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티클은
<콘텐츠: 취미를 만드는 사람들> 시리즈의 3화입니다.
✍ 오늘의 아티클- 콘텐츠의 성적이 좋지 않을 때 크리에이터가 빨리 털고 일어나려면 유머러스하게 부딪히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해요. 놀린다는 건 보통 상대를 배척하는 행위라 생각하는데, 사실 상대를 포용하는 행위라고요.
- ‘도대체 이 조합은 뭐지?’ 싶을 정도의 다양함이 만났을 때 예상치 못한 시너지와 창의성이 나온다고 말합니다. 때론 이러한 '이상함'들이 크리에이터에게 신선한 영감을 주기도 하니까요.
- 미디어에서 무언가를 트렌드라고 명명하는 순간 그건 이미 철 지난 촌스러운 것이 돼버립니다. 메타코미디 크리에이터들이 트렌드세터인 이유는 트렌드를 안 쫓기 때문이에요.
사람들에게 나의 밑바닥을 보여주는 건 어려운 일이다. ‘부족한 모습을 보일까 봐서’라는 말 안에는 사랑받지 못할까 두려운 마음이 내재돼 있다. 본인에 대한 이해가 정립된 사람. ‘줏대 있는, 고집 있는, 당찬’이란 말이 어울리는 사람. ‘자신만의 철학이 뚜렷한 게 부럽네요’라는 나의 말에 ‘그렇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으니까요’라고 솔직 담백하게 말하는 사람. 보여주는 삶에 지친 누군가에겐 어쩌면 위로와 공감을 줄 수 있는 그런 인터뷰였다. 그는 더 이상 세상이 바라는 모습으로 살지 않기로 했다. ‘나’의 해방감을 맛보기 위해서.
이정빈 메타코미디 브랜드 매니저
보이는 것보다 중요한
본질에 집중한 메시지
Q. 메타코미디에 입사하기 전, <맥심코리아> 마케터로 근무하셨죠. 입사하게 된 이유가 있다면 어떤 걸까요?
대학교 내내 낮이면 도서관, 밤이면 클럽에 다녔어요. 자취방이 여름에 덥고 겨울은 추워 머물만한 쾌적한 공간을 찾았는데 그게 도서관인 거였죠. 자연스럽게 매일 책도 읽게 됐고요. 그날도 여느 때처럼 취업 고민을 하며 학교 도서관에 들려 쉬는데 SNS에 맥심코리아 채용 공고가 뜨는 거예요. 지원했더니 붙었고, 다니게 된 거죠. 새롭고 획기적인 일들이 가득할 거란 기대와는 달라 한 달 반 만에 퇴사를 결심했고, 나랑 맞는 곳은 없는 건가란 생각에 비행기 티켓만 달랑 들고 호주로 떠났어요. 친구들에게 ‘난 안 돌아갈 거니까 나중에 호주로 놀러 와’라는 메시지만 남기고요.

워킹홀리데이로 간 호주에서 스시집 아르바이트를 할 때 ⓒ이정빈
Q. 번아웃이 오거나 혼란스러울 땐 혼자 훌쩍 떠나는 것도 도움이 되죠. 호주에서의 생활은 어떠셨나요?
들고 간 돈도 없다 보니 밥도 못 짓는 데 스시집 알바를 시작했어요. 캘리포니아 롤을 못 말아서 한참 어린 동생한테 매번 혼이 났지만 영어 실력 덕분에 매니저 제안을 받게 됐죠. 그런데 막상 정착할 생각을 하니까 고민되더라고요. 이런 생활은 한국에서도 가능한데 굳이 호주까지 와서 안주하는 삶을 사는 게 맞나 싶었거든요. 결국 시급 두 배에, 차와 비자까지 마련해 준다는 제안을 거절하고 귀국했어요. 그때 깨달은 게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는 말이에요. 그때부터 저는 ‘낙원은 내가 만드는 것이다’를 믿고 살게 됐죠.
힘들 때마다 더 좋은 날이 오겠지라는 생각을 했지만 막연한 기대 말고 냉정하게 따져볼 필요를 느꼈어요. 3개월 정도 고민 끝에 커리어 방향성을 잡았습니다. ‘창의성을 필요로 하는 회사’ ‘지속적인 인사이트를 낼 수 있는 직업’, 그리고 ‘돈 많이 주는 곳’으로.
Q. 그렇게 선택하게 된 기업이 대형 마케팅 에이전시군요. 3년 정도 근무하셨던 걸 보면 생각한 방향성에 부합한 곳 같은데요. 어떤 업무를 하셨나요?
신설 부서인 비디오 커머스 팀에서 SNS 영상 광고 기획부터 제작까지 전담하게 됐는데, 영상 및 편집 툴을 전혀 모르는 상태라 배우면서 일했어요. 기획하고, 대본 쓰고, 촬영하고, 편집하고, 영상 대시보드 보면서 피드백 하고. 이 사이클로 얻은 인사이트는 다음 영상 광고에 반영해 기획하는 과정을 끝없이 반복해 나갔죠. 한 번은 담당한 매트릭스 광고 영상이 유명 배우를 섭외하지 않고도 대박이 나서 매일 2억씩 매출이 찍힌 적 있어요. 자녀에게 선물 받은 제품을 보고 활짝 웃는 엄마의 모습이 나오는 스토리였죠. 기존 영상들이 화려함에 집중할 때 저는 사람의 감정을 건드리는 메시지를 찾는 데 시간을 쏟았고, 이게 옳았다는 걸 증명한 셈이에요.
이후 테크닉을 연마하기보단 핵심만 골라내는 연습을 시작했어요. 광고주 특징 중 하나는 요청 사항이 많다는 거잖아요. 저는 그걸 깎고, 깎아 한 가지만 남기는 사람이에요. 설득시키는 과정이 쉽지 않을 땐 A/B 테스트로 증명해 보였고요. 저는 때깔 나는 브랜딩 영상은 못 만들지만 본질에 집중한 메시지는 잘 전달할 수 있고, 여전히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코미디,
웃긴 것과 우스운 건 다르다
Q. 코미디 레이블 <메타코미디>로 이직하시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퇴사 후에도 꾸준히 연락하던 맥심코리아 동기 형이 메타코미디를 추천해 줬어요. 이유를 물어보니 ‘주위에 개그가 아닌 코미디란 단어를 쓰는 사람이 너랑 대표님 둘뿐이야’라는 거예요. 그 한 문장이 머릿속을 맴돌았어요. 생각해 보니 저는 코미디를 항상 좋아했더라고요. 초등학생 때는 오락부장이었고, 커서는 스탠드업 코미디를 자주 보고. 코미디를 좋아한다는 자각을 못했을 뿐이지 이미 즐기는 사람이었죠. 다음날 대표님께 장문의 메일을 보냈더니 만나보자고 바로 연락을 주셨어요. 대화를 나눠 보니 대표님과 저는 진짜 잘 맞더라고요. 마치 제 미래를 보는 것만 같았어요. 대표님의 생각과 비전, 걸어오신 커리어 모두요. 몇 번 더 만난 뒤 힘들었던 과거 이야기부터 제가 할 수 있는 것과 하고 싶은 것, 부족한 부분과 ‘때려죽여도 못 하는 것’까지 솔직하게 털어놨습니다. 일기장에 써둘 법한 내면의 이야기까지 꺼냈죠. ‘얘 뭐지?’라고 생각해도 이상할 게 없겠다 싶었는데 오히려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납득되지 않는 일을 하고 싶지 않은 건, 일을 잘 한다는 뜻이에요.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같이 일해 봤으면 좋겠어요.” 그 대답을 듣고 출근을 결심했어요.(웃음) 정신 차려 보니 10개월이 흘러가 있네요. 어떻게 시간이 흘렀는지 기억 안 날 정도로 바쁘게 보냈어요. 1년 새 회사는 폭발적으로 성장했고요. Q. 메타코미디 브랜드 매니저는 어떤 일을 하나요?모호하게 들리실지 모르겠지만 메타코미디 브랜드 매니저는 브랜드 관련된 모든 일을 해요. 고정적인 업무는 인스타그램 채널 콘텐츠 제작 및 운영, 그리고 유학 경험이 있기 때문에 영어 토크쇼 형식의 프로그램 <피식쇼>의 대본 번역과 미국식 맥락의 조크를 제안하는 정도예요.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땐 포스터 카피를 쓰기도 하고, 이벤트 기획을 하기도 하고, 크리에이터의 촬영 현장에 동행하며 SNS에 올라갈 영상을 찍기도 합니다. 여러 업무를 하고 있어서 가끔은 ‘그냥 놀러 다녀’라고 말하기도 해요.(웃음) 
메타코미디 클럽(좌), 임플란티드 키드 페스티벌(우) 촬영 현장 ⓒ이정빈 Q. 메타코미디는 <장삐쭈>, <피식대학>, <숏박스>, <과나> 등 인지도도 높고, 각자의 개성도 뚜렷한 크리에이터들이 소속돼 있어요. 브랜딩 할 때 어떤 부분에 특히 신경 쓰시나요?웃긴 것과 우스운 걸 구분시키려 노력했어요. 코미디언은 웃음을 주는 직업이다 보니 관객의 입장에서
종종 웃긴 것과 우스운 것을 혼동하기 쉽거든요. 저는 크리에이터들이 찰나의 웃음을 만들어 내기 위해 얼마나 큰 부담과 창작의 고통을 겪는지 잘 알고 있고, 그걸 존경하기 때문에 그런 인식을 바꾸고 싶었어요. 다음으로는 코미디 장르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싶어요. 예상할 수 없는 현장 속에서도 관객의 웃음을 만들어 내는 코미디언의 순발력과 창의력은 알면 알수록 경이롭고 대단하거든요. 
팬들이 준 스티커 선물로 가득 채운 냉장고 ⓒ이정빈
Q. 메타코미디 브랜드 매니저에게 중요한 역량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깡’이 있어야 해요. 홀란드 닮은 꼴로 스트레스 받는 지윤이(메타코미디 소속 크리에이터 엄지윤)를 보며 ‘차라리 그걸로 영상을 만들어서 분위기를 장악해 버려!’라고 조언할 수 있고, 형들이 고민해 만든 콘텐츠를 보며 ‘와 이거 진짜 재미없네?’라고 말할 수 있는 깡이요. 콘텐츠의 성적이 좋지 않을 때 크리에이터가 빨리 털고 일어나려면 유머러스하게 부딪히는 과정이 필요해요. 저희는 ‘놀림의 미학’이라고도 불러요. 놀린다는 건 보통 상대를 배척하는 행위라 생각하는데, 사실 상대를 포용하는 행위거든요. 제가 먼저 ‘너무 재미없는데’라고 선수쳐버리면 사람들도 ‘맞아, 노잼!’이러면서 크리에이터에게 상처 줄 수 있는 상황을 가볍게 웃어넘길 수 있게 되는 거죠.
깡이 있어야 재미있는 콘텐츠도 나올 수 있어요. 크리에이터 대부분 내공이 단단해서 새로운 아이디어나 다른 의견을 제안하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거든요. ‘덤빈다’고도 표현하는데 제안도 재밌게 잘 던져야 해요. ‘부탁드립니다’ 정도론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실력 있고 잘나가는 크리에이터를 설득 시키기 어려워요. 자칫하면 관계가 틀어지거나 어쩌면 문제 될 수 있을 정도의 위험은 감수하고 좋은 결과를 만들어 냈을 때, 비로소 설득과 신뢰가 생겨요. 그래야 ‘이선민 합성 대회’ 같은 아이디어가 세상에 나오는 거죠.

제 1회 이선민 합성 대회 이벤트 ⓒ메타코미디 Q. ‘과나’ 님의 유튜브 채널 콘텐츠 ‘대머리여서 좋은 점 30가지’에 나오셨어요. KBS 예능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에도 출연하셨고요. 메타코미디에서 일하려면 굉장히 활발하고 적극적인 사람이어야 할 것 같은데요. 메타코미디에는 어떤 경험과 성향을 가진 분들이 모여있나요?메타코미디에는 코미디 혹은 콘텐츠 업계 쪽 사람이 거의 없어요. 철학, 사회학 등 살아온 배경이 다양하죠.
그런데 한 가지, 각자만의 뚜렷한 특징이 있어요. 말하는 어투에 특이점이 있다거나 주말이면 산꼭대기에 텐트를 치고 혼자 잔다거나요. ‘도대체 이 조합은 뭐지?’ 싶을 정도의 다양함이 만났을 때 예상치 못한 시너지와 창의성이 나오는 것 같아요. 대표님도 그걸 의도하셨을 거고요. 때론 이러한 '이상함'들이 크리에이터에게 신선한 영감을 주기도 합니다. 
Q. 요즘은 누구나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시대잖아요. 새롭고 신선한 아이템을 찾는 게 더더욱 어려울 것 같아요. 정빈 님은 어떤 방식으로 영감을 얻거나, 혹은 레퍼런스를 수집하시나요?식상하겠지만 콘텐츠를 다양하게
정말 많이 봐요. 대신, 비슷한 업계 콘텐츠는 잘 안 보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A를 보고 A-1가 나올 순 있어도 Z가 나오긴 힘들 듯, 어쩔 수 없이 영향받게 되거든요. 그렇다고 본질을 훼손하면서까지 새로운 걸 찾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맥주 회사 직원이 그저 새로움에만 집착해 핸드폰 맛 맥주를 만든다면 신기하긴 하겠지만 잘 팔리진 않겠죠. 신선한 건 세상에 없던 걸 만들어야 하는 게 아니거든요. 이미 잘 만들어진 맛있는 맥주를 모자에 넣어서 팔아보는 식의, 새로운 방식으로 즐길 거리를 고민하는 게 유효한 크리에이티브라 생각해요. Q. 브랜딩을 위한 콘텐츠를 만들 때 트렌드 역시 중요하잖아요. 어떤 방식으로 트렌드를 활용하시는지 궁금해요.트렌드는 향신료라고 생각해요.
좋은 음식에 향신료 적정량을 사용하면 메인 요리의 풍미를 더하겠지만 조금만 과하게 넣어도 본연의 맛이 사라지죠. 기본은 신선한 재료로 맛 좋은 요리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콘텐츠가 잘 안된다고 트렌드만 쫓아가는 건 근시안적인 방법이에요. 미디어에서 무언가를 트렌드라고 명명하는 순간 그건 이미 철 지난 촌스러운 것이 돼버리잖아요. 결국 팔로워밖에 안 되는 거죠. 메타코미디 크리에이터들이 트렌드세터인 이유는 트렌드를 안 쫓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Q. 코미디언 이창호 님의 턱을 만질 수 있는 전시회 ‘턱치회’를 보며 굉장히 신선하다고 생각했어요. 코미디에 예술을 곁들인 전시 이벤트라니, 어떻게 기획하신 건가요?처음에는 팬들이 이창호 턱을 가지고 놀리니, 이걸로 간단한 팬미팅을 해보자 정도였어요. 그런데 그 방식이 기존 팬미팅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느꼈죠. 그래서 “형, 콘셉트가 완전 시바이*니까, 연출은 반대로 진지하고 세련된 전시회 느낌을 내보자”고 했죠. 이후 국내 유명 전시회에서 일하는 현직 도슨트님과 많은 뮤지션과 작업하는 실력 있는 첼리스트님을 섭외해
진짜 전시회처럼 연출했어요. 턱 모양을 본 뜬 석고상도 세워 두고요. 그랬더니 관객들이 손을 덜덜 떨면서 턱을 만지더라고요. 속으로 성공했다고 생각했죠. * 방송국이나 관련 업계에서 쓰는 은어로, 재미 요소나 웃음 포인트를 말한다. 
첼로 연주와 도슨트 투어가 진행되는 진지한 분위기의 턱치회 ⓒ메타코미디
'이창호 턱 만지기 팬미팅'을 뻔한 방식으로 가볍게 진행했다면 별다른 임팩트 없이 휘발될 수도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완전히 다른 분야를 접목시켜 보자는 다소 무모한 기획과 동료들과 함께 그럴싸한 결과물을 내기 위한 많은 고민과 노력 끝에 턱치회는 하나의 좋은 레퍼런스가 됐습니다. 이후에도 '턱치회' 같은 거 해보자는 얘기가 계속 나올 정도로요.
콘텐츠는 나를 내려놓는 또 다른 방법
Q. 정빈 님이 운영하시는 유튜브 채널 <망고보이>의 콘텐츠를 보게 됐어요. 사실 저는 타인과의 비교, 그리고 평가에 예민한 사람이라 부족한 부분을 드러내는 게 쉽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정빈 님의 시도가 멋지고, 정말 대단하다고 느꼈어요. 정빈 님의 솔직한 이야기들을 유튜브 콘텐츠로 풀어내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어릴 적 저는 수업이 지루하면 장기자랑하자며 반 분위기를 주도하는 까부는 아이였어요. 그러나 중학생 때부터 큰 책가방을 매고 새벽 1시까지 학원과 독서실을 오가는 생활이 시작됐죠. 유학도 다녀오고 외고 편입도 성공했는데, 형편에 맞지 않는 사교육이란 걸 잘 알아서 잘 해야만 한다는 압박감이 커져갔어요. 고등학생 때는 국어 지문을 덜덜 떨며 읽을 정도로 완벽에 대한 강박이 심해졌지만 ‘지독하다’란 소리를 들을 정도로 매일 책상에 앉아 공부만 했고 다행히 서울 상위권 대학교에 입학했죠. 남들이 인정해 주는 괜찮은 대학도 들어갔고, 모든 걸 내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성인도 됐는데 막상 제가 누구이고 뭘 좋아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전혀 못 하고 살았더라고요.
성인이 된 저는 더 이상 남들과 같은 방식으로 살고 싶지 않았어요. 편하고 안전한 길일지는 몰라도 저에게는 매력적이지 않았거든요. 
미국 고등학교 유학 시절(좌), 제대 후 나를 찾기 위해 떠난 인도 여행(우) ⓒ이정빈
유튜브 콘텐츠는 ‘살기 위한 발악’이었던 거죠. 보여주기 위한 삶, 남과 비교하며 완벽한 모습만 보여주려는 가면 쓴 삶이 아닌, 밑바닥을 보여주고 진짜 내 삶을 살아내고 싶었어요. 제가 가지고 있는 패를 역으로 먼저 오픈해버리니 오히려 걱정과 두려움도 사라졌습니다. 이제 선택은 상대의 몫이죠. 영상을 보고 저를 멀리한다면 저 역시 에너지 낭비할 필요가 없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가온 다면 교류하기 더 쉬워지고. 덕분에 자유로움을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Q. ‘잘’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시작이란 단어는 두려움과 같은 말 같아요. 결과(타인의 평가)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시도하지 못하고 미루는 후배를 만난다면, 그래서 혼자 끙끙 앓고 있다면, 정빈 님은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나요?
당연한 말이지만, 새로운 세상으로 나오려면 자기를 둘러싼 알을 깨고 나와야 해요. 저는 바닥을 찍으면서 이 경험을 겪어 봤거든요. 알은 반만 깰 수도 없고, 살짝만 깨볼 수도 없어요. 단순하지만 명확한 결과만 존재할 뿐이죠. “깼다” 혹은 “안 깼다”
안락한 알 속이 편하고 좋으면 굳이 그걸 고통스럽게 깨고 나올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고통스러운 사람은 알 밖의 세상이 궁금하지만 그걸 깰 용기를 아직 내지 못해 끙끙 앓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본인이 그런 사람이라면 어떻게든 깨라고 말하고 싶어요. 그냥 들이 박으세요. 아름답게 알을 깨고 태어나는 생명체는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같이 못생기고 연약한 상태로 알 밖에 나오잖아요. 중요한 건 알을 깨고 나오는 거지 알을 깨고 나온 내 모습이 괜찮았는지 혹은 내가 깬 알의 조각들이 예쁜지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가장 존경하는 아티스트이자 피식쇼 게스트로 나온 Jay Park(박재범) ⓒ이정빈 Q. 마지막 질문입니다. 정빈님이 좋아하는, 혹은 위로받는 콘텐츠를 소개해 주세요. 영국 드라마 <애프터 라이프 앵그리맨>을 주기적으로 볼 정도로 좋아해요. 사별한 아내를 그리워하며 매번 자살 기도하고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주인공이 그걸 어떻게 극복해 나가는지 영국식 블랙 코미디답게 아주 건조하고 담백하게 풀어내거든요. 생각날 때마다 꺼내 보면 심심하지만 단단한 위로를 얻곤 해요. 뇌가 지쳐 신선한 생각이 잘 떠오르지 않거나, 삶의 순리에 대한 고민이 들 때면 <플래닛 어스>라는 BBC 다큐멘터리를 봅니다. 대자연과
이색적인 동물 피사체가 주는 신선함이 강렬한 인상을 주며 리프레시 되더라고요. 또, 냉정한 약육강식의 세상을 적나라하게 보다 보면 ‘내가 배부른 고민을 하고 있구나’란 생각이 들며 겸손해져요.(웃음) ▶ <콘텐츠: 취미를 만드는 사람들> 시리즈 보러 가기CREDIT
글ㅣ김한나 원티드 콘텐츠 에디터 사진ㅣ최호근 포토그래퍼발행일 2023.0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