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브랜드를 쓰기로 했습니다.
“결국 ‘장르’라는 틀에서 벗어난, 완성도에서 경지에 오른 글은 경쟁력 있는 정보성과 문학적 아름다움을 동시에 느끼게 해주는 것 같아요.”
Q. 진영 님은 대학교에서 문학창작학과를 전공하셨는데요. 어떤 이유로 문학을 하기로 결심하셨나요? 쓰고자 했던 문학은 어떤 풍경이었는지 너무도 궁금합니다.
A. 저는 사회 부조리한 면을 고발하는 문학을 재밌게 썼어요. 내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이야기에 빗대는 작업이 좋았고요. (Q. 좋아하시는 소설 한 권만 말씀해 주신다면요?) 도스토옙스키 작가의 <죄와 벌>이요. 고등학생 때 읽은 소설인데, 인생의 지향점을 바꾸는 계기가 된 작품이에요.
Q. 저는 국어국문학과를 전공했는데요. 주변에서 물어보곤 했습니다. “국문학도는 어떻게 취업해?”라고요. 돌이켜 보면 저는 아무 준비 없이 바로 취업 전선에 합류했던 것 같습니다. 진영 님은 어떠셨나요? 개인 작품 활동에 몰두할지 혹은 전공을 살려 취업할지, 고민이 길었나요?
A. 사실 저도 제가 전공을 살리게 될지 몰랐어요.(웃음) 제가 대학생 때 학과 학생회장으로서 학교 앞 독립 서점에서 문예 창작 행사를 자주 진행했는데요. 그 독립 서점을 운영하셨던 분이 롱블랙 부대표님이에요. 그리고, 제가 졸업할 무렵 부대표님이 2021년 봄에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 콘텐츠 관련 업무를 담당할 인턴을 구하고 계셨어요. 부대표님은 제게 연락해 괜찮은 사람이 없냐고 물어 보셨고, 저는 제가 해 보겠다고 말했죠. 그 후로 서류와 면접을 준비해 2021년 4월, 롱블랙에 처음 입사한 인턴이자 직원이 됐어요.
Q. 그렇다면, 롱블랙 에디터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고 있나요?
A. 롱블랙 에디터는 독립적으로 일하는 시간이 대부분이에요. 기사를 기획하고, 인터뷰이 혹은 브랜드를 섭외하고, 기사를 작성해 최종 발행까지 모두 개인 책임 하에 진행됩니다. (Q. 본인이 기획한 기사의 실제 진행 여부도 개인이 결정하나요?) 매주 진행하는 기획 회의에서 팀원들의 피드백을 듣고 최종 결정해요. 기사 헤드라인은 물론, 대략의 개요와 핵심이 되는 인사이트를 정리한 기획안을 상세하게 준비해야 하죠. 롱블랙 아티클이 보통 8,000~9,000자 분량으로 긴 편이기에 주제가 되는 인터뷰이나 브랜드가 굉장히 입체적이고 흥미롭게 그려져야 하기 때문이에요.
Q. 그러한 에디터 업무를 소화하는 데서 나아가, 제작한 유료 콘텐츠를 평가 받아야 하는 압박감도 있을 것 같아요.
A. 모든 에디터가 부담감이 클 거예요. 돈을 내고 읽을 만한, 가치 있는 아티클이라는 것을 증명해야 하니까요. 롱블랙이 타 콘텐츠 플랫폼보다 구독료가 저렴할 수 있어도, 롱블랙은 하루에 하나의 아티클이 플랫폼 메인 화면에 단독으로 보이기 때문에 부담감이 남다르죠. 모든 관심과 피드백이 한 에디터에게 쏟아지니 아티클을 발행하기 전, 팩트 체크는 특히 신경 쓰고 있어요.
Q. 문학 작품과 기사, 모두 스토리텔링이 필요하지만 타깃과 목표가 다른 만큼 롱블랙의 글쓰기에서 큰 변화가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그 변화의 과정은 어떠셨나요? 무엇이 가장 힘들었고. 어떻게 발맞춰 가셨는지 듣고 싶습니다.
A. 문학이 넓은 길에서 좁은 길목으로 천천히 들어서는 과정이라면, 비즈니스 콘텐츠는 뾰족한 개념을 제시하고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이야기를 통해 길을 넓혀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처음에는 많이 헤맸어요. 내가 보여주고 싶은 상을 먼저 보여주고, 섬세한 묘사로 장면을 풀어가는 소설에서의 기법을 기사에 그대로 적용하니 메시지가 모호해지더라고요. 시간이 더 흐른 후에는, 장르를 막론하고 완성도 높은 글은 메시지도 명확하고 묘사도 풍부한 글이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롱블랙을 구독하는 이유 중 하나로 ‘인사이트가 있는 비즈니스 기사인 동시에 문학적인 콘텐츠’라는 점이 꼽히기도 하고요. 예를 들어, 제가 제주도 서귀포에서 활동하는 조경사를 인터뷰한다고 가정한다면, 그에게서 듣는 인사이트와 더불어 그 조경사가 꾸리는 정원은 어떤 모습인지 꼬리풀의 움직임 등으로 묘사해 함께 보여주겠죠. 저는 문학과 비즈니스 콘텐츠가 서로 다른 면도 있지만, 장르라는 틀에서 벗어난, 완성도에서 경지에 오른 글은 결국 경쟁력 있는 정보성과 문학적 아름다움을 동시에 느끼게 해주는 것 같아요.
에디터가 목소리를 내는 이유
“비즈니스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꼭꼭 씹어서 전달할 사람이 항상 필요한 것 같아요.”
Q. 최근에는 UX Writer, 콘텐츠 전략가 등 글로벌 기업에서 강세를 보이는 이 직무들이 국내에서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진영 님은 에디터 커리어를 좀 더 키워보고 싶다고 하셨어요.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가볍게 이야기 나눠보긴 했는데 조금 더 자세하게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A. 저는 아직 에디터로서 배워야 할 게 많다고 생각해요. 인터뷰이의 말을 매끄럽게 정리하고 명확한 메시지로 다듬어 내보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인터뷰이가 종사하는 산업에 대해 깊이 있게 이해하고 넓은 시야로 대화를 이어가는 유능한 에디터가 되고 싶어요. 그런 에디터가 쓰는 문장과 문장 사이에는 여유가 느껴지더라고요.
Q. 올해 1월, 롱블랙에서 에디터 스쿨 수강생을 모집했습니다. 에디터 직무를 준비하고 있는 누군가에게 조언이나 팁을 주신다면요?
A. 생각보다 자신의 주장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지 못하는 사람이 적지 않아요. 저도 그 부분은 항상 숙제인데요. 쓰고 있는 글의 주제에 대해 오래도록 생각해 보고 자신만의 관점을 가져 본 적이 없다면, 독자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글을 완성시키게 되는 것 같아요. 인터넷에서 찾아 본 정보들만 나열하는 기사가 되기 쉽죠.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브랜드, 트렌드 이슈와 관련해 평소 내 생각을 적어두는 습관이 필요해요.
Q. 진영 님께서는 본인을 어떤 스타일의 에디터라고 생각하나요? 저는 실제 성격과는 다르게 텍스트는 다정하게 다듬어 쓰고,(웃음) 신규 기획/프로젝트는 과감하게 추진하는 스타일의 에디터인 것 같습니다.
A. 솔직히… 에디터가 보여줘야 하는 모습과 제 성격이 완전히 일치하지 않아요. 저는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는 스타일이거든요.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묻고 귀찮게 하는 걸 성격상 힘들어해요.(웃음) 그런데, 에디터에겐 그런 역량(성향)이 있어야 하니까 인터뷰할 때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궁금한 게 많고 까다로운 인터뷰어가 되려고 해요. 인터뷰이의 다른 페르소나를 보여줘야 하니까요. 다행인 점은 글 쓰는 시간에는 저다워져요. 엉덩이가 가볍지 않고 침착하게 쓰는 일이 잘 맞거든요.
Q. 밸런스 게임해 볼까요? 기획력 좋은 에디터 vs 문장력 좋은 에디터, 두 모습 중 하나를 선택한다면 어느 쪽이고 싶은가요?
A. 저는 문장력 좋은 에디터요. 기획 회의에서 팀원들과 머리를 맞대면 신선한 아이템이 나와요. 팀 내 트렌드에 밝고, 이를 수준 높은 감도로 바라보는 에디터에게 의견과 조언을 구하면 돼요. 그런데 기획 아이템을 요리하는 건 개인 역량에 달려있죠. 저는 요리 잘하는, 최상의 결과물을 내는 에디터가 되고 싶어요. 이건 고민의 여지가 없는 것 같아요.
Q. 다소 무거운 주제를 던져 볼게요. 비즈니스에서 에디터가 왜 필요하다고 생각하나요?
A. 비즈니스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꼭꼭 씹어서 전달할 사람이 항상 필요한 것 같아요. 물론 전문가 시선으로, 전문 용어를 활용해 전개하는 기사도 가치가 있어요. 그런데 더 많은 사람, 특히 제 나이 또래 사람들이 쉽고 재미있게 비즈니스 콘텐츠를 읽으려면 에디터 역량이 개입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스피커가 아니라, 에디터의 편집력으로 대중이 세상 돌아가는 이슈를 알고, 자신의 삶에 적용하도록 이끌어야 하죠. 한 예로, '사람들의 마음을 이끄는 비즈니스'가 될 수도 있어요. 비즈니스에 어떤 진정성을 녹일 지 몰라 헤매는 사람의 근본적인 문제를 콘텐츠가 해결해 주지 못하지만, 새로운 시도와 전략을 제안해 줄 수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