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UX 연구원이 고객을 이해하는 방식 | 프레임워크, JTBD

김예림 마이크로소프트 UX 연구원

글로벌 UX 연구원이 고객을 이해하는 방식 | 프레임워크, JTB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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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티클은 <내가 찾던 커리어 선배> 시리즈의 10화입니다.


사용자가 원하는 것을 분명히 알고, 그 목소리가 비즈니스의 전과정에 적절하게 자리하도록 돕는 사람, 바로 UX 연구원이다. 개발자에서 UX 연구원으로 넘어와 현재는 빅테크에서 여러 비즈니스 결정을 돕는 그의 작은 일상 업무부터 커리어 트랙까지 짚어본다. 그 안에서 사용자를 이해하는 방식과 이를 나만의 방식으로 비즈니스에 기여할 수 있는 첫 청사진을 그리는 데 밑그림이 되길 바란다.

1/4인치 드릴이 아닌,

1/4인치 구멍을 내주는 사람


Q. 지난 3월, 예림 님께서 공동 저자로 참여하신 도서 <글로벌 UX 연구원은 이렇게 일합니다>가 출판되었다고요. 늦었지만 축하드려요! 도서 제목만으로 한 시간 인터뷰를 꽉 채울 수 있을 것 같은데요. UX 연구원은 아직 국내에서는 익숙치 않은 포지션이에요. UX 연구원은 어떤 역할을 하나요?

A. 사용자 데이터를 이용해 비즈니스 결정을 돕는 역할을 해요. 아무리 획기적인 아이디어도 사용자들에게 필요하지 않으면 뛰어난 기술력이 뒷받침되어도 성공하기 어렵잖아요. 제품 혹은 서비스에 관한 결정이 실패하지 않도록 돕는 일을 합니다.


Q. 글로벌 UX 연구원이 ‘이렇게 일하는’ 모습을 구체적인 사례와 함께 들어보고 싶어요. 일과를 소개해 주셔도 좋고, 대표적인 프로젝트를 예시로 들어 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A. 대부분의 프로젝트 과정에 참여해 UX 연구를 해요. 아이디어 시작 단계부터 UX 연구원이 합류하는 거죠. 예를 들어, 아이디어가 구체화되기 전 PM과 디자이너, 개발자를 초청해 디자인 워크숍을 열어요. 워크숍에서 유저를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브레인스토밍(brainstorming)과 프레임워크(framework : 복잡하게 얽혀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구조) 작업을 진행해요. 프레임워크 작업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가 JTBD(Jobs To Be Done)이에요. JTBD는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 초점을 맞추는 방식이에요. 이 개념을 처음 만든 크리스텐슨(Christensen) 하버드 교수가 말하기를 사람들은 1/4인치 드릴을 사고 싶은 것이 아닌, 1/4인치 구멍을 원한다고 해요. 제품 그자체가 드릴이든 무엇이든 상관없다는 거예요. 결국 고객이 원하는 바를 이뤄줄 제품(서비스)에 포커스를 맞춰야 하는 거죠.


Q. 생소한 개념인데 정말 흥미롭네요. 하고 계신 일을 좀 더 이야기해 주세요.

A. 회사에서 무엇을 먼저 해결해야 하는지 우선순위를 정하고 아이디어 콘셉트를 검증하는 일에 도움을 줘요. 그리고 제품(서비스) 피드백을 점진적으로 받는 과정에서 관련 데이터를 구축하고 트레킹하며 출시까지 팔로업해요. 출시 이후에도 고객이 우리 제품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연구하고요. 


Q. 저는 직장인으로서 IT 산업에 입문하고 나서야 ‘프로덕트 디자이너’ ‘PO/PM’ 직무를 알게 되었어요. 앞선 직무들은 이제 국내에서도 권한과 책임의 경계가 명확해지고 있는듯한데요. UX 연구원은 어떤가요? 생각해 보면 콘텐츠 마케터와 에디터의 역할 분리가 모호하듯 대부분의 직무에서 일어나는 현상인듯해요.

A. 대기업은 사용하는 제품이 많기 때문에 장점도 있지만, 고객과의 거리가 멀어지는 등 단점도 존재해요. 그런 단점을 보완하고자 각 분야의 전문가들로 팀을 구성해 하나의 프로젝트를 다함께 끌고가는 형식의 ‘팟 모델’ 협업 방식을 채택하고요. 각자 맡은 분야의 전문가로서 주도적으로 업무해야 하는 환경에 있다 보니 직무 간 경계가 흐릿해지기도 해요. 말씀하신 것처럼 비단 UX 연구원 문제만은 아니죠. 그중 UX 연구원은 일정 기간의 연구 시간이 필요하고, 연구원 수가 많지 않은 직무이기 때문에 UX 연구 민주화(낮은 레벨의 연구는 PM, 디자이너 등이 스스로 연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를 진행하는데요. 이 UX 연구 민주화가 UX 연구원의 역할 범위에 영향을 주기도 하죠.


Q. 그렇다면 이에 예림 님은 어떻게 대처하고 있나요?

A. UX 연구원은 고객 목소리를 대변하는 사람이므로 그 목소리를 명확하게 검증하려고 해요. 예를 들어 사용자 경험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과 사용자 의견을 무조건 수용하는 것은 완전히 달라요. 그런데 때론 이 두 가지 사이에서 혼란을 겪거나 잘못된 선택을 하기도 해요. 반대로 조직에서 원하는 방향으로 사용자를 유도하는 질문을 하기도 하고요. 이런 환경은 사용자 경험을 이해하지 못하게 방해해요. UX 연구원은 이를 방지하고자 실무자들이 디자인 연구를 진행하기 전에 작성한 스크립트를 검증해요. 나아가 사용자 데이터를 수집해 제품 우선순위를 정하거나 사용자 관점에서 적합한 퍼블리싱 일정을 제시하죠. 기업의 새로운 기회가 사용자에게서 나오는 만큼, 그 기회를 창출하는 연구를 하는 UX 연구원은 대체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해요. 


개발자에서 UX 연구원으로,

가는 길은 달라도 목표는 하나


Q. UX 연구원으로 (혹은 리서치 조직에서) 커리어 확장(전환)은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커리어 설계가 막막하신 분이 많을 텐데요.

A. 저는 UX 연구원으로 일하기 전 개발자로 먼저 일했어요. 개발자는 제품 끝단에 위치해 있어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적다고 느꼈어요. 프로젝트 초기 단계부터 합류해 제품에 영향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연구 석사 과정을 밟았어요. 분야를 깊게 연구하고 콘퍼런스에 논문을 제출하며 취업 인터뷰를 앞두고 있었는데 코로나19가 발생해 전 세계로 확산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예정이었던 인터뷰들이 무산되었죠. 결국 계획을 바꿔 오픈 소스 웹 브라우저 ‘파이어폭스(Firefox)’의 스타트업 인큐베이션 프로젝트에 참여해 경험을 쌓고 게임 회사 ‘유비소프트(Ubisoft)’에 입사해 경력을 다진 후 현재의 마이크로소프트로 이직했어요. 빅테크에 오기까지 제 경험만을 토대로 말씀드리면 연구직의 경우 석사 과정을 거치지 않고 처음부터 빅테크에 진입하는 건 조금 어려워요. 대신 스타트업에서 UX 연구원(리서처) 경력을 쌓은 후 빅테크로 넘어오는 사람은 있어요. (비교적) 규모가 작은 회사에서 UX 연구원 역할을 해낸 경험이 있다면 빅테크에서도 충분히 어필이 될 수 있을 거예요.


Q. 계속 취업 이야기를 해 보자면, UX 연구원 이력서와 포트폴리오에서 무엇이 중요할까요? 

A. 첫 번째로 자신만의 뚜렷한 생각이 있어야 해요. 제가 빅테크 인터뷰에서 받았던 긍정적인 피드백이 스스로 생각하는, 자기주도성이 높은 사람이라는 점이었어요. 그런 특징이 이력서와 포트폴리오에서 보여야 해요. 예를 들어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방법이지만, 이 방법이 맞다고 판단하고 실행해 프로젝트를 성공시킨 사례를 언급하는 거죠. 두 번째로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강조해야 해요. 왜냐하면 빅테크에서, UX 연구원 업무에서 누군가를 설득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에 반대 의견을 내는 것이 일상이거든요. 그래야 제품이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으니까요. 이력서와 포트폴리오가 아닌 면접 혹은 일터에서는 인간적인 매력이 중요해요. 무엇이든 바쁘게 돌아가는 대기업에서는 수많은 사람을 전부 기억하기 어려워요.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겸해 나의 매력을 표출하는 사람이 조직에서 돋보이면서 동료들과 유대감을 잘 쌓죠.


Q. 모든 직무가 그렇지만, 특히 UX 연구원은 정말 다양한 연관 부서와 협업할 것 같아요. 어떤 방식으로 협업을 진행하시나요? 도서에서 다룬 ‘빅테크 UX 연구원의 일주일’을 보면 미팅으로 가득하더라고요.(웃음)

A. 맞아요. 업무 중 대부분이 미팅이에요.(웃음) UX 연구원은 메이커가 아니라, 사용자를 이해하고 사용자 목소리를 대변하는 사람이에요. 끊임없이 조직 안의 사람들을 설득해야 하니까 자연스레 미팅을 많이 하게 되죠. 더불어, 회사 경영진이 롱텀 비전을 계획하거나 사용자 니즈와 반대되는 선택을 할때 사용자 데이터와 올바른 인사이트를 제공해야 하기 때문에 미팅의 연속일 수밖에 없어요.


회사 영역을 벗어난

나와 내 세계를 이해하는 연습들


Q. 이제 이야기 주제를 살짝 바꿔 볼게요. 예림 님은 오랫동안 AI 관련 연구를 해왔다고 들었어요. 최근 애플(Apple)이 전기차 사업을 철회하고 본격적으로 AI에 집중한다고 밝힌 만큼 전세계가 AI에 주목하고 있어요. AI 전문 영역 밖의 직장인도 떠오르는 AI 산업에 맞춰 새로운 무언가를 준비해야 할까요? 그렇다면 무엇부터 시작(공부)해야 할까요?

A. AI가 발전하면서 기술 지식이 많지 않던 사람도 ‘코파일럿(Copilot)’을 이용해 개발하잖아요. 앞으로는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질 거예요. 그래서 기술을 ‘어떻게’ 활용할지 유스케이스(Use Case)를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아요. 또, 최근 학계와 업계에서 집중하는 연구 주제가 멀티 에이전트예요. 다양한 에이전트가 연동되는 시대에서 창출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고민해 보는 것을 추천해요. 마지막으로 AI가 발전할수록 결국 인간 관계와 인간다움 등 다시 본질적인 문제로 돌아갈 거라고 예상해요. 만약 인문학을 깊이 연구한 사람이 인문학과 기술을 효과적으로 융합하는 방법을 제안할 수 있다면 한 분야의 스페셜리스트가 될 거예요.


Q. 해외에서 일하는 삶은 어떤가요? 쉽지만은 않을 것 같으면서도 제 상상 속에서 예림 님은 빈틈 없는, 멋있는 선배의 모습이거든요. 힘든 일이 있어도 금세 훌훌 털어내고 일어나 걷는 당찬 선배처럼요.

A. 물론 힘들 때도 있죠. 그렇지만 여전히 좋은 점이 많다고 생각해요. 우선 무수한 기회가 열려 있어요. 국내에서는 비교적 이른 나이에 은퇴를 걱정해야 하지만 저희 회사는 60대 구성원이 꽤 많아요. 또 회사에서 진행하는 연구 컨퍼런스에 참여하며 논문이나 특허를 낼 수 있는데요. 이 과정에서 월급도 오르고 또 다른 커리어 성장과 기회를 경험할 수 있죠. 여러 면에서 해외에서 일하는 삶은 매력적이에요.


Q. 저는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아침 인사를 해요. “오늘 기분은 어때?” 담백하면서도 애정이 가득한 인사라고 생각합니다. 맞습니다. 예림 님께 드리는 마지막 질문은 ‘오늘 기분은 어떤가요?’입니다. 지금 행복한가요?

A. 저는 행복한지, 그렇지 않은지 크게 신경 쓰며 살지 않아요. 그 대신 제가 하고 싶은 일과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에 더욱 집중하는 편이에요. 너무 드라이한 답변인가요?(일동 웃음) 순간의 행복보다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다 문득 과거를 돌아봤을 때 “나 참 행복했구나.”라고 느낄 것 같아요. 

마이크로소프트 연례 연구 콘퍼런스에서 ⓒ김예림 

책 개요를 짤 때 썼던 포스트잇 ⓒ김예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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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이 김예림 마이크로소프트 UX 연구원
🔹 소속
- Microsoft Viva Engage Copilot 팀
- 글로벌 IT 전문가 네트워크 Wisdom-Oasis 대표 컨설턴트



박효린 원티드 콘텐츠 에디터
사진 최호근 포토그래퍼


발행일 2024.0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