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글로리부터 마스크걸까지, 흥행이 따르는 오프닝 시퀀스

석지나 언디자인드뮤지엄 모션 그래픽 디자이너

더글로리부터 마스크걸까지, 흥행이 따르는 오프닝 시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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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티클은 <그 디자이너 선배의 포트폴리오> 시리즈의 1화입니다. 
네이버 웹툰을 원작으로 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마스크걸>은 드라마 공개 2주 만에 비영어권 TV 부문 주간 시청 시간 1위를 기록했다. <마스크걸>은 오프닝부터 작품의 기하학적인 분위기와 등장 인물의 기괴한 심리를 그래픽을 통해 연출하며 작품에 대한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이렇듯 작품의 가장 앞선에서 몰입도를 디자인하는 사람은 작품의 질곡을 어떻게 이해하며 이를 간명하게 표현하고 있을까. 



Q. 안녕하세요, 지나 님.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A. 계속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정신없이 바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Q. 지나 님께서는 현재 모션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고 계시는데요. 처음부터 이 분야에 관심을 갖고 커리어를 시작하셨나요?

A. ‘처음’이라는 시점을 학창 시절로 한다면, 관심은커녕 모션 그래픽이라는 분야를 알지 못했어요. 제 학창 시절에 영상은 영화와 드라마 그리고 UCC 형식으로 촬영하는 콘텐츠고(CG는 별개의 영역), 디자인은 곧 패션 디자인이라는 인식이 컸기 때문에 저와 같은 일반인에게 모션 그래픽 디자인은 생소할 수밖에 없었어요. 


Q. 제 학생 시절을 돌이켜 생각해 보니 저 역시 그땐 모션 그래픽을 인지하지 못했던 것 같네요. 그럼 어쩌다 디자인 세계에 들어오시게 된 건가요?

A. 저는 어렸을 때 만화를 좋아해 그림 그리는 게 취미였지만, 그림으로 직업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다들 자연스럽게 가는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해 평범하게 공부하다 학교 교문 앞에서 나눠주는 디자인 입시 미술 학원 홍보 공책을 보고 ‘그림으로 직업을 삼을 수 있는 게 디자인인가 보다.’라고 막연히 생각했죠. 그 공책을 계기로 입시 미술 학원을 다니게 됐고 (디지털 콘텐츠) 디자인과로 대학교에 진학했어요. 대학교에서 UX/UI, 모션, 3D를 공부하던 중 영화 속 CG에 관심이 생겨 VFX(Visual Effect, 시각 특수 효과) 분야를 공부하고 싶었지만, 부모님께 휴학 후 학원을 다니겠다고 말했다가 퇴짜를 맞았어요.(웃음) 영화와 관련된 일 중 내가 배운 것을 활용할 수 있는 분야를 탐색하는 과정에서 오프닝 타이틀 시퀀스를 알게 됐어요. 2013년 ‘광주 ACE Fair’ 카일 쿠퍼* 강연과 현재 재직 중인 회사 ‘언디자인드뮤지엄’ 대표님(SIXOKLOK)의 작업물이 제가 오프닝 타이틀 시퀀스를 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됐고, 그걸 하기 위해 모션 그래픽 디자인을 업으로 삼고 시작하게 됐습니다.

*카일 쿠퍼(Kyle Cooper) : 영화 오프닝 시퀀스로 유명한 모션 그래픽 디자이너


Q. 본업에서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취향대로) 작업을 핸들링하기 어렵잖아요. 그래서, 지나 님의 개인 작업물이 더욱 궁금해져요. 보통 어떤 스타일의 작업을 선호하시나요?

A. 아쉽지만 저는 개인 작업을 하고 있지 않아요. 물론 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본업이 바쁘기도 하고 특정 스타일을 선호하기보다 모든 스타일을 다 한 번쯤 경험해 보고 싶은 편이에요. 그래서, 이를 본업에서 여러 작품을 만나며 실현하고 있어요. 그렇지만, 작업 과정에서 제가 원하는 방향을 벗어날 때도 있고 작품의 방향성이나 분위기에 따라야 하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향후에 시간적 여유가 생긴다면 제가 해 보지 못한 스타일을 개인 작업으로 풀어 보고 싶어요. 요즘 도전해 보고 싶은 스타일은 3D에 2D 페인팅 텍스처를 입힌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시리즈 <아케인>과 같은 스타일입니다.  

ⓒ넷플릭스


Q. 현재 모션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 ‘언디자인드뮤지엄’에서 근무 중이세요. 스튜디오와 지나 님의 포트폴리오를 보니, 최근 흥행한 대다수의 작품을 작업하셨어요.  그 중 넷플릭스 드라마 <마스크걸> 작업에 대해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기획 단계부터 최종안이 나오기까지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어 보고 싶어요.


A. <마스크걸>은 기획 단계가 길었던 프로젝트였어요. 작품이 워낙 독특하고 강한 소재면서 감독님께서 이 작품이 보여 주는 인간의 이중성과 양면성을 은유와 상징으로 오프닝에 담아냈으면 좋겠다고 하셨는데요. 콘셉트부터 스토리보드까지 여러 번의 수정을 거치면서 작업했습니다. 너무 직접적이거나 함축적이지 않은 오브제의 중간점을 찾는 데 어려웠거든요.

톤앤매너에 대해서도 고민이 컸어요. 시나리오와 초반 편집본을 보고 저는 어둡고 무거운 느낌을 받아 그런 이미지로 작업을 진행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드라마 로고를 전달 받고 조금 혼란스러웠어요. 로고 스타일이 만화적이고 발랄한 느낌이라 제가 떠올리고 있었던 이미지들과 너무 달랐기 때문이에요. 작품이 공개되고 보니 로고와 작품이 찰떡으로 어울렸지만, 오프닝 시퀀스 기획 초반에는 ‘내가 생각했던 방향에서 어떻게 맞춰 나가야 할까.’ ‘로고와 너무 다른 스타일로 만들면 안 될 텐데.’라는 고민을 했어요. 그래서, <마스크걸> 로고에 쓰인 3가지 키(Key) 컬러와 비슷한 결의 색상들로 컬러 칩을 만들고, 로고에 사용된 반짝이를 여러 도형과 함께 활용해 오프닝에 녹여냈어요.  

ⓒ언디자인드뮤지엄


Q. 앞서 말씀 주신 인간의 이중성과 양면성을 표현하는 데 어떤 노력과 시도가 있었나요?

A. 다각도에서 바라 본 사람의 얼굴을 해체하고 다시 하나로 합쳐 표현한 입체파 화가 ‘피카소’의 그림과 여러 얼굴을 겹치고 조각내 표현한 ‘마티아스 뒤하멜(Mathias Duhamel)’ 작가의 표현 방식을 참고했어요. 면 분할 표현을 이용한 미술, 일러스트 작품을 많이 찾아봤고요. 기획 초반에는 어려웠지만 모든 게 정해지고 스타일 프레임 작업에 들어가면서부터는 감독님께서 저희 작업을 마음에 들어 하셔서 작업이 순탄하게 진행됐어요. 기획 단계가 정말 중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다시 한 번 느끼게 된 계기였어요. 


Q. 그 모든 작업을 끝낸 소감은 어떤가요?

A. ‘1분 40초’라는 긴 오프닝 시퀀스 작업은 <마스크걸>이 처음이었어요. 첫 경험이 늘 그렇듯 참 힘들기도 했지만, 긴 분량 만큼 다양한 의미를 담은 컷을 다수 넣을 수 있어 즐거웠어요. 또, 처음으로 작품 크레딧에 ‘타이틀 시퀀스 디자인’으로서 회사 이름을 올렸던 작품이기도 해요. 그래서, 회사에게도 남다른 의미가 있는 작업이에요.


Q. 지나 님께서 작업에 참여하신 프로젝트 결과물이 미디어에 방영되는 모습을 볼 때면 어떤 기분이 드시나요?

A. 마감에 쫓기며 작업하다 보니 후련함과 약간의 아쉬움이 있지만 그만큼 성취감도 들어요. 그리고, 제가 어떤 일을 하는지 부모님께 보여드리기 편해서 좋아요.(일동 웃음) 

  
Q. 외부 기업과 협업할 때마다 내가 맡은 분야의 전문성은 물론이고, 커뮤니케이션 기술도 정말 중요하다고 느껴요. 지나 님만의 커뮤니케이션 잘 하는 방법이 있나요?

A. 저는 말을 조리 있게 잘 하는 편이 아니라, 기획 미팅 전, 콘셉트 기획안을 준비할 때 여러 콘셉트 안과 레퍼런스를 정리하며 ‘왜 이 작품에 해당 콘셉트를 기획했는지’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사실 저는 기획 미팅을 제외하고 클라이언트와 직접 대면하는 일이 적어요. 보통 대표님이나 PM분을 통해 내용을 전달받는데요. 그 사이에서 소통의 오류가 없도록 PM분께 클라이언트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최대한 잘 정리해 커뮤니케이션하려고 해요. 


Q. 언디자인드뮤지엄 인스타그램 채널을 방문해 보니 팀원들끼리 매우 화목해 보여요. 실제 분위기는 어떤가요?

ⓒ언디자인드뮤지엄


A. 실제 분위기도 비슷해요. 수다쟁이들이라 화젯거리가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말이 이어지고 왁자지껄해요. 하지만 일할 때는 조용히 작업에만 집중하죠. 특정한 문화보다 모두 선한 분이라 좋은 분위기가 유지되는 것 같아요. 


Q. 이제 질문의 방향을 조금 바꿔 볼게요. 지나 님께서는 두 번의 이직 경험이 있으세요. 회사를 고르는 기준이 있다면요?

A. 저는 첫 회사에서 퇴사하고 모션 그래픽 학원을 1년 정도 다녔어요. 그 후 1인 미디어 창작자를 육성하는 ‘포스크리에이티브’ 그룹으로 이직했어요. 대학생 때부터 꿈꿨던 영화 오프닝 타이틀 시퀀스가 하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아쉽게도 해당 직장에서는 작업의 기회가 적었던지라 함께 일하던 팀장님을 따라 현 직장으로 오게 됐어요. 이렇게 보면 회사를 고르는 기준이 제가 하고 싶은 프로젝트의 실현 여부라고 볼 수 있겠네요.


Q. 매력적인 디자이너의 포트폴리오는 어떤 공통점을 갖고 있을까요? 팀을 리드하고 있는 시니어 시점에서 가볍게 조언해 주시면 많은 주니어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요.

A. 첫 번째로 미적 감각이 돋보여야 해요. 두 번째로 신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활용한 레이아웃, 그래픽 등에 근거가 있어야 합니다. ‘왜 이렇게 구성했냐’는 질문에 논리적으로 답변하기 위해서요. 본인 작업에 의도가 있어야 대중을 설득하고 공감 받을 수 있어요.


Q. 신입 디자이너가 자주 하게 되는 실수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A. 실수보다 최종 작업물을 제출하기 전, 꼭 한 번 확인하는 습관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어요. 작업물이 프리뷰로 볼 때와 실제 렌더를 걸었을 때가 다를 수 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이상하게 여러 번 확인해도 안 보이던 부분이 컨펌을 요청하면 튀는 요소가 있다며 수정이 돌아오곤 해요.


Q. 비전공자가 2D/3D 모션 그래픽을 공부하고 싶다면,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추천하는 프로그램, 툴 등도 알려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A. 요즘은 워낙 정보 공유가 잘 돼서 제가 굳이 추천하지 않아도 다들 알고 있으실 것 같은데요. 모션 그래픽 디자이너라면 에프터이펙트는 필수입니다. 그리고 그래픽 소스를 제작하기 위해 일러스트레이터나 포토샵도 필요합니다. 3D는 대체로 시네마4D를 사용하는데 요즘은 또 블렌더를 쓰는 분이 많더라고요. 하지만 아직은 시네마4D를 더 많이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Q. 때로 작업에 집중이 되지 않거나,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을 때 지나 님께서는 어떻게 머릿속을 환기시키나요?

A. 작업에 집중이 되지 않을 때는 보통 유튜브를 봅니다. 예능, 시사, K-POP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피드에서 끌리는 영상을 바로바로 보는 편이에요.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을 때는 핀터레스트를 계속 보는 것 같습니다. 핀터레스트도 마찬가지예요. 무엇을 찾겠다는 목적과 생각 없이 포토그래피, 그래픽 디자인, 무대 디자인, 타이포그래피, 3D 아트 등 아무거나 보며 마음에 드는 콘텐츠를 제 핀터레스트 보드에 저장하고 머릿속을 환기시켜요. 하지만 역시 최고의 환기는 침대에 누워 핸드폰 보고 노는 거죠.(웃음)


Q. 작업하시면서 자주 듣는 플레이 리스트도 궁금해요!

A. 저는 프로젝트에 따라  플레이 리스트가 달라지고, 특정 곡을 몇 주 동안 반복해 듣기를 해요.


🎧 <마스크걸> 작업 당시 들었던 곡들
Stefflon Don - 16 Shots / LISA - MONEY / 블랙핑크 - Typa Girl / Sam Smith, Kim Petras - Unholy / Lil Nas X, Jack Harlow - INDUSTRY BABY


🎧 체력적으로 힘들었을 때 들었던, 귀를 때려박는 곡들
 샤이니 - Hard, Juice / 방탄소년단 - 디오니소스, 피땀눈물, ON


🎧 요즘 듣는 곡들
NCT U - Baggy jeans / 정국 - seven / 다이나믹듀오 - smoke


Q. 아쉽지만, 마지막 질문입니다. 다시 커리어의 시작점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지금 이 일을 선택하실 건가요?

A. 아니요, 저는 다른 일을 해보고 싶습니다. 예전부터 해보고 싶었던 일을 지금 하고 있는 중이니 과거로 돌아가서 반복하기보다는 안 해봤던 것을 하고 싶어요. 작곡, 작사나 소설 아니면 아예 개발 분야를 해보고 싶어요. 만약 현재의 기억 없이 돌아간다면 똑같은 일을 선택할 것 같아요. 대신 그때는 커리어에 도움되는 공부를 하거나 여행 등의 다른 경험들을 해 보도록 노력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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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글 박효린 원티드 콘텐츠 에디터
사진 석지나 언디자인드뮤지엄 모션 그래픽 디자이너


발행일 2023.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