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티클은
<&Workers : Begin again> 시리즈의 1화입니다.
직장인들은 종종 퇴사를 꿈꾼다. 일이 내 맘처럼 잘 되지 않을 때, 조직 내 누군가와 갈등이 있을 때, 회사에서 나의 미래가 불투명할 때 등 우리가 퇴사를 하고 싶은 이유는 수도 없이 많다. 그런데 김민철 작가는 조금 달랐다. 팀워크를 발휘하는 일하는 방식이 좋았고, 크리에이터로서 일은 만족감이 높았다. 경력이 쌓이면서 리더의 역할을 맡았고, 그 일은 맞춤옷을 입은 듯 자연스러웠다. 20년 동안 회사를 다니면서 높아진 연봉도 나쁘지 않았다. 객관적으로 회사를 그만 둘 이유가 없었다. 적어도 남들 눈에 비치는 그의 모습은 그러했다. 하지만 그는 1년 전, 퇴사를 했다. 직장인이 아닌 인간 김민철의 삶으로 새로운 시작을 나선 것이다. 
퇴사 후 자유인,
그냥 작가 김민철
Q. 작가님 안녕하세요. 평소 작가님 팬이었는데, 이렇게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작가님에 대한 간단한 소개 부탁드려요.
A. 안녕하세요. 작가 김민철입니다. 20년 동안 광고 회사에서 일하다가 지난 3월로 퇴사 1년 차가 되었습니다. 요즘은 주로 글을 쓰는 작가로 제 2의 직업생활을 하고 있어요.
Q. 직장인들은 종종 퇴사를 그려보기도 하지만, 익숙한 듯 젖어있는 직장 생활을 묵묵히 이어가고 있어요. 아직은 퇴사할 때가 아니기도 하고, 선뜻 용기가 안 나는 것도 이유겠지요.
A. 저는 사원일 때부터 ‘곧 퇴사해야지’라고 생각했어요. 상사에게도 “저는 곧 그만둘 거예요.”라고 이야기했고, 팀장이 된 후에는 팀원들에게 같은 말을 했었죠. 말은 이렇게 했지만, 일은 또 누구보다 열심히 하고 있어서 제가 말하는 퇴사는 그저 거대한 농담처럼 받아들여졌어요.
그저 실속 없는 소리를 했던 것이 아니라, 사실 저는 용기를 못 내고 있었어요. 워낙 성실한 성격이었기에 일을 열심히 했고, 그만큼 성과도 좋았죠. 연차가 쌓이면서는 팀장이 되고, 디렉터가 됐는데 어느 순간 그다음 단계의 제 모습이 빤히 그려지더라고요. 그때 문득 ‘안정적인 상황에서 한 번쯤 모험이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게 많은 것을 준 직장이자 직업이었지만, ‘이 일을 계속하는 것이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일까’라는 고민은 점점 깊어졌거든요.
사실 20년 차의 퇴사는 어떤 하나의 이유로 설명하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다만 더 늦기 전에 다른 걸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확실히 있었죠.
Q. 사실 작가님은 회사를 다니면서도 책을 출간하고, 다양한 외부 활동을 해오셨어요. 그러한 배경이 작가님의 퇴사에 영향을 주었을 것도 같아요.
A. 그렇지는 않아요. 사실 퇴사를 하고 나서야 ‘내가 바깥 활동도 열심히 해온 사람이었구나’라고 깨달았어요. 아시다시피 전업 작가로 먹고산다는 건 어려운 일이에요. 거의 잘 되지 않죠. 그러다 보니 그걸 믿고 그만둔 건 아니었는데, 그저 좋아서 했던 활동이 저의 콘텐츠가 되어 있더라고요. 덕분에 여러 곳에서 제안을 받고 다양한 활동을 하기도 했어요. 회사 밖으로 나온 후에야 ‘내가 참 열심히 살아왔구나’라고 깨달을 수 있었죠.

Q. 퇴사를 한 지 1년이 지났어요. 가장 크게 느껴지는 변화는 무엇인가요?
A. 우선 하루 24시간이 온전히 제 시간이 되었다는 것이 가장 좋아요. 저는 집 밖으로 나가는 것보다는 집에서의 생활이 좋은 사람이에요. 20년 동안 한결같이 출근해 온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하니 놀라는 사람도 있더라고요.(웃음) 퇴사를 하니 본연의 제 모습으로 살게 됐어요. 저도 제가 이렇게까지 집에만 있을 줄은 몰랐는데 말이죠. 그렇다고 늦잠을 자면서 생활이 흐트러지거나 하진 않아요.
Q. 집에만 있지만 하루 종일 움직이시는군요. 20년 차 직장인의 생활 습관이 무섭네요.(웃음)
A. 그런 것 같아요. 20년은 꽤 긴 시간이니까요. 그렇다고 하루 종일 일하는 건 아닙니다. 그저 지금 이 책상 앞에서의 움직임을 좋아해요. 휴대폰 게임을 하기도 하고, 유튜브를 보기도 하지만 일단은 책상 앞에 앉아 있어요. 놀면서도 여기에서 노는 것이죠.
저는 일이 남아 있는 상태를 불편해 하는 스타일이에요. 수많은 광고주의 다양한 니즈가 동시다발적으로 쏟아지는 광고 회사를 오래 다닌 덕분에 일의 우선순위를 빠르게 결정하고, 사소한 것도 놓치지 않는 습관을 가지고 있어요. 힘의 분배를 잘 해왔다고 해야 할까요. 지금 하는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현재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빠르게 파악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당장 할 수 있는 것을 우선으로 처리하고, 글이 좀 안 써진다 싶으면 다른 걸 하다가 쓰고 싶은 순간에 다시 또 써요. 나름의 규칙을 가지고 일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Q. 출근을 하지는 않지만 전업 작가로서의 삶 속에서 쉼없이 일하고 계시는 거네요.
A. 어떻게 보면 그렇게 보일 수도 있으나 회사원의 바쁘다는 말과 프리랜서의 바쁘다는 말은 조금 다른 것 같아요. 바삐 지낸다고 하지만 하루에 일하는 시간을 다 합치면 몇 시간 되지 않고, 그 시간을 제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어요. 학교 다닐 때에도 해야 하는 일이 늘 많았고, 직장인이 되어서도 계속 무언가를 잘해야 했어요. 주말에는 쉬었지만 쉼에 목적도 다음 주를 잘 살기 위한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이렇게 모두 맞물려 있으니 내가 내 시간의 주인이었던 적이 없었던 것이죠.
Q. ‘회사를 딱히 그만둘 이유가 없어서 회사를 다닌다. 그래서 이유 대신 결단이 필요했다.’ 작가님이 퇴사하던 날 인스타그램에 쓰신 글 중 이런 문장이 있었어요. 사실 많은 직장인이 퇴사를 고민하면서도 딱히 그만둘 이유가 없다고 생각할 거예요. 직장인은 힘들지만, 일을 통한 성취감과 월급이라는 안정감이 있으니까요.
A. 저 역시 회사에서 안정감과 성취감을 느끼곤 했어요. 그런데 돌이켜보니 일의 안정감보다 매월 들어오는 월급 생활이 달콤하고 편안했던 것 같아요. 그 생활을 20년 동안 했으니 익숙할 대로 익숙해져 있었죠. 어느 순간 이만큼 했으면 할 만큼 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리고 더 늦어지면 새로운 시작을 하기 진짜 어려워질 것 같았고요. 회사에 남아 일하는 것도 길이 될 수 있었지만 그게 제 꿈은 아니었어요.
실은 퇴사를 결심하고 아무한테도 말을 하지 않은 채로 몇 달을 지냈어요. 그런데 그만 둘 생각을 하고 보니 월급날 통장에 찍히는 숫자가 달리 보이더라고요. ‘이 돈 없이 산다는 것은 뭘까’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늘 같은 날짜에 들어오던 돈이 없어진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니까요. 그렇지만 언젠가는 이별할 돈이기도 했죠. 그리고 저에 대한 믿음이 있었어요. ‘나 김민철은 퇴사해도 뭐라도 할 것이다’라는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요.

20년 동안 카피라이터,
이제는 전업 작가로 글을 쓰다
Q. 직장 생활을 하면서 취미로 쓰던 글과 전업 작가가 되어 쓰는 글은 조금 다르지 않을까 싶어요. 글쓰기에 대한 마음가짐이 달라졌나요?
A. 카피라이터도 글을 쓰는 사람이지만 그때의 글은 제가 원하는 글과 조금 결이 달랐어요. 그러다 보니 개인 시간에 글을 쓰면서 목마름을 채웠던 것 같아요.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것은 저는 뭔가를 써야만 해결이 되는 사람이라는 거예요.
글을 쓰는 것은 여전히 엄청난 즐거움이자 괴로운 작업이에요. 해야 되는데 잘 되지 않아서기도 하지만, ‘너무 잘하고 싶은데 어떻게 더 잘 쓸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계속 있기 때문이에요. 요즘은 ‘나라는 사람의 외연을 넓혀야 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고민도 있어요. 그렇다고 무얼 당장 하는 건 아니고요. 아무래도 정체성은 에세이 작가니까 계속 여행이나 일상 이야기를 써 갈 거예요. 지금은 작년 파리에서 두 달 살기 했던 이야기를 쓰고 있어요.
Q. 작가님은 일상과 경험에 대해서 쓰고 계시는데, 주로 소재는 어떻게 발견하시나요?
A. 글 쓰는 사람들은 비슷할 것 같아요. 관심 촉이 그쪽으로 발달되어 있다 보니 남들은 그냥 스쳐 지나가는 것을 포착하는 경우가 많아요. 훈련이 된 거죠. 저는 그렇게 발견된 것을 기록해 둬요. 그러다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이 들면, 그 리스트를 훑어보면서 발전시켜 나가요. 여행을 하더라도 여행지에서의 경험과 느낀점을 세세하게 기록해요. 기록하고 정리하는 시간이 있어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거든요.
Q. 작년 8월부터 파리 여행기를 쓰고 계신다고 하셨죠. 보통 한 권의 책을 쓰는 데는 얼마나 걸리시나요?
A. 책마다 달라요. 저는 책에 적합한 ‘글 근육’을 찾는 작업이 오래 걸려요. 처음에 한 두 꼭지를 완성하는 데 시간을 많이 쓰고 그 후에는 속도가 빨라지는 편이에요. <내일로 건너가는 법>은 몇 년에 걸쳐서 쓴 책이에요. 제가 한 회사를 20년을 다녔으니 어떤 사건이나 사람을 이야기하면 특정되기가 너무 쉽잖아요. 이런 부분을 조심하려고 하다 보면 또 생생한 분위기가 사라지는 것 같아요. 그 수위를 지키면서 글을 쓰다보니 꽤 오래 걸리더라고요.
Q. 혹시 김민철 작가의 책이라고 할 때 떠올려 주길 바라는 이미지가 있으신가요?
A. 저는 유난히 솔직한 편이에요. 모든 책을 관통해서 내내 솔직했어요. 스스로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해서인지 후회하고 실패했던 일도 가볍게 털어놓을 수 있었고요. 이런 면 때문인지 독자들이 저를 친근하게 생각해 주더라고요. 자신의 이야기와 비슷하다고 공감도 많이 하고요. 제 책의 특징을 한마디로 꼽을 순 없지만, 공감할 수 있는 솔직함 아닐까 싶어요.

내 일을 통해 나를 찾아가는 길
Q. 많은 직장인이 정해진 일을 하면서도 내게 잘 맞는 영역을 찾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이 활동을 잘하기 위한 방법이 있을까요.
A. 우리의 일은 1차원적으로 진행되지 않아요. 예를 들어 카피라이터는 아이디어를 내고, 카피를 쓰는 일이 주 업무지만 그건 전체 업무의 30~40%에 불과해요. 나머지는 프로젝트를 핸들링하고, 아이디어를 정리하고,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고, 상대를 설득하는 일이 차지하죠. 수많은 사람과 함께 일하기 때문에 적당한 시기에 업무를 토스하는 것도 중요하고요.
저는 카피를 잘 쓰고 아이디어가 좋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지만 사실 그건 거의 울면서 한 일이에요. 잘하지 않으면 안 되니까 끙끙대면서 노력한 일에 가깝죠. 반면 노력하지 않아도 잘하는 일들이 있었어요. 예로 회의록을 쓰거나 흩어져 있는 아이디어를 정리하고 팀 매니징하는 일을 잘했어요. 카피라이터로 일하면서도 어떤 업무가 더 잘 맞는지 파악해 나갔어요. 매니징은 매니징할 사람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에요. 여러 아이디어를 정리하는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그 아이디어를 낼 사람이 있어야 하고요. 따라서 제가 찾은 답은 ‘조직 안에서 더 올라가 보자’였어요. 밖으로 나갔다가는 나의 가장 큰 능력이 발휘되지 않을 것을 알아차렸죠.
일을 하다 보면 유독 재밌거나 잘 되는 일이 있을 거예요. 일의 범위를 넓히거나 이직할 때 내가 잘하는 부분을 일치시키는 연습을 계속 해야 해요. 일에 매몰되어서 하는 게 아니라 여기서 무얼 잘하는 사람이고 잘 하는 것을 더욱 발전시켜 봐야겠다는 자각을 하고 있어야 해요. 업무에 대한 일기를 쓰는 것도 좋은 자극이 될 거예요. 스스로를 회고하다 보면 나에 대한 데이터를 쌓을 수 있으니까요.
Q. 회사 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회사가 곧 나라고 착각을 하기도 해요. 대표님은 좋아할 수도 있겠지만(웃음) 그러다 보면 공허해지는 순간이 찾아오더라고요.
A. 일은 결코 나의 전부가 아니라 그저 나의 일부라는 것을 명심해야 해요. 나와 동등한 관계가 아니라 내게 소속된 것뿐이죠. 이를 위해 내가 제대로 중심을 잡고 있어야 해요. 일에 주도권을 주고 허덕이는 것이 아니라, 원칙을 정하고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일할 때는 하고, 쉴 때는 쉬는 것만 지켜도 중심을 잡을 수 있을 거예요. 내 생활을 지키지 않으면 내 일도 위태롭다는 것을 기억해야 해요. 저는 사원일 때부터 일이 나의 훌륭한 수단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어요. 인생의 목적이 아니라 내가 잘 살아가기 위한 수단.
Q. 직장인들은 나의 종착역에 대한 생각도 많이 해요. 언제까지 일해야 하지라는 고민, 동시에 오래 일하고 싶은데 그럴 수 있을까라는 걱정도 하고요.
A. 무엇보다 방향을 정하는 것이 중요해요. 저 멀리에 등대를 세워놓는 것처럼요. 저는 서른 살 때부터 등대를 세우고 있었어요. 지금 인터뷰하고 있는 이 테이블에서 글쓰는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동안은 밖에 나가고 일해야 하는 시간이 많았어요. 이제야 조금 등대와 가까워진 것 같고요. 하지만 정말 여기가 끝인가 생각하면 ‘여기보다 더 가고 싶은 데가 있을 텐데’ 싶어요. 물리적인 장소가 아니라, 내가 하는 어떤 결과물을 통해 더 멀리 가고 싶은 상태 말이죠. 지금은 그게 뭔지 몰라서 찾아가고 있고요.
종착역을 본인이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행운일 거예요. 많은 사람이 타의에 의해 결정되기도 하니까요. 그런데 그 행운은 내가 만들 수 있어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잘 파악하고, 준비하고, 용기를 내는 것이죠. 자기 일에 대한 답은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을 거예요.
Q. 마지막으로, 작가님에게 일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A. 회사 안에 있을 때는 함께 만든다는 것에서 오는 기쁨이 컸어요. 나 하나로는 절대 불가능했던 것을 팀원들과 그리고 많은 전문가와 함께 만들었으니까요. 지금도 일의 본질적 측면에서는 일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성취감이 있고, 이를 통해서만 가능한 자아 인식도 있어요. 그리고 자기 효능감도 있고요. 공부에서 이루는 성장이 있는가 하면 부딪히고 일하면서 얻을 수 있는 성장과 감정이 있어요. 저에게 일은 사회적인 자아를 키워가는 작업 같아요. 소중한 존재인 것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