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티클은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다> 시리즈의 10화입니다.콘텐츠 제작자가 직장 정글에서 생존하는 방법이자 자신의 바운더리를 넓히는 방법. 그의 처음 이직과 오늘의 이직. 콘텐츠 노동자 차영우는 텍스트부터 비주얼 기획까지 다양한 콘텐츠를 만든다. ⓒ차영우
‘평생 직장’의 영광은 빛을 잃고, 한 곳에서 오래 일한 성실을 덕으로 삼는 시간은 저물었다. 바야흐로 ‘잡 호핑(job hopping)’의 시대. 일상에서 ‘이직’을 이야기하는 것이 이젠 너무도 자연스럽다. 혹자는 성장과 연봉 상승을 꾀하는 무이(無二)한 방법으로 ‘이직’을 꼽기도 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까다롭고 어려운 것이 ‘이직’ 아닐까. 이직은 전학이나 이사만큼이나 제법 덩치 큰 부담감을 안겨준다. 익숙함을 벗어나 새로운 환경에 스스로를 던져내는 일, 콘텐츠 노동자 ‘차영우’는 끊임없이 이동한다.
안녕하세요. 영우 님, 어떤 일을 하고 있나요?
안녕하세요. 콘텐츠 노동자 차영우입니다. 저는 취재, 인터뷰 등 텍스트부터 비주얼 기획까지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고 있어요. 최근에는 패션 브랜드의 브랜드 마케팅 팀으로 이직했습니다.
가장 최근까지도 이직하셨군요. 그럼 우리 처음으로 돌아가 볼까요? ‘처음 이직’이 기억나시나요?
제 첫 직장이 미술품 경매 회사였어요. 작품 관리팀에서 아트 핸들러로 근무했죠. 직접 작품을 운반하고, 수장고를 관리하는 일은 미술사를 공부한 입장에선 정말 재밌는 일이었죠. 그러던 중 러닝 매거진에서 에디터를 채용한다는 공고를 보게 됐어요. 저는 SNS보다는 매거진으로 트렌드를 배웠던 세대라 매거진 에디터도 정말 탐나는 일이었거든요. 때마침 러닝을 취미 삼고 있기도 했고요.
사실 처음 지원했을 때는 떨어졌어요. 하지만 결국 가게 될 운명이었는지, 나중에 충원을 하면서 역으로 면접 제의를 받았어요. 그때 처음으로 이직을 하게 됐습니다. 선망했던 두 가지 직업을 모두 겪어볼 수 있었던 시기였어요. 미술품 경매 회사와 매거진이요.
우연한 계기인 듯 보이지만 결과적으론 선망했던 두 직업을 모두 해낼 수 있는 저력을 보여줬다는 느낌이에요. 매거진 에디터로서도 꽤 오래 일했죠?
네. 돌아보니 거의 3년 동안 일했네요. 일이 손에 완전히 익을 쯤, 다시 이직을 생각하게 됐어요. 당시에는 스타트업에서 브랜디드 저널리즘을 하나 둘 론칭하는 시기였어요. 또, 채용이나 기업 브랜딩을 위한 콘텐츠가 필요하다는 분위기가 업계에 있었어요. 사실 매거진에서 계속 일하기엔 현실적으로 처우가 좋지는 않았거든요. 그래서 두 번째 이직을 하게 됐죠. 그때 원티드를 통해서 이직처를 정말 열심히 찾았어요. 그러다가 핏이 잘 맞는 회사에 입사했어요. 매체사가 아닌 일반 기업에서 콘텐츠를 만드는 건 처음이었어요.

두 번째 직장, 잡지사 새크라멘토 출장 ⓒ차영우
콘텐츠를 다룬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매거진 에디터와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업무는 서로 다른 결을 가졌어요. 여러 직무를 넘나들며 이직으로 뛰어드는 용기는 어디서 나오나요?
이직을 하는 용기는 사실, 두려움에서 출발해요. “지금 이 팀에서, 이 조직에서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시장 기준’에서 혹은 ‘고객 기준’에서 좋은 것일까?” 늘 이 질문을 해보거든요. 하지만 회사에서는 내부 기준을 충족하면 만족하는 경우가 종종 있죠. 그러다 보면 시장 기준에서 더 퀄리티가 높은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고 우선 설득해요. 뜻이 통하는 순간도 있지만, 더 이상 콘텐츠에 투자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듣게 될 때도 있어요. 그럼 이직을 하게 됩니다. 용기이기도 하고, 생존을 위한 선택이기도 해요.
처음 이직과 오늘의 이직을 비교했을 때, 얼마나 성장했다고 느끼나요? 이력서를 넣는 것부터 처우 협의까지, 자신만의 노하우가 생길 것 같아요.
처음 이직할 당시의 등록한 이력서를 봤거든요. 지금 보면 저 같아도 그 이력서를 보고 서류 통과 안 시킬 것 같아요.(웃음) 장점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고, 면접을 보고 싶은 매력도 안 느껴졌거든요. 여러 번 탈락하고, 틈틈이 면접을 보면서 제 자신의 장점을 알아갔어요. 이직을 거듭할수록 이력서에 쓸 수 있는 프로젝트가 늘었다기보다, 내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명확하게 적어나갈 수 있게 됐죠. 처음 이직과 오늘의 이직 사이에는 나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성장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처우 협의는 여러 번 이직해도 매번 어려워요.(웃음)
맞아요. 처우 협의가 가장 어렵죠. 특히 한국인은 돈 이야기를 어려워해요. 처음 이직을 돌아봤을 때, 그래도 좀 나아졌나요?
처음 이직했을 때는 처우 협상을 제대로 못했어요. 전직에 가깝다 보니까 직전 연봉보다 더 달라고 강력하게 말하지 못했거든요. 면접 자리에서 “나 때는 회사에서 주는 대로 받았는데” 같은 말을 듣기도 했어요. 하지만 이제는 조금 ‘깡’이 생겨서 희망 연봉을 당당히 말하는 편이에요. 이직은 내 가치를 더 높이고 싶어서 하는 건데, 더 낮추면서 갈 이유는 없다고 생각해요.
금액적인 측면 외에도 커리어 성장에 파격적으로 도움이 될 것 같다든지, 이 업계에서는 꼭 일해보고 싶다든지, 출퇴근에 드는 리소스가 줄어든다든지 등의 장점도 함께 계산해요. 이런 부분이 충족된다면 연봉은 어느 정도 양보할 수 있죠.

세 번째 직장, 뷰티 스타트업에서 ⓒ차영우
‘내 가치’에 대한 이야기를 하니 떠오른 질문이에요. 경력직으로 이직을 하다 보면 곧잘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야 한다는 부담과 착각에 빠지기도 해요.
저도 매번 부담감이 생겨요. 이직을 하면 서로가 낯설잖아요. 기존 회사 구성원들도 제 능력을 모르고, 저 역시 회사 업무의 이력을 모르니까요. 그래서 매번 내 자리를 찾아야 하고, 내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을 안고 있었어요. 잡지사로 처음 이직하고 나서, 첫 책을 만드는데 2고에서 지적받은 기사를 고치느라 밤새 새로 쓴 적도 있고요. 이직하면 초반에 오버 페이스로 스스로를 혹독하게 밀어붙이는 경향이 있는데, 그럴 때마다 “처음 왔는데 100점짜리 업무를 바라지 않는다.”고 해주는 팀장님이나 선임 덕분에 지금은 그 부담감을 조금 내려놓았어요.
사실 한 곳에서 오래 일하는 분이 부러울 때도 있죠. 한편으론 여러 곳을 옮기며 다양한 회사를 경험하는 분들이 대단해 보이기도 하고요. 각자 장단이 있을 것 같은데, 영우 님은 후자예요. 아쉬운 건 없나요?
확실히 잃은 것은 장기적인 안정감이죠. 한 곳에서 뿌리를 내리는 것보다 여러 환경에서 적응하는 것을 선택했으니까요. 그러다 보니 커리어에 대한 장기적인 목표는 있지만, 조직 안에서 목표는 그동안 좀 희미했던 것 같아요.
반대로 얻은 것은요?
얻은 건 여러 회사에서 만난 동료들과 겪은 조직 문화에서 배운 다양성이에요. 특히 좋은 동료에게서 받았던 에너지는 제 커리어뿐만 아니라 라이프 스타일에도 영향을 줬죠. 일하면서 사내 동아리로 러닝 크루를 만들었는데, 저보다 더 열심히 뛰는 동료 덕분에 한 해 동안 저도 자극을 받아서 열심히 뛰었거든요. 제 삶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꾸어주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게 이직을 하면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인 것 같아요.
흔히 3가지 조건을 충족하면 좋은 회사라고들 말하잖아요. 일이 재밌고 성장할 수 있거나, 돈을 많이 주거나, 함께하는 사람이 좋거나. 이 중에 영우 님에게 가장 중요했던 건 뭐였나요? 이직을 선택하는 이유가 되기도 했을 것 같아요.
우선 일이 재밌고, 성장할 수 있는 부분이 저에게는 가장 중요합니다. 그리고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좋은 동료와의 협업, 피드백도 중요하거든요. 그런데 소속된 회사가 성장을 멈추면 좋은 동료도 떠나고, 제 성장도 멈추게 되죠. 3가지 조건이 다른 것 같지만, 미묘하게 하나의 조건이기도 해요.

다섯 번째 직장, 아이웨어 커머스 플랫폼 온드미디어 콘텐츠 촬영 현장 ⓒ차영우 끝으로 이직을 두려워하거나, 오히려 동경하는 분에게 전할 말이 있다면요? 저는 회사와 직원의 관계는 연애와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짝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잖아요. 내가 그 회사에서 마냥 일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회사가 나를 원한다고 무조건 함께 일할 수 있는 것도 아니죠. 그러다 보니 채용 사이트가 ‘데이트 앱’처럼 느껴질 때도 있어요. 나와 잘 맞는 회사를 찾기 위해 탐색하고, 매칭이 됐을 때는 면접과 일을 하면서 서로의 핏을 맞춰가잖아요. 그러면서도 어긋날 수 있는 리스크도 항상 안고 있죠. 이직을 처음 할 때, 스스로 용기를 내기 위해서 한 말을 들려드리고 싶어요. “내가 쥐고 있는 이 사과를 놓아야 새로운 사과를 쥘 수 있다.”
▶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다> 시리즈 보러 가기<아티클 요약>
- 그의 이직하는 용기는 두려움에서 출발한다고 말합니다. “지금 이 팀에서, 이 조직에서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시장 기준’에서 혹은 ‘고객 기준’에서 좋은 것일까?” 늘 이 질문을 해본다고요.
- 여러 번 탈락하고, 틈틈이 면접을 보면서 자신의 장점을 알아갔습니다. 이직을 거듭할수록 이력서에 쓸 수 있는 프로젝트가 늘었다기보다,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명확하게 적어나갈 수 있게 됐죠.
- 여러 회사에서 만난 동료들과 겪은 조직 문화에서 다양성을 배웠습니다. 좋은 동료에게서 받았던 에너지는 그의 커리어뿐만 아니라 라이프 스타일에도 영향을 줬어요.
CREDIT
글ㅣ황유나 원티드 콘텐츠 에디터 발행일 2023.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