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정혜
메타버스엔터테인먼트 부사장
현) 과실연 AI 미래 포럼 공동 의장 (컨텐츠/엔터 분야)
현) 구글 스타트업 캠퍼스 마케팅 멘토
현) 오렌지 플래닛 마케팅 액셀러레이터
전) 카카오 엔터테인먼트 미래전략 VP
전) 카카오페이지 CMO
전) 토스랩 잔디 Head of Marketing
전) 네이버 마케팅 리더
버추얼 아이돌에 페르소나 AI를 접목하다!
메타버스엔터테인먼트의 도전은 굉장히 실험적이었던 것 같아요. 풀 3D를 구현한 기술은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난도가 높은 영역이잖아요. 정혜 님은 그 과정에서 어떠한 역할을 하셨나요?
2022년에 챗 GPT가 처음 나왔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AI를 나와는 동떨어진 먼 이야기로 여겼어요. 당장 업무나 일상에서 사용할 일이 많지 않았고, 시장에 나온 AI 기술은 꽤 어설프게 보였으니까요. 그러다 올해 초부터 실제 적용 사례가 나오고 여기저기에서 AI가 거론되면서 조직이든, 개인이든 굉장히 쫓기는 듯한 불안감을 가지는 것 같아요.
메타버스엔터테인먼트도 비슷했어요. 해볼 만한 건 많았지만 우리 비즈니스 안에서 풀 수 있는 것을 찾는 것이 관건이었어요. 여러 논의 끝에 AI 아이돌도 팬이 형성될 수 있을지, 그들의 팬심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어떤 방식으로 AI 아이돌을 구현할지 등이 어젠다로 떠올랐어요. 즉, AI와 아이돌 엔터테인먼트를 접목시켜 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AI가 디지털 아이돌에 있어 팬과의 경험에서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회사 내부 외부에 있는 도전적인 분들과 이전에 없던 새로운 경험을 엔터 사업에서 할 수 있는 기회이자 도전이라고 생각했어요. 다행히 흥미롭게 생각한 분들이 많아서 이런 실험적인 도전을 시작할 수 있었어요. 사업개발팀과 함께 AI 기술을 접목해 페르소나 AI ‘챗시우’를 만들어 실험을 해 나갔고요. 불과 1년 전이지만 그때와 지금이 또 많이 달라요. AI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발달해 가니까요. 그때는 지금보다 기술력도 부족하고 갈팡질팡하곤 했는데 그래도 시장에서 빠르게 새로운 실험을 해 볼 수 있었기에 저에게는 값진 경험이었어요.
아이돌엔터테인먼트를 잘 모르는 저에게 챗시우는 조금 생소한 게 사실이에요. 페르소나 AI로 일컬어지는 챗시우 프로젝트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 들을 수 있을까요.
업계에서도 페르소나 AI는 완전히 새로운 영역이에요. 단순히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인격이 부여되어 팬들과 소통하는 모습까지 구현시킨 거니까요. 메타버스엔터테인먼트에서는 디지털 아이돌 ‘메이브’를 만들었고, 챗시우는 메이브의 리더이자 디지털 아이돌의 첫 그림이라고 할 수 있어요.
아무래도 사람들은 실제 사람이 아닌 버추얼 아이돌에게는 거리감을 느낄 수 있잖아요. 그래서 그 거리감을 좁힐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고민했고 이때 AI를 활용해 팬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 모아졌어요. 우리는 보통 어떤 사람과 1:1로 깊은 대화를 나누면 이 사람과 나의 내적 친밀감이 달라지잖아요. 그동안 AI를 챗봇 형태로 제공하는 곳은 많은데 이들 대부분이 그저 봇의 형태로 형상화했다면 저희는 여기에 페르소나를 적용한 것이죠.
하지만 비주얼적으로 만드는 것은 여전히 한계가 많았기에 텍스트로 풀어보자고 했어요. 지금 세대들은 대면이나 음성보다는 챗을 선호하니까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본 것이죠. 그렇게 해서 챗시우가 탄생했습니다.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고, 챗을 통해 팬들과 소통하면서 친밀감을 높이는 디지털 아이돌의 모습을 구현한 것이죠.
버츄얼 아이돌 메이브의 리더 ‘시우’
당시에 메타버스엔터테인먼트의 AI 기술력이 이를 실현할 만큼 고도화되어 있었나요?
그건 아니었어요. 저희는 아이돌 페르소나를 만드는 콘텐츠 사업 역량이 있었지만, 기술은 다른 영역의 것이었죠. 따라서 AI 전문회사인 ‘업스테이지’가 기술적인 부분을 해결해 주는 방식으로 콜라보를 했어요. 이 과정이 매끄럽게 진행되기 위해서 양질의 데이터가 필요했어요. 페르소나를 학습시켜줄 양질의 데이터를 만들어야 했고, 이 데이터가 실제로 양질인지를 판단할 수도 있어야 했죠. 그 판단은 콘텐츠와 비즈니스 영역이에요. 이처럼 AI는 분명 기술의 영역이지만, 기업에서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비즈니스적인 안목이 필요해요. 비즈니스 관점과 기술이 만나야 좋은 서비스가 나올 수 있는 것이죠.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AI 기술을 전혀 알지 못한 사업팀 멤버, 심지어 소설가와 콘텐츠 PD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해 결과물을 만들어냈어요. 물론 기술에 대한 이해도가 높을수록 우리 목표를 더 디테일하게 세울 수 있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구현할 수 있는지 그려낼 수 있겠지만 분명한 건 AI 서비스 영역은 단지 기술만의 영역이 아니라는 것이죠. 기술은 점점 평준화될 것이고, 시장의 승패를 갈라놓는 건, 결국 좋은 학습을 시킬 양질의 데이터를 어떻게 만드느냐인데, 이건 기존 비즈니스 영역에서 잘 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AI에 대한 기술적 이해와 산업에 잘 쌓여있는 데이터가 만나야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죠.
신규 서비스를 만들 때는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들어야 하니까 종종 막연해질 거 같아요. 페르소나 AI 프로젝트는 어땠나요?
영화 <her> 아시나요? AI 업계 사람이라면 한 번쯤 보고 영감을 받고 있는 작품이죠. 영화 her의 사만다는 AI 업계에서 늘 그리는 이상형 같은 존재예요. 농담반 진담반으로 “그래서, 우리는 언제 사만다를 만들어?”라는 이야기를 하곤 했으니까요. 하늘 아래 새로운 건 없다고 하는 것처럼 지금 우리가 AI와 함께 하는 모습은 이미 영화나 드라마에서 작가들의 상상력으로 그려왔던 것들이에요. 그 상상력의 지점을 향해 기술이 달려가는 것이죠. 실제로 그런 그림이 그려져 있으니 기술이 좀 더 빠르게 갈 수도 있고요.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막연하게 그리고 가면 힘든데, 개발자들도 ‘우리는 사만다를 만드는 게 목표야’라고 하면 이해가 쉽고 그 목표를 달성하려면 뭐가 필요하지라고 접근하면 생각이 쉬워지는 것이죠.
시작은 아이돌이었지만, 비즈니스 크리에이티브 관점으로 본다면 드라마, 영화 드라마 웹툰 소설 속 수많은 인물과 캐릭터에 적용할 수 있다고 봤어요. 이 가능성을 보고 시작한 것이죠.
예상치 못한 난관도 있었을 거 같아요.
생성형 AI는 축적된 데이터를 학습해 새로운 답변을 계속해서 만들어내는 식이라면 페르소나 AI는 해야 하는 이야기만을 학습 데이터로 넣어주는 식인데, 사람의 인격을 만든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에요. 아이돌을 셋업 할 때 이 아이는 어떤 성격이고 어떤 특징이 있다 정도는 쉽게 설정할 수 있는데 대화 과정에서 이 아이만의 고유한 캐릭터가 나오도록 하는 게 어렵죠. 예를 들어 좋아하는 게 뭔지, 싫어하는 게 뭔지 정도는 대답할 수 있지만 그 사람다운 고유의 반응이 나오도록 세부적이고 디테일한 설정이 필요했어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캐릭터 빌딩에 뛰어난 전문가가 필요했어요. 바로 웹 소설, 드라마, 영화 작가처럼 캐릭터를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이 필요했어요. 그들이 나서서 아예 한 사람의 완전한 인생 스토리를 짰어요. 처음에는 에피소드를 소설의 챕터처럼 짰다가 대화 형식으로 다시 만들었어요. 수많은 작업을 거쳤죠. 줄글을 입력해 대화 형태로 바꾸는 작업은 챗 GPT 도움을 받기도 했어요. 이건 ‘시우’가 할 만한 질문인지, 이런 답변을 할 것 같은지를 OX로 체크하면서 데이터를 쌓았어요.
기술 총괄이 아닌, 비즈니스 총괄이 프로젝트를 리드하신 건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해 본 적 없는 길을 가다보니까 필요했던 것 같아요. 계속 난관들이 생기는데 기술적인 부분은 잘 해결해 주는 팀이 있었고, 그 외의 프로젝트에 필요한 부분을 계속 해결하면서 드라이브를 걸어줄 사람이 필요하다보니 그랬던 것 같아요. 이 프로젝트에서 어떤 리소스가 필요하고, 어떤 영역에서 전문가가 투입되어야 하는지, 어떤 방향성으로 가야 하는지를 총괄하는 역할을 했어요. 디테일을 챙기는 PM은 따로 있었고요. 기술을 리딩하는 업스테이지 멤버들과 캐릭터 빌딩과 비즈니스 그림을 만드는 저희 멤버들이 함께해서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프로젝트의 특성상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이고, 멤버 모두가 한 번도 안 해본 일이기에 방향성을 잘 잡지 않으면 표류하기 딱 좋은 프로젝트였어요(웃음). 그래서 우리가 무엇을 향해 가고, 적어도 어떤 아웃풋을 만들어야 하는지라는 이미지를 명확하게 가지고 있어야 했어요. 그때 발휘되는 것이 비즈니스 목표고 여기에 맞춰 필요한 부분을 정하고 의사결정을 명확히 할 수 있었죠.
처음 목표에서 20~30%만 구현됐을 때 서비스를 출시했어요. 원래 목표는 시우뿐만 아니라 메이브 멤버 모두가 구현되고, 멤버끼리의 관계성까지 만들어지는 레벨을 원했어요. 제가 그린 마지막 그림은 카톡이나 라인 안에 ‘메이브’라는 채널이 개설되고 이 안에서 멤버 한 명 한 명과 이야기할 수 있는 모습이었는데 아쉽게도 그만큼 가지는 못했어요. 전체 과정이 4~5개월 걸렸어요. 원래 생각했던 일정보다는 많이 걸렸지만 나쁘지 않다고 봤어요. 여러 이유에서 더 디벨롭 없이 메이브는 라이브 콘텐츠 위주로 돌아가고 있어요.
누구보다 먼저 AI 프로젝트를 경험한 정혜 님께 AI 시대에 나만의 비즈니스 안목을 키울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조언 부탁드려요.
중요한 건 ‘지금 우리가 해결하고 싶은 과제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먼저라고 생각해요. 어떤 새로운 경험을 우리 고객에게 주고 싶은지, 그건 왜 가치가 있는지가 먼저고, 그 다음이 AI 기술이 우리를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 생각해 보는 관점이 중요합니다. 혹은 반대로 새로운 AI 기술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세요. 스스로 고민하고 있던 문제에 어떻게 접목하면 새로운 답을 만들 수 있는지 아이디어가 떠오를 거에요. 우리가 해결하고 싶은 문제를 먼저 잘 정의해 보고, 지금 기술이 어디까지 가능하고 어디까지 와 있는지 계속 확인하면서 두 지점을 연결하다보면 좋은 아이디어로 발전할 수 있을 듯해요.
문과생이라 AI 시대가 두렵다고요?
아무래도 비개발자들에게 AI는 더 생소하고 두려운 영역일 것 같아요. 당장 뭘 해야 하나 싶다가도 AI라는 단어에 나와는 먼 영역이 아닌가 싶기도 하니까요.
AI 활용에서 디자인이나 개발 직군은 명확해요. 그런데 비즈니스 직군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적용해야 하는지 애매한 부분이 있죠. 처음에는 기획이나 아이디어, 자료를 정리할 때 활용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이를 자료로 만들거나 케이스 스터디를 할 때 적극적으로 활용해 보는 것도 좋겠죠.
분명한 건, AI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거예요. 거부할 수 없는 운명과 같은 존재입니다(웃음). 예전에 주판을 사용할 때 계산기가 나오고 컴퓨터가 나와도 계속 주판을 사용할 거라는 분들이 있었는데 결국 다 사라졌어요. 컴퓨터 활용이 자연스러워진 것처럼 AI 활용도 일상이 될 거예요. 무엇보다 AI에게 어떻게 질문하고 어떻게 일을 시킬 것인지를 고민하고 연습해야 해요. AI는 정확하고 디테일하게 이야기할수록 놀라운 결과물을 가져오거든요.
AI와 일할 때는 어떻게 질문할 것인지, 어떤 일을 시킬 것인지가 중요해집니다.
AI를 배우고, 익숙해져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사실 또 그 변화가 너무 빠른 거 같아요. 따라가기가 힘들기도 해요.
맞아요. 자고 나면 새로운 뉴스가 나오고 AI 책들은 몇 달만 지나고 올드한 이야기가 되어버리는 상황이죠. 이런 상황이다 보니 가장 빠르게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건, SNS예요. SNS는 알고리즘에 의해 내 관심사를 계속 띄워주잖아요. 그렇게 AI와 가까워지고, 정보를 쫓아보시길 추천합니다. 물론 가장 중요한 건 얼마나 활용하느냐예요. 막연하게 어렵다고 생각하지 말고 내 업무나 일상에서 활용하면서 익숙해지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정혜 님은 새로운 툴이나 기술에 호기심이 많은 편이신 것 같아요.
그런 편인 거 같아요. 새로운 게 나오면 직접 보고 싶고, 사용해 보고 싶어요. 재미를 느끼니까 즐겁게 시도해 보는 거 같고요. 이런 성향이다 보니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 하는 페르소나 AI 프로젝트도 저에겐 즐거운 과정이었죠. 남들보다 빨리 AI에 닿을 수 있었던 것 자체가 기회로 여겨졌고요.
저는 당장 눈앞에 있는 업무에 집중하면서도 제 레이더의 반은 현재 업무 너머의 새로운 영역을 향해 있어요. 그러다 보니 새로운 기술에 대한 정보도 빠르고, 업계 사람들과의 교류도 많아지는 것 같아요. 이러한 활동이 결국 다시 제 일로 연결이 되고요. 사실 큰 조직일수록 업무 하나하나가 세분화되어 쪼개져 있어 스스로 시야를 키우는 연습을 하지 않으면 내 일에만 매몰되기 쉬워요. 그러면 어느새 거대한 조직에서 부품처럼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요.
그래서 저는 연차가 쌓일수록 내 에너지의 10~20% 정도는 새로운 것들에 열어뒀으면 좋겠어요.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새로운 기회를 발견하고, 남들보다 먼저 그 영역을 경험하게 될 수 있겠죠. AI 영역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재 우리의 손발이 되어 줄 도구들이 빠르게 등장하고 있어요. 그럼 우리는 이들을 어떻게 활용할지를 구체적으로 상상하고, 사용해봐야 해요. 그리고 그 너머의 세상을 계속 그려나가야 하는 것이고요. 새로운 세상으로 넘어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앞으로 정혜 님은 AI 영역에서 어떠한 활동을 해나갈 계획이신가요?
모든 분야에 마치 기본 인프라처럼 깔릴 예정이라 저는 제 업인 콘텐츠와 엔터 부문에서 계속 고민을 할 것 같고요. 올해 내년은 ‘AI 리터러시가 곧 국가 경쟁력'이라는 아젠다에 저도 크게 공감하고 있어 이 부분 확산에 노력을 보탤 생각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분야 중에 가장 흥미로운 것은 ‘페르소나 AI’ 분야여서 이 부분을 중심으로 계속 스터디해 나가고 싶어요. 이제 시작이니까요.