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몸이 아픈 신호는 곧장 받아들이지만, 마음이 괴로울 땐 그 아픔을 되새김질하며 재차 의심한다. 병원에 내원해야 ‘할까, 말까’ 여전히 고민하는 당신을 위해 허규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를 만나 대신 물었다.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고민의 무게 추를 ‘할까’에 기울길 바라는 바람으로.
콤플렉스, 치료보다 중요한 ‘다르게 보기’
Q. 안녕하세요, 규형 님. 요즘 여러 일정으로 바쁘게 지내시는 것 같아요.
A. 본업인 정신과 진료와 유튜브 <뇌부자들> 운영을 병행하던 중에, 최근 작가로 참여한 책이 출판돼 책과 관련한 행사들에 참석하고 있어요. 독자님들을 만나 뵐 수 있어 무척 좋습니다. 그리고, 10월 10일이 ‘세계 정신건강의날’인만큼 정신 건강을 주제로 한 행사에도 참여하고 있고요.
Q. 규형 님과 담당 편집자님께서 담소 나누시는 걸 들어 보니, 초청 강연 프로그램인 ‘세바시’에도 출연 예정이시라고요.
A. 맞아요.(웃음) 수능을 치른 수험생들이 자책하지 않고, 마음 건강을 챙길 수 있도록 강연 주제를 기획해 준비하고 있습니다.
Q. 앞서 잠깐 말씀 주셨는데요. 올해 8월, 규형 님께서 집필하신 도서 <나는 왜 자꾸 내 탓을 할까>는 출간 직후 독서 플랫폼 ‘밀리의 서재’에서 주간 종합 베스트 1위에 선정될 만큼 높은 인기를 얻었습니다. 내 마음이 힘든 이유를 알지 못해 고민인 사람을 위해 준비하신 책이라고요. 책 내용을 구상하시는 과정에서 주안점을 두셨던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목차 직전에 나오는 ‘작가의 말’에서 규형 님의 여러 고민이 느껴지더라고요.
A. 내용이 쉽게 잘 전달 되길 바라는 마음과 누군가 제가 쓴 글에서 상처 받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책을 준비했어요. 이 책은 심적으로 지치거나 힘든 분이 보실 테니까요. 사실 지금도 제가 아직 작가로서 부족한 단계인데, 섣부르게 진행했던 건 아닐까 걱정되기도 해요.
Q. 도서 내용 중,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마음이 힘든 이유를 함께 찾을 수 있다면 마음의 힘듦을 덜어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대목이 있어요. 그런데 저는, 사람은 저마다 카멜레온 같은 성질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나’를 안다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처럼 느껴지는데요. 어떤 시도들을 통해 나와 가장 근접한 모습을 비춰 볼 수 있을까요?
A. 결국 질문이 중요해요.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과정을 통해 나를 알아갈 수 있어요. 요즘 MBTI 검사 많이 하잖아요. MBTI 결과에 나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촘촘히 생각해 보는 거예요. 가볍게는 좋아하는 음식이나 음악 등에서 시작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김치찌개를 가장 좋아한다면 내가 매운맛을 선호하는 건지, 어느 식당에서도 김치찌개는 웬만큼의 맛을 내기 때문에 그저 안전한 선택지를 선호하는 건지 답이 나오겠죠. 그런 사소한 단서에서부터 나를 이해하는 거예요.
Q. 대단한 무언가가 아닌, 아주 쉽고 작은 것부터 질문하는 연습이 중요하다는 말씀인 것이죠? 규형 님의 MBTI가 갑자기 궁금해지는데요.
A. 저는 ISTP예요. 맨 뒷자리 ‘P’만 유일하게 거의 고정값이에요.(웃음)
Q. 다시 책 이야기로 돌아오면요. 자전적인 고백도 인상 깊었어요. ‘보통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라고 하면 스트레스 관리도 잘’할 거라고들 생각하지만, 그렇지만도 않다고요. 나아가, 책의 한 챕터에서는 규형 님의 콤플렉스를 나눠 주시기도 하셨죠. 콤플렉스라는 건 정말 감기와도 같아서 시간이 지나면 어느새 또다시 발병하는 존재인듯해요. 콤플렉스의 뿌리를 완전히 뽑는 건 불가능한 일일까요?
A. 콤플렉스는 마음에 영향을 주는 복합체를 의미해요. 그리고, 우리가 보통 이야기하는 콤플렉스는 열등 콤플렉스가 대부분인데요. 열등 콤플렉스가 없다는 건 아쉬움이 없다는 뜻이고, 아쉬움이 없다는 건 욕구가 없음을 뜻해요. 그런데, 욕구가 없는 사람은 무기력하거나 권태에 빠진 상태일 확률이 높기 때문에, 오히려 콤플렉스의 뿌리를 완전히 뽑기 위해 노력하는 것보다 현재 자연스러운 상태(상황)라고 받아들이는 자세가 중요해요.
Q. 책에서 소개하는 다양한 사례는 내 두려움을 차마 나누지 못하는 현대인에게 큰 위안이 됩니다. 규형 님을 찾는 직장인들 사이에서 제일 빈번하게 나오는 두려움은 무엇인가요?
A. 잘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으세요. 못하면 도태될 거라고 생각하시면서요. 그러다 보니, 동기와 후배 혹은 비슷한 일을 하는 다른 친구와 비교하며 끊임없이 괴로워하시는 분도 많죠.
Q. 그런 많은 직장인이 자문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나도 병원에 내원해야 할까?”예요. 현재 내가 상담이 필요한 단계인지 혼란스러워서 결국 가지 않는 방향을 선택하기도 하고요. 이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직장인에게 필요한 이야기는 무엇일까요?
A. ‘할까, 말까’라는 고민이 들었다는 건 분명 어떤 필요성이 생겼다는 의미예요. 전 그럴 때면 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운동에 대입해 생각하면 고민이 훨씬 가벼워질 거예요. 누군가에게 ‘나 운동할까, 말까’ 묻는다면 대부분 해 보라고 권할 텐데요. 운동이라는 큰 카테고리 안에서 헬스, 필라테스 등 본인에게 맞는 종목을 찾아가듯이 ‘이런 고민으로 내원해야 할까.’라는 고민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검진을 받고 내 상태가 어떤지 알아가 보는 것을 권해요.
Q. 저 역시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그 세계를 헤아려 보는 노력이 필요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때로는 “아무리 자세하게 말한다고 하더라도, 효린 님이 직접 경험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완벽히 이해하지 못할 거예요”라며 대화의 문에 걸쇠를 걸어 둔 채 마주하는 분도 계시죠. 규형 님께서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을 거라고 짐작해 봅니다. 이와 같은 순간, 규형 님은 내담자와의 관계를 어떻게 재구성해 가시는 편인가요?
A. 먼저 기다리고, 이야기하기 어려운 이유를 여쭤 봐요. 이야기 자체보다 선뜻 운을 떼기 어려운 마음을 우선으로 다루려고 해요. 그다음 저는 언제든 ○○ 님을 도와드릴 준비가 돼 있고, 제가 ○○ 님의 상황을 이해할수록 도와드릴 수 있는 부분도 많다는 점을 말씀드려요. ‘선생님은 이해하지 못하실 거예요.’라는 그 답변을 저도 듣곤 해요. 그렇지만, 온전히 이해받지 못해 상처받았던 사람이라면 그에게 충분한 기다림이 필요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