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이브ㅣ영화, 웹툰·웹소설, OTT 플랫폼 마케터의 여정

안진솔 Wavve 브랜드·콘텐츠 마케팅 매니저

웨이브ㅣ영화, 웹툰·웹소설, OTT 플랫폼 마케터의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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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티클은 <콘텐츠: 취미를 만드는 사람들> 시리즈의 2화입니다. 


✍ 오늘의 아티클
  • 영화, 웹툰·웹소설, OTT 플랫폼 마케터까지. 콘텐츠 산업에서 일해올 수 있었던 동력은 스트레스보다 일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 크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 성취감은 쓸모를 보여야 한다는 압박감과 함께 오며 스스로를 괴롭히기도 했지만, 불안을 이겨내며 좋은 결과를 냈을 땐 짜릿함을 안겨줬다고 해요.
  •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 화를 내고 비난하는 대신 “세상에 이런 일도 있네~”라며 웃어넘겨 보세요. 부정적인 감정이 가라앉고 그 틈에 여유가 생겨나니까요.

영화 마케팅을 거쳐 웹툰·웹소설 마케터로, 또다시 OTT 플랫폼 마케터로 변화를 시도한 안진솔 마케터. 그가 버텨온 수많은 나날은 결코 혼자서 이뤄낸 것이 아니라 말한다. 넘어진 나를 일으켜 주는 동료, 도망치려는 나를 붙잡는 일에 대한 애정이 그를 지탱해 줬다고. 콘텐츠를 향한 애정으로 다양한 산업을 오간 그의 커리어 여정은 어떤 순간으로 가득 차 있을까. 


안진솔 Wavve 브랜드·콘텐츠 마케팅 매니저



취미도, 일도 시작은 영화로부터 


Q. ZARA 세일즈 어시스턴트로 사회생활을 시작하셨던 걸 보면 패션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던 것 같은데요. 영화 산업으로 커리어를 바꾸게 된 계기가 있나요?

어릴 적부터 디자인에 관심이 많았어요.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 감명받아 패션 잡지를 구독하는, 멋쟁이들의 세계를 동경하는 아이였죠. 전공도 패션 마케팅을 선택했고, 졸업 후 고민 없이 패션 업계 인턴으로 커리어를 시작했어요. 패션 업계에서 1년쯤 일해보니 ‘사실 내가 하고 싶었던 건 영화가 아닐까’ 싶더라고요. 그때가 24살이었는데 700편의 영화를 봤을 정도로 시네필이었거든요. 이후 엔딩 크레딧에 올라가는 수많은 이름 중 내 이름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커지기 시작했고, 영화 산업으로 뛰어들게 됐어요. 아무것도 모른 채로요! 


Q. 패션 업계도 장난 아니라고 들었는데 영화 업계도 사실 장난 아니죠.(웃음) 오프라인 영화 홍보사의 영화 마케터, 어떠셨나요?

‘세상에 일이 이렇게 다양하다고? 한 명이, 이걸 다?’ 패션도 저세계인데 여기는 다른 저세계라고 생각했어요.(일동 웃음) 면접 때 대표님께서 ‘글 많이 쓰는데 괜찮겠니?’라고 물어보시길래 당연히 ‘네’라고 대답했거든요. 들어가 보니 저는 보도자료를 쓰는 사람이더라고요. 

PR 팀처럼 보도자료가 기사화될 수 있도록 매체에 연락하고, 뉴스나 영화 프로그램에 작품이 노출될 수 있게 만들고, 방송, 유튜브, 영화제 같은 채널과 조율한 뒤 영화 홍보를 위해 배우와 감독을 설득해 출연시키는 일을 했죠. 여기에 마케터로서 영화 셀링 포인트를 짚고 카피와 콘셉트를 잡습니다. 그다음 포스터, 예고편, 옥외 광고 등에 반영하고요. 시사회, 무대인사를 통해 관객도 만나요. 일이 다양하다 보니 신입 땐 따라가는 게 버겁기도 했어요. 잘 하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실수 없이 해내야 한다는 생각으로 당장의 업무에 고군분투했었죠. 정말 많이 혼나면서 배웠던 것 같아요. 


Q. 영화 산업은 퇴사가 잦아 2~3년 차가 귀하다고 들었어요. 지인의 경우 스트레스로 점심을 굶거나 병을 하나씩 달고 오더라고요. 영화 홍보사에 다닌 3년 동안 정말 고생 많으셨을 것 같아요.

심지어 두 번째 회사는 저연차가 많아 물어볼 곳 없이 부딪히면서 배워야 했어요. 새벽에 퇴근하기 일쑤였고 주말에도 무대인사 같은 스케줄로 쉴 틈이 없었죠. 이런 나날이 반복되자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서 한 번은 수건을 입에 물고 소리를 지른 적도 있어요. 결국 2년 차 때 맹장이 터지고, 3년 차 때 고질병을 얻어 병원에 다니기 시작했죠. 빠른 승진의 대가는 정서적, 체력적 고갈. 술 많이 마시고 화 많이 내는, 좋지 않은 방식으로 풀었던 것 같아요. 


Q. ‘그만하고 싶다’ 이런 생각 안 하셨어요?

힘들고 그만두고 싶은 순간, 당연히 많았죠. 클라이언트에게 상식 밖의 업무 요청을 받을 때나 이해 안 되지만 해야만 하는 일을 마주하면 더욱요. 사람 때문에 상처도 종종 받지만, 아이러니하게 위로받는 것도 사람이더라고요. 고단한 하루를 함께 이겨내는 든든한 동료가 있고, 부족함을 감싸주는 선임도 있고요. 또, 스트레스보다 일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 커서 버텨낼 수 있었어요. 


오디언스에서 담당한 영화 <미드 90> ⓒ안진솔


Q. 에이전시 3년 차 때 대만 영화 <장난스런 키스>, <나의 소녀시대>, <상견니> 등 여러 인기 작품을 배급한 수입사 오디언스로 이직했어요. 인하우스 마케터로서 그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어떤 걸까요?

에이전시에 있을 땐 맡은 업무를 잘 기획하고 실행하면 됐는데, 수입사는 큰 그림 그리기부터 시작해야 해요. 회사에서 수입하려는 작품이 한국에서 시장성이 있는지, 그렇다면 타깃은 누군지부터 고민하죠. 이미 수입해 온 경우라면 마케팅 예산 분배와 파트너 선정 같은 환경 세팅부터 고민하고요. 마케팅 역시 온·오프 모두 운영해야 하는데 저는 디지털 광고에 문외한이라 광고 매체에 대한 이해가 없었어요. 에이전시에서 제안이나 결과 리포트를 받아도 읽지 못하면 개선이 불가하기 때문에 지인에게 묻거나 독학하며 배워 나갔어요. 


Q. 이후 콘텐츠 플랫폼 ‘리디’의 브랜드·콘텐츠 파트장 직무로 이직하셨어요. 영화 산업을 떠난 이유는 무엇인가요?

영화 마케터 5년 차일 무렵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됐어요. 관객 수가 적어지니 개봉하는 영화도 줄어들며 마케팅도 어려워졌죠. 1년 반쯤 되자 경력을 더 풍성하게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스스로에게 물어봤어요. ‘하고 싶은 게 마케팅이야, 아니면 영화인이야’라고요. 반년 정도 고민한 끝에 내린 결론은 마케터로서 내공을 쌓고 싶다였습니다. 코로나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나의 경력이 가치있게 쓰일 수 있는 곳을 찾고 있었고, 기회가 닿은 곳이 리디였어요. 


단단한 팀워크를 느끼게 해준 리디 동료들 ⓒ안진솔


Q. 영화와 웹툰·웹소설은 영상과 원고라는 단순한 형식의 차이도 있지만, 손익분기점을 목표해 단기적인 마케팅 전략을 펼치는 영화와는 마케팅 목표도, 전략도 많은 부분에서 다를 것 같습니다. 웹소설·웹툰 마케팅은 어떤 특징이 있나요?

영화는 극장으로 관객을 모으는 게 어렵지만 영화관에 들어가면 웬만하면 다 보고 나와요. 마케팅 캠페인을 통해 개봉 전까지 인지도와 기대감을 높이는 게 중요하죠. 개봉 후 첫 주, 길어도 둘째 주 정도면 캠페인도 마무리되고요. 반면, 웹툰은 언제 어디서든 볼 수 있지만 언제든 그만 볼 수도 있어요. 매력적인 스토리로 당장의 클릭을 만들고, 완결될 때까지 이탈하지 않도록 만들어야 해요. 크리에이티브를 활용한 콘텐츠로 웹툰·웹소설을 알린 뒤 퍼포먼스 마케터와 소재를 테스트해 가며 유저를 끌어들이고, CRM 마케터와 유저의 리텐션을 만들면서요. 그렇기에 다양한 마케터와 협업이 필요합니다. 


Q. 리디는 콘텐츠를 다루는 기업이면서 동시에 IT 플랫폼 기업이에요. 정량적인 부분(데이터)의 설득이 전보다 중요해졌을 것 같은데, 실제로는 어떤가요?

영화는 마케터 개인의 판단, 배급사의 라인업, 배우의 필모그래피, 투자자의 기호 등 정성적인 부분도 수많은 결정과 변수에 영향을 줍니다. 그런데 리디는 정량적인 부분에 더 주목하더라고요. 어떤 회차에서 유저가 이탈하고 머무는지 확실히 보이기 때문에 유저의 클릭과 결제를 유도하기 위한 엄청난 노력을 해요. 그러나 정성적인 부분 역시 중요해요. 그림체나 작가의 전작 등 작품 관련 부분은 물론이고 마케팅하는 의도와 이유에 대한 구성원 간 공감대 형성 등을 고려하지 않으면, 모두가 한 방향으로 나아가기 어려우니까요.




브랜딩과 콘텐츠,

웨이브 마케터의 두 가지 일 


Q. OTT 플랫폼 ‘콘텐츠 웨이브’에서 브랜드·콘텐츠 마케팅 매니저로 일하고 계십니다. 웨이브를 선택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현재 웨이브 팀장님이 리디 때 팀장님이세요.(웃음) 리디 근무 당시 팀장님이 웨이브로 이직한다며 함께 가자고 제안 주셨거든요. 팀원들과 유대감도 깊고 회사의 체계적인 분위기도 마음에 들었기에 고민이 컸지만, 평소 신뢰하고 잘 맞는다고 생각한 팀장님의 제안이라면 함께 가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영상 콘텐츠에 대한 그리움도 살짝 있었고요. 게다가 웨이브에 제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해리포터>가 있거든요. 언젠가 <해리포터> 마케팅을 담당할 수 있지 않을까란 기대도 내심 했습니다. 


Q. 이직이라는 인생의 큰 선택에 영향을 준 팀장님이라면, 정말 좋은 분이셨을 것 같아요.

지금껏 만난 상사 중 가장 좋은 분이세요. 누군가에 대한 불평이든 일에 대한 의견이든 어떤 생각도 말할 수 있죠. ‘인사 고과에 반영되는 거 아닐까’하는 고민 없이 편하게 나눌 수 있으니 안전감도 생기고요. 또, 실무자들이 실무만 집중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주시고 문제가 생기면 바로 나서서 해결해 주시는, 정말 이상적으로 꿈꾸던 그런 팀장님이세요.


동료들과 함께한 웨이브 브랜딩 캠페인(좌)과 워크샵(우) ⓒ안진솔


Q. 웨이브 마케팅 매니저는 브랜드 마케팅과 콘텐츠 마케팅 모두를 담당하는 특별한 직무예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나요?

브랜딩 부분에서는 웨이브라는 브랜드를 소개하는 역할을 해요. ‘타깃은 누구일까’ ‘왜 웨이브에 가입하지 않을까’ 같은 추상적인 고민부터 시작합니다. 웨이브가 가진 매력적인 콘텐츠를 세상에 알리고 이를 즐기고 소문낼 만한 타깃을 발굴하는 부분은 콘텐츠 마케팅을 통해 진행합니다. 각 콘텐츠에 적합한 타깃과 마케팅 규모, 방식을 고민해 웨이브 신규 가입을 유도하기도 하고, 기존 유저가 지속적으로 웨이브를 이용하게끔 만들기도 하죠. 신규 유저의 경우 해당 콘텐츠만 보고 구독 해지하지 않도록 취향에 맞는 콘텐츠 추천을 다양한 방법으로 시도합니다. 


고생한 동료들과 함께 엔딩 크레딧에 이름을 올리는 순간 ⓒ안진솔


일에 대한 불안을 설렘의 시그널로 


Q. 콘텐츠 산업에서 꾸준히 커리어를 이어올 수 있었던 동력이 궁금합니다.

지치고 힘들지만 이 일을 좋아하는 마음이 더 커서 그걸 동력으로 일해 올 수 있었어요. 내가 한 고민과 아이디어가 세상 밖에 나가고 그걸 사람들이 공감하며 ‘인생작’이라는 얘기를 해줄 때 뿌듯함도 느끼고요. 이런 성취감은 쓸모를 보여야 한다는 압박감과 함께 오며 저를 괴롭히기도 했지만 불안을 이겨내며 좋은 결과를 냈을 땐 짜릿함을 안겨주더라고요. 이젠 불안을 불행의 시그널이 아닌, 설렘의 시그널로 해석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Q. 잘 보이고 싶고, 잘 하고 싶은 욕망이 클수록 불안함은 어쩔 수 없이 따라오게 되는 것 같아요. 처음이면 못할 수도 있고, 때론 실수할 수도 있는 건데 스스로를 몰아붙이고 실망할 때가 많아요.

맞아요. 누구나 시행착오를 겪고 실수할 수 있어요. 그때 어떤 경험과 기억을 갖느냐에 따라 일하는 태도에 꽤 오랫동안 영향을 주는 것 같아요. 저는 방심하거나 나태할 수 없는 환경이었고, 그 덕에 스스로 많이 채찍질하며 몇 년을 보냈어요.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일에 과하게 영향받고 있는 제 모습을 발견하게 되더라고요. 그때 동료가 이런 말을 해줬어요. “우린 의사가 아니야. 사람 죽고 살리는 일 하는 거 아니잖아. 우리가 하는 일이 새벽까지 해야만 하는 일도 아니고, 실수한다고 해서 큰일이 나는 게 아니라고. 그러니 너를 그렇게 몰아세우지 마.”라고요. 그 이후로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어요. 


Q. 전력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작품이 외면을 받을 수 있고, 때로는 외면받을 걸 예상하면서도 전력을 다해야 하잖아요. 이 부분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있다면 진솔 님은 어떻게 해소하시나요?

예전엔 술도 잔뜩 마시고 친구들한테 하소연하곤 했어요. 그런데 남는 건 부정적인 에너지와 피곤함뿐이더라고요. 화를 내고 비난하는 대신 “세상에 이런 일도 있네~”라며 웃어넘기게 되면, 부정적인 감정이 가라앉고 그 틈에 여유가 생겨나요. 그때 이성적으로 하나씩 생각해 나가죠. 

가끔은 농담으로 넘기기 힘들 때도 있어요. 지난주에 제가 그랬거든요.(웃음) 그럴 땐 한바탕 울고, 눈 감고 누운 다음 감정의 원인을 깊숙이 파헤칩니다. 하다 보면 얼굴 빨개질 만큼 부끄러운, 솔직한 답이 나와요. 누군가를 향한 질투일 수도 있고, 시스템에 대한 분노일 수도 있죠. 답을 찾으면 그때부터 차분해지면서 이성적인 판단이 되더라고요. 해결책도 찾게 되고요. 


Q. 막상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게 되면 즐기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 같아요. 종종 ‘취미로 남겨둘걸. 그러면, 더 애정했을 텐데.’란 말을 듣기도 하죠. 이런 고민을 하는 후배를 만난다면, 진솔 님은 어떤 대답을 해주고 싶으세요?

그저 취미였다면 애정했겠지만, 일이기 때문에 ‘애증’하는 거 아닐까요? 애정보다 애증이 더 큰 감정이라고 생각해요. 좋지만 밉고, 그래서 못 놓겠는 복합적인 감정인 거죠. 좋아하는 건 언제든 대체될 수 있지만 애증 하는 대상은 쉽사리 대체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조금 더 깊은 감정을 지닌 거니 계속해 보길 권할 것 같네요. 그럼에도 계속 고민을 한다면… 이렇게 답할래요. “그래도 언젠가 다시 하게 될걸?”(일동 웃음) 마음속에 남아있는 건 그게 작든 크든 결국 발현되니까요. 결국은 하게 될 거라고 생각해요. 


영화 <해리포터>에 등장하는 론 위즐리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안진솔


Q. 마지막 질문이에요. 저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너무 좋아해요. 울적한 기분이 드는 날이면, 센이 된 치히로와 함께 한답니다. 진솔 님께 특별한 콘텐츠는 어떤 건가요?

눈치채셨겠지만 10살 때 친구와 극장에서 처음 본 <해리포터>가 제 인생 영화예요. 지금도 심심할 때면 해리포터를 봐요. 타투도 있고. 아마 평생 바뀌지 않을 것 같아요. 저를 처음 영화의 세계로 이끈 것도 해리포터였고, 2천 편이 넘는 콘텐츠를 보게 된 것도, 이 일을 하는 것도 모두 해리포터 덕인 것 같아서요. 



▶ <콘텐츠: 취미를 만드는 사람들> 시리즈 보러 가기



CREDIT
글ㅣ김한나 원티드 콘텐츠 에디터 
사진ㅣ최호근 포토그래퍼


발행일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