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대 무제한, 연 200만 복지 포인트, 취미 활동 지원. 보기만 해도 구미가 당기는 복지입니다. 23년 5월 발표된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MZ세대의 퇴사 사유 1위가 ‘근로 여건 불만족(45.9%)’이라고 하며, 채용 플랫폼 한 곳의 조사를 보면 MZ세대의 직장 선택 기준 2순위가 '복지제도(19.6%)'라고 합니다. 이처럼 복지제도, 상여금과 같은 급여 외 보상이 MZ세대의 입사 지원율과 근속률에 영향을 미치는 만큼 구성원의 장기 근속 유도를 위한 복지제도 수립에 대한 인사담당자의 관심이 매우 높습니다.
그래서인지 최근 MZ세대의 트렌드와 라이프 스타일을 고려한 신선한 복지제도를 소개하는 기사를 많이 볼 수 있는데요. 구성원의 출퇴근을 위해 퍼스널 모빌리티(Personal Mobility)를 지원하거나 ‘입맛 복지’를 겨냥해 런던 베이글 뮤지엄, 노티드 도넛과 같은 인기 외식 브랜드와 협업한 팝업스토어를 회사 내 유치하기도 하고, 시대상을 반영해 비혼 선언 임직원에게 축하 지원금을 주거나 반려동물 장례휴가를 지원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요즘 직장인에게 복지제도는 취업과 퇴사를 결정하는 주요 요인인 것은 자명한데요. 문제는 다수의 스타트업이 ‘네카라쿠배당토’를 벤치마킹했거나 자체적으로 만든 제도의 운영에 예기치 못한 문제와 내부 진통에 봉착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왜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 걸까요? 스타트업에서 초기 복지제도 수립 시, 유의할 사항을 짚어보겠습니다.
방법 1.
우수사례 벤치마킹, 뼈 속까지 확실히 알고 따라해야 합니다.
우아한형제들(이하 배민)은 유니크한 복지제도로 꽤 유명하고, 이를 벤치마킹한 회사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유명하고’ ‘검증되고’ ‘선호도가 높은’ 제도를 우리 회사에 그대로 도입하고도 골머리를 앓는 경우가 있습니다. 최근에 만난 한 대표님께서는 “배민에선 동호회 운영할 때 문제 없었어요? 저희 회사에선 말도 많고, 어뷰징(abusing)도 많고. 아휴, 다 없애고 싶어요”라고 하소연했습니다.
배민에서라고 왜 어뷰징이 없고 이런 저런 요구들이 없었을까요. 다만 ‘명확하고 촘촘한 기준’이 있고, 구성원에게 ‘자율에 따른 책임’을 지속적으로 강조한 것이 달랐을 것 같습니다. 동호회를 지원하면 구성원의 밍글링(mingling)이 늘어나고 사내 소통과 시너지 발생에 도움이 될 거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도입’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배민에서는 어떤 기준에 따라 어떻게 운영을 하는지 ‘정확히 아는 것’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복지제도는 유기체입니다. 도입 시점, 시대 상황, 구성원 성향, 평균 연령 등에 따라 그 효과가 엄청 달라집니다. 먼저 벤치마킹 하려는 회사의 제도 운영 취지와 근간, 기준을 명확히 알고, 다음으로 우리 회사의 상황과 환경을 파악한 후에 우리 회사에 맞게 내재화를 해야 투입하는 비용 이상의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방법 2.
‘이 제도를 왜 만드는지’ 취지를 명확히 정합니다.
제가 서두에 ‘복지제도가 MZ세대의 입사와 근속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인사담당자들의 관심이 높다’라고 말씀드렸는데요. 표면적으로는 복지제도의 수립 이유가 우수 인재의 유치와 장기근속 유도일 수 있겠으나 궁극적 취지는 ‘구성원의 몰입과 성과 향상’을 끌어내는 것이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팀 회식비 혹은 운영비 지원 제도’를 만들었다면 그 취지가 “저희 회사는 팀이 함께 맛있는 것을 먹고 즐길 수 있도록 비용을 지원합니다”가 아니라 “저희 회사는 원팀(One-team)의 시너지를 믿고, 팀으로 퍼포먼스를 낼 수 있도록 소통을 강화하는 비용을 아끼지 않습니다”여야 합니다. 회사 미션과 주요 가치에 맞는 명확한 기조 및 원칙을 수립해야 예기치 못한 문제를 만나더라도 슬기롭게 결정할 수 있습니다. 먼저 회사의 복지제도 수립 기조를 명확하게 세우고, 다음으로 각 제도별 취지(목적)을 명시해 구성원들이 임의로 판단해 오남용하는 사례를 방지해야 합니다.
방법 3.
자율을 존중하되 책임도 함께 강조합니다. (feat. 지속적으로)
성장이 강조되면서 배민의 도서 구입비 무제한 제공, 버즈빌(리워드 광고 플랫폼)의 분기 40만 원 자기계발비 지원 등과 같은 ‘개인의 성장’을 지원하는 복지제도를 회사마다 하나 정도는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배민과 버즈빌에서 HR을 하며 복지제도과 관련해 “슬램덩크 전집을 사도 되나요?” “제가 전통주에 관심이 많은데 막걸리를 사도 되나요?” 등의 질문을 받았습니다. 성장에 도움이 된다면 괜찮을까요? 아니면 만화책이나 술은 승인하기 곤란한 품목일까요? 개개인의 의견이 다를 수 있을 것 같아요. 제가 생각하는 판단 기준은 ‘제도 취지에 비춰 스스로가 되돌아봤을 때 한 점 부끄러움 없이 그 사용에 떳떳한가?’입니다. 복지제도를 처음 만들면서 발생 가능한 모든 상황을 고려해 만드는 것 자체도 불가능하고, 너무 깐깐하게 만들면 제도에 매력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제대로 즐기며 활용할 수 있도록 최대한의 자율을 부여하되, 방만한 운영이 되지 않도록 책임도 함께 강조해야 합니다.
제도 수립 후 의아한 것은 처음 제도를 만들었을 때는 아무도 이런 질문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왜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질문이 나올까요? 새롭게 입사하는 구성원에게 “우리 회사에 이런 좋은 제도가 있어요.”라는 이야기는 하지만 “이 제도의 취지는 이렇습니다.”라는 건 아무도 알려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온보딩(onboarding)과 타운홀을 통해 지속적으로 복지제도 수립의 취지와 책임을 알려주는 것도 중요합니다.
방법 4.
시범 시행을 반드시 거치고, 매년 제도를 업데이트 합니다.
앞서 복지제도는 유기체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신선했던, 각광받던 제도가 어느 순간 고착화되고,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고, 쓸모없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2020년 이전, 구성원간 소통과 밍글링을 위한 ‘동호회 지원’은 COVID-19 시기가 오면서 쓸모없어지고, COVID-19시기에 지원했던 재택근무는 현재 회사의 부담 대비 대단히 매력적인 복지는 아닙니다. 복지제도가 기대한 효과를 내지 못하는 것은 ‘회사의 규모가 커져서’가 아니라 ‘시대와 시기, 사람이 변해서’입니다. 구성원이 원하는 것을 바라보고, 최선의 효과를 얻기 위해 복지제도도 유연하게 변할 수 있어야 합니다.
타사의 제도를 벤치마킹해 제도를 도입한다면 먼저 이 제도가 우리 구성원에게 매력적인지, 만족도가 높을지, 생산성에 도움이 될지 살피기 위해 시범 시행을 거칠 필요가 있습니다. 기대만큼 효과가 없다면 시범 시행에 그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도입을 결정했다면 ‘2024년 복지제도’라고 년도(年度)를 명시함으로써 ‘매년 제도가 새로 생기고, 폐지될 수 있다. 구성원의 니즈와 시대에 따라 유연하게 변할 수 있다.’라는 시그널을 줄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시그널이 없다면 이미 만든 제도의 폐지는 어려운 반면, 새로운 제도는 계속 늘어나 회사의 부담이 커지게 됩니다.
방법 5.
다양한 것보다 임팩트 있는 하나의 제도를 만듭니다.
배민의 ‘주 35시간제’, 레진코믹스(웹툰 플랫폼)의 ‘식대 무제한 지원’, SK하이닉스의 ‘허먼밀러 의자 제공’ 등은 과거에 각종 뉴스와 채용 시장을 떠들썩하게 했던 핫이슈였습니다. 물론 이 하나의 제도가 채용이나 재직자 리텐션을 좌지우지하는 정도는 아니겠지만, 채용 브랜딩과 조직문화 측면에서 확실히 도움이 되는 것은 맞습니다. 또한 이런 신선하고 강력한 제도는 기사화되고, ‘좋은 회사’라는 이미지로 사람들의 뇌리에 박힙니다. 특정 수준으로 성장한 회사들의 복지제도가 대동소이한 상황에서 사람들이 ‘오!’ 할 수 있는 하나의 제도는 기대 이상의 효율을 보여 줍니다. 다른 회사에 빠지지 않는 수준으로 복지제도를 세팅하는 것이 필수일 수도 있겠지만, 제한된 비용으로 최선의 효율을 내기 위해서는 선택과 집중도 좋은 전략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