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kersㅣ우리가 사이드 프로젝트를 시작한 진짜 이유

&Workersㅣ우리가 사이드 프로젝트를 시작한 진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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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티클은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다> 시리즈의 6화입니다.


마케터, 인사 담당자, 디자이너라는 본캐를 가진 출판팀 012B. 일단 해보자라고 시작했던 일이 어엿한 사이드 프로젝트가 돼 부캐를 만들어 줬다. 처음 시작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으리라.


ⓒ 012B팀


시작은 여행의 기록을 남기는 것이었다. 일기장에 적어 둔 이야기, 찰칵찰칵 쉴 새 없이 남겼던 사진과 영상. 이미 그날의 기록을 빼곡히 저장해 놓았지만 큰맘 먹고 다녀온 여행 기록을 내 노트에만 남겨두기엔 못내 아쉬운 마음이었다. 그때 정돈된 형태로 물성화 시키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그래야 그때의 마음이 그 공기 그대로 남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택한 작업이 ‘출판’이다. 

보통 독립출판은 기획부터 글쓰기, 교정·교열, 편집 디자인, 인쇄, 서점 입고 등의 전 단계를 오롯이 혼자 해야 한다. 글의 뼈대를 잡아주는 기획자가 있는 것도 아니요, 내 글을 편집, 교정 교열해 줄 이도, 판매를 도와줄 사람도 없다. 그래서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던 게 사실. ‘4주 동안 나만의 책 만들기’라는 워크숍이 눈에 들어왔던 것도 그 이유였다. 워크숍을 통해서 글쓰기 작업부터 책 제작 프로세스, 판매 등의 전 과정을 배울 수 있었고 관심사가 비슷한 다양한 사람을 알게 됐다. 

혹자는 왜 독립출판이냐고도 묻는다. 일반 서점에 놓인 책도 잘 안 보는데, 아는 사람만 겨우 찾아보는 독립출판물은 조금 아쉽지 않냐고 말이다. 하지만 우리 이야기는 정형화된 수없이 많은 책이 즐비한 대형 서점보다는 골목 귀퉁이에서 묵묵히 자신의 몫을 하고 있는 독립 책방이 어울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누군가와 내용을 조율하고 수정할 필요도 없으니 나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전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일단 해보자’라고 시작했던 독립출판이 어엿한 사이드 프로젝트가 되어 회사에서의 본캐와 함께 나를 설명해 주는 부캐가 됐다. 혼자, 때로는 또 같이 만들어가는 출판팀 012B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 012B팀


012B팀의 탄생, 함께 해서 가능한 프로젝트 


현정 012B라는 이름은 90, 91, 92년생이 책(BOOK)을 만든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요. 0(현정)과 1(이유)은 직장 동료였고, 2(희연)는 0과 1이 함께 참여한 독립출판 워크숍에서 만난 사이예요. 저희 세 사람은 경험한 것을 글, 그림, 사진으로 기록하고 사람들과의 이야기를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어요. 함께 한지도 어느덧 만 3년이 됐고 부지런히 달려온 시간을 증명하는 공저 두 권과 여덟 번의 북페어 참가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희연 어쩌다 보니 마케터, 디자이너, 인사 담당자 이렇게 각각 다른 업무를 하는 사람들이 모이게 됐어요. 각자의 역할이 조금씩 다른데 그래서 오히려 합이 좋은 거 같아요. 기획 단계에서 저랑 현정 님이 끝도 없이 아이디어를 쏟아내면, 이유 님이 ‘워워’하면서 정리하고 방향을 잡아주는 역할을 해요. 책 디자인은 제가, 마케팅은 현정 님이 주도하고요. 

이유 팀으로 활동하다 보니 절대 포기할 수가 없다는 장점이 있어요. 내가 작업 안 하면 제작 일정이 늦춰지고 책 내용이 반 토막 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끝까지 쓰게 되죠. 그리고 북페어 참가라는 목표를 가지고 작업을 하면 마감일이 정해져 있으니까 시간을 엄수하게 되더라고요. 이 또한 팀 활동이 준 장점이라고 할 수 있어요.


ⓒ 012B팀


우리가 사이드 프로젝트를 시작한 진짜 이유 


사람들은 다양한 이유에서 사이드 프로젝트를 한다. 월급 외 수입이 필요해서, 커리어 성장에 도움이 돼서, 직장에서의 스트레스를 해소하거나 또 다른 재미를 위해. 012B팀도 비슷한 이유에서 사이드 프로젝트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한데 확실한 건 ‘월급 외 수입’이 주된 이유는 아니라는 점이다. 독립출판물에 대한 관심이 커진 건 사실이지만 책 자체에 대한 수요가 낮고 기성 출판물에 비해 제작 부수가 훨씬 적으니 전부 판매한다고 해도 제작비를 상회하는 정도의 매출을 기대할 수밖에. 여기에 SNS 홍보나 책방 사장님들과의 커뮤니케이션, 책 포장·배송에 쓰는 시간까지 고려하면 분명 밑지는 장사다. 심지어 현정 님은 북페어 셀러로 참여할 때 파는 책보다 사는 책이 더 많다고. 


현정 직장인이기 때문에 이미 안정적인 수입원이 있잖아요. 워킹데이에는 열심히 본캐로 일하고 그 월급으로 창작 활동을 하는 거죠. 그래서 해보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할 수 있어요. 제가 다루고 싶은 주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매출에 대한 걱정이나 누군가의 컨펌 없이 마음껏 펼칠 수 있죠. 그리고 회사 일로 지쳐 있을 때 출판 활동이 주는 에너지가 커요. 예를 들어, 책방에서 재입고 요청을 받는다거나 SNS에서 제 책 리뷰를 발견하면 그날은 가만히 있어도 웃음이 절로 나죠. 

이유 내 삶이 직장에서의 롤로만 채워지는 게 아니라 독립출판 작가로 펼쳐질 수 있다는 점이 좋은 거 같아요. 작가로 글을 쓸 때에는 평소에는 쓰지 않는 뇌의 근육을 쓰는 느낌이거든요. 이런 전환이 누군가에게는 피곤함을 줄 수 있으나 저는 그 자체에서 에너지를 받곤 해요. 

희연 내가 작업자이자 클라이언트가 되는 것은 괴롭지만 또 즐거운 일이에요.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때에는 답답함이 밀려오지만 회사 일에만 몰두하다 보면 스스로 건조해진다고 느낄 때가 많은데 그때 독립출판이 나라는 사람의 섬세함을 재조명해 주는 것 같아서 정신적으로 도움이 돼요.


ⓒ 012B팀


처음이라 좋았던 그때 그 시간 


우리에겐 언제나 ‘처음’이 있다. 처음이란 단어는 그 자체만으로 설렘을 주고, 어설픔에 대한 이해를 구하는 장치가 되기도 한다. 처음이니까 기대했던 것도 있고 그만큼 실망했던 기억도 있다. 서툴러서 후회했던 일도, 제법 괜찮아서 으쓱했던 경험도 있다. 012B팀은 처음 책을 만들었던 때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현정 제 창작물을 상상하는 순간이 가장 설렜어요. 독립출판물은 주제만큼이나 판형, 디자인 등 형태도 굉장히 다양한데 내 이야기를 어떤 식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를 상상하면 잠이 안 올 정도였거든요. 모든 과정을 거친 다음, 가제본을 손에 잡았을 때 기분이 너무 좋더라고요. 

희연 일단 설레었어요. 책 만들기라는 숙원 사업을 드디어 푸는구나 싶었거든요. 또한 클라이언트를 위한 작업이 아닌 온전히 나를 위한 창작을 한다는 점도 좋았죠. 물론 마냥 신나기만 한 건 아니에요. 독립출판이 자유롭긴 해도 독자가 돈을 주고 사는 거니까 그만큼의 가치가 있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고 ‘내 책이 재미없으면 어쩌지’라는 두려움도 있었죠. 

이유 ‘잘 모른다’는 점이 저를 설레게 했어요. 독립출판을 하고 싶다는 의지는 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거든요. 글을 쓸 줄만 알았지 편집을 하고 인쇄소와 연락하고 또 서점에 입고하는 일은 완전히 새로운 영역이었어요.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커진다는 거, 이러한 경험이 또 업무에도 활용될 수 있다는 점, 새로운 능력을 얻은 듯해서 신이 났어요.


ⓒ 012B팀


본캐는 직장인, 그래서 지키는 철칙 


간혹 직원의 사이드 프로젝트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이는 이들도 있다. 사이드 프로젝트가 업무에 방해가 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그래서 비밀리에 진행하거나 회사에는 철저히 공개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만큼 회사 업무와 사이드 프로젝트를 병행하기 위해서는 나만의 철칙이 필요하다. 


현정 너무 당연한 건데 업무 시간에는 독립출판 일을 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다만 저는 회사에서도 브랜드 마케터로 일하고 있어서, 글을 다루고 좋은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는 독립출판 일이 회사 일에도 좋은 영향을 주는 경우가 많아요. 회사 일에서의 경험이 좋은 영감이 되기도 하고요. 

이유 ‘정’과 ‘부’를 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의사결정을 해야 할 순간이 왔을 때 어떤 것이 우선순위에 있는지 따져보게 될 때가 있으니까요. 그런 면에서 제 본업이 ‘정’이에요. 본업에 영향을 주지 않는 범위에서 사이드 프로젝트를 열심히 하고 있고 그래서 팀 동료들도 제 여정을 더욱 응원해 주는 거 같아요. 

희연 저는 무엇보다 즐겁고 행복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누가 시킨 것이 아닌 자발적인 활동이니까요. 본업에 몰두하는 기간에는 다소 멀어지고 소홀해질 때도 있지만, 쓰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생기면 다시 돌아와 작업하며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즐겁게 오래 할 수 있는 비결 같아요.


ⓒ 012B팀


망설이고 있다면, 지금 시작해 


지난 11월 초, 무신사 테라스에서는 독립출판계 최대 규모의 북페어인 서울 퍼블리셔스 테이블 2022가 열렸다. 012B팀 역시 함께 쓴 책 두 권과 각자의 책을 이곳에서 선보였다. 햇빛 잘 들어오는 창가 한 편에 자리 잡은 012B팀의 부스에는 그들의 책뿐만 아니라 책과 관련된 주제에 대해 천천히 생각해 보게 하는 문장 카드와 여행 사진이 놓여 있었다. 그들의 부스를 방문한 사람이라면, 한 평도 안 되는 작은 공간에서 그들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으리라. 


이유 요즘 직장인은 사이드 프로젝트에 관심이 많아요. 하지만 결국 실행하느냐 안 하느냐의 차이인 거 같아요. 고민만 하지 말고 일단 시작하는 게 중요해요. 너무 오래 고민하지 말고 일단 해보고 안되면 그 궤도를 수정하라고 말하고 싶어요. 말 그대로 ‘사이드 프로젝트’니까요. 

현정 맞아요. 저 역시 일단 해보라고 말하고 싶어요. 해보고 안 되면 접을 수도 있고 천천히 할 수도 있어요. 우리에겐 본업이 있으니까요. 마음에 든다면 같이 하고 있는 사람들과 팀을 결성해 보는 것도 추천합니다. 저희처럼 말이죠(웃음). 

희연 만약 하고 싶은 사이드 프로젝트가 있다면 왜 하고 싶은지를 생각해 보면 좋을 거 같아요. 나만의 이유를 찾았다면 실행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해요. 저 역시 책을 쓰고 싶다고 오랫동안 생각해왔지만 워크숍이라는 촉매제가 없었다면 온전히 한 권의 책을 만들 수 있었을까 싶어요. 스스로가 실행력이 약한 편이라고 생각된다면, 도망갈 수 없는 환경을 만들어 보세요.


현정 8년 차 마케터이자 독립출판 작가. 잠들기 전 노란색 조명을 켜놓고 책을 읽는 짧은 순간을 사랑한다. 에세이 «떠날까 말까»와 사진집 «frtnn»을 출간했다. (인스타그램)

이유 7년 차 직장인, 인사팀에서 일하고 있다. 사진, 브이로그, 독립출판 등 여러 방법으로 일상을 기록하고 있고 그 중에서 글 쓰는 일을 제일 좋아한다. 몽골 여행 에세이 «와이파이가 안 돼서 답장을 못했어요»를 출간했다. (인스타그램)

희연 현재는 커머스 회사에서 콘텐츠 디자이너로 일하는 중. 자주 떠나지도, 자주 쓰지도 않지만 누구보다 여행과 이야기를 사랑한다. 카미노 데 산티아고 북쪽길의 기록 «먼 바닷길 일기», 고기가 없는 한 달의 일기 «7월의 편식»을 출간했다. (인스타그램)

• 현정, 이유, 희연 작가가 함께 펴낸 책으로는 «아직도 서투른 우리는»과 «허술한 술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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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클 요약>
  • 사이드 프로젝트를 할 땐 ‘정’과 ‘부’를 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의사결정을 해야 할 순간이 왔을 때 어떤 것이 우선순위에 있는지 따져보게 될 때가 있으니까요.
  • 팀으로 활동하다 보니 절대 포기할 수가 없다는 장점이 있다고 해요. 작업을 안 하면 제작 일정이 늦춰지고 책 내용이 반 토막 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끝까지 쓰게 되죠.
  • 사이드 프로젝트의 장점은 본인이 할 수 있는 영역이 커진다는 것, 이러한 경험이 또 업무에도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이라고 해요.



CREDIT
글 | 정은혜 원티드 콘텐츠 에디터


발행일 2023.0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