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소개서,
왜 써도 써도 쓸 말이 없을까?
공채 시즌이 되면 드는 생각이 있을 것이다. ‘자기소개서에 뭐 쓰지?’ 텅텅 비어있는 하얀 공간을 보다 보면 현기증마저 난다. 8년 전 나도 마찬가지였다. 마케터가 되고 싶긴 한데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스펙도 없고 그렇다고 딱히 아무 데나 가고 싶진 않은 그런 애매한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
처음 도전한 취업 준비는 휘뚜루마뚜루 시작되어 어영부영 마무리되었다. 서류 합격은 나쁘지 않았지만 면접에서 절었고, 얼떨결에 입사했지만 이게 내가 해야 하는 업무인가 의구심만 쌓였다. 그렇게 멋도 모르고 입사와 퇴사를 한두 번 반복하다 결국 마케팅이 무엇인지 먼저 파악해야겠다 생각했다. 그렇게 입만 살아 회사를 떵떵거리며 나왔다.
이때까지만 해도 마케터는 예쁜 콘텐츠를 만드는 직군, 조금 더 하면 페이스북 광고 관리자를 통해 광고비를 집행하는 직군이라고 생각하는 게 전부였다. 당시에는 재미있는 짤을 활용해 상품을 홍보하는 것이 유행이었고, 페이스북 광고 하나 잘 만들면 대박이 나던 시절이었으니까. 스펙은커녕 대외활동도 없던 나는 세상 한가운데 버려진 느낌이었다.
연봉을 올리기 위한
자기소개서 준비물
1.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지 하나의 소구점 찾아내기
수많은 사람의 자기소개서를 첨삭해 주고 나 또한 취업과 이직을 반복하며 느낀 건, 내가 쌓아온 활동들에 동일한 결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나의 경우 글 쓰는 것을 좋아했다. 때문에 백일장에서 상도 좀 받았고, 에세이를 낸 경험도 가지고 있었다. 교외 활동들 또한 글이라는 강점이 있었기에 이루어낼 수 있었던 것들이 다수였다. 동시에 매일 글을 쓰고 잘 쓰기 위해 필사를 이어가다 보니 자연스레 이야깃거리가 늘어 갔다. 사람들 앞에서 재밌는 이야기를 밤새 해보라고 하면, ‘에밀 아자르’의 성장 배경부터 ‘움베르토 에코’가 왜 장미의 이름을 썼는지 술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소스도 다양했다.
나의 다양한 관심 분야와 잡지식이, 다양한 사연을 가진 골동품을 판매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다만, 미학 서적을 보며 잠깐 들었던 조각난 지식이나 다큐멘터리에서 보던 이미지들이 큰 맥락을 두고 시대적 이야기를 담아낸다는 점에서 좋은 글 소스가 될 거라 생각했기에 가능했다. 그리고 이건 실제로 나만의 강점이 되어 제품의 이야기를 그려내거나 소구점을 잡는데도 큰 도움이 되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내가 낸 결과물을 모아 두고 역으로 나의 강점을 유추해 나갔다. 글을 쓰며 냈던 결과물과 이 과정에서 낸 아이디어들을 모두 모았고, 이 과정에서 글쓰기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이를 마케터적 강점으로 풀어낼 수 있는지 리스트를 작성했다. 직접 장사를 해본 경험들을 나열하며 내가 가진 글쓰기 기술과 커뮤니케이션 기술이 어떻게 실무에 발현될 수 있는지, 글을 쓰던 습관과 글감을 얻는 과정이 어떻게 실무에 적용될 수 있는지 정리했다.
그러나 너무 많은 소구점은 오히려 독이 될 것 같았다. 나는 나쁘지 않은 커뮤니케이션 스킬을 가지고 있었지만 너무 흔한 것이었기에 ‘나’라는 인간의 판매 계획서를 작성하며 강점은 오롯이 “글” 하나로 구성했다. 그리고 글이 줄 수 있는 마케터적 스킬을 별도로 정리했다. 사용 설명서의 주된 기능을 여러 상황에 맞춰 예시를 들어주어야 판매가 쉽다고 생각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글을 쓰고 독서를 하면서 얻을 수 있었던 마케터적 기술은 ‘탄탄한 문장력’과 ‘논리적인 내용 전개’, ‘거시적 관점’에서 기획과 캠페인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 등 다양했다. 이걸 바탕으로 교외 활동과 교내 생활을 나의 강점에 맞춰 점차 뾰족하게 다듬어 나갔다. 프로젝트를 모두 나열한 뒤 글과 함께 엮을 수 있는 부분을 모아 새롭게 이야기를 재구성했다.
이처럼, 이전 프로젝트를 문장으로 정리하고 새롭게 재해석하는 시간을 가지며 해당 프로젝트에서 왜 좋은 성과를 낼 수 없었는지 쉽게 파악할 수 있었고, 앞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면 어떤 부분을 보완해야 할지도 점차 감을 잡을 수 있었다. 동시에 내가 마케터로서 어떤 부분을 간과하고 있었는지, 자료 조사 과정에서 누락 시킨 항목은 무엇이었는지 세세하게 분석할 수 있었다. 이런 과정이 자연스레 GA의 필요성을 느끼게 하고, 고객의 마음을 사고 싶다는 나의 욕구로 퍼져 나가 마케터가 되는데 불을 지펴 주었다.
쉽게 예시를 들기 위해 나의 사례를 풀어냈지만, 다들 비슷한 경험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대학에 진학해 처음 축제를 열 때, 포지션을 분배하는 과정에서 당신은 어떠한 역할을 했는지, 대외 활동을 진행하며 당신이 자신 있게 말하던 역할은 무엇이었는지, 하다못해 팀 프로젝트를 하며 당신이 주도적으로 맡아 온 업무는 무엇이었는지 되돌아보면 쉽게 답이 나오게 된다. 정말 간단하다. 내가 해온 것들이 자연스레 잘하는 것이 되어 내 몸에 축적되어 있을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자주 해왔던 것일 수 있다.
강점을 파악했다면 이 강점을 마케터적 스킬로 쪼개서 적용시키는 연습이 필요하다. 글을 잘 쓴다는 것이 강점이면 이를 가운데 두고, 마인드맵 형태로 글을 통해 할 수 있는 것들을 정리해 보면 좋다. 일단 자신의 장점을 모두 나열한 후 이를 마케터적 스킬로 쪼개고, 이 쪼갠 스킬을 자신의 경험에 녹여 내면 준비는 완벽하게 마무리된다. 장점이 다양하고, 경험한 활동도 많으면 어필할 수 있는 포인트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나처럼 스펙이라고 부를만한 게 없다면 하나의 장점을 살려 여러 스킬로 정리해도 좋은 전략이 될 것이다.
우리는 이어폰을 살 때 노래를 듣기 위해 산다. 아무리 멋진 다이아 장식과 로고가 있어도 노래가 들리지 않는다면 그건 구매 요건에 충족되지 않는다. 본질에 집중하라. 그렇게 멋지지 않아도 모두가 니즈에 맞는 쓸모를 가진다. 자기소개서를 작성하기 위한 스킬과 스토리를 준비했는가? 자, 이제 전쟁터에 갈 시간이 되었다.
2. 내가 가진 마케터적 스킬을 이야기 속에 녹여내기
성공적인 텍스트 콘텐츠를 제작한다는 건, 문자를 통해 상대방과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누군가 내 글을 읽고 감동을 받는다는 것은 특정한 누군가를 앞에 두고 있지 않아도 콘텐츠 하나만으로 그들을 충분히 설득하고 울림을 준다는 것과 동일한 맥락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를 내가 가진 스킬을 일상적인 이야기에 녹여 냈다. 짜임새 있는 글 한 장으로 500만 원의 상금을 번 이야기, 외부에서 장학금 받았던 이야기, 고객 니즈를 파악하고 이를 글로 정리해 제품에 붙여 놓고 장사에 응용했던 이야기 등 글만으로도 누군가를 설득했던 사례를 나열했고, 이를 통해 브랜드가 녹아 있는 텍스트 콘텐츠로 제품에 대해 알리고 판매할 수 있다는 점을 어필했다.
앞서 말했듯, 스펙이나 자랑할 거리가 없다 하더라도 자신만의 스킬을 일상에 녹여 어필한다면 충분히 마케터적 역량을 보여주기에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편지 한 장으로 부모님과 갈등을 해결한 이야기나, 친구들 사이에 갈등을 해결한 이야기 등 소재는 무궁무진하다. 이 모든 과정이 이야기로 짜임새 있게 나타나고 서로가 만족할 만한 결과로 남는다면, 그것 또한 하나의 콘텐츠나 나의 재능으로 누군가를 설득해 판매를 이루어 내는, 소위 말하는 마케팅 과정과 매우 닮아 있으니 당위성을 가지는 것이다.
중요한 건 이야기 짜는 과정을 통해 자신이 무엇을 잘하는지 명징한 이해가 뒷받침되어야 추후 면접 자리에서 지나친 암기 없이도 대답을 이어나갈 수 있다는 점이다. 내가 아무리 좋은 말로 포장된 나의 장점들을 가지고 이를 달달 외워 면접 자리에 참석해 봐야 실무진은 딱 알아본다. 이 친구가 자신의 장점을 정말 잘 알고 말하는 건지, 단순히 좋은 사례 하나를 가져와 말하는지 아니면 그냥 암기 머신인지. 외워서 구구절절 말하는 대답은 크게 매력적이지 않다. 오히려 어색해 보이고 임기응변 능력도 떨어져 보인다. 사실상 그런 사람들을 걸러내기 위해 압박 면접을 진행하기도 한다.
그러니 자신이 무엇을 잘하는지 파악하고, 이를 통해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드는 연습을 이어가 보자. 이야기를 계속 읽고 스스로 파악하며 자신만의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연습을 꾸준히 하자. 면접을 위해 이렇게까지 해야 하냐고? 사실 이러한 과정이 있어야 추후 커리어 패스도 흔들리지 않는다.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나를 잘 파악해야 나의 강점을 살릴 수 있는 업무를 통해 내 강점을 더 실무에 맞게 단단하게 성장해 나갈 수 있는 거고, 이를 통해 회사에 기대지 않아도 내 이름을 알릴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나는 글쓰기를 강점으로 삼고 이를 지속적으로 어필함으로써, 관련된 기회를 더 많이 가지게 되었다. 브랜드 톤에 맞는 글쓰기, 텍스트 콘텐츠로 브랜드 신뢰성 구축하기, 관련 내용 포스팅하기 등 사실상 주니어 레벨이 맡기 힘든 업무 또한 글을 잘 쓴다는 어필 하나로 모두 맡아서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명심할 점은 자신이 마케터로서 보여줄 수 있는 확실한 강점 하나를 정하고, 이 강점을 부수적인 스킬로 나누어서 커리어 패스로 가져갈 수 있게 꾸준히 어필하는 것이다.
사실 나도 3년 전까진 이렇게 원티드에 아티클을 실을 수 있을 정도로 자기소개서와 기획안을 잘 쓰게 될 줄 몰랐다. 업무에서 하다 보니 부캐까지 이어진 것이다. 여전히 현업에서 나는 아티클과 관련된 마케팅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 얼마 전 이직 후 텍스트 콘텐츠 퍼포먼스가 잘 나와 3개월 만에 연봉도 상승시켰다. (나름 성공한 덕후가 되었다고 자랑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