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도 ‘내 일 잘 하는’ 사람은 대신할 수 없어요ㅣ오순영 전) KB 금융AI센터장

오순영 전) KB 금융AI센터장

AI도 ‘내 일 잘 하는’ 사람은 대신할 수 없어요ㅣ오순영 전) KB 금융AI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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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티클은 <AI 시대, 인재로 거듭나기> 시리즈의 4화입니다. 


모두가 인공지능을 이야기하는 시대, 특정 직무가 언제까지 대체된다는 뉴스가 흘러넘친다. 많은 사람이 AI 인재가 되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오순영 센터장은 다른 의견을 제시한다. 열린 마음으로 AI와 친해지고 활용한다면, 자연스럽게 AI와의 흐름을 탈 수 있다고. 나를 대신할 경쟁자가 아니라, 같이 일하는 파트너로 바라볼 때 AI를 통해 더 많은 기회와 연결될 수 있다고 말이다.

재밌어 보여서 도전한 AI, 

새로운 가능성이 되다


Q. 한글과컴퓨터 개발자로 커리어를 시작해 최초 여성 CTO가 되셨고, 이후에는 KB국민은행 금융AI센터장을 맡으셨어요. 금융이라는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게 된 과정이 궁금해요. 

한글과컴퓨터(이하 한컴)에서 일하는 건 늘 정신없이 바쁘지만 재밌었어요. 그러다 보니 이직 타이밍을 놓친 거죠(웃음). 18여 년간 근무한 한컴은 제가 자부심을 가지고 일하면서 성장한 곳이에요. 좋은 동료들 덕분에 CTO, CEO, CSO 다 해봤고요. PC에서 모바일로 IT 산업의 판도가 바뀌고, 거기에 발맞춰 한컴 서비스가 확장되는 것도 경험했어요. 그러면서 해 보고 싶은 일, 할 수 있는 일 다 했죠. 

그런데 2022년이 되니까 ‘뭔가 다른 일을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삶에 변화를 주고 싶었고, 마흔다섯이란 나이는 타이밍도 좋다고 생각했죠. 그러면서 여러 선택지를 고민하던 와중 KB국민은행에서 제안이 온 거예요. 주변에선 다들 쉽지 않을 거라 했지만, 오히려 그래서 결정하기 더 쉬웠어요. 지금의 위치에서 자만하거나 안주하기 전에 새로운 도전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Q. AI 자체는 예전부터 있었지만, 최근 들어 특히 주목받는데요. 개발자로 일하시면서 인공지능의 성장 가능성을 일찍 발견하신 걸까요?

그것보다 우연히 AI 관련 일을 할 기회가 주어졌고, 호기심에 적극적으로 임했고 최선을 다한 게 잘 풀린 것 같아요. 사실 제가 설계한 대로 커리어가 쌓인 경우는 별로 없었어요. 기회가 보이면 치열하게 고민했고, 하기로 결정하면 뒤도 안 돌아보고 모든 걸 쏟아부었죠. AI도 마찬가지였어요. 제가 한컴 주요 제품군을 총괄할 때, 경영진에서 AI 도입을 고민했을 때 그 일이 제게 맡겨졌죠. 그때는 AI에 대해 잘 몰랐지만 그냥 재밌어 보였어요. 완전히 새로운 문제에 도전하는 것이기도 했고, 오피스 제품의 작업 생산성을 높이는 건 늘 숙제니까요. 그래서 처음에는 저 혼자 1명으로 팀 발령을 내달라고 인사팀에 요청했고, 업무 범위와 프로세스도 정리했어요. 

매번 새로운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제가 문제 해결을 위한 조직을 구성하고, 운영하는 데 재능이 있다는 걸 알게 됐죠. 딱히 멘토가 있었던 적도 없었기 때문에 해외 IT 기업들의 유명 테크 인사가 일하는 방식이나 용어 중 괜찮은 개념들은 적극적으로 내부 업무에 도입했어요. 제품 출시 전 안정적으로 제품화를 하기 위한 코드 프리징(code freezing) 관련 프로세스나 그 시대의 IT 트렌드나 통통튀는 아이디어는 백로그(backlog)로 관리하면서 매번 프로젝트를 기획할 때 들여다보고 꺼내쓰곤 했죠. 

저한텐 이 모든 게 너무 즐거운 일이었어요. 첫 AI 도입을 포함해 다양한 OS에서 한컴의 제품 라인업들을 기획하고 출시하는 것들이 거대한 소프트웨어들로 구성된 도시를 설계하는, 마치 <심시티>라는 건설 게임과도 같았죠. 지금의 챗GPT나 코파일럿(Copilot)과 비슷한 아이디어들을 실험했고, 제품에 적용하기도 했어요. 당시 AI 기술의 수준이 지금같진 않아서 샘 올트먼(오픈AI CEO)처럼 자랑스럽게 보여줄 수는 없었고 깊숙히 숨겨놔야 했지만요. 꽤 괜찮은 시도였었죠.(웃음). 


Q.  AI 업무를 하실 때 한컴 조직에서도 큰 변화가 있었던 것 같은데요. 

한컴에서 AI 번역 기능이 처음 들어간 게 2016년 초였고, 본격적으로 팀을 구성하던 건 2017년이었죠. 회사 전체가 생존을 고민하던 때이기도 했어요. PC에서 모바일로 플랫폼이 이동하고 있었고, 기존 마켓 외 확장을 위한 돌파구가 필요하기도 했죠. 그러던 와중 아마존이 인공지능 비서 알렉사(Alexa)를 출시하고, 마이크로소프트도 오피스 제품군을 강화했어요. 그래서 한컴만 할 수 있는, 한컴이어서 가능한 걸 찾아야 했어요. 그 답이 당시에는 한국어를 잘 아는 AI였던 거고요. 

한컴 역시 인공지능으로는 한 단계 더 높은 편리함을 구현하려 했어요. 오피스 소프트웨어가 기능은 엄청 많은데, 막상 자주 사용하는 기능을 20% 정도라고 보거든요. 파일을 찾기 힘들 때도 있고, 기능 자체가 어디에 있는지 찾기 힘들 때도 많고요. 그럴 때 AI가 도와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실제 제품으로는 2018년에 선보였고요. ‘한컴이 오피스의 틀에서 벗어난다.’는 메시지로 발표도 했죠. 지금 AI 만큼 매끄럽거나 빠르진 않지만, 반응도 나름 좋았어요. 그런 일을 하면서 AI 전반에 더 관심을 갖게 됐어요.


Q. 지난 5월에는 <AI 시대의 부의 지도>라는 책을 내셨는데요. 어떤 메시지를 전하려 하셨나요?

ChatGPT 등장 후 AI 책이 정말 많이 나왔잖아요. 저도 처음엔 GPT 주제로 책을 써달라고 제안 받았어요. 하지만 제가 가장 잘하는 건 기술을 일상에 녹여내는 일이었고, 늘 신제품를 기획할 땐 이러한 기술에 대한 응용을 경영진에게 보고하고 설득하는 일을 했기 때문에 저는 단순히 GPT를 논하기보다는, 사람들이 ‘AI 시대’를 해석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는 책을 쓰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AI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파악할 줄 알고, 스스로 어떻게 AI를 활용할 수 있을지 생각할 수 있는 사고의 힘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부의 지도’는 출판사에서 제안한 제목이라 제가 의도한 제목은 아니었지만, 그걸 키워드로 책이 경제경영/재테크로 분류됐고, 그 덕분에 경제 분야 종사자에게도 연결되면서 다양한 분야의 사람에게 관심 받았던 것 같아요. 


Q. 책 출간부터 강연까지 다방면으로 활동 중이세요. 지금은 어떤 일에 집중하고 계신가요? 

요즘은 그동안 제가 잘 해왔던 역할을 살려서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AI 인사이트가 필요한 분들께 멘토링도 해 드리고, 과실연(바른 과학기술사회 실현을 위한 국민연합) AI 미래포럼 공동의장 활동도 좀 더 집중하고 있어요. 저의 다음 커리어에 대해서는 최대한 폭넓게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죠. 저는 어려운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고, 문제를 조금은 다른 관점에서 보면서 해결하는 데 재능이 있는 것 같아요. 주변에서 그런 얘기도 많이 들었고요. 난해한 문제를 여러 사람과 소통하며 해결하던 일이 많았죠. 앞으로도 그런 능력을 살려서 일하고 싶어요.


‘AI 인재’라는 말은 

머지않아 없어질 단어


Q. AI가 화두지만 기업들은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이 많은데요. 순영 님은 어떤 고민을 주로 들으시나요? 

‘변화 속도가 너무 빠르다’ ‘어떻게 적용할지 파악하기 힘들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요. 모든 업계에서 AI 도입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공감은 생긴 것 같아요. 다만 투자 비용도 만만찮게 들고, 자신의 회사에 알맞은 솔루션이 어떤 모습일지 구체화하는데 어려워 하죠. 참고할 만한 사례도 아직까지는 별로 없고요. 


Q. 당장 필요한 AI 인재를 찾는 기업들이 많아진 건 어떻게 보시나요? 지금 기업들이 어떻게 인재를 채용하는지도 궁금해요. 

현재 기업들은 기존 인력들을 재교육하거나, 인공지능 부서를 새로 만들면서 AI 인재를 모으는데요. 각자 기업이 가진 상황과 여건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그에 맞는 AI를 도입해야 할 테고, 따라서 기업별로 생각하는 AI 인재의 모습도 다 다를 거예요. AI 직무가 많아졌다기보다는, ‘AI 인재’의 정의가 더 넓어지고 있는 거죠.

신입사원을 채용할 때 기업은 개인의 역량보다 호기심과 도전 의식을 더 중요하게 봐요. 빠르게 변하는 AI 트렌드를 계속 공부하고, 실무에 적용해야 하니까요. 반대로 경력직 지원자라면 과거 프로젝트와 역할를 주로 살펴보면서 연구나 개발을 얼마나 주도적으로 했는지 확인해 보고요. 또, 조직에 대한 태도도 중요해요. 특히 경력직의 경우 대부분 리더 포지션이기 때문에 그들은 조직에 줄 영향이 클 테니까요. 


Q. 채용을 해도 온보딩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죠. 우수한 AI 인재가 역량을 잘 발휘하려면 어떤 기반이 필요할까요?

기업이 AI에 대한 이해나 전략이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라면 그럴 수 있죠. 그래서 ‘AI가 왜 필요한지’ ‘어떻게 활용할 건지’ ‘채용을 한다면 무엇을 기대하는지’ 명확히 설정해야 해요. 오히려 개발 환경은 부수적인 것 같아요. 조직과 구성원들이 AI 시대에 맞게 변화할 의지가 있으면 충분히 해결되거든요. 인공지능 역량이 뛰어난 사람 입장에서도 ‘내가 그 조직에서 충분히 역량을 펼치며 일할 수 있나?’ 또는 ‘함께 할 수 있는 멋진 동료가 있나?’가 더 중요할 거예요.


Q. 개발자 중에서도 AI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관련 경험과 전문성을 쌓을 수 있을까요?

‘AI 인재’라는 단어에 갇히지 않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영어를 많이 쓰는 일을 하지 않아도, 영어를 하잖아요. AI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모든 분야에서 인공지능을 기본적으로 쓰는 시대가 오고 있거든요. 먼저 내가 5년 뒤, 10년 후 되고 싶은 모습을 먼저 그려보면 좋겠어요. 그래야 나에게 맞는 전문성을 파악할 수 있거든요. 만약 그게 인공지능 연구자라면 거기에 맞는 경로를 고민해야겠죠. 창업을 생각한다면, AI뿐만 아니라 사업가로서의 역량을 쌓을 다양한 도전이 필요할 거고요. 

내 일이 아니어도 호기심을 가지는 것도 필요해요. AI를 활용해서 작업 프로세스를 개선하거나, 동료들과 더 효율적으로 일할 수도 있잖아요. 그런 폭넓은 시야를 가져야 일의 전반적인 흐름을 보면, 리더나 C 레벨이 됐을 때 중요한 결정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을 거예요. 


Q. 기술은 빠르게 변하지만, 자기 전문성이 확실한 전문가들은 더욱 가치가 커질 것 같아요. 이렇게 성장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AI 시대의 전문가는 문제가 무엇인지 깊게 이해하고, 어떻게 해결할지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이에요. 단기 속성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죠. 요즘 ‘업스킬링(upskilling)’ 용어도 많이 나오잖아요. 업스킬링은 ‘지금 하는 걸 더 잘하는’ 거예요. 그리고 나의 실력을 발전시키기 위한 기본은 매사 최선을 다하는 거고요. 내가 맡은 일의 완성도는 내가 들인 정성만큼만 올라간다는 걸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일의 경중을 떠나서 내 이름을 걸었다 생각하고 해 보세요. 그렇게 하면 업무 숙련도와 마인드 셋은 자연스럽게 따라올 거예요.

물론, 완전히 새로운 걸 배우는 ‘리스킬링(reskilling)’을 고민하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이때 새로운 직무와 역할을 배우는 건 망설여질 텐데요. 무엇이든 일단 머리가 아닌 몸이 움직여야 나만의 역량이 돼요. 기술이나 트렌드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것도 중요하고요. 적극적인 호기심과 실천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AI에게 먼저 손을 내밀 때, 

기회의 문이 열린다


Q. 어떻게 보면 AI 시대는 이제 막 시작 단계인 것 같아요. 순영 님은 앞으로 어떤 활동에 더 집중하실 계획인가요?

40대 후반이지만, 20대 때 했던 고민을 여전히 계속하는 것 같아요. 제가 좋아하고,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 뭔지 찾고 있어요. 앞으로는 여러 영역에서 AI와 관련된 기회에 도전해 보려 해요. 인공지능 트렌드와 변화 그리고 변화 속에 숨겨진 의미를 이해하는 AI 리터러시(literacy)에도 관심 많아 더 공부하고 싶네요. 


Q. 마지막으로, AI 시대에도 ‘인재’로 인정받고 싶은 분들을 위해 한 마디 부탁드려요.

AI는 내가 좋아하고 잘하고 싶은 일을, 더 잘할 수 있게 도와주는 파트너가 될 거예요. 일자리를 빼앗는 경쟁자가 아니라요. 그래서 여러분이 즐겁게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지금 일이 재밌지 않다면 어떻게 그걸 바꿀 수 있을지 고민해 보시면 좋겠어요. 그 과정에서 인공지능과 어떻게 같이 일할 수 있을지 힌트를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일상에서 인공지능과 친해지는 연습도 해 보세요. 요즘 AI 툴 많잖아요. 처음부터 복잡한 프롬프트를 입력해서 멋진 결과물을 만들어내지 않아도 돼요. 이미지도 생성해 보고, 이전엔 검색창에만 입력했던 질문을 할 수도 있죠. 그런 시도가 여러분이 나만의 AI 로드맵을 만들 수 있는 계기가 되어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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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정은혜 원티드랩 콘텐츠팀 리드
글 최진수 객원 에디터
사진 최호근 포토그래퍼

발행일 2024.09.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