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식과 의전, 영화 마케터라면 해야 한다고요?

글ㅣ재완 방송국 마케터

회식과 의전, 영화 마케터라면 해야 한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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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티클은 <현직자가 말하는 찐 직무 이야기: 마케팅 편> 시리즈의 4화입니다. 


✍ 오늘의 아티클
  • 영화 업계는 자유분방하고, 폐쇄적이면서도 가족적이라고 해요. 체계가 갖춰진 듯하면서도 아티스트의 한마디에 다 바뀌기도 하고, 타 업계에서 들어오기 힘든 폐쇄적인 업계이면서도 들어오는 순간 가족 같은 관계가 되기도 하거든요. 
  • 모든 행사가 진행되고 나면 뒤풀이가 있었고, 그 술자리는 대부분 새벽까지 이어졌다고 합니다. 그중에서도 단연 가장 힘든 술자리는 VIP 시사회 뒤풀이였다고 해요.
  • 정확한 장점과 기능이 있는 제품과 달리, 영화나 콘텐츠는 개인의 취향에 따라 재미의 정도가 달라지다 보니 늘 논쟁이 오간다고 해요. 제작사부터, 감독, 이사, 대표, 회장님의 산까지 넘어 배우에게 공유했는데, 배우가 싫다고 해서 다시 처음부터인 경우도 많고요. 




이전 글에서 말했던 것처럼 영화 업계는 굉장히 자유분방하고, 폐쇄적이면서도 가족적이다. 체계가 갖춰진 듯하면서도 아티스트의 한마디에 다 바뀌기도 하고, 타 업계에서 들어오기 힘든 폐쇄적인 업계이면서도 들어오는 순간 선후배, 가족 같은 관계가 되기도 한다. 초반에 적응하기 힘들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선배님’이라는 호칭이었다. 영화학과를 나오지 않았어도 ‘영화 업계에 들어오면 다 선후배다’라는 개념인데, 처음 배우들과 마주할 때는 정말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저 배우가 대체 왜 내 선배란 말인가?’하는 반발심이 들었지만, 금세 익숙해져 나중에는 친구나 가족과 이야기할 때도 배우를 선배라고 불러서 놀림을 당했다. 이렇게 금세 익숙해질 수 있었던 건 바로 입사 후에 끝도 없이 이어진 회식 덕분이기도 했다.


회식, 몇 시까지 해봤니? 


영화 투자 배급사로 첫 출근을 하기 전 고맙다는 인사도 드리고 합격 턱으로 술도 살 겸 회사와 연결을 해준 차장님을 만나러 광고대행사를 찾아갔다. 축하 인사와 감사 인사가 오가며 한참 술을 마시던 때 차장님이 조용하게 경고를 날렸다. 

“재완 씨, 거기 술 엄청 먹어.” 

나는 술을 엄청나게 잘 먹는 건 아니지만 좋아하는 편이기는 해서 회식 자리를 그렇게 싫어하지도 않았고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차장님은 꽤 진지하게 경고했고, 특히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술을 많이 먹는다는 정보도 주었다.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한 명의 신입사원은 술에 취한 채 맨발로 호텔을 뛰어다녔다는 말과 함께. 불행히도 나는 부산국제영화제 기간에 첫 출근을 했고, 출근 둘째 날 캐리어를 들고 바로 부산으로 내려갔다. 

코로나 이전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각 투자배급사 별로 ‘000의 밤’이라고 하는 행사를 개최했었다. 이는 올해의 흥행 결과와 내년 라인업을 발표하고 자랑하는 자리로, 내가 다닌 투자배급사 역시 매해 부산 앞바다에서 크게 행사를 개최했다. 배우, 감독, 기자, 제작사, 극장, 홍보사, 디자인사, 작가 등 정말 모든 업계 사람이 다 오고, 수십, 수백 명의 손님을 맞이하고 나면 새벽 1시가 넘어 끝나는 행사였다. 부산국제영화제 회식이 무서운 점은 그 행사가 모두 끝나고 난 뒤인 새벽 2시부터 시작된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새로 입사한 사람들은 모두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의리주와 삼배주를 진행하는 것이 회사의 전통이었다.  

하지만 나는 출근 둘째 날을 맞이한 쌩 신입이었고, 무려 전 직장과도 연결되어 있는 곳이라 절대 만취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특단의 조치로 회식자리로 가기 직전, 컨디션을 5병이나 마셨다. 회식 장소는 갈비집이었는데, 고기가 전혀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배가 부른 상태로 회식 장소에 도착했고(새벽 2시이니 당연히 배가 안 고프기도 했다), 의리주와 삼배주 한바퀴를 돌고도 다행히 정신을 지킬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수많은 회식의 시작이었다. 

오늘 포스터를 찍었으니 한 잔, 제작 보고회를 진행했으니 한 잔, 인터뷰를 했으니 한 잔, 시사회를 했으니 한 잔, 무대 인사를 했으니 한 잔, 개봉했으니 한 잔. 모든 행사가 진행되고 나면 당연하게 뒤풀이가 있었고 그 술자리는 대부분 새벽까지 이어졌다. 7년간 회사를 다니며 정말 회식 자리만 수백 번 다닌 것 같다. 그중에서도 단연 가장 힘든 술자리는 VIP 시사회 뒤풀이였다. 

VIP 시사회란 개봉이 임박했을 때 업계 관계자 및 지인들을 초청하는 시사회다. 포털에 기사로 연예인들이 시사회에 참석한 사진이 올라오는 그 행사다. 진짜 친한 지인이나 가족을 초대하기도 하지만, 업계 관계자들을 초대해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영업의 장으로 활용하기도 하는 게 메인인 행사다. 그러나 문제는 시사회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뒤풀이까지 그 자리가 이어진다는 것이다. 영화를 본 감상을 듣고 싶은 마음도 이해하고, 그간의 고마움을 표현하는 자리가 필요하다는 것도 이해하고, 각자 영업을 하는 자리가 필요하다는 것도 이해한다. 하지만 그 자리가 굳이 새벽 4시, 5시까지 이어질 필요는 없지 않을까? 그 시간이면 아무도 제정신이 아니고 누가 한 말인지 제대로 기억도 못 할 텐데.

VIP 뒤풀이는 마케팅 담당자가 결제도 해야 했기 때문에 나는 대부분의 뒤풀이에서 진짜 모든 사람이 갈 때까지 술도 마시지 않은 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새벽 6시 반에 마지막까지 취한 사람들을 보내고 지하 술집에서 나오면 내 온몸이 술 냄새에 찌들어 있었고,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을 때도 많았다. 


때로는 자괴감이 느껴지는 의전


‘이게 뭐 하는 짓인가’가 극에 달할 때는 바로 ‘감독과 배우에게 의전’을 해야 할 때였다. 유독 내가 다닌 회사가 심했는데, 술자리에서 다음 영화에 대한 영업도 많이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술자리를 완벽하게 감독과 배우의 취향에 맞춰 준비해야 했다. 때로는 ‘이 정도는 원활한 일의 진행을 위해 필요하지’라고 하는 것들이었고 대부분은 ‘꼭 이렇게까지 준비해야 하나’ 하는 것들이었다. 

유독 한 종류의 맥주만 마시던 배우가 있었다. 하필 그날 가기로 한 술집에 그 맥주가 없어서 아이스박스를 술집에 미리 가져다 놓고, 편의점에서 그 맥주를 사와 아이스박스에 채워 놓은 적도 있다. 심지어 많이 마시기까지 해서 중간에 맥주가 떨어지면, 다시 나가서 사 와서 채웠다. 

한 종류면 그나마 편했다. 배우 1은 와인을, 배우 2는 위스키를, 배우 3은 맥주를 좋아해서 3가지를 모두 다 보틀샵에서 사 와서 세팅해야 할 때도 있었다. 회사에서 인터뷰나 행사가 있으면 회의실에서 술을 마시기도 했는데, 신입사원이 첫 출근 한 날 치킨 3마리와 맥주를 포장해오도록 시킨 적도 있었다. 첫 출근용 각 잡은 정장에 훈제향을 가득 품고 돌아간 그 아이의 집에서 부모님은 뭐라고 하셨을까? 

‘이렇게 까지 해야 한다고?’ 싶겠지만 해야 했다. 나도 언제나 이해하지 못했고 불만이 가득했지만 도비는 힘이 없고 아무리 불만을 표해도 회사는 들어주지 않았다. 그나마 서울에서 벌어지는 회식은 자주 가는 곳들이 있어서 핸드폰에 저장된 번호로 전화만 해도 해결될 때도 많았다. 하지만 무대 인사처럼 움직이는 동선이나 지방에서 회식 장소를 찾아야 할 때는 정말 막막했다. 

특히 무대 인사는 여러 명이 버스를 타고 이동을 하다 보니 점심 식사와 간식의 종류와 타이밍이 중요했다. 하루 종일 극장을 돌아다니다 보면 제때 먹을 수도 있고 못 먹을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싶겠지만, 내 상사와 배우들은 아니었다. 무대 인사 동선표에서 가장 중요한 게 식사하고 넘어가는 타이밍이었고, 도시락의 종류였으며, 간식이 들어가는 시간이었다. 극장 동선 체크하고, 차 막히는 시간을 고려해서 넘어가고 무대 인사 때 진행할 선물들을 준비하고 큐시트를 정리하는 와중에 간식이 들어갈 타이밍도 고려해야 했다. 

무대인사 버스는 뒷 편을 개조해서 배우와 감독, 팀장 이상 급은 뒷좌석에 테이블을 놓고 있었는데 거기서 배우가 한마디 하면 바로 실무인 나에게 카톡이 날아왔다. 

[재완 씨, 지금 선배님 과일 먹고 싶다는데 어디 살 만한 데 없나?] 

과일 메뉴가 먹고 싶다는 배우의 한마디에 나는 무대인사 중간에 나가서 마트를 찾아가서, 포도를 사고, 화장실에서 씻어서 대접했다. 어디 극장의 무슨 메뉴가 맛있더라, 대구 무슨 극장 근처 떡볶이집이 맛있다더라 등. 메뉴는 많고 다양했고, 널리 널리 퍼져 있었다. 매니저들과 경호팀까지 다 합치면 매번 간식을 60인분 정도 사야 했고 그 간식들을 다 사서 양 팔에 끼고 오면 마치 헬스장에서 운동한 듯 근육이 빵빵해져 있었다. 

물론 모든 배우가 그런 것은 아니기도 하고, 유독 내가 다닌 회사가 다른 회사에 비해 의전 문화가 심하기도 했다. 그걸 영업력이라고 생각하는 회사였으니까. 그것이 실제로 얼마나 큰 영업력을 발휘했는지는 내 눈앞에서 펼쳐진 건 아니라서 나는 잘 모른다. 하지만 간식을 사기 위해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양팔 가득 채워 버스 뒷자리에 세팅을 하고, 또 다 먹은 것들을 치우다 보면 ‘이게 영화 마케팅이 맞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심의, 도대체 알 수가 없다


회식 못지않게 일할 때 황당한 에피소드도 많았다. 특히 심의는 늘 뒤통수를 치는 일이었다. 광고 회사를 다닐 때도 심의는 무슨 기준으로 통과되고 반려되는지 이해할 수 없을 때가 많았는데 영화 심의 역시 만만치 않았다. 특히 영화라는 콘텐츠의 특성상 야하거나, 잔인하거나 하는 심의 기준이 강했다. 또한 영화 본편, 포스터, 예고편 심의를 각각 받아야 했고, 그 심의가 통과해도 광고 매체사 별로 별도의 심의를 또 받아야 해서 늘 산 넘어 산이었다. 

<심의 예시>
  • 여배우 의상이 너무 야하다고 반려 (아이돌 무대 의상이 더 야한데…?)
  • 카피가 야하다고 반려 (본인이 음란마귀이신 건 아닌지!) 
  • 칼이 나와서 반려 (총은 되는데 칼은 왜 안 되는 건지) 
  • 배우 얼굴이 별로라고 반려 (진짜다. 그는 전 국민이 다 아는 배우이고, 분장을 한 얼굴이 혐오감을 조장한다고 광고가 반려됐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는 반려였다. 가장 황당했던 건, 색깔로 반려 당했을 때다. 

그 영화는 15세 관람가로 야한 장면과 잔인한 장면은 정말 하나도 나오지 않는 코미디 영화였고, 대한민국 영화 포스터가 으레 그렇듯이 주연 배우 얼굴과 카피만 있는 포스터였다. 포스터 심의는 문제없이 통과했고, 그 포스터로 매체 광고를 집행했는데, 매체사에서 광고가 반려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대체 이 포스터가 뭐가 문제라서 반려된 거예요?” 

“배경 색깔이 너무 새까맣다고...” 

“...네?” 

담당자의 말을 듣는데 나는 순간 내가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배경에 뭔가 내가 모르는 이상한 요소가 숨어있었나? 욕이라도 쓰여 있었나? 

“배경 색깔이 너무 완전한 검은색이라서, 보는 사람의 불안을 조장한다고 완전한 검은색이 아닌 색을 써달래요.” 

나는 그 매체 광고 심의실이 이렇게까지 서울 시민의 정신 건강을 생각하는지 몰랐다. 그냥 단지 검은 배경이었을 뿐인데, 그 검은 배경이 너무 새까매서 보는 사람의 불안을 조장한다니. 정말 상상도 해본 적 없는 이유였다. 밝은 대낮부터 밤에도 네온사인이 환한 서울 시내에 붙어있는 광고인데 검은색이 불안감을 조장한다니, 어디서부터 이 사회는 잘못된 걸까. 

내가 그 사유를 말하고 수정 요청을 했을 때, (포스터) 디자이너는 장난을 치는 줄 알고 들어주지 않았다. 몇 번을 말하고 나서야 디자이너도 황당해하며 100% 검은색에서 80%의 검은색과 짙은 푸른색의 그라데이션으로 만들어 줬다. 그렇게 그 광고는 심의를 통과했고, 서울 시민의 불안감을 조장하지 않고 시내 곳곳에 잘 붙었다. 하지만 내 불안감은 조장했다. 대체 어디서 얼마나 또 황당한 이유로 심의가 거절될지 불안한 마음을 말이다. 


영화 마케팅이 중요한가? 


이 수많은 에피소드 대부분은 코로나가 터지고 나서 사라졌다. 사람들이 극장에 가지 않으니 개봉을 하지 않았고, 개봉을 하지 않으니 회식이 없었고, 영화가 쌓이니 새로운 영화 제작에 들어가지도 않았다. 물론 코로나 기간에도 몇 편이 개봉은 했지만 대면 시사회, 무대인사 등이 사라졌고 회식도 사라졌다. 회식과 의전이 사라진 건 좋으면서도 길어지는 침체기가 불안했다. 실제로 개봉이 밀리면서 마케팅 관련 작은 회사가 많이 사라졌고, 업계에서도 인력 감축에서 마케팅이 먼저 진행된다는 말들이 돌았다. 

마케팅이라는 게 누군가는 ‘크리에이티브한 일’이라고 추켜 세우지만, 누군가는 ‘본질과 상관없는 포장지일뿐’이라고 한다. 결국 ‘영화가 재밌어야지, 포스터 예고편이 뭐 중요한가?’라는 말은 정말 수도 없이 들어봤다. 정확한 장점과 기능이 있는 제품과 달리, 영화나 콘텐츠는 개인의 취향에 따라 재미있고 없고가 달라지다 보니 이전 글에서 말한 것처럼 늘 지리멸렬한 논쟁이 오갔다. 

“이 포스터로 하면 나 홍보 활동 아무것도 안 한다고 해.” 

팀장님 컨펌을 받고 나면 제작사부터, 감독, 이사, 대표, 회장님의 산까지 넘어야 한다. 그 산을 겨우겨우 넘어 ‘최종 결정이다’하고 공개하기 전 배우에게 공유했는데, 배우가 싫다고 해서 모든 게 다시 처음부터인 경우도 많았다. 이건 내가 대리여도, 과장이어도, 팀장이어도 계속 벌어질 일이었고, 코로나 기간 동안 담당 영화의 개봉이 밀리면서 기약 없는 수정만 2년 동안 반복됐다. 개봉을 하면 어떻게든 끝나기는 하는데, 개봉을 하지 않으니 끝나지를 않았다. ‘누구를 만족시키기 위한 마케팅을 하는 걸까’ ‘이걸 계속하겠다며 남아있는 게 맞는 걸까’ 하는 의문이 계속 들었다. 

코로나에 익숙해져가고, 다시 희망을 걸고 개봉 준비를 하던 어느 봄날. 대표님 컨펌까지 받고 모두가 잘 나왔다며 칭찬했던 시안을 ‘난 이거 싫다’라는 주연 배우의 한마디로 다시 다 엎은 날, 나는 그만두기로 결심했다. ‘아, 더는 못 해먹겠다’라는 생각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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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ㅣ재완 (https://brunch.co.kr/@karuni)
일주일에 110시간씩 일하던 광고대행사를 거쳐, 새벽 6시까지 배우, 감독과 술을 먹어야 했던 영화 투자배급사를 지나, 현재는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 7개를 담당하며 방송국에서 일한다. 늘 전화에 시달렸던 기억을 살려 에세이 <퇴근 후엔 전화하지마세요> 를 출간했다. 광고, 영화, 방송일을 하고 있지만 보는 것보다 손으로 만들거나 하는 걸 더 좋아한다. 


발행일 2023.0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