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차 CX기획자, PM으로 고행길을 택하다

글ㅣ강승훈 현대홈쇼핑 백오피스 기획자

6년차 CX기획자, PM으로 고행길을 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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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티클은 <어쩌다 커리어> 시리즈의 2화입니다. 


✍ 오늘의 아티클
  • 6년 차 CX 기획자가 PM으로 직무 전환을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자연스럽게 진급할 수 있는 기회를 마다하고 PM으로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게 된 이유를 확인해 보세요.
  • CX 기획자가 PM이 되려면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회사에서 직무 전환을 신청하거나, 다른 기업의 PM으로 이직하는 것이죠.
  • 그러나 직무 전환을 위해서는 평소 PM처럼 일하고 PM처럼 사고하려 노력해야 합니다. CX 기획자도 PM이 될 수 있는 체크 포인트는 무엇일까요?
2023년 11월은 저에게는 꽤나 뜻깊은 달입니다. 그렇게 꿈에 그리던 ‘PM’이라는 타이틀을 손에 쥐게 되었거든요. 제가 속한 회사에서는 PM이나 PO, 서비스 기획자와 같은 별도의 직함을 사용하고 있지 않기에 본인이 하는 직무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몇 년 동안 제가 하고 싶었던 일들을 배정받고 나니 새삼 ‘내가 이제 드디어 PM이 되었구나’라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사실상 저도 기대하지 않았던 팀 이동이었기 때문에 팀 이동 발표날까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던 터라, 막상 결과를 보고 나니 기대보단 걱정이 조금 더 앞서기도 했습니다. 많은 선택지를 가지고 있던 와중에 갑자기 하나만 손에 쥐게 되었을 때 겪게 되는 그런 불안감처럼 말이죠. 


CX 기획자로서의  일상에 작별을 고한 이유 


지난 6년간 CX 기획자로서 살아온 지난 삶을 스스로 평가해 본다면, 성과는 어떨지 모르지만 그 누구보다 이 직무를 알리기 위해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CX라는 단어가 도입되어 확장되기까지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고, 지금도 걸음마 수준인 것을 알기에 어떻게 하면 이 직군에 있는 사람이 더 나은 커리어와 더 나은 비즈니스적 자기 효능감을 느낄 수 있을까를 매번 고민했거든요. 

모든 커리어가 각자 도생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겠지만, 유독 CX 기획자가 조금 더 외로움을 느끼는 이유는 2가지가 있다고 봅니다. 먼저 CX 기획자로서 좋은 커리어를 쌓아가는 사람은 매체에서 보기 어렵습니다. 마케터, PM, 사업개발, 기획 등 여타의 직군은 각종 강의와 부트 캠프, 유료 강의와 현업에 있는 구루들을 만날 플랫폼이 많은 반면에, CX 기획자로서 이름을 날리고 계신 분을 알기란 손에 꼽습니다. 물론 구루를 만나야 일을 잘하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이 맡은 직무의 미래 지도를 그리는 데 청사진이 될 수 있는 롤 모델을 접할 일이 적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해진 방향성 대신 새롭게 길을 개척해야 하는 경우가 많고, 이로 인한 피로감으로 인해 쉽게 이 직군을 떠날 수도 있습니다. 

다음으로 기업마다 CX에 대한 정의가 다릅니다. 소비자 민원팀, CS팀, CX기획팀, 서비스 운영팀, 서비스 개선전략팀 등 부르는 팀의 이름도 다르고 CX를 CS의 단어로 국한해 사후 처리 담당자로만 생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한번은 한 연애 프로그램에서 섭외 제안을 받았는데요. 당시 프로그램의 성격상 남성 출연자의 직업이 중요하다는 것을 모른 채 제 직업을 ‘CS 기획자’라고 이야기했던 적이 있습니다. 저는 결국 면접까지만 보고 탈락하게 되었어요. 작가를 하는 지인 친구에게 후문을 들어보니 ‘기획자라는 말도 생소한데 CS라는 단어까지 붙여 놓으니 제작진들은 ‘아, 상담사구나’라는 막연한 생각 때문에 떨어진 것 같다.’라는 의견을 남겼다고 합니다. 일반 기업에서도 크게 다른 반응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CX에 대한 편협한 인식을 확장하고 새로운 커리어의 방향성을 제안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었는데요. 한 가지 한계를 느끼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더 큰 비즈니스 임팩트를 만들어 보고 싶었거든요. 고객의 관점에서 문제를 분석하고 선제적으로 이러한 문제가 발생되지 않게 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기획하는 업무도 좋지만, 기업의 핵심 비즈니스 모델에 연관된 제품을 만들고 이 안에서 복잡한 헤게모니들을 하나씩 풀어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생각은 제가 CX 단에서 복잡한 이슈들을 마주할 때마다 들기 시작했고요. 

물론, 말리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알아서 자연스럽게 진급도 잘할 수 있고, 이 분야 권위자도 될 수 있는데?’라고 하면서요. 최종 커리어를 CX 기획자로 정할지 아니면 PM으로 할지는 모르겠지만, 7년 차에 직무 전환이라는 무리수가 새로운 비전과 성과의 기여도를 높여 더욱 성장할 수 있는 순간이라는 것은 확실했습니다. 


CX 기획자가 PM이 되기 위해 한 것


PM으로 직무 전환을 결심을 한 후, 가장 먼저 직무 전환의 형태를 고민해 보았습니다. 같은 기업에서 직무 전환을 신청하거나 다른 기업의 PM으로 이직하는 2가지 선택지가 있었죠. 전자를 택한 이유는 단 하나, PM에게 커뮤니케이션은 큰 자산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한 회사에 오래 머무르면 ‘고인물이자 안주하는 사람’이라는 오명을 받기도 하는데요. 반대로 생각해 보면 평판과 네트워크, 신뢰를 기반으로 기업의 레거시들을 빠르게 파악할 수 있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느 부서, 누구에게, 어떤 절차를 거쳐서 말을 해야 하는지 알아보는 확인 과정을 0부터 다시 거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이직해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생각보다 이런 적응이 오래 걸릴수록 업무 능률에 영향을 줍니다. 

다음으로 PM처럼 일하고 PM처럼 사고하기 위해 노력했던 과정을 글로 정리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저는 오래전부터 PM 직무 전환을 고려해왔기 때문에 CX 기획자이지만 언제나 PM으로서의 사고를 갖추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를 위해 다음의 과정들을 함께 진행했습니다. 

첫째, 주요 기업의 채용 공고를 통해 PM 직무에서 원하는 인재상을 정리했습니다.

자료 1, 주요 기업들의 채용 공고에 적힌 핵심 키워드 (제공: 강승훈 / 제작: 원티드)


<자료 1>에서 보이는 것처럼 우대 조건에 기재된 역량을 갖추지 못하더라도, JD와 자격 요건의 적힌 내용은 충분히 현업에서도 경험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특히나 고객 문제 정의, 제품 이해, 가설 수립 및 검증이란 4가지 키워드는 JD와 자격 요건에서도 2회나 언급된 만큼 중요하기 때문에 CX 기획자로 일하면서 염두에 두었습니다. 

예를 들어, 현업에서 다음 같은 상황이 주어졌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라이브 커머스가 인기인 만큼, 라이브 커머스 전용 상담 채널을 구축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특히 모바일에 친숙하지 않은 시니어 고객들을 대상으로, 그들이 전화 주문을 해도 모바일 주문 혜택과 동일한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만들어 주세요.”

임원들을 통해 위 내용이 제안되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이 상황에서 CX 기획자는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액션 아이템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전화 상담 구축을 위한 신규 번호 생성, 상담원 주문을 통해 모바일 혜택을 제공하기 위한 쿠폰 할인 적용 시스템 개발, 상담사 응대 매뉴얼 수립 및 해당 채널을 통해 인입된 고객의 데이터 관리 등을 해야겠어요.”

여기까지만 해도 충분히 우수한 CX 기획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PM이라면 몇 가지가 더 필요합니다. 

<PM이라면 추가적으로 더 고민해야 할 포인트>

∙ 라이브 커머스가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 라이브 커머스를 이용하는 연령층의 비율은?
∙ 라이브 커머스를 이용하는 ‘시니어’의 범위는 어디까지로 봐야 하는가?
∙ 라이브 커머스를 이용하는 ‘시니어’ 고객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어떤 데이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가?
∙ 라이브 커머스의 불편함을 해결하기 위한 채널이 ‘전화 주문 채널’이라는 것은 어떤 가설을 수립해야 검증 가능할 것인가?
∙ 해당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이야기해야 할 것들은 어떤 것이 있을까?
∙ 정책/프로모션/주문/소비자 보호 정책 등 모듈별, 팀별 이슈사항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TOP-DOWN으로 내려온 안건이더라도 WHY 포인트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그다음 안건을 프로젝트화시키기 위해 영향을 받게 되는 서비스의 모듈을 모두 확인하며 리스크 체크를 해 나가는 것이 PM으로서 업무를 하기 위한 출발점입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업무해 오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걱정하지 마세요. 위와 같은 관점으로 나의 업무를 확인해 본 후 자소서와 포트폴리오에 해당 내용을 넣으면 됩니다. 

그다음 작업은 ‘포트폴리오’입니다. 

원칙대로라면, 별도의 포트폴리오 제출 없이 인사팀에 팀 이동 신청만 필요했으나 직무 전환에 대한 간절함을 어필하기 위해 포트폴리오를 작성했습니다. 

자료 2, 포트폴리오 구성 항목 (제공: 강승훈 / 제작: 원티드)


프로젝트 별 핵심 요약 정보를 기재하였고, 데이터를 활용해 ‘개선할 수 있는 문제인지’ 확인해 나가며 대안을 추려 나가는 과정을 상세히 적으며, 프로젝트가 수행될 수밖에 없었던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아울러 기존의 현황에 대해 구조화하는 과정을 거쳐 모르는 사람이 봐도 이해할 수 있도록 쉽지만 복잡하지 않게 AS-IS를 적으며, 어디서부터 문제가 발생했는지 기록했습니다. 

나아가 TO-BE의 개선안이 기존 AS-IS와 비교했을 때 어떤 부분이 달라졌는지를 체크해 전략적인 포인트로 정리했습니다. 이후 실제 개선 결과물을 삽입해 정량적/정성적인 성과를 담으며 PM으로서의 소프트스킬까지 함께 기재했어요. 


PM이 되고 나서 주의할 점 


원하던 PM이 되어 업무를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한 지 어느덧 2개월 차를 넘어가고 있습니다. 한 가지 드리고 싶은 말은 ‘직전 업무에서 일을 잘했으니 이번에도 잘할 수 있을 거야’라는 생각을 버려야 적응하기 더 빠르다는 것입니다. 

‘모듈이 바뀌면 완전히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한다’ 혹은 ‘똑같은 모듈을 담당하는 PM이지만 시스템이 다른 회사에 이직하게 되면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한다’는 말처럼, 저 또한 유사한 경험을 겪고 있습니다. 기존까지 알고 왔던 상담 백오피스와 대고객 서비스와는 전혀 다른 시스템과 체계, 업무 프로세스, 레거시들을 알아가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절대 ‘내가 PM에 맞지 않나 보다’라고 속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물론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옷일 수도 있지만, PM으로서 레거시를 익히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과정은 절대 빠르게 따라잡을 수만은 없기 때문입니다. PM으로 성장하기 위한 필수 성장통임을 꼭 기억하시고 단단한 마인드 세팅을 가진 상태에서 PM에 도전해야 심란하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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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강승훈 
CX 기획자를 거쳐 현재는 현대홈쇼핑에서 백오피스 기획자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서울과학종합대학원 AI MBA 과정을 수료하였으며, 개인적으로는 글쓰기를 좋아해 브런치를 운영 중입니다.  <서비스 기획자로 있습니다>, 공동 저서 <심플루틴>를 집필하였고 클래스 101 VOD <젊은 CX기획자를 위한 고객경험 실무 가이드>를 제작했습니다. 


발행일 2024.0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