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딩이란, 나다움을 만드는 과정ㅣ전우성 브랜딩 디렉터

전우성 시싸이드 시티 대표

브랜딩이란, 나다움을 만드는 과정ㅣ전우성 브랜딩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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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티클은 <&Workers : Begin again> 시리즈의 2화입니다.


우연한 계기로 브랜딩의 길을 선택한 전우성 디렉터. 그는 매번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방식의 브랜딩을 펼쳐 보인다. ‘어떻게든 다르고 싶었다’고 말하는 그에게 브랜딩은 어떤 의미일까.

우연한 계기로 시작한

마케터로서의 커리어


Q. 공대를 졸업하고 엔지니어가 아닌 마케터로 커리어를 시작하셨어요. 완전히 다른 길을 선택하신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A. 전자공학을 전공해서 삼성전자에 입사했는데, 신입사원 교육 기간 때 인사 담당자가 ‘마케팅을 해 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어요. 사실 예전부터 광고를 좋아했는데, 마케팅이면 광고 만드는 일을 하겠구나 싶어서 받아들였죠. 광고는 짧은 시간에 사람들의 기억에 무언가를 남기는 거잖아요. 그런 걸 직접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 기대가 됐습니다. 


Q.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시면서 어려움도 많으셨을 것 같아요. 마케터로 고군분투하신 우성 님의 주니어 시절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A. 많이 힘들었죠(웃음). 처음 배치받은 곳은 삼성전자 프린터 사업부의 OEM 부서였어요. 이후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팀으로 옮겨 제품 POP와 브로셔를 제작하고 국내외 전시를 기획하는 일을 담당했고요. 생각했던 것과 너무 달라 출근하기 싫을 정도로 힘들 때도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도망갈 수는 없었어요. 마케터로 일을 시작했는데, 다시 엔지니어로 돌아갈 수는 없겠더라고요. 선배들에게 많이 물어보고, 혼나기도 하면서 마케팅 일을 배워나갔죠. 어느 순간 일이 익숙해지기 시작하자 마케팅을 기본부터 탄탄히 배우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기도 했습니다. 이런 저를 보고 주변 사람들은 경력 끊기면 어떡하냐며 걱정했지만, 저는 전혀 불안하지 않았어요. 지금 마케팅을 제대로 공부해야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았거든요. 하고 싶다면 어떻게든 해내자는 마음으로 떠났어요.


Q. 마케터로 커리어를 시작하셨지만, 지금은 브랜딩 디렉터로서 여러 브랜드의 브랜딩 고민을 해결해 주시고 계시는데요. 브랜딩에 매력을 느끼게 된 이유가 궁금해집니다. 

A. 네이버에서 일하며 브랜딩에 매력을 느끼게 됐습니다 당시에도 네이버는 국내 1위 포털이었지만 경쟁사도 많았어요. 저는 사람들이 네이버를 더 좋아하게 만드는 활동을 했는데 그러면서 ‘내가 브랜딩에 더 관심이 있구나’라는 걸 깨달았어요. 그때부터 팬을 만드는 ‘브랜딩’을 깊이 파기 시작했죠. 

그땐 지금처럼 소셜 미디어가 발달하지도 않았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공유하면서 입소문 날만한 이벤트를 기획하는 데 힘을 쏟았어요. 2008년 부산국제영화제 프로모션용으로 제작한 의자 ‘Director;s Chair’와 폰트와 서식을 무료로 배포한 ‘한글한글 아름답게’ 캠페인 3회가 그 결과예요. 특히 ‘한글한글 아름답게’ 캠페인을 통해 잉크를 절약할 수 있는 나눔글꼴 에코와 다양한 한글 문서 서식도 배포했는데요. 반응이 뜨거워서 뿌듯했던 기억이 나요. 요즘도 ‘잘 사용하고 있다’는 피드백을 종종 듣고 있습니다. 


Q. 네이버 이후 브랜드 마케터로 커리어를 이어오신건,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방향이네요. 

A. 맞아요. 브랜딩을 집중적으로 시도할 수 있는 회사를 찾았고, 취향 셀렉트숍 ‘29CM’에 입사했어요. 29CM에서는 브랜드 아이덴티티 정립부터 앱 푸시 메시지를 재해석한 ‘루시(Lucy)’까지. 브랜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프로젝트라면 거의 다 참여하며 브랜딩을 이끌어 왔어요. 이직한 아이웨어 브랜드 ‘라운즈(ROUNZ)’에서도 브랜딩 캠페인을 진행했고요. 지금은 ‘시싸이드 시티’라는 브랜딩 전략 및 컨설팅 그룹의 대표이자 브랜딩 디렉터로 일하고 있네요. 


브랜딩을 하려면
‘ㅂ’부터 쓰세요


Q. 저서 <마음을 움직이는 일>에서 현실을 중시하는 ‘직장인’과 나의 성장에 주목하는 ‘직업인’의 차이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직장인에서 직업인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A. 처음에는 저 역시 회사 네임밸류나 연봉이 중요한 직장인이었어요.(웃음) 브랜딩을 하기 시작하면서 이 일이 너무 좋고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죠. 그때부터 어떻게 해야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지 고민하는 시간이 늘었고, 브랜딩할 수 있는 다양한 기회를 찾아 다녔어요. ‘내가 이 일을 좋아하는구나’를 발견하는 순간들이 쌓이면서 직업인이 됐다고 생각해요. 지금도 어디에서 일하든, 유의미한 결과를 내고 싶은 욕심이 큽니다. 


Q. 브랜딩은 시간이 걸리는 일이에요. 그래서 데이터 위주인 퍼포먼스 마케팅이 중요하게 다뤄지기도 하죠. 브랜딩 디렉터로서 아쉬운 부분도 있을 것 같아요. 

A. 최근엔 ‘퍼포먼스 마케팅이 다가 아니다’라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어요. 퍼포먼스 마케팅은 끊임없이 돈을 써서 매체별 소재를 만들고, 더 적합한 소재로 계속 바꿔가면서 운영해야 해요. 그런데 경쟁도 치열해지고, 타깃팅도 어려워지니까 효율은 계속 낮아지죠. 게다가 고객들은 전보다 브랜드의 제품과 서비스, 핵심 가치 등도 꼼꼼하게 따져요. 가격 할인이나 타깃팅만으로는 구매를 일으키기 어려워졌어요. 브랜딩은 앞으로 더 중요해질 거라고 봐요. 꾸준하게 브랜딩을 할수록 더 많은 팬이 모일 수 있어요. 그러면 우리 브랜드를 더 자주 찾고, 재구매할 고객도 늘어나니까 마케팅 효율도 좋아질 수 있고요. 저는 가끔 29CM 앱에 들어갈 때면, ‘프라이탁(FREITAG)’ 가방을 구경해요. 리워드가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수많은 가방 브랜드 중에 프라이탁을 떠올리게 만드는 것이 브랜딩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Q. 결국 브랜딩은 미래 성장을 위한 장기 투자네요. 하지만 퍼포먼스 마케팅도 여전히 필요할 텐데, 어떻게 해야 균형을 잡을 수 있을까요?

A. 대내외 상황과 비즈니스 목표 등을 생각해서 비중을 조정해야죠. 퍼포먼스 마케팅은 빠르게 매출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중요해요. 반대로 브랜딩은 즉각적이지는 않지만, 장기적으로 나를 기억해 줄 사람들을 모을 수 있고요. 이렇게 만들어진 팬층은 기업의 성장 전반에 큰 도움이 돼요. 그들은 재방문과 재구매로 브랜드를 응원하고, 자발적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브랜드를 홍보해주죠. 온오프라인에서 꾸준히 브랜드를 언급하며 새로운 고객을 끌어들이기도 합니다. 이런 과정이 개성 있는 스토리가 돼서 브랜드의 정체성을 만들어 주고, 다양한 기업과 협업할 기회로도 이어지고요. 그렇기에, 어느 정도 브랜딩이 진행된 다음에 퍼포먼스 마케팅을 진행하면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브랜딩은 기업 내실을 다지는 데도 큰 힘이 됩니다. 일하고 소통하는 체계, 업무 맥락을 공유하는 제도 등 구성원들이 주도적으로 일할 기반을 갖추면 그게 브랜드의 문화가 돼요. 그런 분위기라면 능력 있는 인재들도 더 많이 지원하겠죠. 브랜딩은 당장의 가시적인 성과를 만들기는 어려워요. 하지만 꾸준히 사랑받고, 유행에 흔들리지 않도록 중심을 잡아줄 수는 있죠. 그렇기 때문에 소비재가 아닌 분야에서도 브랜딩은 고려해야 합니다.


Q. ‘브랜딩’이라고 하면 큰 계획을 세워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작은 브랜드라면 어떻게 브랜딩을 시작할 수 있을까요?

A. ‘1천 마일의 여정도 한 걸음에서 시작한다(A journey of a thousand miles begins with a single step)’라는 말이 있어요. 브랜딩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일단 발을 내딛는 게 중요하죠. 정체성과 목적 등 핵심 경험을 정한 후엔, 뭐든 작게 시작하면 돼요. ‘이런 서비스를 시작했다’는 글을 쓰는 식으로요. 그러면 어떻게든 사람들이 반응해요. 그게 보이면 자신감을 얻고, 규모도 키울 수 있죠. ‘우리 것이 쌓여서 사람들이 주목한다’는 걸 직접 느껴야 돼요. 

29CM에서 ‘29애니멀스’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어요. 5월 22일이 생물종 다양성 보존의 날이어서, 멸종위기 동물을 기억하자는 메시지를 전하려 했죠. 그런데 예산도 100만 원 정도였고, 시간도 별로 없어서 급하게 동물별로 어울리는 직원들을 찾으며 촬영한 후에 동물 머리를 합성했어요. 그렇게 만든 화보집을 공개했는데 반응이 좋더라고요. 블로그에도 다수 공유됐고, 유명 미디어 인터뷰 요청도 받았어요. ‘이런 게 브랜딩이구나’ ‘우리도 하니까 되는구나’를 느껴서 다들 엄청 신났어요. 이때를 계기로 더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게 됐어요.


Q. 우성 님은 29CM 루시, 라운즈 브랜드 애니메이션 등 남다른 기획력을 보여주셨는데요. 독창적인 관점을 유지하시는 방법이 있을까요?

A. 경쟁사 레퍼런스를 절대 안 봐요. 최신 트렌드는 찾아보긴 하지만, 무작정 따라가려 하진 않죠. 이렇게 답하면 놀라는 사람이 있는데요. 다른 회사를 신경쓰면 ‘우리도 저렇게 해야 하지 않나?’와 같은 생각을 하기 쉬워요. 트렌드는 끊임없이 변화하니까 한 번 따라가면 계속 끌려다닐 수밖에 없고요. 그러다 보면 우리만의 무언가를 만들 수 없어요. 차별화가 안 되는 거죠. 오히려 완전히 다른 업계 사례나 해외 케이스를 찾아보는 게 도움이 돼요. 우리 브랜드를 남다르게 보여줄 단서를 찾기 더 쉽거든요. 또 다른 원칙은 ‘좋은 기획은 사무실 밖에서 나온다’예요. 팝업 스토어, 핫플레이스, 영화관, 요즘 유행하는 전시. 뭐든 상관없어요. 어떤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지만 잊지 않으면, 그런 경험들은 반드시 도움이 돼요. 그 과정에서 느낀 것들을 기록하고, 우리 브랜드에 맞게 기획해 보는 습관이 브랜딩으로 이어질 거예요. 


시간으로 숙성된
나다움은 흔들리지 않는다


Q. 브랜딩은 ‘나다움’을 만드는 과정이라고 하죠. 우성 님의 나다움은 무엇이고, 어떻게 지켜가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A. 코코 샤넬의 명언 중에 ‘무엇과도 대체할 수 없는 존재가 되려면, 늘 달라야 한다’는 말이 있어요. 저에겐 그 문장이 핵심 가치예요. 공대를 졸업했는데 마케터가 된 것, 굳이 레퍼런스를 보지 않는 것. 전부 ‘남들과 달라지고 싶다’는 고집에서 시작했죠. 제가 참여한 프로젝트들도 마찬가지였어요. 네이버, 29CM, 스타일쉐어, 라운즈에서 한 프로젝트 모두 ‘이전과 다르게 하고 싶다’는 고집이 담겨 있어요. 그런 집념을 가진 덕분에 지금까지 브랜딩을 해올 수 있었어요. 


Q. 브랜딩은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라서 빠르게 인정받고 싶은 주니어에겐 조급함을 느끼게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우성 님은 이런 주니어를 만난다면, 어떤 조언을 해주실 건가요?

A. <마음을 움직이는 일>을 보면 ‘배와 물’이라는 챕터가 있어요. 아무리 좋은 배여도 물이 없거나 얕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는 내용이 담겨있어요. 배가 회사라면, 브랜딩은 ‘물을 채워 깊이를 만드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물을 몇 번 붓는다고 해서 당장 배가 움직이진 않잖아요. 그런데 배가 움직이지 않는다고 포기하는 회사가 너무 많아요. 매출을 내는 데만 집착하다 보면 브랜드의 고유함을 잃게 되거든요. 작더라도 뭐든 계속 해봐야 우리만의 무언가가 채워져요. 그런 과정을 반복하고, 사람들과 공유해야 브랜딩이 되는 거고요.


Q. 말씀 주신 내용이 지금 주목받는 퍼스널 브랜딩과도 연결되는 것 같아요. 한 사람이 온전한 브랜드가 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A. 기업이 브랜딩하는 것과 똑같아요. 꾸준히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기록하고, 축적하고, 공유해야죠. 그래야 조금씩 자기 색깔이 만들어져요. 브랜딩 직무에서 필요한 하드 스킬은 고민의 깊이, 소프트 스킬은 다양한 관심이라고 생각해요. 같은 경험을 해도 어떤 점이 왜 좋았는지, 나였다면 어떻게 했을지 고민하는 과정을 공유하면 자연스럽게 갖춰질 거라고 봅니다.


Q. 마지막 질문입니다. AI가 브랜딩의 영역에도 진출하고 있는데요. 주니어는 어떻게 AI를 대해야 할까요?

A. AI가 효율을 높여주는 도구는 돼도, 브랜딩까지 대체하는 건 어렵다고 생각해요. AI의 산출물은 결국 수많은 데이터의 평균값인데, 더 좋은 데이터로 퀄리티를 높일 수는 있겠지만 차별화는 어려우니까요. 인공지능 도구가 워드나 엑셀처럼 흔해지면, 지금 신선해 보이는 것들도 그만큼 만들기 쉬워질 거예요. 결국 브랜드만의 정체성과 핵심 경험을 만드는 건, 구성원들의 몫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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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서민웅 전) 원티드 그로스부문장
글 최진수 객원에디터
사진 박종현, 강조은 원티드 영상 제작 PD


발행일 2024.0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