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케팅과 비슷한 듯 다른 ‘방송 마케팅’

글ㅣ재완 방송국 마케터

영화 마케팅과 비슷한 듯 다른 ‘방송 마케팅’

일자

상시
유형
아티클
태그
이 아티클은 <현직자가 말하는 찐 직무 이야기: 마케팅 편> 시리즈의 5화입니다. 


✍ 오늘의 아티클
  • 코로나가 심해지면서 영화와 극장은 무너졌지만, 반대급부로 OTT가 성장했고 ‘콘텐츠 업계’는 급속도로 커졌다고 해요. 
  • 영화 업계에 비해 방송국 마케팅팀은 타 업계로부터의 이직에 좀 더 열려있는 편입니다. 실제로 필자와 같은 팀의 반 이상이 비 콘텐츠 업계에서 이직했고요. 
  • 영화 마케팅과 달리 방송 마케팅은 예산, 준비 기간 및 범위가 다르고, ‘방송을 한다’는 것 자체가 마케팅이자 홍보가 된다고 해요. 

결국 돌고 돌아 다시 콘텐츠 업계로 


5인 이상 집합 금지, 10시 이후 영업 금지 등 코로나가 정점이었던 봄날 나는 회사를 그만뒀다. 수많은 영화 업계 회사의 권고사직과 폐업 신고가 매일매일 들려오고 있었고, 영화 업계가 아닌 곳들도 모두 힘든 시기였다. 이런 상황에서 제 발로 회사를 그만두다니, 나를 아는 모든 사람이 말렸다. 

하지만 나는 그만뒀다. 이직할 자신이 있어서라기보다는, 앞선 글에서 말했듯 ‘정말 못 해먹겠어서’ 그만뒀다. 기약 없는 개봉 연기에 의미 없는 수정만 계속하는 것도 싫었고, 그렇게 공들이며 수정했던 일이 배우 한마디에 뒤집어지는 것도 싫었다. ‘더 이상 이쪽 일은 하지 않겠어!’라며 야심차게 그만뒀고 실제로 아예 다른 업종으로 이직에 성공했다. 한 달 만에 그만뒀지만.

한 달 만에 그만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회사의 이념과 목표가 나와 너무 맞지 않아서였다. 그곳은 회사의 창립 이념과 의미를 과하게 강요하는 회사였는데, 그 분위기가 내게는 마치 신흥 종교처럼 느껴졌다. 입사 첫날 오리엔테이션에서 오래 다닐 회사가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고, 일주일 만에 다른 회사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타 업계 이직 한 달 만에 나는 돌고 돌아 다시 콘텐츠 업계로 돌아오게 됐다.  

코로나가 심해지면서 영화와 극장은 무너졌지만, 반대급부로 OTT가 성장했고 ‘콘텐츠 업계’는 급속도로 커졌다. <오징어 게임> 등의 성공을 보며 수많은 회사가 제작사를 차렸고, 시리즈와 영화를 동시에 하는 신생 투자배급사들도 생겼다. 넘쳐나는 제작물만큼 OTT 플랫폼도 사람을 계속 뽑았다. 실제로 나도 여기저기서 오퍼를 꽤 받았고, 몇 군데 고민하다 지금은 방송국 마케팅팀에서 일하고 있다. 


방송국 마케터로 이직 및 입사 


현재 일하는 방송국은 들어오는 과정이 좀 복잡하긴 했는데,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원티드(!) 앱에 모집 공고가 올라온 걸 보고 지원해서 뽑혔다. 나 말고 다른 팀원 역시 원티드 앱에 올라온 공고를 통해 경력직 지원했고 입사했다. 

영화 업계에 비해 방송국 마케팅팀은 타 업계로부터의 이직에 좀 더 열려있는 편이다. 실제로 나와 같은 팀에 일하시는 분 중 반 이상이 비 콘텐츠 업계에서 이직했다. 앞선 글에서 영화 마케팅의 역사가 20년 정도 되었다고 말했는데, 방송 마케팅의 역사는 10년 정도다. 2023년인 지금도 마케팅팀이 없는 방송국도 있다. 이제야 마케팅의 범위를 넓혀가고 있는지라 좀 더 인력 구성에 열려있는 편이다. (하지만 OTT 플랫폼은 다르다. 급성장하는 탓에 업무가 과중해 당장 일할 사람이 중요하며, 업무 프로세스도 영화와 비슷하게 돌아가서 동종 업계 경력자를 훨씬 선호하고 실제로 뽑고 있다.) 

경력직은 타 업계에 많이 열려있는 상황이지만, 신입에게는 방송국 역시 가혹하다. 어디나 그렇지만 당장 일해야 할 사람이 필요하기에 경력으로 대부분 채우고, 신입사원은 1년에 1명 정도 뽑는다. 실제로 작년 우리 회사 역시 공채 신입사원을 뽑았을 때 마케팅팀 경쟁률이 가장 높았지만, 그마저도 올해는 진행하지 않는다. 이런 걸 보면 차라리 이직이 더 쉬운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어쩌면 ‘영화 마케팅을 지긋지긋해 했으면서 왜 방송국으로 이직했냐’라고 물을 수도 있겠다. 그런데 방송은 ‘무조건 해야 하기’때문에 이직을 결심했다. 영화의 경우 코로나 때문에, 만듦새가 아직 부족해서, CG를 더 해야 해서 등의 이유로 무기한 개봉이 연기되기도 한다. “창고에 쌓여있던 영화”라는 표현 아마 다들 들어봤을 것이다. 내가 영화 투자배급사를 그만둔 지 벌써 2년이 넘어가는데 아직도 개봉을 안한 내 담당 영화가 있을 정도니까. 

하지만 방송은 다르다. 24시간 돌아가고 편성이 정해졌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시간에 방송이 되어야 한다.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아무리 말도 안 되는 아티스트의 태클이 있더라도 정해진 편성 시간이 있기에 그 안에 무조건 끝난다는 점이 나에게는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영화 마케팅과 비슷한 듯 다른 ‘방송 마케팅’


영화 마케팅과 방송 마케팅의 본질은 똑같다. ‘이 콘텐츠의 어떤 포인트를 보여줘야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할까?’ ‘이 콘텐츠에서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뭘까?’를 고민하고 그것을 풀어내는 것이 콘텐츠 마케팅이기 때문이다. 이는 드라마뿐만 아니라 예능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풀어내는 방식에서 차이가 생기는데, 1년에 몇 가지를 선별해서 올리는 영화와, 24시간 돌아가야 하는 TV라는 플랫폼의 차이 때문에 생긴다.   

첫 번째 차이점, 예산 차이가 크다
영화 마케팅은 하나의 영화가 투자되고, 제작되고, 개봉하기까지 몇 년이 걸리고 마케팅팀도 그와 함께 한다. 상업영화의 마케팅 비용은 한 편당 20억~30억 정도이다. 하지만 24시간 돌아가고, 계속 새로운 프로그램이 편성되고 사라지는 방송은 그럴 수 없다. 작년에 내가 담당한 프로그램은 예능과 드라마를 합쳐서 16개였다. 내가 담당한 것만 이 정도니 방송국 전체로 보면 당연히 훨씬 더 많다. 수십 편의 프로그램에 영화, OTT와 동일하게 예산을 썼다가는 방송국은 사라질 것이다. 

두 번째 차이점, 준비 기간과 준비 범위가 다르다
한 사람이 담당해야 하는 프로그램이 많기에, 준비 기간도 상대적으로 짧을 수밖에 없다. 제작이 확정됨과 동시에 마케팅이 투입되는 영화와 달리, 방송은 편성을 기준으로 움직인다. 물론 최근 드라마 같은 경우 대부분 사전 제작이 이뤄져 영화와 마찬가지로 촬영 단계부터 담당자가 투입되고 편성 전부터 콘셉트와 포스터 준비를 함께 준비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 편성을 기준으로 움직이며 특히 예능의 경우 편성 2~3주 전에 갑자기 떨어지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방송국은 팀이 굉장히 세분화되어 나눠져 있다. 이는 다각도로 구성된 방송국의 수익 형태와도 관계가 있다. 기존에 영화 마케팅에서는 마케터가 담당하던 일이라도 방송국에서는 관리해야 하는 규모가 아예 달라 마케터가 담당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유튜버의 콘텐츠 리뷰, 홍보성 배우의 출연 등은 영화 쪽에서는 전부 마케터가 관리한다. 투자배급사들은 별도의 유튜브 채널을 가지고 있지 않고, 1회성 홍보일 뿐 그것으로 인한 수익을 노리지도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방송국은 24시간 돌아가는 만큼 가지고 있는 소스의 개수와 양이 다르고, 자체 채널이 이미 수백만의 구독자를 가지고 있으며, 그에 따른 수익도 매우 크다. 그러다 보니 한 명의 마케팅 담당자가 관리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 전문 팀이 따로 있다. 그 외에도 OST 음원 관리부터 다양한 수익들이 연관되어 모든 팀이 세분화돼 있다. 

세 번째 차이점이자 가장 큰 차이점, ‘방송을 한다’는 것 자체가 마케팅이자 홍보다
방송 마케팅이 그간 발달되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는 방송 채널 자체가 많은 사람들이 비싼 돈을 내고 집행하는 광고 매체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매주 방송을 한다는 것, 타 방송 도중 하단 흘림 자막 하나 나가는 것, 우상단에 광고 이미지 하나 나가는 것 모두가 마케팅이자 홍보이며, 이 모든 것을 무료로 집행할 수 있다. 

또한 영화는 극장에서 내려버리면 사람들이 볼 수 없기에 사전 마케팅과 첫 주 입소문 관객을 가장 중요시 여기지만, 방송은 일단 정해진 편성만큼 나가기 때문에 중간에 얼마든지 반등이 가능하다. 초반 시청률이 좋지 않더라도 입소문이 나서 뒤로 갈수록 시청률이 오르는 경우도 있고, 예능의 경우 중간에 아예 구성을 바꾸거나 출연진을 바꿔 시청률이 올라가는 경우 역시 종종 있다.  

그래서 방송 마케팅은 사전 마케팅도 하지만 사후 마케팅도 중요하게 여기는 편이다. 광고 집행 기간을 첫방송 이후 2주 정도까지 잡으며, 예능의 경우 중간에 시청률이 오르면 그 전까지는 하지 않다가 갑자기 마케팅이 투여되는 경우도 있다. 물론 그만큼 금방 사라지는 것들도 많지만. (그래서 OTT 플랫폼의 콘텐츠들은 영화 마케팅과 방송 마케팅을 섞어 사전 마케팅과 사후 마케팅을 모두 하는 형태로 진행하고 있다.)  


방송 마케팅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일


프로그램 편성이 확정되고 난 이후 ‘이 프로그램의 어떤 점이 시청자에게 매력적인가’를 고민하고 그에 맞는 콘셉트와 포스터를 제작한 뒤 프로모션, 광고 등을 잡는 일은 모든 콘텐츠 마케팅과 동일하다. 게다가 드라마는 요즘 대부분이 사전제작이기에 전 회차 대본도 다 나와있고, 편집본도 미리 확인이 가능하다. 그래서 영화와 큰 차이는 못 느꼈으며, 하나 꼽자면 개인적으로 예능이 어려우면서도 재미있었다. 

예능 기획서는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 정도만 있고 아무 내용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느 정도 이해는 한다. 예능은 출연진들이 누구인가, 그들의 케미가 어떻게 터지는가, 게스트는 누구인가, 혹은 일반인 출연자가 나오는 경우라면 정말 예측 불허의 재미가 어디서 어떻게 튀어나올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트렌드와 시점이 중요한 예능의 특성상 미리 편집본을 볼 수 있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에 완성작의 예측은 더 어렵다. 기획서를 보고 ‘이런 이런 점이 매력적이겠다’라고 판단하고 메시지를 뽑았는데 막상 편집본을 보고 나니 ‘전혀 다른 프로그램이었잖아!’ 싶을 때도 있었다. (그래서 그 프로그램은 첫 방송 전에 계획해 놓았던 광고 및 행사를 취소했다.) 

시즌제 예능이라 해서 쉬운 것도 아니다. 이미 아는 프로그램이기에 내용은 쉽게 예상이 되지만 그만큼 새로운 카피와 포스터 비주얼을 뽑아내기가 어렵다. ‘000이 돌아왔다’로만 계속 이어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실제로 새로워진 점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기도 하고. 그리고 새롭지만 새롭다고 할 수 없는 프로그램도 있다. 음악 경연 예능은 ‘이번에는 누가 나오나?’가 가장 핵심인데 그 ‘누가’를 첫 방송 전 미리 밝힐 수가 없어서 답답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영화가 개봉일이 가장 중요한 것처럼 방송 역시 첫 방송일이 가장 중요하다. 시청률은 다음날 아침에 나오지만 시청자들의 실시간 리뷰는 얼마든지 확인 가능하기에 첫 방송 날에는 모두가 방송을 틀어놓고 인터넷으로 계속 후기를 찾아본다. 채널 홈페이지, 네이버 프로그램톡, 각종 카페와 사이트 등 키워드가 나올 만한 곳은 다 검색한다. 그리고 다음날 시청률과 함께 반응을 정리하고 추후 마케팅적으로 뭘 더 서포트할 수 있을지를 정리한다. 하지만 첫 방송 리뷰와 경쟁작 리뷰 정도를 제외하고는 밤에 일할 일이 없고 연락 올 일도 거의 없어서 워라밸은 지켜지는 편이다. 갑자기 출연자의 학폭, 마약, 음주운전 이슈가 터지거나 방송 장면이 부정적인 이슈가 되거나 하는 사건사고만 터지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리고 가끔 프로그램 마케팅 번외의 일들도 진행하게 된다. 새로 론칭하는 프로그램이 많으면 그 프로그램들을 엮은 스페셜 마케팅을 하기도 하고, 채널 브랜딩 캠페인을 진행하기도 하며, 올림픽, 월드컵과 같은 시즈널 이슈에 맞춘 마케팅도 진행하게 된다. 이 마케팅들은 방송국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것들이라 개인적으로는 이런 특수한 캠페인들이 더 재밌다. 

5번째 회사, 12년 차에 이직한 회사이니 이제 더는 회사에서 어떤 일이 생겨도 화나지 않고, 어떤 일이 생겨도 놀랍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여전히 회사는 놀랍고, 빌런은 많으며, 놀라운 일은 끝없이 생긴다. 마지막 글인 6화에서는 ‘방송국에선 안 그럴 줄 알았는데…’라고 느꼈던 에피소드들과 여전히 그래도 일하는 나에 대해서 풀어보고자 한다.  



▶ <현직자가 말하는 찐 직무 이야기: 마케팅 편> 시리즈 보러 가기  



글ㅣ재완 (https://brunch.co.kr/@karuni)
일주일에 110시간씩 일하던 광고대행사를 거쳐, 새벽 6시까지 배우, 감독과 술을 먹어야 했던 영화 투자배급사를 지나, 현재는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 7개를 담당하며 방송국에서 일한다. 늘 전화에 시달렸던 기억을 살려 에세이 <퇴근 후엔 전화하지마세요> 를 출간했다. 광고, 영화, 방송일을 하고 있지만 보는 것보다 손으로 만들거나 하는 걸 더 좋아한다. 


발행일 2023.0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