비에서 주거비에 대한 부담이 가장 컸기 때문에 4인실을 선택하는 데 조금도 망설여지지 않았다. 그렇게 두 학기를 4인 기숙사에서 보내고 군대에 입대했다. 전역 후 복학해서도 다시 기숙사 생활을 했는데 군대에서 단체 생활을 완벽하게 적응했기에 전혀 걱정되지 않았다. 하지만 학년이 점차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타인과 함께 방을 사용하는 것에 점점 불편을 느끼게 됐다. 누군가와 방을 함께 쓰기보다 ‘혼자만의 방’이 필요해진 것이다.




친구네 집 남는 방


기숙사 외 주거 형태는 그간 한 번도 고민해 본 적이 없었기에 다음 집을 알아보는 것에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다. 재정적으로 보증금과 월세를 충당할 만한 상황도 물론 아니었다. 친구들에게 조언을 구했는데 다행히 가깝게 지내는 친구가 친누나가 근무지를 옮기는 바람에 곧 이사를 가게 된다고 전했다. 그래서 집에 방이 하나 남게 됐으니 괜찮으면 쓰라고 했다. 학기를 시작할 때쯤 운 좋게 보증금 없이 저렴한 월세로 친구네 집에 들어가게 됐다. 

워낙 가깝게 지냈던 사이이기도 하고 방도 분리가 되어 함께 지내는데 큰 불편함은 없었다. 다만, 친구의 짐과 흔적이 남아있는 방에 들어가 살다 보니 ‘내 집 같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내 편의를 봐주고 충분히 이해해 준 친구였기에 그의 물건, 짐을 치워달라고 말하기가 어려웠다. 더 큰 문제는 그 짐을 옮길 곳도 마땅치 않았다. 그렇게 나는 친구 집의 남는 방에서 한 학기를 지냈다. 전세 계약이 끝나갈 무렵 휴학을 하기로 결심한 친구는 내게 집을 빼고 고향으로 돌아가야만 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애초에 길게 머물 생각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름 적응해 보려 했던 집에서 또 새롭게 거주할 집을 알아봐야 한다는 생각에 걱정이 앞섰다. 이 경험을 통해 ‘내 것으로만 채워진 방’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학교 앞 하숙집


학교 앞을 서성이다 우연히 전봇대에 부착된 전단지에 시선이 갔다. ‘하숙집’ 광고였는데 학교 도보 앞 3분 거리에 저렴한 월세와 매일 아침과 저녁 식사를 무료로 제공해 준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막 학기만 보낼 수 있는 학기제 방식의 계약제였다. 연락드리고 방문하니 의외로 방이 넓었고, 하숙집 아주머니가 정말 친절하셨다. 이사를 결정하고 첫 끼니를 먹었는데 제공해 주시는 밥도 정말 맛있었다. 과장을 좀 보태 엄마 밥을 먹는 것 같았다. 지금까지 거쳐온 집들에 비해 하숙집이 나와 가장 맞는 주거 타입이라 생각했다. 

이웃이라는 변수를 만나기 전까지는 하숙집에서의 생활은 대체로 만족스러웠다. 문제를 일으키는 이웃은 입주한 날부터 심상치 않았다. 본인의 짐을 복도에 늘어놓는 것은 기본이었고, 생활 소음 이상의 굉음을 방에서 내기도 했다. 공용 샤워실에서 사용 후 뒷정리를 하지 않는 일도 비일비재했고, 무엇보다 한 번 샤워를 하면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전까지 기숙사와 친구네 집에서 경험해 보지 못한 어려움을 처음 겪게 됐다. 이 시간을 통해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혼자 있을 수 있는 집’으로 이사를 결심했다. 




미용실에 딸린 원룸, 나의 첫 집


때마침 졸업 전, 취업을 하게 되면서 회사가 위치한 한남동 주변으로 집을 알아보기로 했다. 운이 좋게도 대학 동기 중 한 명이 이미 그 근처 동네로 이사를 해 먼저 살고 있었기에 동네와 부동산 정보를 공유해 줬다. 그때 처음 알게 된 동네가 바로 ‘보광동’이다. 해방촌, 이태원, 한남동은 많이 들어서 익숙했는데 보광동은 처음 들어본 동네이긴 했다. 지도상 이태원역과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한강이 바로 인접해 있고, 회사와도 거리가 무척 가까웠다. 여러 부동산에 연락하면서 가장 낮은 월세의 집부터 확인해 가며 부지런히 집을 찾아다녔다. 보광동은 숨겨진 보물 같은 동네였다. 서울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용산구의 중앙에 위치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네에 저렴한 전월세 집이 많아 놀랐다. 왜 그런가 해서 부동산을 다니며 여쭈니 오래된 주택들이 즐비하고 가까운 미래에 재개발이 예정이어서, 건물만 매매하고 관리를 잘 안 해 전월세라도 그냥 싸게 내놓은 집들이 많다고 말씀 주셨다. 돌이켜보니 서울에 첫 터를 잡은 대학 근처 동네 북가좌동도 재개발이 시작될 예정이었다. 내가 거쳐온, 거쳐갈 거주지는 재개발 예정 동네가 1순위라는 사실이라는 자각을 하게 됐다. 

본격적으로 첫 집을 알아보면서 보증금 300에 월세가 30인 매물을 발견했다. 동네 초입에 있는 미용실 뒤편에 딸린 집이었다. 중개사 분과 방문하니 오래된 주택 건물이긴 했지만 미용실과 집이 고정문으로 분리가 돼 있었고, 공간도 굉장히 넓었다. 상가 방면 도로 기준으로 봤을 때 1층이 맞긴 했으나 실제 건물 도면상 아래층에 반지층 집이 있었다. 상가 반대편 즉, 집 자체 기준으로 봤을 때는 엄연히 2층이라고 볼 수 있었다. 낡은 집이었지만 집의 큰 창으로 쏟아지는 낮의 채광이 참 마음에 들었다. 가격도, 위치도, 방의 크기도 마음에 들어 다른 집을 굳이 더 볼 필요는 없겠다 싶어 부동산에 연락해 계약 의사를 밝혔다. 처음으로 기숙사, 친구네 집, 하숙집에서는 해보지 못한 내 명의로 된 임대차 계약서를 작성했다. 부푼 기대를 안고 이사를 준비했다. 옵션이 하나도 없던 집이기에 작은 것 하나하나 직접 준비해야 했다. 캐리어 2개와 박스 몇 개로 정리됐다. 그간 거쳐온 공간에 가구를 들이지 않았던 나 자신에게 칭찬하고 싶어졌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어차피 곧 떠나야 할 집’이라는 생각 때문에 일부러 정을 안 붙인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봄이 끝나갈 무렵 이사를 했는데 첫 독립을 했던 이 집에서 오래 있지는 못했다. 이 집을 이사한 지 얼마 뒤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기 때문이다. 계약 당시 보이지 않았던 가장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다. 에어컨이 없어 큰 창으로 쏟아지는 햇볕 때문에 더워 잠에서 종종 깨기도 했고, 어떠한 가구를 구매할지 몰라 한참을 미루다 그냥 방에 옷과 짐을 쌓아두기도 했다. 더운 집과 쌓여가는 짐으로 어지럽혀진 집은 떠날 이유로 충분하지는 않았다. 결정적 요인은 ‘냄새’였다.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던 미용실에서 은은하게 풍겨져 나오는 미용 약품 냄새가 살면서 점점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구조상 미용실과 방은 문으로 구분이 돼 있지만 환풍기 구조가 온전치 않아 냄새의 일부가 집 안으로 들어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냥 ‘이 가격에 이런 동네, 이런 집을 어디서 구하겠어’ 하며 좀 참고 살아 보려고 했지만, 쉽사리 마음이 돌아서지 않았다. 

대학 졸업식 날 부모님이 서울로 올라오셨다. 그리고 아들의 생애 첫 자취 집이 궁금하셨는지 집에도 들르셨다. 아버지는 어렸을 때부터 ‘젊어서는 고생해도 되고, 조금 좁고 불편하게 살아도 다 견딜 수 있다.’라는 말씀을 많이 해주셨다. 그래서 저렴한 월세 집을 잘 구해 살고 있는 나를 뿌듯해하셨다. 그러나 아버지께서 집에 들어서시자마자 미용실에서 풍기는 약품 냄새 때문에 도저히 이 집에서 더는 오래 묵지 말라고 하셨다. 부모님의 한마디가 계속 신경 쓰였다. 그렇게 첫 집에서의 자취 생활에 대한 로망은 냄새로 인해 오래가지 못했다. 

‘내 것으로 채워진, 나만의 방이 있는 혼자 있을 수 있는 집’이라는 조건은 성립한 집이었으나 ‘누군가를 초대할 수 있는 집’은 아니었다. 초대할 수 있는 집의 요건은 여러 가지이겠지만 단순히 인테리어적으로 아름다운 것을 넘어 내가 떳떳할 수 있는 집이어야 했다. 그러려면 미용 약품 냄새는 단연코 치명적인 단점이었다. 그리고 손님이 오기 위해서는 침실과 거실이 적절히 분리돼야 했다. 나아가 여름과 겨울에도 초대할 수 있도록 집에 에어컨과 온전한 난방 시설은 필수적으로 갖춰져야 될 조건이었다. 첫 집을 떠날 때쯤 운 좋게 LH 청년 전세자금 대출 자격이 주어져 전셋집으로 이사를 갈 수 있게 됐다. 그렇게 첫 집에서의 여정은 짧게 마무리됐지만 여건상 이 동네를 떠나지 못했다. 여전히 나는 보광동 초입의 첫 집을 지나 매일 지금 사는 집으로 향한다. 지나칠 때마다 다독이고 되새긴다. ‘그때의 최선이었음을, 덕분에 성장했다’고 말이다. 이 세상에 완벽한 집은 없을 것이다. 그저 각자가 당시의 최선을 다해 선택한 집에 나를 맞추고, 설령 나를 집에 맞추지 못한다면 집이 나를 맞출 수 있도록 찾아가는 여정이 인생이 아니겠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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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클 요약>
  •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공간은 혼자 사는 내 집입니다. 소음도, 불편함도 없는 나만의 집은 중요합니다.
  • 내가 좋아하는 것과 가구로 채워진, 나 혼자 있을 수 있는 집이 마련됐다면 그 집에 누굴 초대할 수 있을 정도로 말끔한지도 확인해 보세요.
  • 최선을 다해 선택한 집에 나를 맞추고, 집이 나를 맟출 수 있게 찾아가는 인생이 여정이 아닐까요?



글ㅣ박찬빈
이름의 이니셜 CBP로 자기 자신을 설명한다. MGRV에서는 커뮤니티, 브랜드, 플레이스(장소)와 관련된 일을 하며 일상에서는 커피, 바이시클(자전거), 포토(사진)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집에 대한 이야기를 꾸준히 기록해 찬빈네집 «Vol.1 촌스러운 집의 낭만», «Vol.2 촌스러운 동네의 낭만»을 펴낸 독립출판 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발행일 2023.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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