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박 운영을 담당하는 해양수산본부 기획자에서 AI기술팀 기획자로. 그는 AI에 낯섦을 느낄 새도 없이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새로운 공부를 시작했다.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불편함을 해결하는 그는 수산업의 문제를 기술로 풀고 싶다고 말한다. 이제 그에게 AI는 경쟁 상대가 아닌, 일의 능률을 올려주는 하나의 무기가 됐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앞장서서 나가야 할 때
Q. 원양어업 회사에서 출발한 동원그룹은 식품, 유통, 포장, 물류, 건설 사업까지 확장하며 활동 반경을 넓히고 있어요. 최근에는 2차 전지와 스마트 항만 사업도 시작했고요. 지현 님은 이곳에서 어떤 일을 하고 계시나요?
저는 동원그룹의 사업 지주회사인 동원산업에 속해있는데요. 동원산업 DT본부는 전 계열사의 IT 서비스 운영과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을 주도하는 곳이에요. 저는 DT본부 AI혁신실의 AI기술팀에서 일하고 있고요.
AI기술팀은 크게 세 가지 목표를 갖고 있어요. 먼저, 비즈니스 과정에서 생기는 방대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해 의사결정을 돕는 ‘데이터 관리 조직’ 역할이에요. 또, AI 모델 개발이나 장비 제작을 통해 제조 공정 효율화를 돕는 ‘AI 기반 혁신 솔루션 제공’ 역할도 하죠. 마지막으로 동원GPT 같은 AI 플랫폼을 만들며 ‘사내 디지털 문화 확산’ 역할도 해요. 여기서 저는 해양 수산 분야와 관련된 AI 프로젝트를 담당하고 있어요.
Q. AI기술팀에 오시기 전에는 선박을 운영하는 해양수산본부에서 일하셨어요. 팀을 이동하게 되면서 새롭게 배워야 하는 부분이 많았을 것 같은데, 적응하기 어렵진 않으셨나요?
감사하게도 실무에 들어가기 전, 두세 달 정도 AI 공부에 집중할 수 있도록 회사에서 배려해 주셨어요. 하루 종일 회의실에 앉아 책도 여러 권 읽었고, 강의도 많이 들으며 AI가 어떤 방식으로 동작하는지 원리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죠. 그런데 공부하다 보니 AI 모델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프로그래밍 언어 공부를 해봐야겠더라고요(웃음). 오랜만에 통계 공부도 다시 시작하고, 팀원들과 파이썬을 공부하며 고군분투했던 기억이 나네요.
Q. AI기술팀이 생긴 2020년에는 AI를 향한 관심이 지금처럼 높지 않았을 시기기 때문에 AI를 활용하는 과정이 더 험난했을 것 같아요.
그땐 완전 맨땅에 헤딩하는 느낌이었어요. 벤치마킹을 위해 사례 조사를 하는데 국내 사례는 거의 없다시피 해서 해외 사례 위주로 찾아야 했거든요. 게다가 AI가 들어간 온갖 영어 키워드를 검색하며 겨우 사이트와 블로그를 찾아내도 보통은 AI 내용이 아닌 AI와 비슷하지만 별로 도움 안 되는 정보가 많았어요. 결국 벤치마킹해서 AI 시스템을 도입하기보다 현장에서 문제가 되는 부분을 찾고, 그걸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찾아보자고 결론을 내리게 됐죠. 사실 AI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많이 없어요. AI에 산업 장비나 일반 IT 시스템이 결합되면서 시너지가 나죠. 그래서 이 방식이 더 잘 맞아떨어졌던 거 같아요.
Q. 현장에서 문제를 찾은 뒤 어떤 방식으로 해결하면 좋을지 하나씩 풀어간 셈이네요. AI를 무조건 사용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다 보니 실질적으로 도움 되는 해결책이 많이 나왔을 것 같아요.
맞아요. 대신 경영진이 관심을 갖고 힘을 실어주지 않으면 완성되기 힘든 프로젝트가 많았어요. 다행히 알파고 때(2016년)부터 AI를 활용해야겠다고 생각하신 분들이라 지지해 주셨고요. 입사했을 때부터 항상 ‘일의 정의를 바꿔야 한다.’ ‘단순한 노동은 기계에 맡기고, 사람은 좀 더 크리에이티브한 일에 집중해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거든요. 실제로 동원그룹은 2019년부터 반복적인 단순 업무 처리를 위해 RPA(로보틱 처리 자동화)를 도입해서 사용하고 있는데, 로봇이 스스로 일하는 걸 처음 봤을 땐 놀라기도 했어요. 입사할 때부터 회사가 새로운 기술에 관심이 높아서 현장에 적용될 때마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던 것 같아요.

동원그룹이 AI를
도구로 활용하는 방법
Q. 얼마 전 회사 동료에게 동원산업이 AI로 참치 품질 등급을 분류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됐어요. 너무 흥미로워서 기사를 찾아보니 참치 품질 등급 분류뿐만 아니라 AI 기술을 탑재한 드론으로 참치를 찾는 등 수산 사업 전반에서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더라고요. 동원산업은 AI를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 궁금해요.
일반 장비로 해결할 수 없었던 공정 단위 문제에 AI(지능화 영역)를 결합해 성능을 높이는 공정 개선 사례가 점차 생겨나고 있어요. 또, 고객 데이터를 분석해 새로운 플랫폼을 구축하거나 수요 예측과 예상 가격을 측정하는 등 다방면으로 AI를 활용하고 있죠.
사실 AI와 전혀 관계없는 일을 할 때는 AI를 내 업무를 대체할 수도 있는 ‘경쟁 상대’로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AI를 알아갈수록 AI가 인간의 모든 일을 대체하기는 어렵겠다고 느껴져요. AI는 분명 엄청난 능력을 갖고 있지만, 나와 경쟁할 상대가 아닌 ‘도구’에 가깝다고 보거든요. 물론 현장(공장)의 반발이 아예 없을 순 없어요. 당연히 나의 전문 분야를 AI가 일부 대체한다면 불안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심리적 저항감이 들죠. 하지만 이런 변화를 조금씩 받아들이고, 결국에는 AI를 도구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봐요.
Q. 통조림에 들어갈 참치를 잡기 위해 보통 헬기를 띄워 참치 떼의 위치를 탐지한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동원산업은 AI 드론을 활용해 참치 떼를 탐지한다고요. ‘드론 참치 탐지’ 프로젝트를 기획하게 된 과정을 듣고 싶어요.
‘드론 참치 탐지’ 프로젝트는 사실 2019년부터 회사에서 준비했던 프로젝트예요. 참치 떼를 찾기 위해 헬기를 띄우려면 많은 비용이 들어요. 헬기를 조종할 기장을 고용해야 하고, 주기적인 정비도 필요하며, 연간 억 단위의 비싼 유류비도 내야 하죠. 사고의 위험도 있고요. 그런데 헬기를 AI 드론으로 대체하면 연료비를 1/100 정도로 절감할 수 있어요. 무인으로 비행하기 때문에 안전하고요. 게다가 AI 드론이 알아서 참치 떼 위치를 탐지하기 때문에 정확도도 높아지죠. 선원들 역시 계속해서 모니터링하지 않아도 되니 피로감을 줄일 수 있고요.
어떤 사람들은 남획(과도하게 물고기를 잡는 행위)을 걱정하는데요. 어업규제가 까다로워서 적정량 이상 포획할 수 있는 환경이 절대 조성되지 않아요. 그렇기에 짧은 시간 동안 (가능한 선에서) 많은 참치를 효율적으로 잡을 수 있게 AI 모델의 정확도를 높이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Q. 소수 전문가가 하던 참치 등급 감별을 AI 기술로 대체하는 ‘참치 품질 등급 분류’ 프로젝트도 궁금해요.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건가요?
횟감용 참치는 남태평양에서 주로 어획하는데요. 국내로 이송되는 과정이 짧게는 한 달, 길면 3개월 정도 걸려요. 신선도 유지가 품질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초저온(-60°C)에서 참치를 얼린 뒤 국내 냉동 창고로 들어오게 되죠. 냉동 상태에서는 참치의 품질 등급 측정이 어렵기 때문에 참치의 꼬리를 절단해 물로 해동시킨 뒤 전문가가 참치 육질의 사후 경직도와 붉은 빛깔을 눈으로 관찰하며 등급을 나눠야 해요. 오랜 경험이 필요한 전문 영역이죠. 그러나 장시간 참치 등급을 분류하는 건 상당히 고된 일이라서 전문가도 몇 명 없고, 후임 양성에 어려움도 겪고 있어요. 이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전문가가 눈으로 판별하는 과정을 AI로 대체해 보자고 상사에게 제안 드리게 된 거예요.
Q. 현장의 어려움을 기술(AI)로 편리하게 바꾸고자 노력하신 거네요. 이런 페인 포인트를 발견하고 제안하는 것도 어렵지만, 적용시키는 과정도 험난했을 것 같아요.
보통 일반 공산품은 규격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길이나 두께가 균일하잖아요. 그런데 참치는 생물이다 보니 크기가 제각각이라 절단면의 두께가 매번 달라져서 기계를 설계하는 건 물론이고, AI를 학습시키는 과정도 어려웠어요. 1년 동안 매주 공장에 찾아가 5만 마리의 참치를 테스트해야 했죠. 처음에는 새빨간 참치 단면의 모습을 보는 게 유쾌하지 않았는데, 자주 보니 어느새 하나의 디자인처럼 느껴졌어요. AI만 학습 시킨 게 아니라 저 역시 학습이 돼서 참치 등급을 예상하면 80% 이상의 적중률을 보이기도 했고요(웃음). 현재 AI 참치 등급 모델은 참치 등급을 감별하는 전문가의 시각 판단 패턴을 모방해 AI 모델로 구현한 건데요. 나중에는 육질 데이터를 생물학적 항목별로 분석할 수 있도록 더 발전시키고 싶어요.
Q. 지현 님은 어떤 방식으로 현장의 페인 포인트를 찾으시나요?
현장에서 오래 근무하신 분들과 대화를 자주 나눠요. “어떤 게 어려우세요?”라고 질문을 많이 드리죠. 가끔은 누가 물어보기 전까지 왜 불편했는지 깨닫지 못할 때가 있잖아요. 대화를 하다 보면 불편했던 이유가 자연스럽게 나오게 되면서 제가 어떻게 도움드리면 좋을지 생각해 볼 기회가 생겨요.
Q. 요즘 지현 님께서는 동원산업의 사내 GPT인 동원GPT 교육에 몰두하고 계신다고 들었어요. 업무할 때 동원GPT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요?
동원GPT를 사용하면 팀원에게 물어보듯 쉽게 답변을 얻을 수 있어서 편리해요. 또, 해외 협력사와 영문 메일을 주고받을 때 번역기를 사용할 필요 없이 동원GPT가 적용된 사내 메일함에서 초안 작성, 답장 요약, 번역 기능을 활용해 메일을 작성할 수도 있어요. 앞으로는 실시간으로 바뀌는 비즈니스 데이터를 조회하고, 가공할 수 있는 기능을 만들 계획이에요. 이처럼 동원GPT를 활용하면 구성원 모두의 업무 효율성이 높아질 거라 생각해요.
Q. 동원GPT는 편리한 툴이지만, 처음 사용하다보니 낯설게 느끼는 구성원분들도 계실 것 같아요. 지현 님께서 동원GPT 사용법을 교육하실 때 특히 신경 쓰는 부분이 있다면 어떤 걸까요?
임원 교육을 시작으로 현재는 전사 직원 교육을 진행하고 있는데요. 실습해 보면 대부분 프롬프트에 질문을 던지는 것부터 어려워하세요. 왠지 완성된 문장을 써야 할 것 같다며 부담감을 토로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우리가 AI를 쓰는 이유는 편하기 위해서잖아요. GPT는 우리 생각과 달리 문장에 오타가 있어도, 문맥이 조금 이상해도 잘 알아 들어요. 그러니 문장 완성도에 부담 갖지 말고, 정보 전달에만 충실하라고 항상 당부드립니다. 반말로 질문해도 문제없어요.

조금 더 편리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Q. 지현 님과 대화하다 보니 동원산업은 새로운 기술을 빠르게 도입하고 잘 적용하는 곳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아무래도 기술을 중요하게 여기는 기업 문화 때문 같은데요. 실제로 동원산업은 도전과 실패에 열린 곳인가요?
그럼요. 회사가 도전하는 걸 중요하게 생각해요. 정체를 두려워하고, 변화를 반기는 곳이죠. 그래서 시도하고 싶은 프로젝트가 생기면 제안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려 있습니다. 제가 속한 AI기술팀이 진행하는 프로젝트는 수산 분야에서 처음 시도하는 것들이라 항상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이 붙거든요. 모든 시도가 도전인 셈이에요. 때론 실패하면서 크고 작은 손해를 감당해야 할 수도 있겠지만, 보통 명확한 근거와 이를 뒷받침할 데이터가 타당하다면 믿고 지켜봐 주세요. 다만, 데이터로 증명해야 하는 건 어려운 일이라 시작하지 못한 프로젝트들이 100개가 넘어가네요(웃음).
Q. 산업의 선두주자로서 새로운 시도를 만들어 나간다는 건 즐겁지만 부담도 크실 것 같아요. 때론 조언이나 도움도 필요할 것 같고요.
조언을 정말 많이 구해요(웃음). 특정 분야 전문가를 소개받아 조언을 구하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은 현장에서 일하는 분들께 직접 물어보면서 인사이트를 얻어요. 최근 들어간 임원 회의에서 제안 드린 ‘참치 어장 데이터를 AI로 분석하는 프로젝트’도 현장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프로젝트였어요.
참치를 잡을 때 중요한 건 그날 항해할 목적지(바다)를 선택하는 선장의 판단력이에요. 드론이나 레이더 같은 장비를 활용해 선박 주변의 참치 떼를 감지할 수 있겠지만, 그날 선택한 목적지에 참치가 아예 없을 수도 있거든요. 그동안 저는 선장의 판단력이 오랜 시간 참치를 잡으며 생긴 동물적인 감각이라고 생각했지만, 인터뷰를 해보니 저의 착각임을 알게 됐어요. 바다에 나가기 전 책상 위에 큰 지도를 펼쳐두고 연구를 하시더라고요. ‘작년에 내가 여기서 참치를 잡았지.’ ‘그때 해수면 온도가 몇 도더라?’와 같은 데이터를 확인하면서요. 이걸 보며 저는 ‘과거 기상 정보를 수집해 참치 어장 데이터와 매칭해보면 참치 잡는 알고리즘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이 떠올랐고, 해볼 만하다는 판단이 서서 프로젝트를 제안 드리게 된 거죠. 이처럼 그룹 내 다양한 데이터의 활용 가치를 높이기 위한 분석 프로젝트들이 진행되고 있어요.
Q. 지현 님은 현장의 불편함을 기술로 편리하게 만드는 해결사 역할을 하시는 거네요. 일손은 덜면서 어획량은 늘릴 수 있으니 현장에서도 만족도가 높을 것 같아요.
과거만 해도 AI를 내 직업을 사라지게 만들 수 있는 배척할 대상으로 보는 분이 많았어요. 그런데 요즘은 내 일을 도와줄 도구로 인식하시는 것 같아요. 앞서 말씀드렸듯이 어업은 선장의 판단력이 중요해서 목적지를 잘못 선택하면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채 며칠 동안 물 위에 떠있는 경우도 많아요. 최대한 빨리 만선해 돌아오는 게 중요하죠. 그래야 기름값도 덜 나가고, 선원들도 덜 피곤할 테니까요. AI를 잘 사용한다면 물적 자원과 인적 자원 모두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 거예요.

Q. 벌써 마지막 질문이네요. 지현 님이 동원산업에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어떤 걸까요?
AI기술팀 소속으로서 동원그룹에 AI 디지털 문화를 제대로 정착시키고 싶다는 목표가 있어요. 우선은 지금 하고 있는 동원GPT 교육을 잘 마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반기에는 대규모 상금을 건 동원GPT 경진대회도 준비하고 있고요. 앞으로도 구성원분들이 새로운 기술을 통해 업무 부담을 덜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