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에 대한 불안함이 나의 성장을 도와
기자에서 콘텐츠 회사 대표까지의 커리어 과정이 궁금해요.
저는 2003년에 중앙일보 공채로 입사해 주로 경제 산업부에서 일했어요. 기자가 아니라면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에게 무엇이든 질문할 수 있다는 점이 너무 좋았죠. 하지만 신문 산업이 점차 사양산업이 되는 상황에서 기자라는 직업이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까라는 불안함이 늘 있었어요. 이 고민이 커져서 잠을 설치기도 했고 서른 남짓이었던 7년 차에는 직업을 바꿀까도 생각했죠. 헌데 아무리 봐도 기자보다 좋은 일을 못 찾겠더라고요. 지금 당장 이 일을 그만하라면 막막할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새로운 마음을 먹었어요.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현재의 기쁨을 포기하지 말고 돌파구가 안 생기면 그건 그때 고민하기로. 대신 올해의 나는 작년보다 더 나은 기자가 되어야 한다는 목표를 세웠어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계속 일에 대한 고민을 하셨던 거네요.
맞아요. 그렇게 생각을 바꾸고 일하다 보니 더 이상 기사 쓰는 것이 어렵지 않고 배울 만큼 배운 거 같은 시점이 왔어요. 작년과 올해가 다르지 않고, 내년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거 같았죠. 성장이 막힌 느낌이었어요. 그게 13년 차쯤이었던 거 같아요. 그때 ‘미래 직업 리포트’라는 기획을 진행하게 됐어요. 미래 산업과 일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저는 이 기사를 준비하면서 요즘 직장인은 누구나 자신의 일에 대한 불안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죠. 기획 기사가 끝난 후에도 관련 주제로 계속 콘텐츠를 생산하고 싶어 회사에 아예 관련 팀을 만들자고 제안했어요. 그때 만든 서비스가 ‘폴인’이에요. 자신의 성장에 관심이 많은 사람을 위해 비즈니스 트렌드와 일에 대한 콘텐츠를 발행하면서 저 역시도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었어요. 그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 회사를 창업하게 됐고요.
기자를 하면서는 일에 대한 고민과 불안감이 컸는데, 폴인 팀을 이끌 때는 어떠셨나요?
적어도 작년과 같은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은 안 들었어요. 서비스 기획과 제작, 다양한 이벤트와 신규 사업, 그리고 조직 관리까지 모든 것이 새로웠으니까요. 스트레스 때문에 잠을 못 자기도 하고, 제 부족한 리더십을 고민할 때도 있었지만 제가 성장하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폴인을 하기 전과 후의 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죠.
그때의 경험이 사업을 하는 데에도 많은 도움이 될 거 같아요.
무엇보다 조직을 이끌었던 경험이 도움이 되고 있어요.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좋은 팀장은 아니었어요. 처음 1년은 특히 더 별로였고요.(웃음) 리더로서 열의는 높은데 팀원들의 마음을 들여다 볼 줄은 모르고, 결과만 중요시하는 팀장이었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출근 준비를 하다가 문득 ‘팀원들 입장에서는 우리 서비스가 잘 되는 것보다 본인이 잘 되는 게 더 중요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들에게 회사는 커리어 과정 중 하나일 테니 회사보다는 스스로의 성장이 중요한 게 당연하잖아요. 저는 그전까지는 회사 입장에서, 서비스를 키우려는 욕심으로만 팀원들을 바라봤어요. 그러다 보니 왜 이렇게 일하지, 이러다 퇴사한다고 하면 어떡하지, 인력 공백이 생기면 서비스에도 문제가 생길 텐데라는 걱정만 했죠.
그런데 관점을 달리하니 새롭게 보이더라고요. 팀원들 입장에서는 평생 한 곳에서만 일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대신 근무하는 동안 많은 것을 배우고 싶어 할 것이다, 그럼 나는 무엇을 도와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죠. 이렇게 접근하니 그동안 섭섭했던 팀원들의 행동이 이해가 되더라고요.
그 후 1:1 미팅을 하면서 처음으로 ‘현재 하는 일을 통해 어떻게 성장해가고 싶어요?’라는 질문을 던졌는데 놀랍게도 대화가 훨씬 편해지고, 그 후 일도 수월하게 진행됐어요.
현재 회사를 이끌면서도 같은 관점으로 직원들을 바라보시나요?
물론이에요. 저는 직원들이 일을 통해 배우고, 그다음 커리어 스텝을 위한 자산을 쌓아갔으면 좋겠어요. 신규 직원이 입사하면 우리 회사에서 어떻게 성장하길 원하는지, 퇴사하는 날 어떤 모습으로 이별하면 좋을지에 대해 이야기해요. 이제 막 입사한 직원에게 퇴사를 말한다고 하면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이러한 대화를 통해 앞으로 우리 회사에서 어떻게 일할지, 어떤 경험을 쌓을지도 자연스럽게 생각할 수 있어요.
ⓒ 롱블랙
롱텀 비전이 조직의 기준이 되다
베테랑 기자였지만, 대표는 처음이잖아요. 대표가 된 후 특히 어떤 부분을 노력하고 계시나요?
직원들이 한 방향을 바라보고 움직이도록 신경 쓰고 있어요. 일을 하다 보면 틀린 결정을 내릴 수도 있고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올 수도 있는데 조직의 코어 밸류가 없다면 이럴 때마다 서로를 탓하고 분위기가 나빠지기 쉬워요. 하지만 조직이 단단하다면 작은 실수나 실패는 우리를 성장시키는 과정에 불과하죠.
회사를 창업하면 방향성을 정립하고, 코어 밸류를 정하는 게 정말 중요할 거 같아요. 새롭게 시도하는 일도 많고, 예상치 못한 상황도 많을 테니까요.
맞아요. 코어 밸류는 우리의 결정에 기준이 돼 줍니다. 또한 회사의 롱텀 비전도 중요해요. 롱텀 비전은 우리가 왜 이 일을 하는지에 대한 답을 주니까요.
롱블랙은 ‘깊이 있는 지식을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고, 이를 통해 사람을 성장시키고, 그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돕는다’라는 비전을 가지고 있어요. 그리고 일하는 이들이 탐험하듯 즐길 수 있는 새로운 콘텐츠를 찾아내고 그들이 자신의 일을 다시 발견할 수 있도록 한다는 미션이 셋팅돼 있고요. 이렇게 비전과 미션을 완성하니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그 안에서 균형감 있게 정리되더라고요. 콘텐츠를 만들 때는 ‘과연 우리가 하고자 하는 콘텐츠’인가, 새로운 서비스를 기획할 때는 ‘롱블랙이 태어난 이유에 맞는가’라는 기준이 돼요. 한마디로 조직의 혼란을 막아주는 역할을 합니다.
현재 롱블랙은 많은 사랑을 받는 브랜드가 됐습니다. 그 비결이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우선 매일 하나의 콘텐츠가 발행되고, 하루가 지나면 못 본다는 차별화된 콘셉트가 통했어요. 다양한 구독 서비스를 기획해온 저희 부대표님의 아이디어예요. 무제한 지식 콘텐츠는 봐야지, 봐야지 하면서 자꾸 미루게 된다는 페인이 있어요. 마치 한 달 내내 무제한으로 갈 수 있는 헬스장을 결국엔 몇 번 안 가는 것처럼요. 언제든지 와서 무제한으로 볼 수 있는 콘텐츠가 아니라, 오늘 읽지 않으면 아예 못 읽는다는 강제성을 작동시켰어요. 공동창업자인 제가 생각해도 천재적인 발상이었죠.
여기에 최고 퀄리티의 콘텐츠가 더해졌어요. 하루에 하나밖에 안 보는데, 그 콘텐츠가 별로라면 몇 번 읽은 다음에는 안 읽고 싶어지겠죠. 그래서 콘텐츠 팀의 부담감이 엄청나요. 콘텐츠를 제작하는 데에 기존 언론사는 상상도 못할 리소스를 투입하죠. 초창기보다 구독자는 몇 배나 늘었는데 여전히 방문·완독·공유 등의 수치가 유지되고 콘텐츠 평점이 올라가는 건 바로 이러한 노력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