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kersㅣ나를 변화시키는 관계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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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티클은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다> 시리즈의 7화입니다.


우리는 때로 삶을 도형에 비유하고는 한다. 꼭짓점 중 하나로 결혼을 선택한 사람은 삶을 어떤 방식으로 지탱하고 있을까? 커리어를 축으로 중심을 잡던 사람이 삶에 결혼을 들여 오면 또 어떨까? 석혜림 쇼호스트는 결혼을 “인생의 새로운 국면에서 매 순간 쏟아지는 도전을 함께 뚫고 나갈 파트너를 만나는 것”이라고 말한다.


ⓒ 석혜림



만난 지 3개월, 결혼을 결심하다 


지금은 19년 차 쇼호스트로, 돌발 상황에도 유연하게 대처하는 프로지만 그에게도 많은 것이 어려웠던 시기가 있었다. 20대 후반에는 치열한 경쟁 안에서 성적을 내야하는, 약한 모습조차 허락되지 않은 여유 없는 시간을 보냈다. 일터 밖에서라도 기댈 수 있는 듬직한 ‘내 편’이 절실히 필요했던 때,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남편에게 ‘홈쇼핑’은 다소 생소한 분야였지만, 그의 일에 대한 고충을 귀기울여 듣고 내 일처럼 고민해 주는 남편의 모습을 바라보며 앞으로 풀기 어려운 숙제가 삶 한가운데를 가로막는다 해도 같이 헤쳐 나갈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렇게, 만난 지 3개월만에 결혼을 약속했다. 

“11월에 소개팅하고, 12월에 상견례하고 싶다 말씀드리니 부모님께서 몹시 놀라셨어요. 성급한 결정은 아닌지 재차 물으셨지만, 남편과 충분히 상의했고 양쪽 부모님을 설득할 자신이 있었어요. 사무실에서 파워포인트 화면을 틀어 두고 결혼 준비를 어떻게 해 왔는지 브리핑하기도 했어요. 신혼집과 혼수를 두 사람의 힘으로 해결하면서 당당함도 생겼던 것 같아요.” 


ⓒ 석혜림


일도 사랑도 무엇하나 소홀히 하고 싶지 않았던 석혜림 쇼호스트. 낮에는 방송에 몰두하고 밤에는 결혼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사건사고가 그를 당황하게 했다. 결혼식 당일에는 현금과 식장에 진열해 둘 액자를 보관한 자동차가 그가 메이크업 받는 동안 견인됐다. 경차라는 이유로 발렛 담당자가 주차 금지 구역에 주차한 탓이다. 또, 식장에서 틀 예정이었던 비디오에는 영문 오탈자로 인해 의미가 비속어가 되기도, 돌연 대지진이 일어나며 신혼 여행으로 타야 하는 비행기 출국이 미궁 속으로 빠지기도 했다. 이런 혼돈에서 그의 정신을 붙들어 준 건 역시 남편이었다. 감정을 가라앉히고, 차량 견인 사건부터 차분히 문제를 바로잡았다.

“차량이 견인됐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남편은 ‘웨딩드레스 입고 차량 받으러 강남구청에 가야 하는 거야?’라며 웃음을 터트렸어요. 분노와 슬픔에 이성의 끈을 놓을 법도 한데, 둘 다 블랙 코미디로 웃어 넘겼죠. 남편이 아니었다면, 화를 참지 못하고 메이크업 숍에 화부터 냈을 수도 있어요. 이 이슈는 웨딩 플래너에게 넘겨 해결하는 것이 옳다며 빠르게 문제를 꿰뚫어 본 남편 덕분이에요.” 


ⓒ 석혜림



서로의 애씀을 끌어안는 두 사람 


연애를 끝내고 결혼 생활을 시작하면 무엇이 변할까. 주민등록등본에 새로운 이름이 찍히는 것, 주변에서 나를 부르는 호칭이 변하는 것. 그런 결혼을 실감하게 하는 움직임이 잔잔한 설렘을 주지만, 두 사람의 관계를 뒤바꾸는 힘을 발휘하지는 못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연애에서 결혼으로 넘어가고 싶어 할까. 석혜림 쇼호스트는 결혼이야 말로 완전한 한 팀을 이루는 것이라 설명한다. 

“연애할 때보다 두 사람 사이의 균형이 더욱 잘 맞는 것 같아요. 다른 공간에서 삶을 꾸리던 두 사람이 본격적으로 한 팀이 돼 삶의 공간을 합치고, 소소한 것부터 상의하고 조율하며 훨씬 편해지죠. 일에도 안정감이 생겨요. 일의 특수성이나 중요도를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출퇴근 루틴을 보며 자연스레 알 수 있으니까요. 특히 피곤이 누적된 휴일에는 서로 배려해 줘요. 공간의 공유가 많은 것을 편하게 해 주면서 일에 몰입하는 데 도와줘요.” 

그의 말처럼, 공간의 공유로 애써 말하지 않아도 서로 얼마나 애쓰고 노력하며 고된 나날을 관통하고 있는지 진정으로 공감하게 된다. 결혼 제도 아래 힘들고 슬픈 일을 연이어 겪게 되는데, 함께하는 날이 소복소복 쌓일수록 곁에 있는 것만으로 위로가 된다고. 나아가,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내 편’에 기댈 수 있다는 믿음은 결혼이 가져다 주는 기쁨 중 하나라고 덧붙인다.

“결혼하면 무엇이든 상의할 수 있는 내 편이 생기는 거예요. 회사 문제에 대해서도 피드백 받을 수 있죠. 이상하게 같은 사람인데 연애할 때와 사용법이 달라지더라고요.(웃음) 부부 사이에 생기는 갈등을 돌파해 주는 건 이성적인 힘이 아니라, 피식 웃음이 나오게 하는 부부끼리 통하는 유머 코드라고 생각해요. 웃고 나면 심각한 문제 앞에서도 무장해제 되는 거죠. 우리가 적군이 아닌 아군인데 왜 적군처럼 대하고 있을까 되돌아 보게 돼요.” 


ⓒ 석혜림



나를 변화시키는 관계의 힘 


결혼식이 끝나면 도사리고 있던 수없는 도전 과제가 기다렸다는듯 두 사람의 일상을 뒤흔든다. 자신의 철학을 지키며 하나씩 그 과제를 해결하다 보면 성취감을 느낀다는 석혜림 쇼호스트. 산전수전을 겪으며 다른 형태의 진짜 어른이 돼 가고 있구나 느낀다고. 더불어, 결혼 생활은 직장에서 후배가 존경할 만한 그래서 믿고 따를 수 있는 선배가 되기 위한 과정에 적지 않은 힌트를 준다고 말한다. 

“인간 관계 갈등에 대응하는 기술을 길러주는 것 중 하나가 결혼 생활 아닐까요? 외부 사람을 설득하고 물건을 판매하는 일보다 남편과 가족을 설득하는 일이 더 어려워요.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면 누군가에게 부탁하거나 양해를 구하거나 조율해야 하는 일이 자주 발생하는데요. 그런 상황을 겪으며 삶의 통찰을 얻고는 합니다.” 

삶의 중심이 ‘나’에서 가족으로 기울어지면 나의 정체성도 절로 흔들리기 마련. 하지만, 그는 정체성이란 끊임없이 갈고 닦아 모양을 변형시키며 만들어 가는 존재라고 설명한다. ‘나는 소중하다’라는 절대 변하지 않는 뼈대를 두고, 그 외 모든 정체성의 촉수가 바뀐다는 것이다. 이를 기록하기 위해 그는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매 순간 기록한 감정을 나중에 훑어 보면 미처 이해하지 못했던 내 감정과 생각을 알아 보고 공감하게 되기 때문이다. 

“언제나 중요한 건 모든 선택의 기본은 ‘내가 행복해야 한다’예요. 결혼부터 내가 행복하기 위한 선택이 돼야 하는 거죠. 누군가 요구해서가 아닌, 내가 주체적으로 결정하고 행동하도록 계속 연습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후회하게 되니까요. 만약 너무 힘든 순간이 오면 혼자 쉬는 시간을 가지길 바라요. 반드시 내 행복이 숨쉴 수 있는 시간이 있어야 해요.” 


ⓒ 석혜림


‘새해, 결혼할까요?’라는 조금은 실없는 질문에 석혜림 쇼호스트는 ‘네’라고 망설임 없이 당차게 답한다. 그러면서도 오롯이 ‘나’를 중심으로 삶을 개척해 나가는, 결혼하지 않은 인생 또한 멋지지 않냐며 웃음을 보탠다. 그렇다. 일도, 연애도, 결혼도 완벽한 행복을 가져다 주지 못한다. 나에게 딱 맞는 행복을 찾아 유랑하는 인생을 마음껏 즐겼다 갈뿐.



<아티클 요약>
  • 석혜림 쇼호스트는 결혼을 “인생의 새로운 국면에서 매 순간 쏟아지는 도전을 함께 뚫고 나갈 파트너를 만나는 것”이라고 말한다.
  • 우리는 왜 연애에서 결혼으로 넘어가고 싶어 할까. 그는 결혼이야 말로 완전한 한 팀을 이루는 것이라 설명한다. 
  • 결혼 생활은 직장에서 후배가 존경할 만한 그래서 믿고 따를 수 있는 선배가 되기 위한 과정에 적지 않은 힌트를 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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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글ㅣ박효린 원티드 콘텐츠 에디터 


발행일 2023.0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