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메시지와 콘셉트를 유형의 것으로 구체화시키고, 이를 대중이 바이럴할 수 있도록 매력을 더하는 사람. 그런 사람만이 갖는 능력치는 무엇일까? 켈로그 코리아에서 브랜드 매니저로 8년간 일하고 있는 백수진 부장은 망설임 없이 말한다. ‘브랜드를 사랑하는 마음’이라고. 리서치 업계에서 시작해 브랜드 매니저로 정착하기까지 그의 이력을 보면 알 수 있다. 그 대답이 마냥 뻔한 응원이 아님을 말이다.

마켓 리서치 : 이과생이 선택한 첫 커리어
토론토 대학교에서 생명학부를 전공한 그가 리서치 업계에서 커리어를 시작했다. 단면적으로 보면 한 번쯤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이력이지만, 그는 너무도 당연한 순리인 것처럼 명쾌하게 자신의 방법대로 마케터 매니저로서의 기반을 다져왔다.
수진 님께서는 2002년부터 유학 생활을 시작해 캐나다 토론토 대학교에서 학업을 마무리하셨습니다. 유학 생활을 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저는 유학을 갈망하는, 열정 있는 학생은 아니었어요. 한국보다 조금 더 자유로운 환경에서 원하는 수업을 자발적으로 선택해 들으며, 다른 문화권의 생활을 경험해 보는 건 어떻겠냐는 부모님의 권유에 유학을 결심했어요. 당시 고등학교 선생님이셨던 어머니는 한국의 학업 분위기와 야간 자율 학습과 같은 시스템에 고민이 있었고, 아버지는 국내 회사에서 외국계 회사로 이직하시며 영어에 대한 스트레스가 컸어요. 그래서 딸만큼은 본인들이 겪고 있는 문제들에서 벗어나길 원하셨던 것 같아요.
생물학과 동물학을 전공하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해당 전공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한국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캐나다에서 고등학교 공부를 시작했는데요. 언어가 중요한 문과보다 이과가 유리하다고 생각했어요. 또, 캐나다에서 토론토 대학의 생명학부가 굉장히 유명해서 큰 고민 없이 전공을 선택했어요. 그런데, 실제로 공부해 보니 너무나도 어려운 과목이라 꽤 고생했습니다. 처음 입학하자마자 진화론을 비롯해 토론토 대학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생화학* 그리고 다수의 세포 분자와 관련한 수업을 들었어요. 이 전공은 국내의 생명과학부와 비슷할 것 같아요.
*토론토 대학에서 공부한 벤팅(Banting) 의사는 인슐린을 발견해 노벨생리학·의학상을 수상했다.
학업을 마치신 후, 전 세계 90국에서 마켓 리서치를 진행하는 ‘입소스 코리아(Ipsos Korea)’에서 커리어를 시작하셨습니다. 그곳에서 ‘Research Specialist’로 일하셨는데요. 아주 단편적으로 바라보면 전공과 사뭇 성격이 다르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 일을 하시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요?
단순히 전공을 살려 의대에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의학전문대학원 시험을 치렀지만 시원하게 떨어졌어요.(일동 웃음) 그러고 나서야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방향으로 커리어를 개발해 보고 싶은지 고민하게 됐어요. 고민 끝에 나는 내가 만든 작업물이 세상에 잘 보여졌을 때 만족감을 느낀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그리고 그 일이 마케팅과 결이 맞다고 생각했죠. 다음 단계로, ‘마케팅을 어디에서 시작하면 좋을까’에 대한 질문에 답을 구해야 했어요. 저는 마케팅 관련 경험이나 스펙이 없었기 때문에, 이과생으로서의 역량을 활용할 수 있는, 그러나 높은 업무 강도로 유명했던 리서치 업계를 선택했어요. 제가 대기업 취업을 준비했을 당시 (물론 사실은 아니지만) 유학생은 비교적 자유로운 속성을 갖고, 무언가 쉽게 포기하는 성향이 있어 대기업에서 원하는 인재상이 아니라는 피드백을 듣곤 했어요. 그래서, 가장 힘들다는 곳에서 열심히 일하고 열정적으로 버티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기도 했어요.
수진 님께서 처음 이직한 곳은 세계 맥주 1위 기업 ‘AB InBev’였습니다. AB InBev에서 브랜드 마케터(매니저)로 약 4년 동안 일하시며 카스와 카프리, OB 맥주를 브랜딩해 오셨습니다. 이곳에서 함께하신 대표 캠페인, 프로젝트를 소개해 주실 수 있나요?
이전 직장에서 Research Specialist 능력을 인정받아 AB InBev에 Insight specialist로 이직했지만, 내 가슴을 뛰게 하는 일은 브랜드 매니징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어요. AB InBev는 유명하고 매력적인 브랜드들을 관리하는 기업인 만큼 욕심을 버리기 더 어려웠죠. 그래서, 인사이트팀에서 좋은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동시에 브랜딩이 하고 싶다는 점을 계속 어필하며 브랜드 매니저를 위한 커리어를 차근차근 쌓아갔어요. 그리고 마침내 국내 1위 맥주 카스(Cass) 브랜드 매니저를 맡아 굵직한 캠페인을 많이 진행했습니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부딪쳐라 짜릿하게’ 캠페인이에요. 해당 캠페인이 나오기 직전 시기에도 ‘삼포세대’라는 말이 처음 대두될 만큼 청춘이 무척 힘들어 하는 시기였어요. 그렇기에 젊은 연예인들이 맥주를 즐기는 기존의 카스 광고가 더 이상 카스가 타깃하는 청춘과의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모델이 아닌 청춘이 진짜 공감할 수 있는 스토리텔링을 앞세워 다시 주 타깃층의 마음을 얻어내는 데 성공했어요.

브랜딩하는 사람 따로 없습니다
브랜드 마케터와 매니저가 특별히 밟아야 하는 스텝이 있을까? 만약 그런 게 있다면 우리가 만나는 모든 브랜드가 엇비슷한 모습만 보여줬을 터. 매일 더 신선하고 재밌는 브랜드 이야기를 볼 수 있는 건, 저마다 다른 세계에서 수집해 온 보따리를 풀고 있는 마케터들 덕분이다.
AB InBev를 기점으로, 현재까지 브랜드 매니저 직무를 이어가고 계십니다. 마케터로서, 좀 더 깊게 들어가 브랜딩하는 사람으로서 일에서 얻는 즐거움은 무엇인가요? 이 일을 계속 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궁금합니다.
제가 하는 일이 대중에게 보여지고 사랑받는 것이 무척 좋아요. 트렌드와 소비자 연구를 토대로 신제품을 출시했을 때 그 제품 혹은 제품 광고에 수많은 사람이 긍정적인 피드백을 보내거나 해당 제품이 매대에 진열돼 있고, 누군가 소비하는 모습을 직접 목격하면 깊은 보람을 느끼죠. 이 일을 계속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고요.



ⓒ켈로그 코리아
2017년 켈로그 코리아에 입사하신 후 디즈니 콜라보레이션, ‘오트로드 by 연희’ 등 여러 캠페인을 진행하시며 매출 성장에 기여하셨습니다. 수진 님께서 맡으셨던 많은 캠페인 중 한 가지 캠페인을 소개해 주신다면요? 기획(아이디어 수집)부터 결과까지, 진행 단계별로 들어보고 싶습니다.
제게 가장 큰 기쁨과 슬픔을 안겨준, 2019년에 진행한 프로틴 런칭 캠페인이 아닐까 싶어요. 그 당시 글로벌에서는 프로틴 시장이 이미 확대되는 추세였고, 한국에서도 ‘언제 프로틴 시장이 열린 것인가’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어요. 신제품이 일찍 시장에 나오면 더욱 많은 노력이 필요하고, 반대로 늦게 나오면 그만큼 경쟁에서 뒤처지기 때문에 새로운 카테고리 확장은 항상 어려운 과제인 것 같아요. 성공 레퍼런스가 없었던 시점에서 하지만, 한국에서 점차 프로틴이 대중화돼 가고 있는 시점에서 켈로그 코리아는 발빠르게 프로틴 그래놀라 제품을 런칭했어요. 당시 한국에서 높은 성장률을 보여주고 있던 그래놀라에 프로틴을 강화한 제품으로 시리얼과 쉐이크 그리고 프로틴바까지 런칭했어요.
런칭 이후에는, 배우 유인나 씨를 광고 모델로 섭외해 TVC를 진행했어요. 프로틴이 헬스하는 남성만을 위한 제품이 아닌, 단백질 섭취가 필요한 누구나 아침부터 꼭 챙겨야 하는 제품이라는 인식 변화를 이끌어냈던 TVC예요. 프로틴을 맛있고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켈로그 제품을 매력적으로 보여주며 글로벌 켈로그와 대중에게 호평을 받은 것을 물론, 눈에 띄는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어요. 이 성과는 프로틴 그래놀라 제품의 성공을 목표로 모든 부서에서 전력을 다한 덕분이에요. 전 과정에서 고민과 슬픔, 기쁨과 보람을 가져다 준 프로젝트인지라 기억에 남아요.
브랜드 매니저로 성과를 내기 위해 다양한 산업과 이슈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업에 적용 가능한 부분을 모색해야 할 뿐 아니라, 전에 없던 새로운 기획을 브랜드 색깔에 맞춰 시도해야 할 것 같습니다. 수진 님께서 기획 아이디어를 얻는 방법이나 새로운 시도를 통해 성공적인 결과를 내는 노하우가 있다면요?
브랜드 마케팅하는 지인들과 지속적으로 만나 최신 소비 트렌드나 사회 이슈에 대해 논의하고 아이디어를 공유하며 서로 영감을 받는 편이에요. 예를 들어, 초콜릿 제품을 주력으로 판매하는 기업에서 마케팅하는 지인은 저당과 제로당 제품이 인기를 끌 것이라는 소식을 미디어보다 한발 앞서 이야기해 주죠. 이 외에도 여러 마케팅 사례를 접하려고 노력해요. 동아비지니스리뷰나 롱블랙, 마케팅 팩토리 등 꾸준히 다른 회사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관심을 갖고 보고 배우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기획 아이디어는 예기치 못한 때 떠오르곤 해요. 평소에 한 주제를 골똘히 생각하다 보면, 여행지, 가족 모임 등에서 불현듯 아이디어가 번뜩이더라고요.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브랜드 매니저와 어울릴까요?
누구나요! 그 어떤 사람도 열정과 노력 그리고 근성만 있다면 브랜드 매니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브랜드 마케터가 스페셜리스트일 수 있지만 저는 제너럴리스트라고 바라봐요.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고, 내가 맡은 브랜드를 키우겠다는 마음가짐이 있다면 누구든지 브랜드 매니저로 성장할 수 있을 거예요. 브랜드 매니저로서 성공하는 한 끗 차이 역시 브랜드를 사랑하는 마음이고요.
2021년 5월에 켈로그 코리아를 퇴사하셨지만, 같은 해 11월 재입사를 하셨어요. 퇴사와 재입사를 결정하신 주요한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켈로그 코리아에 입사한지 4년 정도 됐을 즈음 제게 성장 정체기가 찾아왔고 새로운 시도에 멈칫하는 제 자신을 발견했어요. 마케터로서 엣지를 잃는 건 아닌지 걱정도 됐죠. 그래서, 다른 브랜드나 회사를 통해 발전하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어요. 그런데, 떠나고 보니 이때껏 제가 사랑해 온 브랜드를 떠나 새로운 브랜드에 애정을 키우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어요. 그만큼 켈로그에 대한 제 애정과 자부심이 깊음을 느꼈고요. 또, 하나의 브랜드 안에서도 다각도로 커리어 성장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다시 고민하게 됐어요. 때마침 켈로그에서 브랜드 투자를 확대하던 시기였고, 제게 더 다양한 도전의 기회를 주겠다는 제안을 했어요. 저는 망설임 없이 그 제안을 받아들였고 재입사를 결정했어요.

(23년 4월 기준) 켈로그 평균 근속년수가 평균 9년 3개월이에요. 켈로그 코리아의 복지나 조직문화가 궁금해지는데요. 원티드 유저에게 자랑하고 싶으신 세 가지 장점을 꼽아주신다면요?첫 번째로, 켈로그는 원팀으로 일하는 문화가 잘 구축돼 있어요. 여러 부서가 하나의 큰 팀으로, 공통된 목표를 향해 단합된 팀워크가 돋보이는 곳이에요. 두 번째는 여성 친화적인 조직이라는 점이에요. 회사 생활과 출산 혹은 육아 병행을 반기는 분위기고, 개인의 상황에 맞춰 최대한 워라벨을 유지하며 커리어 발전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줘요. 자연스레 켈로그 코리아에 장기 근속한 여성 직원, 팀장급 이상의 여성 리더가 많다 보니, 여러 상황에 따라 롤모델이나 멘토를 가질 수 있다는 점이 여성 직원 입장에서는 큰 장점이에요. 세 번째로, 내부 성장의 기회예요. 켈로그는 인재 육성에 매우 진심인 편인데요. 마케팅 상무님을 비롯해 영업, 인사 & 대외협력팀 임원진, 그리고 심지어 대표님까지 내부에서 성장하셔서 현재 위치까지 오르신 분들이에요. 제가 다시 돌아올 수 있었던 것도 켈로그 내부에서 인재를 육성하고 커리어 개발을 적극 지원해 주는 열린 기회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수진 님의 켈로그 최애 제품을 소개해 주세요.당연히 리얼그래놀라 오리지널이요! 제가 켈로그 코리아에서 처음 담당한 제품이기도 하고요. 
ⓒ켈로그 코리아
쉽지 않은 도전, 흔치 않은 기쁨
신입으로 브랜드 마케터가 되는 문은 좁다고 말한다. 또, 그 좁고 뻣뻣한 문을 통과해 마케터가 된다고 하더라도 명확히 떨어지는 공식이나 알고리즘 없이 성공적인 캠페인을 집행해야 하는 어려운 미션에 마주해야 한다. 그럼에도, 마케터는 여전히 매력적인 직무 중 하나로 꼽힌다. 왜일까?
최근에 관심이 가는 혹은 좋아하는 브랜드가 있다면요? 저는 요즘 탬버린즈(tamburins) 제품을 좋아해요. 향도 매력적이지만, 이 향을 표현하는 카피와 이미지가 너무 흥미로워요. 기회가 된다면 이런 작업을 또 해보고 싶네요.
저는 브랜드 이솝(aesop)을 좋아해요. 이솝 특유의 BI나 패키지 등 차별화되는 포인트도 좋지만, 정신없는 하루 속 저를 쉴 수 있게 해주는 향이나 텍스처에 절로 마음이 가요.
마케터, 브랜드 매니저에게 마케팅(브랜딩)하는 제품(서비스)이 정말 중요하다고 들었어요. ‘무엇을 내가 고객에게 설득할 것인가’를 생각했을 때, 우선 내가 좋아하거나 즐겨 사용하거나 그것이 가진 이야기에 수긍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하죠. 수진 님께서는 어떠신가요?
저도 그 의견에 동의해요. 우선 나부터 브랜딩하고자 하는 제품에 설득돼야 상대방도 설득할 수 있다고 믿어요. 그래서, 회사를 선택할 때 내가 담당할 브랜드와 제품이 나와 핏이 맞는지 고민해야 해요. 제품 스토리텔링에 공감되고, 제품 자체가 내 상황에 잘 맞아떨어진다면 잠재 고객을 설득하는 데 더 효과적일 거예요.
어려운 질문일 수 있겠지만, 수진 님의 커리어 목표와 꿈은 무엇인가요?
전 앞으로도 마케팅 커리어를 쌓고 싶어요. 더 나아가, 제가 만족할 수 있는 수준까지 셀프(퍼스널) 브랜딩하고 싶어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예비 브랜드 매니저에게 조언 부탁드립니다. 저처럼 마케팅을 전공으로 공부하지 않은 분께 더욱이 드리고 싶은 말이 있어요. 마케팅이란 건 오히려 다양한 분야에 대한 관심과 경험이 매우 중요한 것 같아요. 절대 포기하지 말고 조금 돌아간다 하더라도 다 도움이 되는 길일 터이니 꼭 원하는 브랜드에서 멋지게 브랜딩 해보길 바라요. 저도 생물학을 켈로그에 입사해 식이섬유와 같은 성분 영역에서 활용할 줄 누가 알았겠어요? 그리고, 최근 마케터가 3D 직업이며 기피 대상 직군이라는 기사를 보고 슬펐어요. 마케팅 그리고 마케터는 극한직업이기도 하지만 재미와 기쁨 그리고 무엇보다도 성취감은 가장 극강으로 줄 수 있는 직군이라 생각해요. 그러니까 우리… 함께해요! ▶ <대박 내는 마케터들의 이야기> 시리즈 보러 가기CREDIT
글ㅣ박효린 원티드 콘텐츠 에디터사진ㅣ최호근 포토그래퍼발행일 2023.0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