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자의 길은 단기 부트 캠프가 아니다ㅣ류석문 현대오토에버 상무

류석문 현대오토에버 상무

개발자의 길은 단기 부트 캠프가 아니다ㅣ류석문 현대오토에버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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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티클은 <&Workers : Begin again> 시리즈의 6화입니다.


2000년에 입사한 LG전자에서 지금의 현대오토에버에 오기까지, 류석문 상무는 어떻게 ‘성장을 만드는 개발자’로 일해왔을까. 24년이란 경력의 뿌리에는 끝없이 자신을 이해하고, 조급함을 내려놓으려는 노력이 있었다.

20년 경력의 나침반은, 

처음부터 나에게 있었다


Q. 20년 넘게 개발자로 일하고 계세요. 다른 분야를 전공했다가 개발자가 되신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A. 초등학생 때 오락실 게임을 좋아했는데, 문득 ‘이런 건 누가 만들까?’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부터 막연하게 개발자로 일하고 싶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물리학을 전공하면서도 프로그래밍도 취미 삼아 했어요. 이후 공학 석사 학위도 땄는데 전공을 살려 취업하기가 정말 어렵더라고요. 오래 고민한 끝에, 틈틈이 연습한 프로그래밍으로 일거리를 찾아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Q. LG전자부터 NHN, 라이엇 게임즈와 쏘카까지. 다양하게 일해 오신 지금까지의 여정이 궁금해요. 

A.  첫 직장에서는 주어진 일을 잘하는 것에 집중했어요. 1년 조금 지났을 때, 돈을 많이 벌 수 있을 것 같은 벤처기업으로 이직했는데, 체계가 없는 곳이라 어떤 전문가가 되어야 할지 고민이 많았죠. 마침 클라이언트-서버 소프트웨어 기술이 주목받는 걸 보고, 처음으로 ‘유망한 분야에서 일하자’라는 목표를 세워서 직장을 옮겼어요. 세 번째 직장은 고객 요구에 맞춰 제품을 만들고, 테스트하면서 업무 시간을 아껴주는 자동화에 관심을 갖게 해줬어요. 그러다 NHN에서 자동화 전문가를 구한다는 소식을 듣고 이직했죠. NHN에서는 자동화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 제작 프로세스를 알아야 더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다는 걸 배웠고,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곳에서 개발자 채용과 조직 성장까지 담당하며 일의 범위를 넓혀왔습니다. 


Q. 끊임없이 ‘나에게 맞는 길’을 찾으려고 노력하신 것 같아요. 지치지 않고 도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나요? 

A. 처음부터 명확한 커리어 방향성을 그린 건 아니에요. 다만, 현재에 최선을 다하며 스스로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려고 노력했어요. 일하다 기분이 좋아지면 ‘어디서 뿌듯함을 느꼈는지’ 생각해 보고, 일을 더 잘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죠. 스스로를 이해하기 위한 끝없는 질문 덕분에 제게 맞는 방향을 선택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됐어요.

커리어는 단판 승부가 아니에요. 1~2년 몰입해서 일한다고 급성장하는 건 아니더라고요. 내 길에 맞는 경험과 역량을 쌓아 올려야 커리어가 되는 거예요. 이걸 깨닫지 못하면 뒤처진다는 생각에 무리하기 쉬워요. 그러니 커리어 이전에 나에 대한 이해도부터 높여 보세요. 그래야 뭘 하고 싶은지, 어떻게 잘할 수 있을지 찾아가면서 꾸준히, 오래 일할 수 있어요. 


Q. 그럼 주니어는 어떻게 해야 꾸준히 성장할 수 있을까요?

A. 작더라도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시도를 꾸준히 해봤으면 좋겠어요. 개인 프로젝트를 피드백을 받아 발전시키거나 담당 서비스가 성장할 수 있도록 제안해 볼 수도 있겠고요. 여러 방향으로 탐색하다 보면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 보여요. 거기에 단서가 있습니다.


스스로를 회고해야 한다, 

코드처럼


Q. 주니어 때는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와 같은 불안함 때문에 무리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아요. 석문 님도 그런 벽에 부딪힌 적이 있으신가요? 그럴 때 어떻게 극복하셨는지도 궁금해요.

A. 저도 주니어 때는 칭찬을 들으면 기분이 좋았고, 그렇지 않으면 속상했어요.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을 만족시키기 위해 일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나만의 만족감을 찾는 게 중요했어요. 저는 제가 만든 코드를 동료가 읽기 편하다고 말하거나, 코드 가독성 검사 점수가 올라갈 때 즐거움을 느끼더라고요. 일의 가치를 남이 아니라, 나에게서 찾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Q. 무언가를 지속하려면 휴식도 중요할 것 같아요. 무리하지 않으면서 일할 수 있는 석문 님만의 비결이 있을까요?

A. ‘나를 위한 시간’을 꼭 갖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주말에 일하거나, 밤을 새울 때도 많았는데요. 그러면 저도 지치지만, 주변 동료들이 부담감을 크게 느끼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은 6~8시간은 꼭 잠을 자고, 개발이 아닌 분야도 둘러보는 시간을 가져요. 충분한 휴식이 있어야 일도 잘할 수 있으니까요. 


Q. 커뮤니케이션이나 협업과 같은 ‘소프트 스킬’이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단기간에 쌓기는 쉽지 않은데요. 석문 님은 어떤 방식으로 소프트 스킬을 터득하셨는지 궁금합니다. 

A. 주니어 때는 제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화를 낸 적도 있고, 설득을 못 해서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기도 했어요.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처세술 관련 책과 심리학 책을 여러 권 읽으며 직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지 공부했죠. 덕분에 내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해도 스트레스 받지 않고, 차분하게 의견을 조율할 수 있게 됐어요. 

저는 소프트 스킬이 기술 역량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소프트 스킬이라고 하면 주로 내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는 것, 감정에 흔들리지 않고 협상하는 것 등을 떠올릴 텐데요. 사실 이런 역량은 나답게 살아가기 위한 기술이기도 해요. 직장생활뿐만 아니라, 나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도 소프트 스킬은 필요한 거죠. 


Q. 석문 님은 이전의 실수도 성장의 기회로 보시는 것 같아요. 처음부터 그런 태도를 갖추기는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A. 많이 어려웠죠(웃음). 이런 태도를 가지는 데 10년이 걸렸어요. 주니어 때는 실수나 약점을 드러내면 무능력하게 보일 거라고 생각했는데요. 잘못한 건 빨리 인정하고, 도움을 구하는 게 정답이란 걸 배웠어요. 개발 프로젝트를 마치면 잘한 점과 보완할 점을 되돌아 보는 회고라는 걸 하듯, 커리어도 주기적으로 회고해야 해요. 그래야 내 장점을 발견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어요. 특히 자기 실수를 명확히 마주하는 건 경력이 쌓일수록 중요해지는 부분입니다. 리더가 되면 팀의 성장까지 책임져야 하니까요. 저는 지금도 주기적으로 제 장점과 단점은 무엇인지,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요. 


성장의 모습은 

계단이 아닌 일차함수


Q. 석문 님이 주니어였던 시절과, 현재를 비교했을 때 주니어 개발자의 환경은 어떻게 달라졌다고 보시나요? 이전보다 특히 중요해진 역량은 무엇인지도 궁금해요.

A. 시장과 제품이 복잡해진 게 가장 큰 변화인 것 같아요. 예전엔 소수의 특정 고객만을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었다면, 지금은 대중적인 서비스를 다수 개발하기 때문에 다양한 직무의 사람들과 같이 일하죠. 그래서 동료의 입장을 이해하고, 협업 과정에서 의사결정을 잘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소프트 스킬이 무척 중요해졌어요. 개발만 잘 해서 되는 시대가 아닌 거죠.

때론 이런 질문을 받아요. 개발 실력은 좋은데 협업을 잘 못하는 사람과 소프트웨어 역량은 좀 떨어지지만 같이 일하기 좋은 사람 중 누굴 채용하겠느냐고요. 예전엔 고민했겠지만, 지금은 둘 다 잘해야 한다고 답해요. 어느 하나 특출나게 잘 해도 부족한 점이 채워지진 않더라고요. 쉽지 않겠지만, 개발 실력과 사람에 대한 이해 두 가지를 같이 발전시켜야 해요.


Q. 개발 실력은 물론, 커리어의 방향을 책임질 능력도 갖춰야 하는 시대네요. 어떻게 하면 그런 역량을 발전시킬 수 있을까요?

A. 일단 시작이 반이에요. 특히 코딩은 할수록 실력이 좋아져요. 좋은 코드를 분석해서 내 방식으로 다시 만들어 보거나, 버그가 발생했을 때 끝까지 원인을 찾아 수정해 보세요. 경험이 쌓여야 코드 완결성도 높아져요. 물론, 회사 업무로는 이런 연습을 하기에 충분하지 않을 수 있어요. 그럴 때는 자포자기하지 않고, 개인 프로젝트의 기회를 스스로 찾아야 해요. 회사나 조직이 개인의 성장을 책임져주는 경우는 많지 않으니까요. 

커리어 탐색도 마찬가지예요. 저도 2~3년 차 때 어떻게 성장해야 할지 막막해서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주기적으로 열던 무료 강연을 들으러 간 적 있어요. 제품 홍보 위주였지만, 이런 자리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죠. 나중에는 국내외 콘퍼런스에 참여해 인공지능, 최신 개발 이론, 협업 방법론 등의 정보를 접하며 제가 좋아하는 것을 발견했고, 그 전문성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도 알게 됐어요. 이제는 여러 강연에서 배운 걸 공유하는 모임도 시작했고, 세미나도 하고 있습니다. 결국 변화를 만드는 건 여러분의 행동이에요. 


Q. AI 뉴스를 보면서 개발 환경도 크게 바뀔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주니어 개발자는 어떻게 AI를 대해야 할까요?

A. AI는 생산성 향상에는 도움이 돼요. 전 직장에서도 개발팀 차원에서 코파일럿(Copilot)을 도입했는데, 필요한 정보를 더 빨리 확인할 수 있었거든요. 주니어에게도 마찬가지겠죠. 하지만 AI의 코드를 단순히 복사해서 붙여넣기만 하면, 절대 성장할 수 없어요. AI가 내놓는 게 항상 정답은 아니기 때문에 왜 이런 값이 나왔는지, 내 업무에 이 값이 적합한지를 판단할 수 있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하기 힘들어요. 더 나은 코드를 고민할 기회도 없어지고요. AI를 활용해야지, 의존하면 안 돼요.

Q. 마지막 질문인데요. 주니어 개발자가 꼭 했으면 하는 것, 이것만은 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A. 다른 사람의 코드를 많이 읽어 보세요. 작가가 되려면 일단 많이 읽고 써 봐야 하잖아요. 개발도 똑같아요. 꾸준하게 코드를 봐야 좋은지 나쁜지 구분하는 눈이 생기거든요. 그러니 입사하면 기존 코드들을 살펴보며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을까’ ‘왜 이런 형태로 코드를 작성했을까’ 고민해 보세요. 이런 고민이 쌓이면서 코딩의 기본기가 만들어져요.

그렇다고 정보를 ‘습득하기만’ 하면 위험해요. 특히 커뮤니티 활동은 신중하게 참여하는 게 좋습니다. 단순히 사람을 만나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것 자체가 가치 있다고 오해하기 쉬운데요. 무엇을 배웠는지, 실무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를 기록하고 실천까지 해야 진짜 내 역량이 돼요. 인맥이 실력을 만들어 주는 게 아니에요. 나만의 깊이를 만드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꼭 알았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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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수 객원에디터
사진 최호근 포토그래퍼


발행일 2024.06.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