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내 여전히 존재하는 갑을관계
갑을 관계는 거의 모든 조직에 존재한다. CEO 혹은 상사가 ‘우리 조직은 갑을 관계가 없어요’라고 주장해 봐야 그 존재 유무는 갑을 관계가 존재한다고 느끼는 을에 의해 결정된다. ‘요즘은 제가 오히려 을이에요’라고 하소연하는 임원이 많지만, 실제 비즈니스 코칭을 하며 일상을 들여다 보면 여전히 조직에서 갑질을 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상사와 부하, 조직에 먼저 합류한 사람과 나중에 합류한 사람, 힘이 센 주요 부서와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부서, 발언권이 강한 임원과 반대의 경우, 오너와 친한 직원과 그렇지 못한 직원 등의 역학관계가 복잡하게 이루어져 있는 곳이 조직이다. 이런 관계를 잘 살펴보면 갑을 관계가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형성돼 있다. 조직 내 어떤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자신이 을이 되지만, 또 다른 사람에게는 갑이 되곤 한다. 아예 ‘내가 그 오랜 시간 동안 을로 살아왔는데 이제는 갑질 좀 해도 되지 않나요?’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갑인가, 을인가
흔히 갑질이라고는 하지만 을질은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이 스스로 갑이라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만일 본인이 조직에서 갑질을 한다는 피드백을 받게 되면 아마 굉장히 큰 충격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갑질을 당했다고 느끼는 을이 꽤 많은 것은 재미있는 현상이다. 가장 갑을 관계를 많이 느끼는 경우는 역시 상하 관계일 것이다. 부서장, 팀장 혹은 상사나 선배는 갑이고 후배나 부하 직원은 을의 관계가 자연스레 형성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이 글을 쓰는 순간 나도 그 동안 내게 갑질을 했던 상사가 여러 명 떠올라 밥맛이 떨어진다.)
영원한 아랫사람은 없다. 누구나 경력이 쌓이고 때가 무르익으면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근속연수가 쌓이면서 승진도 하고, 직책도 맡게 된다. 자신이 조직 내 지위와 결재권, 인사고과권 등을 이용해 갑질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살피고 또 살펴야 한다. 가장 어리석은 사람은 자신이 을이었던 시절의 기억을 잃어버린 사람이다. 주위를 살펴보면 그런 사람이 의외로 많다. 개구리 올챙이적 시절을 모르는 사람보다 더 어리석은 사람은 자신이 어린 시절 올챙이가 아니라 어린 개구리였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좌충우돌 실수투성이에다 여러모로 서툴렀던 자신이 지금처럼 성장한 것은 갑질하는 대신 자신을 참고 기다리고 지도해준 선배들 덕분이라 생각하고, 지금 서툰 후배에게 갑이 아닌 멘토 혹은 코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독수리도 기는 것부터 배우고 유도도 낙법부터 배우는 것을 생각하고, 자신도 수많은 실수를 통해 성장했음을 깨달아 관대함과 아량을 품어야 한다.
후배 입장에서도 스스로 을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어차피 직장에서는 내가 을인건 사실이지 뭐’라고 생각하는 것은 일종의 패배주의다. 아랫사람의 위치에 있을 때부터 미리 살피고 준비해야 갑질하는 선배가 아니라 믿고 의지할 만한 선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의 역할을 잘 감당해내야 한다. 자신의 기본적인 역할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 놓고 자신이 갑질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우선 자신의 상사를 최대한 서포트해야 한다. 조직에서 성공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자신의 상사를 승진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 순서는 바로 자신이기 때문이다.
혹시 갑질하는 선배가 있더라도 뒤에서 뒷담화만 하고 있어서는 곤란하다. 나중에 자신이 상사의 위치에 서게 될 때, 지금 자신이 욕하고 있는 그 상사보다 더 잘 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확률상으로는 오히려 그 반대의 경우가 될 확률이 훨씬 높은 것이 현실이다. 지금 내뱉고 있는 상사 험담은 시차를 두고 자신에게 돌아온다. 그것도 자신이 성공했을 경우에 그런 것이다.
기본적으로 상사나 선배는 후배에게 갑질하는 것이 아니라 멘토와 코치 역할을 하면서 잘 이끌어주고, 후배는 그런 선배를 본받기 위해 실력과 경험을 쌓는 것이 필요하다. 아무리 조직에서 직급이 파괴되는 분위기가 확산된다 해도, 사원이나 부장이나 다 같이 ‘프로’, ‘책임’, ‘선임’등의 호칭이라 불린다 해도, 아니면 다 같이 실명으로 불린다 해도 입사 1년 차가 하는 일과 10년 차가 하는 일과 책임에는 분명 차이가 있게 마련이다.
영원한 갑을관계는 없다
조직뿐 아니라 업무를 수행하면서 관계를 맺게 되는 타 회사, 이해관계자들과의 사이에서도 갑을 관계는 존재한다. 회사에서 구매를 담당하는 담당자와 그 회사에 납품을 해야 하는 영업사원 사이에는 알게 모르게 이런 갑을 관계가 형성되어 있다. 혹시 자신의 업무, 책임 때문에 갑의 위치에 서게 되는 경우는 더 스스로 조심하고 살펴야 한다. 상대방은 을이 아니라 나와 정식으로 일하는 비즈니스 파트너로 생각하고 늘 존중해야 한다.
채용을 자주 하는 회사에서 채용 담당을 하던 어떤 직원은 서치펌들에 늘 갑질을 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 그러나 정작 그가 회사를 나오게 돼 평소 자신이 한마디 하면 덜덜 떨던 서치펌들에 이력서를 보냈을 때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고 오히려 차가울 정도로 무시하더라는 사례는 우리 주위에 많다. 또 구직자는 취업을 위해 서치펌을 통해 취업할 때 서치펌은 구직자를 많은 후보자 중 하나로, 표현이 좀 거칠지만 돈벌이 수단, 상품 정도로 여겨 제대로 된 커뮤니케이션은커녕 자존심을 건드리고 기분 나쁘게 했다가 정작 당사자가 꽤 괜찮은 회사의 인사담당임원으로 가는 바람에 주요 거래선이 끊겼다는 사례도 있다.
요즘은 ‘고객 만족’도 중요하지만 ‘직원 만족’을 더 우선시하는 경우가 많다. 내부 직원이 만족해야 근본적으로 고객을 만족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정당하게 일하는 직원들을 희생시키며 억지로 만들어 내는 고객 만족은 한계가 있다. 자신의 직원들을 노예로 여기면서 주인의식을 가지라는 회사는 주위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갑을 관계의 종말
전반적인 사회가 갑과 을의 관계로 이뤄져 있다. 갈수록 돈의 위력이 강해지는 요즘은 몇 푼어치 돈을 지불하는 입장이 되면 바로 목소리가 커진다. 불과 몇 천원의 음식값을 지불하고 배달을 시키면서 식당에 이것저것 요구하며 갑질을 하는 사례는 주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갑을 관계란 갑질을 하는 사람의 못된 성품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회에서 자신이 속한 지위와 처지에 의해 자연스레 갑이 되는 경우도 있다.
자식에게 혹은 동생에게 갑질을 하는 사람은 없다. 함께 일하는 직원이 조금 부족하다고 해도 가족이라 생각하면 다수 갑질이 해결된다. 비록 근속 연수가 몇 년 되지 않아도 하루의 대부분을 함께 시간을 보내는 사람은 인생에서 의미있는 존재다. 불과 1년을 같이 보낸 친구들과 졸업 후에도 오랜 시간 반창회, 동창회를 하며 평생 우정을 나누는데 몇 년 혹은 그 이상의 긴 시간을 동고동락하는 사람들은 더 애틋해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