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는 배움의 과정을 나만의 브랜드로

조현영 스모어톡 CTO

끊임없는 배움의 과정을 나만의 브랜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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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티클은 <내가 찾던 커리어 선배> 시리즈의 8화입니다.
때로 배움에는 두려움이 앞선다. 생경한 것을 내 것으로 만들기까지는 지난한 노력이 뒤따른다는 걸 경험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발자 조현영 님은 매번 새로운 것을 익혀야 하는 상황에 놓일 때마다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끊임없는 배움의 과정을 제로초(ZeroCho)라는 자신만의 브랜드로 만들어 냈다. 

CTO, 작가, 유튜버, 블로거, 강사. 지금 그의 이름 앞에는 많은 수식어가 붙는다. 창업이 하고 싶어 개발자가 되었고 뼈아픈 실패도 겪어봤지만 여전히 새로운 일을 작당하며 하루하루를 밀도 있게 살아내는 사람. 배우는 데 두려움이 없고, 진심을 다하는 데 아낌이 없는 그에게 스타트업이라는 꿈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창업을 위해 선택한 개발자의 길


Q. 반갑습니다, 현영 님. 개발자로서의 커리어 여정을 톺아보면서 이야기를 시작하면 좋을 것 같은데요, 그동안 어떤 일을 해오셨나요? 

A. 안녕하세요. 마이핏, 오늘의픽업 등을 거쳐 현재는 스모어톡 CTO로 일하고 있는 개발자 조현영입니다. 오늘의픽업이 엑시트(Exit)에 성공하면서 카카오모빌리티 당일배송사업팀 개발파트장으로 재직하기도 했습니다만 대부분 스타트업에서 커리어를 쌓았습니다. 스타트업이 제 오랜 꿈이었거든요. 사실 저는 경영학과 출신인데, 개발 쪽으로 진로를 정한 것도 창업을 하기 위해서였어요. 스타트업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직군이 뭘까 고민하던 중 개발자가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공부하기 시작했는데, 배워보니 개발이 저한테 너무 잘 맞더라고요. 


Q. 개발을 시작하게 되신 계기가 특이하고 인상적이네요. 왜 스타트업이라는 꿈을 갖게 되신 거예요? 

A. 고등학교 때부터 창업이 꿈이었는데, 철없던 그 시절에는 농담 삼아 스타트업만이 일확천금의 길이라고 말하곤 했어요. 그런데 제가 엑시트를 한 번 경험해봤잖아요. 기대했던 만큼의 천금은 얻지 못했거든요.(웃음) 그럼에도 계속해서 스타트업을 고수하는 이유는 실제로 창업하고 일을 하면서 찾게 된 것 같아요. 노력하는 만큼 빠르게 성과가 가시화되는 게 뿌듯했고, 저와 회사가 함께 성장하고 있다는 감각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대기업 같은 곳에서 일한다면 한 파트만 담당하면 되지만 스타트업에선 그럴 수 없잖아요? 항상 인력이 부족하니 여러 파트를 동시에 맡아야 했는데, 저는 그게 싫지 않았어요. 오히려 회사 내에서 제 역할이 더 크고 중요해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죠. 


Q. 풀스택 개발자는 유니콘 같은 존재라고 하던데, 현영 님이 바로 그 유니콘이 될 수 있었던 건 어쩌면 그런 배경 덕분이겠어요. 

A. 맞습니다. 애초에 1인 개발을 각오하고 창업했으니까요. 대개는 프론트엔드와 백엔드, 최소 두 명의 개발자를 두고 팀을 구성하지만 그것조차 여의치 않았거든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다 할 줄 아는 개발자가 된 것 같습니다. 강제로 풀스택 개발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고 할까요. 일반적인 상황이었다면 원치 않는 업무를 맡게 되었을 때 이직이라는 선택지를 고려할 수도 있었겠지만 저는 창업자였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어요. 그런 강제성과 절박함 때문에 거부감 없이 다양한 분야를 익혀온 것 같습니다. 


Q. 혹자는 지금이 제너럴리스트의 시대라고 하고, 또 한편에서는 스페셜리스트가 되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도 하잖아요. 풀스택 개발자의 입장에서 보시기엔 어떤가요? 

A. 저는 주력 분야를 하나 두고, 다른 분야는 상식처럼 배우는 걸 추천드려요. 그러면 확실히 시야가 넓어지더라고요. 한 분야만 파고들면 생각하는 방식이 한정적일 수 있는데 다방면의 지식을 학습하게 되면 그것을 자기 분야에 접목할 수도 있고, 사고가 확장되는 것 같습니다. 

풀스택 개발자라고 해서 모든 분야를 완벽하게 다 잘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요즘 T자형 인재(한 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지니고 있으면서 다른 분야에 대한 관심도 갖고 있어 소통과 협업에 능한 인재상)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데, 저는 ㅠ자형 개발자(두 개 분야에 대한 깊이 있는 지식과 타 분야에 대한 기초 지식을 겸비한 인재상)가 된다면 분명히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봐요. 

다만 잘못하면 이것저것 다 해보긴 했지만 정말 잘하는 건 아무것도 없는 애매한 상태가 될 수도 있거든요. 개발자로서 가장 경계해야 할 부분이죠. 적어도 5년 이상은 한 분야에 몰두해보고, 충분히 기본기를 갖춘 다음에 다른 분야를 시도해보는 게 순서인 것 같아요. 기본적인 실력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팔방미인이 되려고 했다가 이도 저도 아닌 상태가 되는 경우를 많이 봤거든요. 그리고 꼭 알아 두셔야 하는 게 있는데요, 풀스택 개발자가 된다고 해서 갑자기 연봉이 2배가 된다거나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웃음) 


Q. 대부분의 회사에서 CTO로 계셨어요. CTO로서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이고 지금의 역할을 하는 데 과거의 어떤 경험들이 도움을 주었는지 궁금합니다. 

A. 저는 CTO로 일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는데요, 창업 멤버가 셋이라고 하면 각각 CEO, COO, CTO를 맡게 되잖아요.(웃음) 팀을 꾸리고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비로소 CTO는 어떻게 달라야 하는지를 배워 나간 것 같습니다. CTO는 개발적인 부분부터 사업적인 측면까지 함께 고민하고 조율해야 하는 포지션이잖아요. 개발자들에게는 이상이 있습니다. 확장성, 안정성을 고려한 최선의 코드를 짜고 싶죠. 하지만 시간 제한이나 인력 리소스 등 현실적인 요건을 생각하면 이상보다는 출시 일정에 맞춘 서비스의 완성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춰야 할 때도 있어요. 이런 결정을 내려야 할 때는 미안한 마음도 들지만 담당자들을 설득하며 일이 되게 하는 것이 CTO의 역할인 것 같아요. 

(팀 간 소통이나 업무 조율에서의 고충은 없었나요?) 회사 생활을 하면서 모든 부서와 마찰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게 개발팀이 아닐까요. 인터넷에서 떠도는 이야기 중 와닿았던 비유가 있는데요, 다른 부서에서 가끔 ‘아파트를 1cm만 옮겨 주세요’ 같은 무리한 요청을 한다는 거였죠. 타 팀에서는 고작 1cm를 옮기는 것, 그러니까 아주 사소한 부분을 수정하는 거라고 생각하지만 개발팀 입장에서는 아파트를 통째로 들어올려야 하는 큰일인 거예요. 

저는 그럴 때 무조건 ‘안 돼요’라고만 하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해요. 불가능한 요청에는 왜 안 되는지 설명을 해 주고, 조금만 더 시간을 투자해서 대안을 제시하죠. 대안으로는 이런 것들이 있는데, 각각의 장단점은 이렇다 하고 설명만 해도 문제가 생기지 않는 것 같아요. 


Q. 개발 조직을 리드하며 가장 신경 쓰신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A. 1순위는 늘 사업에 지장이 없게 하는 것이었고, 다음으로는 성장이라는 키워드를 가장 중요시했던 것 같아요. 제가 개발자로서 뿌듯함을 느끼는 지점은 항상 새로운 것을 배우며 스스로 발전해 나간다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팀을 운영할 때도 구성원들이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게 하려고 해요. 업무 분배 시 핵심 인력 몇 명에게만 굵직한 일이 편중되는 것은 지양하고, 코드를 리뷰하며 개발자들의 성장을 챙기려고 노력했습니다. 


배움을 브랜딩하다


Q. 그런데 현영 님은 본업 외에도 굉장히 많은 일을 하고 계시잖아요? 잠은 주무시나요?(웃음) 

A. 지난 5년간 제로초라는 닉네임으로 개인 블로그(ZeroCho.com)와 유튜브 채널 <ZeroCho TV>, 온라인 강좌를 운영했고 <Node.js 교과서>, <Let’s Get IT 자바스크립트 프로그래밍>, <타입스크립트 교과서>라는 세 권의 책을 썼어요. 개정판을 포함하면 총 다섯 권의 책을 펴냈다고 볼 수 있겠네요. 

이렇게 열심히 했던 건 제 성격 때문이에요.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뒤처지는 느낌이 들거든요. 러닝머신에 올라 가만히 서 있는 듯한 기분이랄까요. 항상 현실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품고 있는데, 이런 강박이 오히려 원동력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몸을 상하게 한 적도 없지는 않지만 대체로 잠은 잘 자는 편이었습니다.(웃음) 우리가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아무것도 안 하면서 보낸다는 사실 알고 계세요? 그런 자투리 시간을 최대한 활용해서 쉬는 시간을 확보했어요. 본업이 도움이 되기도 했고요. 

(어떤 도움을 말씀하시는 거예요?) 비슷한 계열의 회사로 이직을 하면 전 회사에서 사용했던 코드를 다시 활용할 수 있는데, 저는 그럴 수가 없었으니까요. 예를 들자면 마이핏은 인공지능 기반의 의류 사이즈 추천 솔루션이고, 오늘의픽업은 당일 배송 서비스였거든요. 분야가 너무 달랐죠. 매번 백지부터 다시 코드를 짜야 하는 게 새로운 분야를 배울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고 즐겼어요. 새롭게 공부를 시작하면 늘 ‘이거 강의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회사를 옮길 때마다 일부러 제일 핫하고 사람들이 많이 찾는 기술로 갈아탔던 것 같아요. 그러면 업무를 하면서 자연히 그 기술을 익힐 수 있으니까요. 일하면서 공부하고, 퇴근 후에는 공부한 내용으로 강의를 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누렸던 것 같습니다. 


Q. 그렇다면 요즘 가장 주력하고 계시는 일은 무엇인가요?

A. 한동안은 고등학교 동창들과 공동 창업한 스모어톡에 집중했어요. AI를 활용한 비주얼 콘텐츠 생성 서비스를 전문으로 하고 있죠. 4월에 창업해서 8월에 1차 클로즈 베타를 진행했고, 10월 초에 2차 테스트를 시작했어요. 


Q. 얼마 전 출간된 <타입스크립트 교과서>에 대해서도 소개해주세요. 왜 타입스크립트였나요? 

A. 예전에는 저도 자바스크립트만 고집했었어요. 그런데 운영하는 서비스가 성장하면서 프로젝트 구조도 복잡해지고, 자바스크립트 에러가 점점 더 많이 발생하기 시작했거든요. 새벽에 자다 일어나서 고치는 일도 다반사였는데, 타입 에러 유형의 똑같은 에러들이 반복적으로 발생하더라고요. 이것들을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 타입스크립트를 도입하는 거거든요. 실제로 타입스크립트를 도입한 이후에 에러가 많이 줄었어요. 아마도 자바스크립트를 쓰시는 개발자 분들은 대부분 공감하실 거예요. 유명 기업들도 거의 타입스크립트를 도입하는 걸 보며 이게 정말 대세가 되었구나 싶었는데, 공부를 시작하고 보니 예상 외로 관련 서적이 별로 없어서 직접 책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좀 더 많은 사람에게 타입스크립트에 대해 알려 주고 싶어서요. 

(문법과 예제가 균형 있게 구성되어 있어서 도움이 많이 될 것 같더라고요.) 시중에는 문법만 알려주는 책이 많은데, 저는 예제가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책을 보고 문법은 알았지만 백지 상태에서 코드를 치라고 하면 하나도 못 쓰겠다는 분이 정말 많거든요. 또, 다른 사람의 코드를 읽는 것 자체를 어려워하시는 경우도 많고요. 그래서 책의 절반은 문법에 할애하고 나머지 절반은 직접 코드를 읽고, 만들면서 적용해보실 수 있도록 구성했어요. 읽는 법과 쓰는 법을 동시에 알려드리기 위한 노력인 거죠. ‘교과서’라는 제목에 누가 되지 않게 스스로도 정말 열심히 공부하면서 집필했습니다. 


Q. 그러고 보니 어느 인터뷰에서 온라인 강좌나 책으로 정보를 공유하는 건 스스로의 배움을 위해서이기도 하다고 말씀하신 게 기억 나요. 

A. 프로그래밍 공부를 시작한 뒤 직접 블로그부터 제작했고, 누군가에게 설명한다고 생각하면서 공부한 내용을 정리했어요.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를 가르쳐 주려면 거의 완벽하게 알고 있어야 하잖아요. 제가 아는 것을 글로 옮겨보니 허점이 많이 보여서 내용을 보충하고, 다시 또 보완하던 중 처음 출판 제의를 받게 됐어요. 마찬가지로 자신 있는 분야에 대해 강의를 준비할 때도 저의 빈틈을 발견하곤 해요. 책을 쓰거나 강의를 준비하는 게 저에겐 지식을 나누는 일인 동시에 치열한 배움의 기회인 셈이죠. 


Q. 3.2만 명의 유튜브 구독자, 4.7만 명(23년 10월 기준)의 인프런 수강생 분들과는 그런 배움의 과정에서 만나게 된 거네요. 혹시 기억에 남는 분이 있을까요? 

A. 몇 년 전까지는 제가 인프런 답변왕이었는데요, 질문왕으로 뽑힌 수강생 분께서 저에게 질문을 주셨기 때문에 강제로 답변왕이 될 수 있었어요.(웃음) 아무래도 그 분이 가장 기억에 남고요. 오프라인 멘토링을 진행하며 만나 뵈었던 분들이나 강의가 도움이 되었다고 리뷰를 작성해주신 분들, 개인적으로 메시지나 메일을 보내주신 분들도 감사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오늘의픽업에서는 수강생 분들을 채용하기도 했는데 그분들도 빼놓을 수 없죠. 


Q. 현영 님은 개발 역량뿐 아니라 자기 PR의 중요성도 강조해오셨어요. 앞서 소개해 주신 다양한 활동이 제로초라는 브랜드를 만드는 기반이 되었을 것 같은데요, 개발자의 셀프 브랜딩을 위한 조언을 해주신다면요?

A. 셀프 브랜딩에 힘을 쏟으면 확실히 기회가 많아지는 것 같아요. 저도 제로초라는 이름을 알리면서 공동 창업 제안이나 채용 제안을 많이 받았거든요. 수강생 분들도 강의를 선택하실 때, 커리큘럼이 비슷하다면 조금 더 유명한 사람의 강의를 듣고자 하시는 게 있더라고요. 그런 데서 자기 PR의 이점이 뚜렷하게 드러난다고 생각해요. 

셀프 브랜딩이 낯설고, 사람들 앞에 나서는 걸 선호하지 않는 개발자 분도 많이 계실 텐데요. 본명과 얼굴을 공개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글을 쓰거나 콘텐츠를 제작하는 건 가능하잖아요. 자신이 아는 내용을 다양한 방식으로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스스로 브랜드가 될 수 있습니다. 저도 MBTI에서 I가 100%인 사람이지만 먹고살기 위해서 성격에 안 맞게 유튜브까지 했네요.(웃음) (셀프 브랜딩을 위한 일들이 수입 부분에서도 도움이 되었나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본업으로 얻는 수익보다 다른 활동으로 인한 부수입이 훨씬 더 도움이 되고 있어요. 


즐겁게, 오래 일하는 법


Q. 이토록 매일을 밀도 있게 살아온 현영 님에게도 아쉬움이 남는 일이 있었나요? 어떤 부분에서 어려움을 겪었고 그 과정에서 무엇을 배우셨는지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A.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강의도 하고 책도 쓰게 된 이유는 공부를 하면서 제가 아는 정보를 공유하고자 했던 것도 있지만 부수입이 필요했기 때문이기도 했어요. 저는 총 7번 정도 창업을 했는데, 거의 다 망했거든요. 그래서 지금도 항상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요. 

창업은 패기만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제 실력이 부족했던 탓도 있고 고객이 우리 제품을 좋아할지, 시장이 우리 서비스를 필요로 할지 데이터를 기반으로 판단했어야 하는데 그런 부분에서 미흡했던 것 같아요. 최근에 구글 최초의 엔지니어링 디렉터 알베르토 사보이아가 쓴 <아이디어 불패의 법칙>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5년 전에 이 책을 읽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생각했어요. 최소한 그렇게 허무하게 실패하진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아쉬움이 남더라고요. 

그래도 창업을 통해 마케팅이나 세일즈, 경영기획 같은 사업적인 부분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각각의 부서들이 어떻게 유기적으로 일할 수 있는지, 회사를 운영하는 데는 어떤 현실적인 문제들이 수반되는지 등 개발 외적으로도 배운 게 많아서 좋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정말 뼈아픈 시간을 보내셨겠어요.) 사업 실패와 맞물려 번아웃을 두 번 정도 겪었어요. 모든 것을 쏟아부었는데 남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과 함께 좌절감이 몰려오더라고요. 처음에 번아웃이 왔을 때는 진짜로 매일 울었어요. 가만히 누워만 있어도 눈물이 나더라고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면서 회복했죠. 

저는 원래 취미도 프로그래밍이었거든요. 프로그래밍이 너무 재미있어서 쉴 때도 프로그래밍을 하곤 했어요. 그런데 번아웃을 겪어보니 일과 취미가 같다는 건 재앙이 될 수도 있더라고요. 그래서 여가시간을 즐길 수 있는 다른 취미를 찾아봤죠. 딱히 특별한 건 없지만 요즘은 뮤지컬을 보거나 맛있는 걸 먹으러 다니는 등 취미 생활을 즐기면서 힘든 시기가 찾아와도 곧잘 이겨내는 것 같습니다. 아, 그리고 반려 거북이를 키우기 시작했는데요. 비록 이 친구는 귀가 없어서 목소리도 못 알아듣고 주인도 못 알아보지만 존재만으로도 정서적인 위안을 줘요. 반려동물이 있으면 번아웃에 빠질 수도 없는 게, 이 친구를 먹여살리기 위해서 뭐라도 해야 하거든요.(웃음) 외로움도 확실히 덜하고, 여러모로 긍정적인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Q. 현영 님의 실제 성격은 어떤가요? 만약 개발자에 잘 맞는 자질 같은 게 있다면 현영 님은 그런 성향이신가요?

A. 저는 완전한 내향형 인간이지만 관심 받는 걸 좋아하기도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사람들 앞에 나서긴 하지만 ‘뚝딱뚝딱’ 하는데 그런 모습을 오히려 재미있게 봐주시더라고요.(웃음) 뭔가에 한 번 집중하면 오랫동안 몰입하는 성향도 있어요. 재미가 없는 일엔 집중을 못하는데, 프로그래밍은 너무 재미있고 에러가 발생하면 약간 승부욕이 발동해서 그걸 해결할 때까지 계속 한자리에 앉아 풀었던 것 같아요. 

이런 점 때문에 스스로는 적성에 잘 맞는다고 생각해요. 저는 개발자가 이 세상의 문제를 소프트웨어적으로 해결하는 사람이라고 믿거든요. 문제 푸는 걸 좋아하지 않으면 이 일을 즐겁게 할 수가 없을 거예요. 그리고 평생 공부를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새로운 기술을 익히는 데 거부감이 없고 공부 자체를 좋아해야 하는데 이게 가장 힘든 부분인 것 같습니다.(웃음) 

솔직히 요즘은 좋은 커리큘럼만 따라가도 취직까지는 무리 없이 갈 수 있는 것 같아요. 중요한 건 그 다음부터죠. 흥미가 있어야 개발자로서 성장할 수 있는 길을 스스로 찾을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단순히 개발 파트가 연봉이 높다는 이유로 입문하시는 분도 많은데, 그런 분들은 실력이 늘기도 어렵고 결국은 다 떠나가시더라고요. 흥미만 있다면 실력은 저절로 나아진다고 생각해요. 


Q. 현영 님은 특별한 롤모델이 없다고 공공연히 밝히셨지만 아마도 누군가는 현영 님을 롤모델로 삼고 있을 거예요. 현영 님에게서 얻은 정보와 영감을 바탕으로 자신의 길을 만들어가고 있는 분들께 조언을 해주신다면요. 

A. 제게 롤모델이 없는 이유는 타인과 저를 비교하고 싶지 않아서예요. 누군가와 견주며 열등감이나 박탈감을 느끼게 되는 게 싫었어요. 다만 언제나 ‘어제의 나보다는 조금 더 나아지자’고 생각해서 자신과의 싸움을 하려고 했는데, 지는 날이 조금 더 많았죠.(웃음) 

솔직히 매일 조금씩 더 나아진다는 건 무척 괴로운 일이어서 전 항상 힘들었던 것 같거든요. 혹시라도 제가 열심히 사는 것 같아서 저를 롤모델로 생각해 주시는 분이 계시다면 충분한 휴식과 취미 생활도 즐기며 일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스스로를 케어하면서 일해야 즐겁게, 오래 일할 수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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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글 조아라 브랜드 플래너
사진 최호근 포토그래퍼


발행일 2023.1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